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슬기로운 격리생활

코로나 확진자의 자가격리 기록
글 입력 2022.04.10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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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 隔離 [경니] 

 

1. 명사: 다른 것과 통하지 못하게 사이를 막거나 떼어 놓음.

2. 명사: 전염병 환자나 면역성이 없는 환자를 다른 곳으로 떼어 놓음.

 

 

 

격리 시작 :: 내게 찾아온 이상한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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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그분'이 오셨다.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것이다. 의외로 내가 처음 느낀 감정은 '후련하다'였다. 마치 오래도록 감춰 온 비밀을 더 이상 감추지 않아도 됐을 때의 기분과 비슷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부모님과 회사 동료들을 포함해 나의 일상을 함께하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확진 판정을 받은 상태였고, 그 여파로 3월에만 4차례나 신속 항원 검사를 진행했었기 때문에 언제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요즘을 살아가는 모두가 그렇겠지만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언젠가 나에게 전염병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라는 두려움과 공포를 안고 살아간다는 건 생각보다 더 지치고 괴로운 일이었다. 그래서 그토록 두려워하던 일이 이미 벌어진 일이 되어 버렸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나에게 자유가 찾아왔다.

 

다만, 그와 별개로 머릿속이 참 복잡했다. 확진 판정을 받자마자 지난 일주일간 움직였던 동선을 복기해 보고 접촉했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평소에도 그다지 인간관계가 넓지 못하여 만나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혹시나 나로 인해 불편을 겪을 사람들이 있진 않을까 걱정됐다.

 

그러나 미안한 마음과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차근차근 연락을 돌렸을 때 돌아온 대답들이 너무나 따뜻해서 나는 결국 울고 말았다.

 

혼자 사는 날 위해 약을 가져다줄 사람이 필요하면 자신이 가겠다고 하는 친구부터 근무 스케줄을 흔쾌히 바꿔 주겠다고 연락해 온 동료들, 격리 생활에 필요하다며 각종 레토르트 식품을 잔뜩 보내 준 팀장님, 하루에 한 번씩 상태를 물으며 안부 전화를 해오는 지인들까지.

 

걱정을 안도로 바꾸어 준 그들의 위로가 혼자 아픔을 견뎌야 하는 서러움을 상쇄시켜주는 또 다른 진통제가 되어주었다.

 

 

  

격리 중 :: 특별한 묘책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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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확진자들마다 증상의 정도가 다르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은연중에 나는 코로나가 걸려도 많이 아프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다. 3차 백신을 모두 접종했고 특별한 부작용도 없었으며 지금까지 확진되지 않은 걸 보면 무증상으로 무사히 지나갔을 수도 있겠다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런 나의 안일한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PCR 검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컨디션이 끝을 모르고 곤두박질쳤다. 강도 높은 근육통과 두통, 인후통이 점점 더 심해졌고 그로 인해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일찌감치 마련해 둔 재택 치료 상비약으로도 견디기가 어려워 결국 다음 날 병원으로 비대면 문진을 요청했고, 그로부터 1시간쯤 지나자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병원입니다. 어떠신가요?"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울컥 목이 멨다. 찢어질 것 같은 목소리로 겨우겨우 증상에 대해 얘기하니 처방과 함께 약국으로 전화를 하면 약을 배달해 주실 거라고 했다. 다시 1시간 후 정말로 약이 도착했을 때 나도 모르게 안심이 됐다. 나는 마치 동아줄이라도 잡은 것처럼 재빠르게 식사를 한 뒤 약을 먹고 바로 침대로 향했다.

 

병에 맞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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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동안 꼬박꼬박 챙겨 먹은 탓인지 다행히 처방받은 약은 매우 효과가 있었다. 아직 침을 삼키기 어려울 정도로 목이 아프긴 했지만 훨씬 상태가 좋아진 것이다. 오랜만에서 침대에서 벗어나 잔뜩 쌓여있던 설거지를 하고 샤워를 했다. 평소라면 무의식적으로 아무렇지 않게 했을 일들이 모두 새롭게 느껴졌다.

 

물론 그래도 여전히 온몸에 힘이 없고 무기력했다. 그저 멍하니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봤다. 특히 7일의 격리 기간 중 아직 4일이라는 시간이 남아있는 걸 깨달았을 때 갑자기 이 넓은 세상에 홀로 격리되었다는 외로움과 두려움이 온몸을 덮쳤다. 남은 시간 동안 정신적 지루함을 이겨낼 수 있는 무언가가 절실히 필요했다.

 

우선 그동안 보고 싶었던 영상 목록을 떠올렸다. 그중에서 양이 많고 방대해서 섣불리 시도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 애니메이션을 정주행 하기로 했다. 비록 몸은 움직일 수 없었지만, 한 편 한 편 애니메이션이 끝날 때마다 주인공이 역경과 고난을 딛고 점점 자신의 목표를 이뤄갈수록 나의 마음도 한결 나아졌다.

 

정신적 지루함이 채워졌으니 이제 건강을 회복할 차례였다. 외출을 할 수 없어 배달로 삼겹살과 딸기, 신선한 채소 몇 가지와 아이스크림을 시켰다. 나름대로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려는 노력이었다. 앞서 확진된 사람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게 다반사라고 했는데, 기운이 조금 회복된 만큼 직접 조리를 해먹는 것이 여러모로 더 좋을 것이라 생각됐다.


또 체력이 허락하는 만큼 간단하게 요가를 시작했다. 격렬하진 않았지만 스트레칭 정도의 요가가 몸의 상태를 끌어올리는 데 도움을 주었다. 더불어 함께 켜 둔 향초가 기분 전환을 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가습기와 마스크 그리고 수건을 목에 착용하여 건조함을 막았다.

 

사실 나는 평소에도 기관지가 좋지 않은 편이라 집에서 가습기와 마스크를 애용한다. 요가를 하거나 향초를 켜두는 일도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내가 자주 하던 일들이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며 결국 내 스스로를 지키고, 코로나에 맞서 이겨내는 방법에 특별한 묘책이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격리 해제 :: 나를 살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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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 격리가 해제되자마자 대청소를 했다. 간신히 설거지만 했던 그동안과는 다르게 온 집안을 공들여 쓸고 닦았다. 그렇게 귀찮고 하기 싫었던 청소가 왜 이렇게 즐겁고 보람차게 느껴지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직 완벽하게 몸 상태가 돌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아마 대청소를 하면서 내게 머물렀던 바이러스를 떨쳐내고 싶었던 것 같다.

 

격리 해제가 된 지 2주 차가 되어가는 지금도 남은 기침과 피로, 무기력감이 이따금씩 나를 괴롭힌다. 그래도 자가 격리가 내게 남긴 건 두려움과 불편함만은 아니었다. '격리'라는 외롭고 쓸쓸한 단어 안에 기꺼이 서로가 서로를 보듬는 '위로''사랑'이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격리 기간 중 내가 한 일이라고는 식사와 약을 잘 챙겨 먹고 침대에 누워 푹 쉰 것뿐이었다. 그마저도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서 준비된 것들이었으며 그들이 있어서 막연한 두려움이었던 코로나 바이러스와 거뜬히 싸우고 격리 기간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 응원과 위로가 내 삶의 또 다른 원동력이 되어주었기에 나 또한 기꺼이 누군가에게 위로와 사랑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길 간절히 바라본다. 끝으로 이 글을 마치며 오랜 격리 기간 동안 나를 살린 소중한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과 감사함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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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은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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