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그림 그리는 도슨트' 윤석화 작가를 만나다

글 입력 2022.03.31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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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는 도슨트’.

 

작가이자 도슨트인 윤석화를 지칭하는 하나의 수식어다. 귀에 쏙쏙 박히는 차분하면서도 선명한 목소리와 예술작품을 바라보는 특유의 다정한 시선, 관람자로 하여금 작품에 몰입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열정 등이 윤석화 도슨트의 해설을 듣는 관람객들이 꼽는 공통적인 매력 포인트다.

 

그런 그의 소개에는 ‘도슨트’보다도 ‘그림 그리는’이라는 수식어가 먼저 선행된다. 마이아트 뮤지엄에서 진행되는 마르크 샤갈 특별전의 도슨트 해설을 쉼 없이 강행해오면서도, 작가로서의 창작 활동을 부지런히 지속해오는 에너지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3월 28일부터 4월 3일까지. 신촌의 갤러리 아미디에서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서 그의 첫 개인전이 진행되기 전, 그를 미리 만나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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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는’ 작가 윤석화를 만나다


 

『널 통과한 빛』 전시회가 개막하기도 전에 갤러리 사이트 내에서 선판매가 되는 등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댓글들도 보니까 작가님을 응원하시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혹시 이런 반응을 예상 하셨나요?

 

 

 

 

전혀 예상 못했어요. 사실 그 댓글들 중에서는 가족이나 지인 분들도 포함되어 있거든요. (웃음) 그런데 선판매라니, 무척 기뻤죠. 사실 원래는 늘 여러가지 생각이 많은 사람인데,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아무 생각도 안 하거든요. 그리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서 그림을 그리게 될 때가 많아요. 일종의 배출구이기도 한 거죠. 그러다 보니 수용자의 반응은 크게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저는 어떤 커넥션이 없이 혼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 피드백 같은 것이 필요할 때는 주로 어머니께 여쭤보거든요. 아무래도 첫 개인적이기 때문에 대중에 어느정도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는데, 어머니가 대중적인 시선을 갖고 계셔서 방향을 잡기에 수월한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개인전에 대한 수용자의 반응 같은 것들은 예상치 못했었는데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있으니 힘이 나긴 하더라고요.

 

"'널'이라는 프리즘(prism)을 만나기 전과 맞닿은 순간과 만난 이후의 빛을, 전부 같은 빛이라고 불러도 될까?"하는 질문에서부터 기획된 전시라고 하셨어요. 여기서 '널'은 '아무것도 없다'라는 의미의 'null'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뜻하기도 하고, '너울'의 방언과 '너를'을 줄인 표현을 뜻하기도 하죠. 빛이 다각도로 비치고 굴절되고 분산하는 모습을 담은 작품들이 많아요. 평소 빛과 색채에 관한 연구를 많이 하시는 것 같은데, 이번 전시의 주제는 어떻게 선정하게 되신 것인지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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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화, <하염 없는 마음>

 

 

어렸을 적부터 빛에 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과학 시간에 빛의 삼원색에 대해 배울 때, 물체의 색은 반사된 빛을 뇌가 인지하는 것이라는 개념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었죠.

 

모닝페이지라고, 평소에 아침 일기를 쓰는 습관이 있거든요. 전시를 기획할 때도 어느 날 아침에 문득 그런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빛을 볼 때 원래 공중에 있던 빛과, 무언가를 만났을 때의 빛과, 그 이후에 통과되는 빛이 다 같은 빛인 걸까?” 거기서부터 생각이 주욱 확장되기 시작했죠.

 

전시를 하게 된 것은 사실 꽤 갑작스러운 일이어서 현재 그려둔 그림들을 관통하는 맥락을 찾는 것이 제겐 커다란 숙제였어요. 전시를 하겠다고 다짐하고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니까요. 별다른 준비가 되어있던 것은 아니지만 작업물이 쌓여 있었고, 얼른 물꼬를 트고 싶었어요. 그래서 급하게 고민을 하다 보니 평소 자주 생각하던 빛에 관한 상념들이 자연스럽게 반영된 것 같아요.

 

전시장에 섹션의 주제와 분위기에 어울리는 향수들을 직접 만들어 비치해 두신다고 하셨어요. 향을 통해 과거의 기억을 생생하게 일깨우는 것을 프루스트 효과라고 하죠. 그런 효과를 기대하시면서 기획한 이벤트일까요?

 

네. 섹션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향수는 오래도록 그림들이 기억되는 것에 일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과거에 향수매장에서 오래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직접 조향을 했죠.

 

작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드셨을 텐데, 기획뿐만 아니라 이런 이벤트도 준비하셨어요. 대단하세요.

 

사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기획자와 작가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확실히 느끼긴 했어요. 작가가 기획을 하게 되면 객관성이 떨어져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게 되는 것 같거든요. 그리고 그림은 이동하고 설치하는 과정에서 훼손과 분실이 빈번하게 발생해서, 그런 것들을 모두 관리하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었어요. 정신이 없긴 했죠. (웃음)

 

작업적 영감을 어디서 얻으시는지 궁금해요.

 

데이비드 호크니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어요. 호크니는 사진이 발명된 이래로 회화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성공했고,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작가죠. 그런데 그를 담아낸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그가 흑백 필름으로 먼저 촬영을 하고, 흑백 사진을 보면서 컬러 작업을 했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어요. 호크니는 색을 다루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니까요.

 

저는 작업할 때 제가 실제로 본 것이 아니면 안 그리거든요. 보통 사진을 찍고 사진을 보면서 그릴 때가 많은데, 그 다큐멘터리를 본 이래로 사진을 찍을 때면 흑백필름으로 먼저 촬영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시간차를 두고 현상을 하면 원래의 색을 잊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흑백필름으로 한번 촬영을 하고, 컬러 필름으로 같은 장소를 똑같이 촬영을 해두는 편이에요. 그리고 한 장소를 선정하면 맑은 날이든, 비가 오는 날이든 그곳을 모든 시간대와 날씨에 가보려고 노력해요.

 

또, 하루 루틴 중에서 나무를 관찰하며 산책하는 시간이 있어요. 같은 것을 보더라도 새롭게 느끼는 순간들과 자주 마주하는데, 근래 들어서는 잎이 다 떨어지고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나무도 화려할 수 있음을 느꼈어요. 도슨트를 할 때도 같은 그림인데 매번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롭고, 다른 감정을 느낄 때가 많았거든요. 장소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메모 강박이 있기도 해요. 어느 정도냐 하면,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면 메모를 못하잖아요. 저는 저장하고 싶은 장면들을 번호를 붙여서 기억을 해 둬요. 나중에 끝나고 나면 메모를 하죠. 원래도 기억력이 좋은 편이긴 해서 기억이 안 날 때면 미치겠어요. (웃음) 샤워를 하다가 뿌옇게 김 서린 거울에 1번, 2번, 번호를 매기면서 적어 두기도 하고요. 그런 것들을 축적해 두는 습관이 있는 것 같아요.

 

모든 작품들이 다 소중하시겠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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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화, <진가쟁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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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통과한 빛』 전시 전경


 

개인적으로는 <진가쟁주2>라는 작품이 마음에 들어요. 진가쟁주 설화를 좋아하거든요. 손톱을 먹고 사람으로 둔갑한 쥐 때문에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애쓰는 이야기 있잖아요. 나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오랫동안 자문해왔어요.

 

그리고 reflection을 원래도 즐겨 그리는 편이에요. 일상을 영위하다보면 관념이 굳어져서 익숙한 것들의 가치를 잊어버릴 때가 많잖아요. 그런 것들을 경계하자는 목적으로 환상과 실제의 경계에 있는 reflection을 자주 그려왔어요.

 

‘혀끝으로 하는 위로보다 화면 위의 온도가 늘,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라고 본인을 소개하셨어요. 그리고 그림이 위로가 된다는 말은 딱히 와 닿지 않는다고도 하셨고요. 이 부분에서 조금 놀랐어요. 저는 그동안 도슨트로 해설하시는 모습을 봤을 때, 단어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세공하여 말씀하시는 것을 보며 굉장히 다정한 사람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실제로 저와 같은 생각을 하시는 분들의 후기도 다수 접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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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화, <어둠인 척 눈을 피하는 빛에게>

 

 

잔정이 많은 것은 어느 정도는 맞지만 말로 누군가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크게 위로를 건네 본 적도 없고요. 그리고 한국에서 미술 입시를 한다는 것은 그림 한 장으로 저의 모든 것을 증명해야만 하는 전쟁같은 일이잖아요. 저한테는 치열하고 지난한 과정이었기에 이것이 위로가 된다고 생각해본 적은 딱히 없었어요. 그런데 저의 그림이나 말에서 위로를 받았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송구스럽죠. 제가 주지 않은 것을 받은 거잖아요.

 

개인전을 관람하는 관람객들이 집중했으면 하는 관전 포인트가 있을까요?

 

그림을 그렸던 저의 마음이나 생각을 가늠하려 애써주시는 것보다는 작품을 바라보는 개인의 감상에 집중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전시장에서 마주하는 모든 작품을 굳이 이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저는 전시를 감상할 때 활자를 거의 읽지 않아요. 캡션에 있는 재료랑 연도 정도는 보지만 섹션 설명이라든지, 화가의 삶이라든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전시 서문 같은 것들은 잘 읽지 않죠. 물론 그 그림을 보고 작가가 이해받을 수 있다면 기쁘겠지만 우리는 작가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니잖아요. 작품을 볼 때만큼은 나의 개인적인 감상에 집중해서 스스로가 가장 귀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경험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건 제가 도슨트로 일할 때도 마찬가지로 느끼는 부분이에요.

 

저는 관람객들에게 어떤 대단한 피드백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그저 영상 매체가 범람하는 작금의 시대에, 정지되어 있는 시각 예술을 보러 찾아와준다는 것 자체로 감사드려요. 이런 시대에는 정지된 이미지를 보는 것이 비교적 어려운 일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거든요.

 

오랜 세월을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 사셨어요. 작업하시다가 힘든 순간이 있다면요.

 

어떤 네트워킹 없이 계속해서 혼자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이요. 내가 나의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는데 어떻게 해야 나아질 지에 대한 판단이 서지 않으면 너무 답답해요.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가려면 다음 스텝을 밟아야 하는데, 같이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있으면 아무래도 발전 방향을 보다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나중에 다른 작가 분들과 함께 전시를 여실 수도 있겠네요.

 

해보고 싶어요. 큰 동력이 될 것 같아요.

 

이제 개인전이 끝나면 뭘 하고 싶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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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화, <빛살을 가리는 노래>

 

 

이제는 다른 그림을 좀 그리고 싶어요. (웃음)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예전에 그려둔 것을 손보느라 새로운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유화를 제대로 한번 배워보고 싶어요. 하고 싶은 표현이 있는데도 그것을 하지 못하는 건 너무 답답한 일이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스킨스쿠버를 배우고 싶어요. 저의 그림 중에서 바닷속 풍경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촬영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직접 그 풍경을 보고 그리는 것은 보지 않았을 때와는 다른 차원의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도슨트’ 윤석화를 만나다



도슨트 활동을 시작하게 되신 계기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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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아트뮤지엄  『알폰스 무하展』 해설 진행 중 ©윤석화 도슨트

 

 

원래 김찬용 도슨트님을 무척 좋아했어요. 뜨거운 심장과 차가운 이성으로 위트 있게 해설을 진행하시는 분이죠. 자코메티 전시에서 그분을 처음 봤는데, 그때 어떤 질문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면서 유연하고도 단호하게 신념을 지키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어요.

 

사실 이전에는 전시를 자주 보러 다녔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 한정이었어요. 전시를 기획한 사람들의 의도를 파악한다거나 제가 이 전시를 봄으로써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크게 하지 못했죠. 그런데 그때 처음 느끼게 된 것 같아요. 전공자이거나 예술계에 몸담은 사람이 아닌, 미술관에 처음 방문하는 것일지도 모르는 대중들에게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게 굉장히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요.

 

저는 입시 미술을 오래 했었고 영어 강사로도 일했어요. 그 와중에도 그림은 계속 그리고 있었고요. 그런데 계속 이렇게 일하다 보면 수입이 있다는 사실에 안주하게 되니까 어떻게든 그림 곁에 있을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아동미술 등 이것 저것을 하다가 운 좋게 초심자의 시선으로 해설을 하는 것을 원하시는 기획자님을 만났죠. 그래서 2019년도 6월에 에릭 요한슨 사진전으로 도슨트 활동을 처음 시작하게 되었어요. 당시에는 스텝 업무 겸 도슨트를 했었어서 검표를 하다가 시간 되면 해설을 하러 뛰어가고, 또 나와서 검표하고. 그랬던 게 생각나요.

 

도슨트 양성 과정의 절차를 밟은 건 아니신가봐요.

 

네, 그래서 그런가. (웃음) 그런 프레임이 없어요. 배운 티가 막 나지는 않죠. 저를 좋아해주셨던 분들이 있다면 아마 그런 이유이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전시 해설 준비하는 과정은 어떻게 되세요?

 

우선, 작품 리스트를 받으면 제가 해설하고 싶은 그림을 골라요. 그리고 꼭 해설해야 하는 그림 있잖아요. 오디오 가이드가 들어 있다거나 포스터 메인 그림이라든가, 그런 것들은 필수적으로 넣어요. 이후에는 배치도를 보면서 동선을 짭니다.

 

해설을 준비할 때는 집요하게 작가에 대해 연구를 하는 편이에요. 화가에 대한 책들을 읽고, 번역되지 않았지만 믿음직한 출처의 원문들을 찾아 읽고요. 또, 어떤 관점을 선택하느냐가 중요한 포인트예요. 도슨트는 작가과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전시를 기획한 기획자의 시선에서 그림을 말해줘야 하는 사람이기도 하니까요. 그런 것들을 모두 고려해 보면, 작가가 어떤 삶을 살았건 간에 지금 이 기획 전시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무척 한정적이에요. 그럼에도 주어진 그림들로 사람들을 납득시켜야 하는 일이죠.

 

생각해 보면 일전에 도슨트님이 해설을 하신 마이아트뮤지엄의 앙리마티스 전시도 우리가 흔히 아는 야수파의 마티스가 아니라 노년의 컷아웃 작업 위주로 전시가 기획되었네요. 현재 진행 중인 마르크 샤갈 전도 성서 중심의 기획이었고요. 확실히 화가의 메시지뿐만 아니라 기획자의 메시지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에 집중하시고 있다는 게 느껴져요.

 

맞습니다. 도슨트는 이 현장에서, 그 모든 것을 고려하여 지금 할 수 있는 말을 찾아내야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기획자의 메시지와 공간에 대한 이해도도 있어야 하죠.

 

현장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질문들도 자주 받아요. 그래서 처음 만들어둔 대본을 계속해서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질문들을 받고, 끊임없이 수정하며 관람객들의 시선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드려야 할지 계속 고민해요.

 

도슨트님의 해설을 들으면, 항상 작가와 작품에 대한 애정이 한가득 느껴지더라고요. 특히, 작가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으려는 도슨트님의 노력들이 느껴지던 순간들이 많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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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아트뮤지엄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해설 진행 중 ©윤석화 도슨트

 

 

늘 고려하는 점이 있다면 지금 해설을 들으러 오신 분들 중에 미술관에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면 막중한 책임감이 생기죠. 어쨌든 제가 말로 뱉는 순간 저의 선입견에 누군가가 갇힐 수도 있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닫혀있는 문장보다는 열려 있는 문장으로 각자가 상상하실 수 있는 몫을 남겨두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에요.

 

반면에 이런 모호한 문장들을 불편하게 느끼시는 분들도 있어요. 명확한 답을 주기를 원하는 분들이 계시죠. 저는 넓은 형태의 가이드를 드리지만 이것조차 가이드이기 때문에 선입견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관람객분들은 이런 것들을 다 이어붙여서 개개인의 관점으로 감상을 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전공자나 예술계 종사자가 아닌 일반 대중들이 그림을 보러 온다는 것이 어떤 의미여야 하는지, 그들이 이곳에 방문하여 무엇을 얻어 갈 수 있을지를 부단히 고민해왔어요. 저의 해설은 몽땅 잊어버리셔도 상관은 없지만, 곱씹을 수 있는 단어나 문장 하나 정도는 남았으면 좋겠다고 자주 생각했죠. 예술가의 출생 연도나 사망 연도를 아는 것이 누군가의 삶을 크게 바꿀 것 같지는 않아요. 이 시대와는 거리가 먼 일이잖아요. 그런데 정말 피부에 와닿았을 때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를 열심히 고심해왔던 것 같아요.

 

방대한 화가의 인생과 작품들에 비해 설명하는 작품 수는 일부분일 뿐이니까 해설이 확실히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맞아요. 제가 해설을 해야 하는 그림은 작가의 작품 중에 극히 일부분인데, 이것 하나를 보면서 그 사람의 전부를 이해시켜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까 그림 하나로 할 수 있는 말을 찾아가야 하는 과정에 있어서 어려움을 느껴요. 화가가 이러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이 그림을 그린 건지, 혹은 이런 그림들을 그려왔었기 때문에 그의 삶을 지탱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인과는 당연히 쌍방이겠죠. 그런데 전자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화가를 입체적으로 담아내려고 노력을 하는 편이에요.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봤던 처음으로 실물로 봤던 그림이 고흐 그림이었거든요. 그때의 충격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제가 알던 고흐는 고통받고 히스테릭한 사람이었는데, 따뜻하고 자상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거든요. 그의 시대가 그에게 너무 가혹 했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어요.

 

맞아요. 실제로 고흐는 사업가적인 면모도 있었고 예술 작업의 상업적 측면에 대한 이해도도 있었다고 하잖아요. 귀를 자른 미치광이 예술가로만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죠.

 

고흐가 훗날 명성을 얻게 된 것도 그의 남동생이자 화상인 테오와 테오의 부인 요한나의 활약이 있었기에 가능했죠. 사람은 이렇게나 입체적이에요. 화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우리는 감히 모르니까, 재단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긴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어느 정도의 가이드는 제시해야 하는 입장이기는 해서 힘들 때가 있어요.

 

그래서 해설할 때는 오피셜적인 부분과 개인적인 생각을 명확하게 구분하여 명시를 해요.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것에 예민하지 않으면 미처 인지하지 못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입에서 입으로 구전이 되다 보면 저의 말이 화가가 한 말처럼 와전되는 경우도 발생할 것 같아서 늘 무섭죠. 말이라는 게 정말 무섭고 버거운 것이라고, 이 일을 하면서 자주 생각했어요.

 

반면에 일을 하면서 기쁨을 느끼실 때가 있다면요? 해설에 대한 관람객들의 따스한 감상평이 도움이 되기도 하나요?

 

사실 저는 제 후기 잘 안 찾아보는 편이에요. 무서워서 못 보겠어요. (웃음) 그래도 종종 SNS에 따스한 말들을 남겨주시는 분들을 보면 감사하죠.

 

매일 본 것을 처음 본 것처럼 새롭게 보거나 이야기하는 것을 잘해서, 이 일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고 느끼긴 했어요. 매일 같은 말을 하더라도 마주하는 사람들이나 그날의 공기 같은 것들은 모두 다르잖아요. 아침에 오면 전시장을 한 바퀴 돌면서 스케치를 하기도 하고, 늘 새로운 감정들을 다시 느끼면서 작품을 감상했어요. 그럴 때 즐거움을 느꼈던 것 같아요.

 

<월간 지그시>를 발행하셨고 글도 쓰시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도슨트로 진행하시는 설명을 듣다 보면 시가 등장할 때가 종종 있었는데, 감상에 깊이를 더해주어 좋더라고요. SNS를 통해 첼로를 배우신다는 소식도 접했는데 회화적 언어를 제외하고도 다른 방식의 언어에도 관심이 있으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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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화 도슨트

 

 

그림이나 글, 혹은 음악이나 무용과 같은 예술 활동은 그 예술가의 가장 직관적인 언어라고 생각해요. 모든 예술가들은 다 저처럼 슬프고 외롭고 즐겁고, 그런 감정들을 느끼는 똑같은 사람인데, 그것을 미지의 영역으로 인식하고 분석하려고 하니까 감상이 어려운 것이 아닐까 생각했죠.

 

해당 분야의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이 미술관에 찾아왔을 때 무엇을 전해드릴 수 있을지를 생각해왔고, 그런 의문을 품고 있다 보니 자연히 비전공자로서 다른 예술을 접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어진 듯해요. 그리고 성인이 된 이후로는 직업적인 면을 제외하고는 칭찬받을 일이 많지는 않잖아요. 새롭게 도전하는 분야에서 칭찬을 받으니까 기쁜 마음에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웃음)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관점에서 작품을 보는 것은 비전공자들과는 조금 다를 것 같아요.

 

아무래도 다른 점이 있는 것 같아요. 종이, 캔버스, 나무 위에 그려진 그림은 느낌이 다 다르거든요. 종이 위에 그려진 그림 같은 경우에는 순서가 무척 잘 보여요. ‘이 색을 먼저 바르고 이 위에 이 색을 얹었구나.’ 저는 그런 과정을 발견할 때 너무 재밌거든요. 그런데 막상 이런 것을 설명하면 듣는 분들은 그다지 감흥을 느끼지 못하시는 것 같기도 했어요. (웃음)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입장에서 가장 다르다고 느꼈던 점은 판화라는 매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었어요. 관람객분들이 “이거 진짜 원화인가요?”라는 질문을 정말 많이 하시거든요. 화가의 붓 터치가 있느냐 없느냐에 굉장히 몰입하고 계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제가 석판화를 배워봤는데, 판화는 과정 자체가 다 예술이라고 하더라고요. 똑같은 형태를 그려도 그날의 온도, 그날의 습도, 먼지에 따라서 전혀 다른 작품이 탄생한다고 해요. 판화는 여러 질감이 다른 종이에 찍혔을 때 어떤 작품이 탄생할지 예측 불가능성에 대한 실험을 하기 위한 용도이지, 프린팅의 의미는 아니라는 거죠. 판화는 작가가 넘버링을 매기고 서명을 했을 때 그건 독립적인 하나의 작품이라고 인정을 하는 것이에요. 형태가 같아도 조금씩 베리에이션이 다르거나 컬러가 다를 수도 있고,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 판화라고 말씀드리면 그 순간부터 제 해설을 아예 안 듣는 분들도 있었거든요. 그럴 때는 조금 아쉽죠.

 

마지막 질문입니다. 국내에 상륙했을 때 꼭 도슨트로서 해설을 해보고 싶은 전시가 있다면요?

 

저는 피터도이그의 전시요. 미술 입시를 할 때부터 좋아했는데,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몽환적인 풍경을 그려내는 작가예요. 앞서 말씀드린 reflection을 그리는 작가이기도 하고요. 색감도 아름답죠. 도쿄에서 전시를 연다고 해서 가려고 했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가지 못했어요. 언젠가는 꼭 직접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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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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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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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은미
    • 아이 어렸을 때 미술학원 선생님이셨고 에릭 요한슨 도슨트도 아이랑
      같이 들었어요~기사로 접하니 윤석화쌤 너무 반갑고 멋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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