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망한 선물의 역사 [문화 전반]

엉망진창 선물과 기억에 남는 순간, 그리고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
글 입력 2022.04.0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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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현아_선물론.JPG

 

 

요즘 유튜브에서 ‘0만원대 선물’에 관한 영상이 자주 보인다. 그럴 때마다 꼭 영상을 누르는데 그 이유는 내가 선물을 잘 못 고르는 사람이라서다.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그건 어느 정도 증명되었기 때문에 남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참고하곤 한다.

 

한 번은 가수 현아가 선물을 고르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매니저가 여자친구 선물을 고르는 걸 도와주는 것이었는데, 클러치 색깔을 두고 의견이 나뉜다. 현아는 쨍한 주황색을 골랐고 매니저는 남색의 클러치를 선택했다. “내가 살 때는 실용적인 것을 사고 누가 선물 줄 땐 화려한 게 좋다.”는 것이 현아의 지론이었다. 선물은 필수품이 아니고 사치품이니까 눈에 예뻐보이는 걸 고른다는 말도 일리가 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누가 저렇게 튀는 클러치를 주면 절대 안 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사람마다 제각기 자기만의 ‘선물론’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나도 선물에 대한 나름의 생각이 있는데 이걸 얘기하려면 그동안의 망한 선물의 역사에 관해 꼭 언급해야 한다. 엉망진창인 선물들로부터 배우며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망한 선물 대회가 있다면



망한 선물에 관한 이야기라면 어디에 가서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선물이란 것이 상대를 기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망해봤자 얼마냐 망하겠냐는 생각은 정말 크나큰 오산이다. 나는 여러 차례 상대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는데 가장 오래된 기억은 중학교 1학년 때이다. 중학교에 올라가 친구를 사귀었고 걔 생일 무렵에 여럿이서 노래방에 가서 생일 축하 파티를 하기로 했다. 알아서 생일자 친구의 선물을 사 오기로 암묵적인 합의를 했고 나는 머리를 싸매기 시작했다. 받는 사람에 대해 잘 모르면 그래도 내가 아는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결국 선물한 것은 이영도 작가의 <드래곤 라자>라는 책이었다. 아마 모르는 사람도 많을 텐데, 국내 판타지 소설 중에 꽤 손꼽히는 수작이다. 아무튼 당시의 나는 장르 소설에 거의 미쳐 있었기 때문에 좋은 걸 나누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분명 걔도 이걸 좋아할 거라는 이유 모를 확신이 있었다. 노래방에 모여 차례로 자기 선물을 꺼내놓는데 점점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앞 친구가 아이돌 가수의 앨범과 포스터를 가져왔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망했다 싶었지만 이미 들고 왔고 포장까지 해서 무를 수 없어서 그냥 내놓았다.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걔의 반응은 이랬다. “오... 이게 뭐야?” 그러니까 내가 대답한다. “어... 내가 좋아하는 소설인데 너도 좋아할 것 같아서 준비했어.” 그날 나는 가시방석에 엉덩이를 계속 들썩거렸던 것 같다. 나중에 들은 선물 후기는 “우리 엄마가 좋아하시더라.”였다. 어머니가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시는 것도 의외였고, 그 말이 과연 진실인지 나를 위로하기 위한 거짓말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기에 그냥 다행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선물 이야기였다. 두 번째 망한 선물은 그 후로 시간이 조금 흘러 성인이 된 이후에 줬던 선물이다. 나는 스무 살 이후에 ‘나 알기’라는 키워드에 굉장히 몰두했다. 나를 아는 것은 좋아하는 커피와 같이 사소한 것부터 내가 견딜 수 없는 것처럼 고통에 관한 이야기까지 포괄했는데, 그중 하나가 ‘내 몸 알기’였다. 어느 날 한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서 ‘자위’에 관한 소개서를 발견했다. 알차고 디자인도 예쁘고 엄청나게 유용해 보이는 소책자였다. 21세기에 제도권 교육에서 성에 관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이 항상 있었고, 덜 검증된 매체를 통해 배우기보다 좀 더 안전하고 포괄적인 이야기를 듣기를 바랐다. 그래서 나는 내 친구 두 명에게 그 책을 선물한 것이다. 여기까지 읽고 결말을 예측하지 않기를 바란다. 한 명은 나에게 신세계를 열어줘서 고맙다고 했고, 다른 한 명은 누가 그런 걸 선물하냐며 아직까지도 두고두고 갈군다. 그 이후로 우리는 꼭 받고 싶은 선물을 미리 서로에게 말해준다. 이번에는 지갑이 갖고 싶다며... 아주 평화롭고 좋다.

 

이 외에도 몇 가지 망한 이야기가 있는데 이런저런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된 점은 일단, 선물은 상대를 위하는 마음에서 출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받는 사람의 취향에 100% 맞춰야 한다. 뭔가 걔가 어떠했으면 좋겠다는 나의 개인적인 바램이 들어가는 순간, 그리고 나의 취향이 그렇게 일반적이지 않을 경우에는 그야말로 파국이다.

 

취향은 참 다면적이고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기에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 노래는 힙합을 즐겨 듣는다는 애가 문구류 취향은 말랑거리는 동물을 좋아하는 경우도 많다. 모순적인 게 매력이라고 생각하기는 하나 조금 당황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내가 선물하려고 하는 품목에 대한 취향이 어떠한지 구체적으로 알아봐야 한다. ‘왓츠인마이백(What’s in my bag)’을 하자며 소지품을 관찰하고 가끔 뭘 좋아하냐며 넌지시 물어도 본다. SNS 팔로우 목록을 살펴보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일관적인 하나의 키워드를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내 동생은 무조건 정갈하고 깔끔한 것을 선호한다. 색은 주로 검정, 디테일을 최소화한 상태에서 적당히 트렌디하고 적당히 값어치가 나가는 것을 고르면 된다. 이렇게 전반적인 취향에 맞추면 된다.

 

 

 

기억에 남는 선물들



다른 데서는 친구들을 선물로 혼내주고 다닌 한편, 내게도 인상적인 선물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대학 1학년 시절 작은 펍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당시에 나는 대학 기숙사에서 살고 있었고, 친한 친구도 마음 붙일 곳도 없어서 굉장히 방황을 하던 시기였다. 전화로만 몇 번 생일 축하를 받았으나 크게 와닿지 않아 우울한 생일을 보내고 있던 차에, 가게 사장님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축하를 받았다. 생일 케이크와 함께 치즈와 음료수를 주신 것이다. 급하게 준비해서 이것밖에 없다며,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생일 축하한다는 이야기도 덧붙이셨다. 솔직히 치즈는 조금 뜬금없어서 웃겼다. 하지만 사장님께서 마음을 써주시는 것이 전해졌고 타향살이에 지쳤던 것을 위로해 주시는 것 같아 기뻤다. 주책맞게 조금 울컥했고 그날 받았던 케이크는 꽤 오랫동안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차지했다.

 

이렇게 갑작스러운 선물은 마음을 녹아내리게 만든다. 그렇기에 좀 더 완벽한 상황 세팅을 위해 선물은 당일에 줘야 한다. 만약 사장님이 내 생일 다음날이나, 아님 그 다음날쯤 내게 이야기하셨다면 나는 여전히 고마워했겠지만 이렇게 찡한 감동까지는 받지 못했을 테다. 그렇기에 꼭 ‘그날’에 줘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당일에 맞춰서 축하를 전하는 것도 꽤나 노력을 요하는 일이다. 일 년에 몇 번 없는 축하해 주고 싶은 날이 있다면, 꼭 기억해두고 좋은 타이밍을 노리길 바란다.

 

그렇기에 선물은 미리 생각해두는 것이 좋다. 날짜가 다가오고 나서 갑작스럽게 준비하면 상대 맞춤형이기 어렵고 그냥 모두가 무난하게 좋아할 법한 선물을 주게 된다. 그러면 결국 카카오톡 인기 선물 리스트에서 고르게 된다. 내 친구 중 하나는 고양이 무드 등을 크기별로 두 개나 소장하고 있는데 서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동시에 받은 거라고 했다. 그 무드 등은 아주 귀여우므로 괜찮지만, 이왕 준비한 선물인데 다른 것과 겹치면 조금 아쉽지 않은가. 최소한 일주일 정도는 이르게 고민을 시작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이로울 것이다.

 

 

 

괜찮은 선물을 주고 싶어


 

손재주가 없어서 직접 뭔가를 만들어줄 생각은 진작에 포기했다. 그렇기에 선물을 잘 주려면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의 선물을 골라야 한다. 무언가를 받는 건 결국 돌려주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관계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면 선물을 받은 사람 역시 고민을 하게 되고 그럴 때 가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만약에 금액이 너무 과도하게 비싸다면 상대에게 의도치 않게 부담이 될 수 있으니 적정한 선물 금액대를 고르는 것도 센스의 일부다. 각자의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20대 중반의 학생으로서, 친한 사람의 경우 5만 원 선, 적당한 온도의 사람의 경우는 만 원에서 3만 원 사이의 금액대를 고려한다.

 

너무 실용적인 것도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좋은 날에 너무 사소한 것을 주기가 꺼려진다. 이건 내 지인의 이야기인데 직장 동료 생일에 스타킹 50켤레를 줬다고 했다. 어쩌만 나만 선물을 잘 못 고르는 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조금 좋을 것 같기도 하다. 여하튼 나도 가끔 ‘걔가 진짜로 필요한 게 뭘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목록을 뒤지곤 한다. 그렇지만 좋은 호응을 기대한다면 역시 그럴듯한 걸 주는 게 좋은 것 같다. 같은 금액이면 브랜드가 있어서 완성도가 좀 더 보장되는 것으로 선택한다. 그래야 위험부담을 덜 감수하고 조금은 안전한 선물을 할 수 있다.

 

선물은 잘 못 고르지만 그래도 마음은 담는다. 그래서 나는 꼭 선물과 함께 편지를 쓴다. 너를 위해 준비했고 또 네가 어떠했으면 좋겠는지, 너를 위한 내 마음이 어떠한지. 너무 감정 과잉이지 않으면서도 무뚝뚝하지 않으려고 꽤나 노력한다. 유독 편지를 쓸 때면 감성적이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편지의 말미에는 날짜와 이름을 꼭 적는다. 이 편지가 최소한의 현재성을 담고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네가 언젠가 이 편지를 다시 꺼내본다면 이때를 기억해 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나도 예전에 받은 편지를 가끔 읽어본다. 아주 옛날부터 받았던 편지들을 넣어둔 상자가 있는데 그 속에는 꾹꾹 눌러쓴 정갈한 손글씨와 지나간 관계들이 담겨 있다.

 

 


너희들을 좋아하는 마음도 함께


 

지나서 생각해 보니 전체적으로 다 내 위주의 선물을 골라서 실패했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뜬금없이 권하거나, 상대에게 너무 실용적이지 않았다. 저밖에 모르는 모습을 고백하는 것 같아 조금 부끄럽다. 그렇지만 대개 받는 이를 생각하면서 꽤나 오랜 시간을 들여 고른 거란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선물이 참 간편해진 시대다. ‘선물하기’ 버튼을 눌러서 인기 목록에서 적당히 골라 보내기도 한다. 스타벅스의 기프티콘은 아마 가장 많이 주고받는 선물인 것 같다. 적당히 가볍고 체면을 차리면서 기분 좋은 선물이기에 그 자체로도 괜찮다. 모아서 텀블러를 살 수도 있다. 그렇지만 가장 무난한 것을 고르려다가도 상대가 받으면 더 좋아할 것 같은 선택지를 늘리는 시도를 계속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많은 망한 선물을 주고 몇 번은 두고두고 말을 듣거나, 상대는 잊어버려도 나는 가끔 생각나서 이불을 차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아주 괜찮다. 최소한 예전처럼 상대가 없고 내 입맛만 있는 선물을 주지는 않을 거고, 다음번에는 조금 더 나은 선물을 줄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선물을 받은 직후에는 고마움으로 상대를 감싸되, 나중에는 사실 그거 조금 별로였다고 꼭 얘기해 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나도 너의 취향을 업데이트할 수 있으니까. 앞으로도 더 많이 주고받고 싶다. 물건만이 아니라 너희들을 좋아하는 마음도 함께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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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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