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누군가의 답장 없이도 주인공의 자리를 지키는 삶 - 답장이 없는 삶이라도

글 입력 2022.11.03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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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이기보다는 까마귀 같습니다. 휙 성의 없이 날아가면서도 빛나는 것을 캐치할 수 있죠. 그리고 빛나는 것에 대한 욕심이 심합니다. 어떻게든 주워서 집구석에 차곡차곡 모아둡니다. 예쁜 쓰레기 산을 만드는 것이죠. 제 목표는 그 예쁜 쓰레기가 '물건'이 아니라 문장이나 단어'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삶이 그것들로 숨이 막혔으면 좋겠어요. 발에 차이고, 먼지가 쌓이고, 재미없는 걸레질처럼 여겨질 만큼요. 그래야 내가 그것으로 살았다고 할 수 있지 않겠어요?” (p.48)

 

 

『답장이 없는 삶이라도』(서울: 세미콜론, 2022)의 저자 김해서의 자기소개 한 단락이다. 정확히 말하면 흔하디 흔한 피상적인 자기소개가 아니라, 지면을 빌려 자유롭게 풀어놓는 자기소개다. 직업이나 나이는 물론 이름마저도 드러나 있지 않지만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지를 고민하는 ‘진짜’ 자기소개다. 반짝거리고 예쁜, 지금까지 '차곡차곡 모아둔 문장이나 단어'들을 보여주는 자리가 곧 이 책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이 책을 가장 잘 표현하는 문단을 하나 뽑아보라고 한다면, 난 망설임 없이 이 단락을 가져올 것이다.

 

누군가의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보아야 비로소 그 사람을 알게 된다고 치면 가장 좋은 방법은 글로써 그 사람과 마주하는 것이다. 글은 자기표현의 방식 중 가장 정제된 방식이지만 동시에 가장 솔직한 도구이기도 하다. 활자로 내뱉어진 속마음은 글이 완결되어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끊임없이 깎여나가지만, 그 이유는 겉치레를 다듬기 위함보다는 화자의 의도를 더 선명히 드러내기 위함이다. 특히나 형식이나 목적의 구애를 받지 않는 산문 형식이 그렇다. 그래서인지 책장마다 빼곡히 새겨진 신중하면서도 정성 어린 문장들은,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저자의 존재를 완전히 대변하는 것만 같았다.


저자가 보통의 자기소개 방법에 딴지를 걸어서 그랬는지, 나도 일반적인 방식으로 이 책을 소개하고 싶지는 않아졌다. 어차피 나에게 익숙한 리뷰의 방식, 즉 소설이나 이론서를 읽고 내용을 축약해 내 생각을 덧붙이는 익숙한 방법은 산문집에서는 통하지 않을 거다. 길어야 3장 분량씩 구성된 조밀한 글 50여 편을 어떻게 섣불리 결론 지을 수 있을까. 누군가의 진솔한 이야기를 책이라는 매체로 접한 것은 처음이라 그런지, 평소와는 다르게 리뷰의 말머리가 길어진다.


나름대로의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뻔한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글들을 전부 읽고서 개중 좋았던 몇 가지를 가져와서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식상하다고 자조하기는 했지만, 책표지를 덮고 난 뒤 남겨졌던 울림이 잘 녹아나기를 바랄 뿐이다.

 

 

 

어느 문학지망인의 비밀 폴더 (p.81)


 

가장 먼저는 첫 번째 파트의 ‘어느 문학지망인의 비밀 폴더’다. 말 그대로 지금껏 쌓인,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저자의 습작 시들이 쌓여 있는 폴더다. 그게 말 그대로 ‘비밀’인 것은, 과거의 기록은 웬만해서는 흑역사가 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쓰기가 업이 아니더라도 계속해서 글을 쓰며 살아가기 때문에 누구든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소개서나 과제물, 하물며 SNS에 남기는 글귀까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때 글이란 당연히 그때의 감정과 내면을 담기 마련이다. 그리고 사람의 글솜씨란 그 사람의 정신세계에 발맞추어 웬만하면 성장하기 마련이다. 당연히 성장이란 기뻐할 만한 일이지만, 과거에 남겨버린 기록이 부끄러워진다는 게 문제다. 이런 심리는 숨 쉬듯이 글을 써온 저자에게도 당연히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끊임없이 창작의 고통으로 골머리를 썩히며 등단에 도전해 온 문학지망인이라면, 과거의 습작들을 향한 민망함과 창피를 이루 가늠할 수 없다.


 

“슬쩍 구경만 해도 숨이 막힌다. 연도별로 모아놓은 폴더들이 마치 병실의 호수 같다. 나는 도망친 보호자다. 뒤돌아선 애인이고, 빈손으로 사죄만 하는 자식이다. 자신있게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는 존재를 배신했을 때, 영혼은 목뼈부터 부러진다. 고개를 들 수 없다. 아마 내가 울적해질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이 폴더를 열어 연도를 거슬러 올라가는 일일 것이다.” (p.82)

 

 

“새로운 몸은 과거를 통과해갈 것이다. 오랜 시간 방치된 시들을 최선을 다해 살릴 거다. 복원사의 자세로 과거를 존중하리. 실패한 춤을 매듭짓고 그다음 춤을 추러 떠나기 위해.” (p.85)

 

 

그러나 저자는 비밀 폴더에 파묻힌 옛날의 시들을 다시 되살릴 것이라고 말한다. 부족한 과거는 현재의 시점에서 이루어낸 성장의 지표로만 삼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더욱 흥미로운 도전이다. 부족한 과거와 말끔히 단절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과거를 그 자체로 보듬고 도약의 기회이자 소스로 삼는 것은 한층 높은 차원의 각성이 필요한 일이다. 게다가 비문학 장르도 아닌 그때만의 영감과 감각이 필요한 ‘시’라는 점이, 그것을 퇴고해 되살리겠다는 그의 다짐이 인상적인 이유다.


박연준 시인은 이번 책의 추천사에서 “시인이 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시를 내내 ‘간직’하는 일임을 그가 깨달은 뒤부터, 그의 쓰기는 자유로워 보였다.”고 썼다. 이 글에서도 마찬가지로 저자의 ‘자유로워진 쓰기’가 보이는 듯하다. 형식적 틀이나 신춘문예 등의 특정한 목적 의식으로부터 해방되어, 소탈한 주제를 유려하게 풀어내는 산문의 매력을 톡톡히 담아낸 글이었기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1월생의 1월 (p.196)


 

빠른년생은 2003년에 폐지됐다. 그 이후로 긴 시간이 흘렀지만, 2003년 이후의 출생자들은 기껏해야 스무 살 안쪽의 어린 나이이니만큼 ‘빠른년생’들이 겪는 크고 작은 불편함이 우리 사회에서 사라지려면 꽤나 긴 시간이 걸릴 거다. 특히나 나이로 서열을 가르는 우리 문화 특성상, 빠른년생 당사자들이 겪는 혼란은 그 존재감이 꽤나 크다. 물론 ‘족보’ 정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는 소소하다면 소소한 일이다. 문제는 이 같은 상황이 그들을 평생 쫓아다닌다는 데 있다. 저자 역시도 이러한 불편함을 겪어온, 일찍 학교에 들어간 1월생이다.

 

 

“1월은 내 나이와 마찬가지로 어정쩡한 경계선 위에 놓인 듯한 달이다. 새로운 뭔가를 시작하기엔 겨울이 한창이고, 가만히 있기엔 뭐라도 하라는 듯 지독하게 깨끗한 출발선이다. 예전 같았으면 불안하고 울적했겠지. 새해 타종행사를 생중계로 보며, 그것을 보는 많은 사람들의 소망을 그대로 마음에 옮겨 심었을 거고, 식물도 토양이 맞지 않으면 시들시들해진다는 걸 잘 알면서 말이다.” (p.200)

 

“나는 내 생의 속도를 조금 눈치챘다. 남들보다 일주일 정도 느리다. 무엇과도 닮지 않아서, 살짝, 느리게 찾아온다.” (p.201)

 


늘 애매한 위치에서 맴돌며 느낀 외로움과 지금껏 속해온 또래 집단과는 영영 따로일 것만 같았다는 속내를 털어놓고서 그가 맺은 마무리는 이렇다. 바로 자신만의 속도를 받아들이겠다는 결심이다. 햇수라는 명목이 가해온, 어찌 보면 부당하기까지 한 압력을 그냥 인정해 버리는 거다. 이편도 저편도 아닌 자신의 자리가, 그저 스스로의 속도가 남들과는 다르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새해 역시도 모든 사람들이 떼거지로 설렘과 희망에 들썩이는 시기지만, 저자에게는 ‘뭔가를 시작하기에는 겨울이 한창이고 가만히 있기엔 지독하게 깨끗한 출발선’일 뿐이다. 그 분위기에 조급히 휩쓸리기보다는, 남들과는 다른 속도를 받아들이고 일주일 뒤에 있을 생일을 느긋하게 기다리는 것이다.


위 두 글에서 느껴지는 공통점이 있다면 ‘나’라는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 태도다. 나로 인해 파생된 무언가, 또는 나에게 주어진 상황이 언제나 만족스러울 수는 없다. 그러나 이것들은 온전히 나의 것이며 나로 인해서만 가능한 것이기에, 그걸 부정한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깨달음을 말하고 있다. 불필요한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늘 실패하는 나에게는 닮고 싶은 모습이기도 하다.

 

 

 

폭염의 순기능 (p.255)


 

나는 원체 여름을 싫어했다. 더위를 잘 타는 체질 탓에, 여름의 한낮에 단 15분이라도 길을 걷고 나면 물에 젖은 솜처럼 축 처져 짜증을 이겨내지 못했다. 하지만 조금씩 나이를 먹으면서 여름이 가져다주는 짜증이 곧 생기와 활력으로 차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겨울이라는 계절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설렘보다는 지난해가 빠르게 지나버렸다는 허탈감을 느끼기 시작해서였을까. 야속함뿐인 겨울보다야 땀을 흘리면서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여름이 낫다고 생각하게 됐다. 저자 역시도 나처럼 ‘여름 혐오자’였지만, 이 글에서는 근래 발견하게 된 ‘폭염의 순기능’을 서술하고 있다.


 

“무슨 괴랄한 말인가 싶겠지만, 방바닥을 힘없이 나뒹굴거나 의자에 걸린 낡은 티셔츠처럼 늘어져 아무 말 대잔치를 하는 것이 의외로 흥미로운 일임을 발견했다. 가만히 있어도 숨쉬기가 어렵고 등줄기와 이마에 땀이 줄줄 흐르면, 아무리 지엄한 양반 같은 사람이라도 콧김을 내뿜으며 이골을 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정말 원초적인 소망들을 입밖으로 흘리게 된다.” (p.256)


“시시껄렁한 농담 같은 소망을 툭툭 주거니 받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 틈에 헛웃음이 나오거나 한숨이 터지곤 하는데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그런 시시한 순간을 나누는 게 좋다. 당장 몸을 일으켜 실행할 것도 아니면서, 그럴 여유도 없으면서, 그냥 시작되는 심드렁한 노래, 세계 평화나 정의를 주창하는 거대한 신념이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아이스크림 한입 먹으면 바로 잊힐 하찮은 소망들을 들려주는 사이가 진짜 친구라는 생각.” (p.257)

 


덥지도 춥지도 않은 쾌적한 환경에서는 다분히 절제된 언어로 대화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찌는 듯한 더위에 시달리다 보면 평소답지 않게 시답잖은 말과 행동이 튀어나온다. 그것들은 심각한 고민 없이 내뱉어지고 가벼운 무게로 공중을 떠돌다 금세 사라진다. 이 원초적인 의식의 흐름에 충실한 대화가 폭염의 ‘순기능’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대화가 높은 기온 가운데서 오히려 우리의 숨통을 틔워 주기 때문일 거다.


그리고 그런 대화가 가능한 상대는 어떤 말을 주고받건 불편할 것 없는 절친한 친구일 것이다. 진득하게 땀을 흘리고 열이 올라 기진맥진한 상태를 숨기지 않고 보여줄 수 있는 상대 역시도 친구뿐이다. 그런 ‘진짜 친구’와 보내는 시시콜콜한 시간이 소중할 뿐이고, 그 시간이 극도로 더운 날씨에 종종 찾아온다는 점만으로도 폭염은 일정 부분 환영할 만하다는 데 공감한다.

 

한여름의 더위와 별 것 없는 대화라는 일상의 조그만 순간마저도 글의 소재로 삼았다는 점이 인상적인 글이었다. 독자의 시선으로는 편안하게 술술 읽히는 문장들이지만, 그 안에는 깊이 있는 통찰이 숨어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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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을 다시금 곱씹어 본다. 답장을 기다린다는 것은 나의 문장을 던진 뒤 상대의 반응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이다. 답장에 매몰되면 나의 언어보다 타인의 평가가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답장이 없는 삶이라도 괜찮다고 말한다. 주인공의 자리를 타인에게 넘기지 않고 내밀한 감정을 섬세하고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유연하지만 강단 있게 그 자리를 붙들고 있다.

 

바쁜 일상에 치여 스스로의 마음을 돌아보지 못할 때는, 누군가가 털어놓은 속마음에 빠져드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저자는 나와 일면식도 없는 타인이지만, 그 이야기를 통해 떠오르는 새로운 감각에 집중하다 보면 스스로의 마음가짐을 가만히 사색하게 된다. 당장의 필요에 의한 기계적인 고민을 제쳐두고 나의 마음 깊은 곳을 어루만지고 싶은 순간이라면, 『답장이 없는 삶이라도』를 펼쳐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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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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