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휴학의 이유 [문화 전반]

진심을 찾으려고 합니다.
글 입력 2022.04.12 16:5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스터디.jpg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열심히 공부했다. 대입이라는 가시적인 목표가 있었고, 그 목표에 내가 얼마나 가까워졌는가 매달 체크할 수 있는 시험, 목표 달성이 내 힘만으로는 어려울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여러 수단이 있었기에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앞만 보고 달리면 그만이었다. 원하던 대학의 원하던 학과에 합격한 순간은 3년 동안 공부한 목적을 마침내 달성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합격의 여흥은 대학교 1학년 4월까지였다. 3년간 염원하던 목적을 달성해버리니까 맥이 탁 풀리는 기분이었고, 원하던 학과에서 공부하는 것이 그렇게 특별한 일이 아닌 것처럼 여겨졌다. 다행히, 그 와중에도 나를 둘러싼 배경이 바뀜으로써 계속 쏟아지는 새로운 상황이 고민을 뒤로 미루게 했지만, 머릿속으로는 끊임없이 회의(懷疑)하고 있었다.

 

 

 

나… 이제 뭐 하지?


 

막상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자, 안 하게 되는 모순적인 상황. 마음을 한곳에 두지 못 하고, 이곳저곳 기웃거리기만 했다. 학과 공부에 집중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간관계에 공들이는 것도 아니고, 다른 활동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도 아니었다. 한 학기 400만원에 달하는 등록금을 내면서, 이게 무슨 등록금 아까운 상황인가! 내게 있어 입시는 ‘학과’라는 환상에 쌓인 허상을 좇아, 일종의 결핍을 채우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결핍을 채운 후, 더 이상 열성을 다해 추구할 대상이 사라진 것이다.

 

1학년 때도 2학년 때도 내가 공부에 진심을 담지 않고 있다고 꾸준히 느꼈다. 강의를 들을 때는 재미있고 흥미로운데, 그 이후에 더 나아간 공부가 없었다. 강의를 듣다가 궁금한 점이 있으면 논문도 찾아보고 책도 찾아봐야 하는데, 궁금한 상태에서 멈췄다. 그러니 배워도 남는 게 없고 학기가 지나면 그저 그런 방학이 시작되는 거지. 내가 원하던 공부를 하기 위해 대학에 온 건지, 취업을 유예하기 위해 대학에 온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학기 내내 이런 식으로 스스로에 대한 회의가 쌓이고 쌓여서 일종의 도피처로 방학을 찾게 되었다. 만약 내게 남은 학기도 이런 식으로 알맹이 없이 지나간다면, 그 상태로 졸업을 맞는다면, 나는 신문방송학과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쓴 회색 인간이 되는 것 아닐까? 곧 두려움이 생겼고, 본질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휴학, 진심을 찾는 과정


 

진심(盡心). 마음을 다한다는 뜻이다.

 

내게 있어 더 이상 학기를 지속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며 어디에 마음을 다할 지 결정하고 싶었다.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정착하지 못하는 마음을 한곳에 정착시키고, 대입 이후의 목표를 찾아보자는 생각으로 휴학계를 제출했다. 첫 휴학의 테마는 ‘진심’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에 진심이어야 할까?

 

첫째로 홀로움이다.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을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즐길 수 있게 하려 한다. 과잉 연결 사회에서 나는 종종 단절을 갈구하게 되었지만, 홀로 있는 시간을 잘 쓰는가 자문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때로는 자느라 몇 시간이고 흘려보내기도 하고, 잡념에 빠져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기도 하다.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내자는 마음가짐, 홀로움이 내가 진심이어야 할 첫 번째 키워드이다.

 

둘째로 문화예술이다. 이리저리 방황했어도, 대학 생활 4학기를 마치며 배운 점이 있다면 경험의 중요성이다. 내 손으로 돈을 벌기 전까지 만 원, 이만원이 쉬웠던 것처럼, 경험하기 전까지는 절대 모를 것들이 있다.

 

그러나 시공간의 제약으로 모든 경험을 할 수 없기에, 내가 못 한 경험을 한 사람들의 경험을 내 시간과 교환하는 법을 택했다. 문화예술이다. 내가 못 느낀 감정을 느꼈던 사람의 그림, 내가 살지 않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의 글 등을 통해 시야를 확장하려 한다. 문화예술과 그것을 통한 간접 경험이 내가 진심이어야 할 두 번째 키워드이다.

 

 

민들레.jpg

 

 

 

휴학 이후의 학기를 기대하며


 

누군가는 나의 휴학 전 상황을 ‘대2병’이라고 부른다. 대입이라는 큰 산을 넘은 청춘이 더 이상 추구할 목적이 사라져 인생에 회의를 갖게 되는 병이다. 그래서 학기를 잠시 멈춘다. 마음을 정비하고, 내가 진심을 다 할 또 다른 대상을 찾고 향유하기 위함이다.

 

복학하면 아무래도 공부를 해야겠다. 이 학과를 꿈꾸며 벅찼던 지난 날을 생각하며, 수강하는 과목이 무엇이 되든 최선을 다하고 진심을 쏟으려 한다. 이런 마음가짐이 불편이나 부담이 아니라 희망과 설렘으로 다가온다는 게 참 다행이다.

 

벌써 내가 진심을 다 할 다음 학기가 기대된다.


 

 

태그.jpg

 

 

[김태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