[Opinion] #틈, 찰나의 다이얼로그 展 [미술/전시]

글 입력 2022.04.30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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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 찰나의 다이얼로그


가구의 추상과 실제 사-이의 틈새를 조명합니다.


SNU X HONGIK EXHIBITION


2022.3.27.—30. 57th gallery


@teum_dialogue

 

 

《#틈, 찰나의 다이얼로그》는 가구에 대한 추상과 실제 사이의 틈을 조명한다. ‘아이디어(IDEA)’와 그것을 현실화한 ‘실물 목업(MOCKUP)’ 사이의 간극을 인지하고 좁히기 위한 인터페이스 전시이다.

 

평면 스케치와 디지털 프로그램을 통해 발현한 가상의 이미지들이 감각할 수 있는 물성이 있는 것으로 놓일 때, 2D와 3D 사이 묘한 이질감이 든다. 이러한 차원의 '틈'을 마주하기 위해 작가의 골몰의 양상과 그것을 끄집어낸 사물의 양태를 함께 병치해둔다.

 

본 전시는 가구 속 찰나의 틈을 만들어 그사이에 서서 작품과 대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든다. 사유의 과정을 통해 얻어낸 나의 ‘가구'의 구상과 실물 작품 사이에는 사람이 빠져드는 빈 공간이 있다. 그 개입의 공간이 가진 다이올로그의 모호성이 오히려 열린 가능성이자 잠재적 형태가 된다.

 

인식의 경계에서 관람객은 가구와 사람, 가구와 그 재료, 가구와 공간 사이를 자유로이 유영한다. 새롭게 구축된 공간 속 흐르는 시간의 켜를 읽고 그 너머를 바라보며, 가구 속 자신만의 틈새를 만들어보길 바란다.

 

당신은 어떠한 ‘가구’에 시선이 끌리나요?

 

 

틈 포스터 진짜진짜 최종 (1).jpg

 

 

항상 일상 속 틈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겐 여유를 만드는 연습이 간절히 필요했다. 뭐 하나에 빠지면 여유없이 계속 돌진하곤 해서 번아웃이 자주왔다. 이럴 땐 엄청 빠른 속도로 움직여야하고 그래서 더 조급해지기도 했다.

 

특히, 이쯤에는 호흡이 편안히 되지 않았을 때인데 집중할 때는 숨쉬는걸 계속 까먹어서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잠깐의 틈이면 괜찮았을 텐데 그게 그렇게 어려웠다. 느슨하게 있으면서 '비움'의 상태에 도달하길 원했다.

 

 

“비움은 단지 ‘사이-존재(Dasein)'로서 있으며, 이것은 말하자면 멈춤 (Verhaltenheit)으로 있다.”

 

- 하이데거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이 전시를 기획하며 나 자신도 틈을 만드는 연습이 많이 되기를 바랬다. 그리고, 관람자들이 전시를 보며 가구 속 '틈'을 만드는 연습을 할 수 있도록 해 결국 일상 속에서도 '틈'을 만들 수 있게 되기를 바랬다.

 

가구라는 전시 주제 속 우리가 주목한 틈은 '구상과 실물 작품' 사이의 틈이었다. 그래서 아이디어와 실물 목업을 "병치"한다는 것을 컨셉으로 잡았다.

 


무의식과 의식의 세계를 항상 넘나들며 사는 우리에게 '직관'의 영역을 '기억'의 영역에만 매어두지 않고 재차 '감정'과 '관계'의 틈과 결로 소환하여 결국은 그 스스로도 찜찜함을 조금씩 지워내며 대신 새로운 시각적 개입을 통해 선험적 경험을 '상상'의 세계로 재현하고, 상쾌한 듯 시큰하고 완성된 듯 모호하게 병존할 수 없는 두 차원을 한 차원 안에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마치 이상의 시 「거울」처럼 말이다.

 

[참고] 미세한 틈, 모호한 결 서문 中

 


틈 포스터 모션 (3).png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빛 : 영국 테이트미술관 특별전> 에서 착안해 내러티브를 잡았다.

 

[1] 틈을 조명하면, 거리감이 생겨 새롭게 관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캐서린 야스의 Coriddoros 시리즈는 라이트 박스 위에 양화와 음화 이미지를 겹쳐 놓은 작품이다. 처음 이 작품을 봤을 때, 분명하게 틈을 느꼈고 그 사이에는 빠져들 수 있는 어떠한 빈 공간이 존재했다. 사물은 단순화되며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되돌아갔으며, 그가 가진 가장 감각적 의미로 추상화되었다.

 

이를 통해 평범한 복도일 뿐인 작품 속 일상적 사물과의 '관계'를 아주 낯설게 바라봐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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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시각적 경험이 주관적이고 고유하다는 것을 확인하며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올리퍼 엘리아슨, <노랑 대 보라>는 유리 원반을 통과하는 빛은 노란색으로, 반사되는 빛은 보라색으로 보이게 처리하였다. 이를 통해 색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물리적 방식으로 색을 인지할 때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시각적 경험은 주관적이며 고유하다는 것을 확인한다.

 

 

img.jpg

 

 

[3] 가구 속 인식의 틈을 벌리면, 그 사이의 무한한 확장성을 발견할 수 있다. 틈새는 지속적으로 의미의 흐름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관람객은 개인화 과정을 거치며 담론은 재생산된다.

 

제임스 터렐의 <레이마르, 파랑>은 격벽 뒤에 설치된 파란색 빛을 통해 벽이 전시실 뒤에 떠있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연출한 작품이다. 작품 앞에 바로 서면 초점을 둘 곳이 없다. 말 그대로 '무언가를 본다는 것', 인식의 한계를 느낄 수 있었다.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볼 수 있을 뿐이며, 명상적 상태를 유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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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민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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