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용하고 아름다운 시간 [공간]

복합문화공간 '어쩌다 산책'
글 입력 2022.03.30 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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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방문하는 일대가 있다면 자연스럽게 애정하는 공간이 생기기 마련이다. 공연 관람을 위해 빈번하게 들리는 대학로에는 애정하는 공간이 정말 많은데, 그중 복합문화공간 '어쩌다 산책'을 소개하려 한다. '어쩌다 산책'은 어쩌다 가게, 어쩌다 책방, 어쩌다 집 등 다양한 공간을 기획하는 '어쩌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서점과 카페가 연결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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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산책' 인스타그램 

 

 

어쩌다 산책.

목적 없이 산책하다 어쩌다 들어온 공간.

혹은 어쩌다 사버린 책.

 

나는 후자의 경험을 더 많이 하였다. 극장이 줄을 지어 있는 곳에는 서점이 없고, 꽤 위쪽으로 올라가야 하는 바람에 '어쩌다 산책'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방문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거의 3년째, 조용한 공간에 가고 싶거나 (평일에 한정된 이야기이다. 주말에는 사람이 정말 많다.) 가볍게 책을 보고 싶다면 들리는 장소이다.

 

이 공간은 북카페라고 칭하기엔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북카페와는 많이 다른 형태를 보인다.  서점과 카페가 분리되어 있고, 카페의 음료를 주문하지 않아도 편하게 책을 둘러볼 수 있으며, 서점과 카페로 들어오는 두 가지의 입구가 존재한다.

 

그렇다고 공간의 통일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카페로 들어오는 입구에는 정원이 있는데 이 정원부터 서점과 카페까지 모두 하나의 분위기를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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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하고 아름다운 시간.

 

'어쩌다 산책'의 슬로건이다. 무용하다는 단어만 들으면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뒤따라오는 아름다운 시간이라는 말이 '어쩌다 산책'의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산책은 독서와 닮아 있습니다. 길에 지표가 있듯 책에도 목차와 페이지가 있으며 산책 중에 거리와 공간을 느끼듯 독서 중에는 페이지를 보며 어디까지 왔는지 가늠해보기도 하지요. 나를 돌아보기도 하고 영감을 얻기도 합니다.

 

산책 길에 떠오른 생각들을 잡아두기 위해 벤치에 앉아 메모를 하거나 공상의 시간을 보내듯 어쩌다 산책에서의 시간도 그러했으면 좋겠습니다. 목적 없이 무용하며 평안하고 아름답기를 바랍니다.

 

- '어쩌다 산책' 인스타그램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을 때 서점과 카페를 차례로 방문하는 편이다. 어떠한 생각을 깊게 가지려고 가는 것이 아니다. 진열된 다양한 책을 찬찬히 둘러보고, 흥미가 가는 책을 한 권 집어 든 후에, 카페의 맛있는 커피와 음악을 즐기며 현실에서 잠시나마 벗어나는 것이다. 무용한 시간은 사람을 살아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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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마다 하나의 주제로 운영합니다.

 

서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적힌 말이다. '어쩌다 산책'은 계절마다 하나의 주제를 정해 카페에서는 새로운 음료 메뉴를, 서점에서는 여러 권의 책을 내어놓고 전시 혹은 팝업샵 등을 운영한다. 작년 겨울, 'THE SHOP 더 숍' 팝업을 진행할 때 구매한 매거진 'B'의 'THE SHOP 더 숍' 서문에 공감되는 부분이 있어 일부를 가져와 보았다.

 

 
누군가는 코로나19가 촉발한 뉴 노멀 시대에 왜 오프라인 가게 이야기를 하느냐고 의아해할 수도 있을 겁니다. 저 역시 1년 가까이 제한된 일상을 겪으며 온라인 상거래의 편의를 몸소 체험했고요. 그런데 이런 제한된 일상이 되레 명확하게 일깨워준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내가 어떤 것에서 삶의 에너지를 얻는 부류의 사람인지를 알게 된 것이죠, 예를 들면 저는 음식이 주는 맛 자체보다 식당이나 사람이 모인 상황이 자아내는 분위기를, 물건에 대한 애착보다는 물리적 공간에서 물건을 찾아내고 발견하는 기쁨을 더 즐기는 편에 가깝더군요. 이러한 경험들은 온라인 상거래의 인프라와 큐레이션이 아무리 정교하게 발달한다 해도 대체할 수 없는 영역임이 분명합니다.
 

 

'어쩌다 산책'의 서점은 처음 방문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책을 신중히 골라 진열해놓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정말 가볍게 책을 보러 들어갔다가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해서 한두 권씩 들고 나오는 건 이제 놀랍지도 않다.

 

그렇게 산 책을 집에서 읽는 것과 카페에서 읽는 느낌은 또 다르다. 잔잔한 분위기의 음악과 튀지 않는 말소리는 최고의 백색 소음이다. 사람이 붐비는 대학로에서 두 층만 내려왔을 뿐인데 고요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안정된 분위기가 나를 반긴다. 가끔은 선물 같은 전시와 팝업이 기다리고 있을 때도 있다.

 

공간 자체의 안정감과 어딘가와 동떨어진 새로운 장소에 있다는 이질감은 온라인 상점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감정이다. 계절마다 바뀌는 테마는 공간감을 극대화하는데, 이 또한 온라인에서는 경험하기 쉽지 않다. 특정 장소에서 느끼는 분위기는 장소를 방문한 개인 고유의 경험과 시간이 쌓여서 만들어진다.

 

이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장소를 더 많이 발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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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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