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주인공이 맛있다니 맛있는거겠지? [문학]

글 입력 2022.04.17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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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도대체 무슨 음식인고?


  

나는 음식이 좋다. 음식 자체도 좋아하고 음식을 먹는 행위, 음식을 담는 식기 등을 좋아한다. 그렇기에 책에서 등장하는 식문화에 관한 서술 부분을 특히 좋아한다. 고전, 동화, 장르 소설, 만화 등등 장르에 국한 하지 않고 주제가 음식인 이야기는 되도록 읽으려고 노력하고 주제가 아니라도 전개중에 짧게라도 나오면 그 부분을 오래 기억하는 편이다.


동화나 판타지 장르에서 등장하면 극 중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식재료나 음식의 이름을 다르게 하기도 하는게 그게 실제로 어떤 식재료나 음식에 해당하는지 생각하며 보는 재미가 쏠쏠하고 현대 문학이나 고전에서 나오는 것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이니 내가 먹어봤다거나 먹어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읽는다.

 

어릴 시절에는 컴퓨터가 활발하게 보급된 시절이 아니기에 궁금해도 어른에게 물어보거나 그림책 속 삽화로 이해하는게 전부였다. 지금이야 모르는 음식이 나오면 바로 검색해 볼 수 있으니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 볼 수 있었다지만 그 시절에는 책에서 그렇다고하면 그런 것이었다.

 

전래동화의 경우 부모님이나 조부모님께 물어보곤 했지만 서양 동화에 등장하는 음식은 어른들도 잘 몰랐다. 가령 이런 식으로 말이다.

 

 

바구니에 땅콩버터와 젤리를 바른 샌드위치, 롤빵과 올리브, 고기 파이, 푸딩을 담아 소풍을 떠났다. 햇살이 내려쬐는 잔디에 앉아 돗자리를 펼쳤다. 잔에 나무딸기 주스를 따르고 음식을 차례로 꺼냈다.

 

 

지금이야 '음. 그렇군. 이게 푸딩이고 저게 파이구나.'하지, 어릴 땐 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소풍인데 김밥을 안먹어?' '푸딩이 뭐지? 올리브는 또 뭐야? 파이에 왜 고기를 넣어?' 물음표의 향연이었다. 삽화가 있어도 그림을 딱 짚으며 '이것은 무엇입니다.'라고는 못했다. 컵에 담긴게 나무딸기 주스겠지 했다.

 

우리 집 밥상은 항상 한식이 주 였기에 전래 동화 이외에 등장하는 음식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기에 어린 나는 항상 책 속 음식을 동경했다. 그런데 나만 그런게 아닌가 보다.

 

오늘은 소설과 음식 그리고 번역의 이야기 '생강빵과 진저브레드'를 소개해보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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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음식들.


  

음식이란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 중 하나이다. 시대 속 인물들의 생활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문화이기도 하다. 계급, 나이, 동 서양을 막론하고 등장인물들의 생활을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가장 큰 매개체라고 생각한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에 나오는 옥수수 팬케이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나오는 햄과 그레이비 소스,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집 등 소설 속 시대 상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거나 등장인물의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새로운 시련이 되기도 한다. '생각빵과 진저브레드'에서는 이 외에도 다양한 소설들이 등장하며 그 소설 속 음식에 대한 김지현 작가의 감상을 담은 산문집 형식이다.

 

기본적인 빵과 수프, 주요리, 디저트의 순서로 진행되기 때문에 기나긴 코스요리를 먹은 듯한 기분이 든다. 각 음식의 간단한 설명과 소설 속에서 그 음식이 어떻게 역할을 하는지와 실제 음식의 대한 이야기와 번역 후일담 같은 내용도 담겨있다. 나는 영미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젤리 샌드위치'의 제리를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이해했다.


 

무언가에 발라먹거나 곁들여 먹도록 과일을 가공한 잼 같은 것이다. 과일즙에 설탕을 넣고 끓이면 나오는 펙틴 성분을 이용해 모양을 굳힌 것을 젤리라고 한다. 잼이긴 잼인데  과육이 없는 투명한 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 생강빵과 진저브레드 中

 


그러니까 딸기잼을 만들다 건더기는 건지고 국물로만 만든 잼이라는 말이렷다! 드디어 이해했다. 그 외에도 '월귤'이 겨울에 까먹는 귤이 아니라 베리류 라는 것과 '라임 오렌지'가 실제로 존재하는 라임과 오렌지를 교배한 종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사람마다 단어를 보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이미지가 다를 것이다. 내가 월귤을 보고 귤을 생각했듯 말이다. 원작 작가의 의도에 맞게 번역을 하는게 정말 힘들구나.

 

 

 

영국에도 찐빵이 있구나!


  

초등학생 때 반에는 소공녀 책이 있었다. 세라가 거친 세상 속에서 꿋꿋하게 버텨내어 행복한 결말을 맏이하는 명작이었다. 읽은지 오래되어 잘 기억 나지 않지만 빵집 부분은 선명하게 기억난다. 내가 읽었던 책에서는 세라가 동전을 주워 빵집에서 빵을 사는데 분명히 빵집주인이 '찜통'에서 빵을 꺼냈다고 서술되어 있었다.

 

유치원생이 아닌 초등학생인 나는 알고 있다. 빵은 오븐으로 굽는다는 것을! 하지만 뜬금없이 찜통이 등장했다. 그래서 순진한 나는 그대로 믿고 말았다. '아 영국에도 찐빵이 있구나.' '비오는 날 뜨끈하게 찐빵 좋지.' 나는 그후 10년이 지나도록 세라가 사먹은 빵이 찐빵인 줄 알았다. 찐빵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알았다. 찜통이 아니고 오븐이란다. 그리고 그 빵이 찐빵이 아니고 건포도 빵이란다. 허. 내 세상이 무너져내렸다. 나의 기억은 무엇인가. 내 독서 인생이 통째로 부정당한 기분이었다.

  

학창 시절 영어 지문 번역 숙제를 펼쳐보면 같은 지문이라도 결과물이 조금씩은 다르다. 번역이라는게 그렇다. 사람이 작문을 할 때 각자의 버릇처럼 자주 쓰는 단어로 바꾸고는 한다. 외래어를 그대로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슷한 단어를 찾아 바꾸는 사람도 있다. 문맥 분위기에 맞춰 동사를 변형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그대로 직역하는 사람도 있다.

 

소설이라고 다를까. 번역가마다 번역하는 스타일 다르다 보니 출판사마다 조금씩 다르게 번역되어 나올 것이다. 유명한 소설일 수록 더욱 다양하게 번역될 것이며 내가 읽었던 소공녀 처럼 아예 다른 단어가 되기도 할 것이다. 번역가들도 한국어판을 읽는 독자들에게 생소한 문화를 이해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다양한 번역이 나올수록 그만큼 다양한 의미가 생겨나고, 독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경험의 폭도 넓어지기 때문이다.

 

- 생강빵과 진저브레드 中

 


내가 찐빵 먹는 소공녀를 읽었듯 누군가는 오븐에서 구운 빵을 읽었을 것이다. 모두 완벽하게 번역된 책을 읽는것도 좋지만 같은 이야기라도 서로 다른 번역을 이야기하며 웃음꽃을 피울 수도 있을것이다.

 

 

[빈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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