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클라리넷, 어디까지 들어봤니 - 조성호의 콘체르토 플러스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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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이 끝나고 저녁을 챙겨 먹을 새도 없이 바빴지만, 오랜만에 클래식 연주를 직접 들을 기회가 생겼기에 기쁜 마음으로 예술의전당으로 향했다.
사실 클라리넷이라는 악기에는 아주 최근에서야 관심을 두기 시작해서, 필자가 아는 클라리넷 곡이라고는 모두가 아는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이 전부였다. 이전에 CD나 유튜브 등을 통해 들은 클라리넷 연주는 그저 부드럽고, 편안하고, 나른하다는 느낌이었다. 공연을 감상하고서는 조금 달라진 것 같다.
중간 휴식 전에 세 곡, 후에 세 곡의 연주가 있었는데, 그중 맨 첫 번째 곡과 중간 휴식 후의 첫 곡은 클라리넷이 없는 신포니아로 구성되어있었다. 클라리넷이 없는 연주를 들은 후 클라리넷이 있는 곡을 듣자, 클라리넷의 존재감이 확연히 느껴지는 효과가 있었다.
중간 휴식 전의 세 곡은 곡이 바뀔 때마다 악기가 추가되었다. 첫 번째 곡에서 두 번째 곡으로 넘어갈 때는 클라리넷이, 두 번째에서 세 번째 곡으로 넘어갈 때는 호른과 다른 관악기가 추가되었다. 그래서 한 곡 한 곡이 진행될 때마다 점점 소리가 풍성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중간 휴식 후에는 호른과 다른 관악기가 빠지고 바순이 들어왔다. 이렇게 조금씩 다른 악기 구성 덕분에 곡들이 대부분 장조 음악이었음에도 정말 다채로운 느낌이 들었다.
조성호 클라리네티스트가 처음 무대로 나왔을 때, 필자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클래식 연주자들과 색다른 면이 있었다. 그는 분명 클라리넷을 들고 나왔는데, 나와서는 연주가 아닌 지휘를 시작했다. 보통 연주자는 가만히 제자리에서 바로 연주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조성호 클라리네티스트는 마치 홀의 기운을 느끼기라도 하는 것처럼 객석을 휘 둘러보고 우아하게 지휘를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아주 부드럽고 밝은 클라리넷 연주를 시작했다.
그런데 가만히 서서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객석 왼편을 봤다가 오른편을 보고, 클라리넷을 아래로 향하게 연주를 하다 아주 높이 들어 올리기도 하며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이런 연주자를 처음 본 나는 순간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이내 클라리네티스트가 음악을 진심으로 느끼며 자신의 느낌에 맞춰 온몸으로 음악과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클라리넷뿐만 아니라 조성호 클라리네티스트 그 자체도 함께 음악을 표현하는 악기가 된 느낌이었다.
그가 클라리넷을 불기 위해 들이마시는 숨소리까지 고스란히 전해졌는데, 그조차 음악의 한 부분인 느낌이었다. 클라리넷을 계속해서 움직이며 연주하니 소리가 클라리넷에서 빠져나오는 지점도 조금씩 달라져서 그런지, 더욱 소리가 다채롭고 풍부하게 들렸다.
또 하나 놀란 점은, 바로 클라리넷이 얼마나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는지였다. 클라리넷은 아주 조용하고 느린 음악만 연주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하나의 클라리넷에서 나는 소리인데도, 소리가 부드러웠다가, 맑고 경쾌했다가, 뭉개지는 듯했다가, 힘이 넘치는 등 굉장히 다채로웠다. 현란하게 갖은 기교를 부릴 수도 있고, 아주 빠르게 진행할 수도 있었다. 또 낮은 음을 통해 안정감을 주었다가 아주 높은 음으로 가며 경쾌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어떨 때는 부드럽고 막힌 소리를 냈다가, 또 어떨 때는 아주 시원하고 정확한 소리를 내었다. 저음에서는 굉장히 묵직하고 중후한 소리가 나는데 순식간에 고음으로 올라가면 맑으면서도 부드러운 소리로 바뀌는 매력이 있었다.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의 연주도 좋았다. 전체적으로 악기가 그렇게 많지 않아서 서로의 호흡과 각각의 소리에도 집중할 수 있었다. 서로가 서로의 표정을 읽으며 함께 연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바이올린, 첼로, 콘트라베이스, 하프시코드, 호른, 튜바 등등 다양한 악기가 각각 고유한 소리를 내면서도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소리를 찬찬히 음미하며 현장감을 느꼈다. 또한, 하프시코드를 직접 본 것도, 직접 연주를 들은 것도 처음이었는데, 어떻게 들으면 현을 튕기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들으면 건반을 연주하는 느낌이기도 했다. 모든 곡에 특유의 음색을 가진 하프시코드가 꼭 껴있었기에, ‘아, 바로크 음악이구나’하는 느낌을 내내 받을 수 있었다.
사실 모든 곡이 다 다채로운 매력을 지니고 있었고, 매 곡마다 클라리넷의 다양한 매력을 발견할 수 있어 좋았다. 전반부에서는 대체적으로 밝고 경쾌한 느낌의 곡들이 많았다. 그만큼 차분하다고만 생각했던 클라리넷의 다른 면모를 경험할 수 있었다. 클라리넷도 이렇게 희망찬 곡을 감미롭고 밝게 들려줄 수 있구나 싶었다. 후반부에서는 클라리넷의 감미로움, 단조 음악과 만났을 때 클라리넷이 전달할 수 있는 특유의 마음을 울리는 감정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써보고자 한다.
카를 슈타미츠, 클라리넷 협주곡 제3번 내림나장조 中 3악장 - 이 악장은 박자와 주제 선율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8분의 3박자 위에서 경쾌하게 진행되는 곡을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리듬을 타고 있었다. 주제 선율이 3박자를 3박자 그대로 나누며 진행되어 굉장히 단순한 느낌이었는데, 오히려 그래서 주제 선율이 다시 나올 때마다 확 귀에 들어오며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이렇게 밝게 진행되는 주제 선율을 바이올린이 연주했다가, 클라리넷이 연주했다가, 둘이 주고받았다가 하면서 곡이 진행되었는데, 계속해서 반복되는 주제 선율이 전체적으로 안정된 느낌이면서도 조금씩 변화가 있어 듣는 재미가 있었다.
안토니오 비발디, 클라리넷 협주곡 제1번 내림나장조 “산탄젤로” 中 2악장 - 2악장은 아주 앞부분에서부터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강약약약으로 박자를 잡아주었는데, 이 소리가 굉장히 안정적으로 느껴졌다. 이 위에서 바이올린이 이끄는 솔파미♭ - 시♭라♭솔- 하는 주제가 계속해서 반복되고, 중간중간 클라리넷이 부드러운 멜로디로 음악을 이끌어갔다. 클라리넷의 아름답고 다채로운 선율에 집중하다 또 어느새 다시 바이올린이 이끄는 주제가 들려오면 처음으로 되돌아온 느낌과 안정감이 느껴졌다. 또 클라리넷이 선율을 굉장히 여유롭게 끌고 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같은 음을 계속 끌고 가면서도 음의 세기가 다채롭게 변했다. 그래서 한 음 한 음 진행을 따라가며 클라리넷이 길게 뱉어내는 소리를 충분히 음미하고 한 음조차 어떻게 섬세하게 표현하는지 느끼는 재미가 있었다.
안토니오 비발디, 클라리넷 협주곡 제2번 라단조 “불사조” 中 1악장 - 마지막 곡이어서인지, 아니면 장조곡 중 단 하나의 단조곡이어서 그랬는지,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은 사실 마지막 곡, 비발디의 클라리넷 협주곡 제2번 라단조 “불사조”였다. 맨 처음 시작하자마자 현악기와 하프시코드가 급박하고 비장하게 진행된 후 갑자기 모두 멈추고 클라리넷이 고요 속에서 라♭ 음만을 잠시 내뿜는다. 그 대비 때문에 순간 숨을 멈추고 클라리넷의 한 음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잠깐의 순간 동안의 한 음 속에 많은 표현이 담겨있었다. 음은 라♭-만이 이어졌지만, 그 찰나의 순간 동안의 소리의 강약 조절, 첫발을 내딛는 느낌 모두가 완벽하게 느껴졌다. 왜 조성호 클라리네티스트가 세계적인 음악가인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서는 클라리넷이 현악기와 발맞추어 단조인데 경쾌한 느낌의 멜로디를 연주한다. 처음 바이올린이 이끌었던 바쁜 주제 선율이 계속해서 변주되고, 클라리넷이 연주하는 동안 바탕에 깔리기도 하고, 이를 클라리넷과 다른 악기들이 서로 주고받기도 했다.
안토니오 비발디, 클라리넷 협주곡 제2번 라단조 “불사조” 中 2악장 - 2악장은 비교적 밝았던 1악장에 비해 아주 비장한 느낌이었다. 시작하자마자 들려오는 클라리넷 멜로디가 정말 매력적이었다. 멜로디의 비장한 느낌은 왠지 곧 감정이 폭발해서 터져 나와야만 할 것 같은데, 그 느낌을 클라리넷이 아주 부드러우면서도 감정적으로 연주하고 있어 복합적인 느낌이 들었다. 어두운 듯 차분한 듯한 클라리넷의 멜로디와 다른 악기들의 연주가 만나 매혹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바이올린이 계속해서 짧게 끊어 연주하며 곡의 흐름을 받치고 있어서 살짝 긴장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선율과 화성이 너무 매력적이라 이 곡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안토니오 비발디, 클라리넷 협주곡 제2번 라단조 “불사조” 中 3악장 - 3악장으로 가자 1악장에서도, 2악장에서도 한을 다 못 풀었다는 듯 몰토 알레그로로 곡이 진행된다. 2악장에서 눌러왔던 감정들을 갑자기 쏟아내는 느낌이었다. 클라리넷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현란한 조성호 클라리네티스트의 손놀림을 보고 듣는 재미가 있었다. 다른 연주자들 역시 엄청난 속도로 연주를 이어갔다. 끝부분에서 클라리넷이 굉장히 높은 레까지 올라가고 끝을 맺는데, 순식간에 올라가 크게 빵 터뜨리고 끝나버려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앙코르를 요청하는 무수한 박수 속에서 연주자는 바순 연주자와 함께 아주 익숙한 가브리엘의 ‘오보에’가 아닌 ‘가브리엘의 클라리넷과 바순’을 연주했다. 부드러운 클라리넷과 묵직한 바순이 평화로운 멜로디를 연주하는 소리는 너무나 환상적이었다. 거기에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이 바로크 식으로 반주를 연주해서 색다른 매력도 있었다.
클라리넷의 다채로운 매력을 너무나 섬세한 표현력으로 풀어내는 조성호 클라리네티스트의 연주를 들을 수 있어 몹시 뜻깊은 시간이었다. 그가 클라리넷과 함께 해왔을 모든 시간, 아무도 똑같이 따라 할 수 없는 그의 감정과 표현을 현장에서 감상할 수 있어 행복했다. 부드럽고도 힘차게 울려 퍼지는 선율의 느낌을 되새기며 자꾸만 놓아버리고 싶은 열정을 다잡으려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정유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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