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강렬하고 흐릿한, 뮤지컬 "스메르쟈코프"

파헤친 내면에 무엇이 있을까.
글 입력 2022.04.15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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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스메르쟈코프>는 소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의 스핀오프 공연이며 H. 호프만의 <모래사나이>에서 얻은 모티브를 중심으로 각색된 작품이다. 즉, 뮤지컬 <스메르쟈코프>는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과 <모래사나이>의 결합체라고 볼 수 있다.

 

<브라더스 까라마조프>가 원작과 결이 다른 만큼 뮤지컬 <스메르쟈코프>도 원작과 다소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원작에서 스핀오프로 이동하는 동안 스메르쟈코프의 동기는 내면을 향한다.

 

 

[스메르쟈코프] 메인포스터.jpg

 


 

스메르쟈코프의 세 유형


 

원작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의 스메르쟈코프는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에선 이반을 맹신하는 존재로 나오며 <스메르쟈코프>에선 신에 치환한다.

 

소설의 첫 등장에서 스메르쟈코프는 귀족이 아닌 출생 때문에 자격지심이 잔뜩 묻어난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발작을 하는 백치 정도로 여긴다. 표도르는 자신이 잃어버린 돈을 그대로 주워준 일을 통해 스메르쟈코프를 신뢰하는 한편 멍청하다고 여기며 친부 살해의 용의자로 몰린 드미트리는 유약한 그가 범인일 리 없다고 생각할 만큼 겁이 많고 유약하게 비춰진다.

 

하지만 실제 그는 어린아이 앞에서 바늘이 든 식빵을 개에게 던져 개에게는 고통을, 아이에게는 트라우마를 안겨줄 만큼 폭력적이다. 이반을 설득해 타지에 보내면서도 대화를 복기했을 때 살인 도모를 하였단 흔적을 남기지 않을 정도로 용의주도하다.

 

원작 스메르쟈코프의 가장 큰 동기는 새로운 삶이다. 지긋한 고향에서 벗어나 프랑스에서 귀족 행세를 하며 자신의 재능을 떨치고 살기를 원한다. 그렇기에 표도르의 살해에 가장 큰 방해가 되는 사람이자 표도르의 죽음으로 가장 큰 이익을 얻을 이반을 끌어들인다. 이를 통해 스메르쟈코프는 표도르가 그루첸카를 위해 마련한 삼천루블과 이반의 보상을 얻게 되므로 평생 귀족 행세를 할 수 있게 된다.

 

한편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에서 스메르쟈코프 행동 동기는 다른 곳에 있다. 그는 이반의 대심문관에 감화되어 공연 내내 이반을 따라 하는 모습을 보인다. 원작에서 큰 동기였던 표도르의 삼천루블에 대한 이야기가 공연에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드미트리가 아버지를 죽이고 싶어 한다는 말을 할 때 잠깐 언급되는 정도다. 스메르쟈코프의 행동 동기는 이반의 사상을 완성하는 일에 더 가깝다.

 

 

신이 세 가지 물음에 답하지 않았기에 모든 것은 허용될 수 있다. 

 

 

이 말은 신이 만든 세상을 부정하는 뜻이었지만 스메르쟈코프는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 그는 살인을 통해 자신 안에서 이반의 사상을 완성한다. 신이 없으니 무슨 짓이든 일어날 수 있고 그렇기에 표도르를 죽일 수도 있다. 이는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는 이반의 욕망이 그대로 드러난 것과 같다. 단지 스메르쟈코프가 이반을 대신해 실행한 것이다. 그렇기에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에서는 의지와 행동 중 무엇이 먼저인가에 대한 질문이 던져진다.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의 스핀오프 격인 뮤지컬 <스메르쟈코프>는 그가 발작하거나 죽기 직전이면 가게 되는 내면 묘지가 배경이다. 이 내면의 세계에서 세 시점의 스메르쟈코프가 만나 자기가 무엇인지 찾아나서는 과정을 그린다. 내면인 만큼 뚜렷하고 확실한 것이 없어서 난해하다. 이 내면에서 유일하게 이어지는 이야기는 고통이다.

 

스메르쟈코프는 끊임없이 자신에 대해 질문한다. 그 과정에서 발작하는 이유에 대해 고민한다. 그는 발작을 모든 사람의 고통을 대신 받아들이는 행위로 정의한다.

 

어둠이 있어야 빛이 있고 악마가 있어야 신이 있다. 스메르쟈코프가 형제들의 고통을 대신 느끼기에 타인은 아프지 않다. 형제들의 고통스러운 원인은 아버지 표도르 까라마조프다. 스메르쟈코프는 자신의 고통을 없애기 위해 표도르를 죽인다. 그러나 표도르를 죽이고 나서도 발작은 멈추지 않는다. 발작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극 중에선 정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다만 스메르쟈코프 본인이 악마이기 때문이라고 어렴풋이 생각할 뿐이다. 스메르쟈코프는 죽음과 맞닿아 있는 이곳에서 깨어나지 말아야 하는 건 아닐지 고민한다.

 

모든 사람의 죄를 한 사람이 받아들이고 희생하는 이야기. 스메르쟈코프는 본인을 신과 같은 위치에 올려둔다. 차이라면 스메르쟈코프가 인류를 위한 희생 정신을 느꼈다기 보다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더 컸으리란 점이다.

 

이상적 삶을 위한 살인에서 사상의 완성을 위한 살인, 나아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살인. 이 셋은 지극히 이기적인 살인이란 공통점이 있지만 점점 내면으로 향한다는 차이가 있다. 커다란 행위는 같으나 행위를 하는 동기가 다른 만큼 뮤지컬 <스메르쟈코프>는 독자적인 이야기 세계를 구축해 나간다.

 

 

 

강렬하며 흐릿한


 

뮤지컬 <스메르쟈코프> 관람 후 기억나는 장면을 뽑으라면 여러 개를 말할 수 있다. 무덤에 갇힌 무덤지기와의 대화, 요리 학원에서의 깨달음, 조시마 장로와의 대화, 발작따위가 그렇다. 하지만 줄거리를 말하라면 어렵다. 떠오른 어떤 장면도 서로 이어지지 않는다. 여러 장의 사진을 보는 것 같다. 순서를 맞출 수도, 기억나는 기억을 토대로 줄거리를 설명할 수도 없다.

 

스핀오프 형식을 취하는 이 극은 오직 뮤지컬 <스메르쟈코프>만 보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 같다. 극의 후반부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의 장면이 재현된다. 극이나 주제에 맞게 변형하거나 차용한 게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역할 정도로만 쓰인다.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의 시간선 사이사이에 <스메르쟈코프>의 내용을 집어넣었기에 극의 진행 상황을 알려면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의 극 장면이 나와야 한다. 장면 자체는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를 모른다 해도 상관없겠지만 전체적으로 본다면 흐름을 따라가기 어렵다. 그러니 장면만 떠다닌다는 생각이 든다.

 

무덤지기/고문기술자와 스메르쟈코프의 이야기만 해도 그렇다. 무덤지기는 사람들의 무덤 안에 온갖 보석이 있다고 말한다. 자신은 그것을 파먹고 산다고. 무덤지기는 몇 번이고 스메르쟈코프에게 무덤을 파서 보물을 가져오라고 명령하지만 스메르쟈코프를 실행하지 않는다. 추후에 고문기술자가 스메르쟈코프를 찾아와서 묻는다.


 

무덤은 모두 파헤쳐져 있었는데 보석은 거기에 있었어. 넌 왜 보석을 가져가지 않았지?

보석보다 더 귀한 게 있으니까.

 

 

고문기술자는 무엇이 귀한 지 묻자 스메르쟈코프는 이반의 대심문관을 기억해낸다. 이후 대심문관의 내용 일부를 읊지만 스메르쟈코프가 왜 이 책에 매료되었는지를 알기는 어렵다. 모든 것은 허용되었다는 중요한 말은 극의 후반부에야 나온다. 관객들은 그저 스메르쟈코프가 대심문관을 보석보다 더 귀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한두 가지는 괜찮지만 대부분의 대사와 상황이 이렇듯 받아들이기만 해야 하니 이해할 수 없고 난해해진다.

 

이러한 형식은 스토리를 파악하는 걸 중요하게 여기는 관객에게는 큰 단점이 되겠지만 미장센에 집중하는 관객에겐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강렬함이 주는 힘을 좋아한다면 말이다.

 

무대가 인상적이다. 사방에 묘비가 있고 그 사이로 옷이 널브러져 있다. 세 아들 드미트리, 이반, 알료샤의 옷임을 알 수 있다. 공연 중 세 명의 스메르쟈코프는 표도르의 세 아들을 묘사하기 위해 무대에 놓인 옷을 사용한다.

 

중앙에는 커다란 성모 마리아상과 관 하나가 있다. 무대 업스테이지 벽 쪽에는 흰색 실이 거미줄처럼 잔뜩 달려있는데 핀 조명을 켜는 순간 야산에 손전등을 켠 것 같은 착각을 준다. 하얀 줄이 수많은 나무 같아서 음습함을 더한다. 공연장 특유의 서늘한 공기도 분위기를 압도한다.

 

흰 천과 검은 천, 장미 등 다양한 도구를 활용한 안무나 노래도 강한 이미지를 창조한다.

 

중앙에 존재하는 성모 마리아상이 업 스테이지로 이동되면서 관객의 시야를 가린다. 성모 마리아상 뒤에선 표도르가 발을 구르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시야가 가려지는 상황은 의도된 불편함을 자극하면서 동시에 숨어서 지켜보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스메르쟈코프 세 명이 부르는 삼중창은 공연장을 가득 채운다. 가사 없이 아, 하고 외치는 것이 전부지만 그렇기에 더욱 집중된다. 귀에서 들어와 온몸을 채우는 소리는 잊히기 쉽지 않다. 첫 관람으로 이해하기 다소 어려운 넘버와 가창력이 극의 흥미를 끌어올린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여운이 오래 남는다.

 

 

1311.jpg


 

극을 이해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방대한 원작은 커다란 사건과 캐릭터의 성향에만 영향을 미치는 듯 보인다. 전작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를 본다면 겹치는 안무나 동일한 대사에서 흥미를 느낄 순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죄와 벌’이나 다른 모티브가 많은 만큼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를 보는 것만으로는 완벽한 이해가 어렵다.

 

이 극은 차라리 전위예술을 본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순간순간의 강렬한 장면에 집중한다면 원작, 이전 극, 타 모티브 등을 관람하지 않았더라도 즐겁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그러한, 의도를 파헤치기 어려운 강렬함을 어디까지 의도하였는가 하는 점이다.

 

책은 세 번 읽어야 진정으로 이해한다는 말이 있다. 공연도 한 번으로 완벽한 이해를 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두 번째 관람 때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복선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하지 의도와 주제, 스토리를 그때야 파악할 수 있다면 곤란하다. 뮤지컬 <스메르쟈코프>는 이미 강렬함과 매력을 갖추고 있다. 이 매력을 어떻게 관객에게 잘 전달할지, 무슨 주제를 전하고 싶은지 고민한다면 스메르쟈코프의 생과 고민이 더욱 효과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김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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