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삶을 사랑하려면 - 키다리 아저씨 [도서/문학]

어른이 되어 다시 읽은 키다리 아저씨
글 입력 2022.03.29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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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동화로 읽고 어렴풋한 기억만 남아있던 <키다리 아저씨>를 어른이 되어 다시 읽어보았다. 어렸을 때에는 그저 키다리 아저씨는 대체 누구인지 궁금해서 페이지를 넘기기 바빴는데, 커서 다시 읽어보니 이야기의 주인공 Judy라는 인물의 내면과 성장, 그녀를 둘러싼 환경에 대해 좀 더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필자는 영어 원서로 이 작품을 읽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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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dy는 고아원 'John Grier Home'에서 자랐다. 이곳은 아이들을 때린다거나 굶기는 등의 학대를 가하지도 않았고, 나름대로 자체적인 관리와 교육도 해주는 곳이었다. 하지만 Judy는 편지 내용 대부분에서 고아원에 대해 강한 적대감을 드러낸다. 그런데 고아원을 싫어하던 Judy가 대학에 오면서부터는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렇다면 John Grier Home에는 없고 대학에는 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고아원과 대학은 모두 '교육'을 담당하는 곳인데, 고아원에서 Judy에게 결핍되었던 교육은 무엇이었을까?

 

 

 

1. 따뜻한 가정과 교우관계의 존재 여부


 

우선 Judy가 갓 대학에 왔을 때, 그녀는 다른 아이들과 자신이 다른 점들을 많이 발견한다. 그녀에게 결핍되었던 첫 번째 교육은 가정 교육이다. 여기에서 가정 교육은 기본적인 예절 등이 아니다. Judy는 ‘가정’이라는 보호 자체를 경험해 보지 못했다. 그녀는 ‘가족’이 무엇인지 몰랐으며, 가족에게서 받는 대가 없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Judy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I’ve been having the most beautiful vacation visiting Sallie. (...) Everything is so comfortable and restful and homelike; (...) It is the most perfect house for children to be brought up in;” -p. 55
 

 

그녀가 평범한 집 하나에 이렇게 감탄하는 이유는, 고아원은 그녀에게 ‘집’도 ‘가족’도 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Judy에게 결핍되었던 또 하나의 교육은 친구 관계에서의 배움이다. 그녀가 대학에 오기 전 ‘친구’를 사귀는 모습은 소설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고아원 안에서 그녀는 학생이기보다는 식모처럼 청소, 정리, 아이들 관리에 여념이 없고, 학교에 가서는 ‘고아원 아이’로 낙인찍힌다. 그녀는 대학에 와서야 사람들과 진정으로 소통하며 새로운 것들을 접한다. Judy에게 결핍된 교육들을 보다 보면, Judy가 지내던 고아원과 대학이 몹시 대비되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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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양성과 도전 가능성


 

고아원과 대학은 교육 환경 외의 주변 환경도 굉장히 다르다. 우선은 사람들의 다양성에 차이가 있다. 고아원은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 모여 모두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곳이다. 좁은 시설에서 많은 인원을 관리하기 위해 개인의 개성은 철저히 무시당한 것이다. Judy는 고아원의 소녀들은 모두 같은 모습이라며 고아원 소녀의 앞모습과 뒷모습을 그리기도 한다. 반면에 대학은 다양한 환경에서 자란 다양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당장 Judy의 룸메이트들만 보더라도, 각자가 살아온 환경, 즉 가족, 집안의 전통, 사는 지역부터 다르다. 그들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옷을 고르고 방을 꾸민다.

 

또한, 대학과 고아원 사이에는 새로운 도전의 가능성 여부라는 큰 차이가 있다. 고아원은 규칙적인 집단생활에 발맞춰 튀지 않게 생활하는 곳이다. 그곳에서 새로운 도전을 꿈꾼다면, 그것은 고아원의 기반과 규칙에 반기를 드는 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반면 대학은 항상 새로운 것을 마주하고 이를 스스로 해결하는 장이다. Judy는 원한다면 얼마든지 대회에 참가해 성취를 이룰 수도 있다. 그녀는 능력과 노력에 따라 장학금을 받을 수도 있고, 낙제할 수도 있다. 그 모든 것은 Judy에게 달렸고, 그녀의 인생은 그녀가 스스로 개척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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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선택'의 중요성


 

고아원과 대학의 가장 큰 차이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선택’인 것 같다. 고아원에는 어디서도 ‘선택’의 가능성이 없고, 대학에는 언제나 ‘선택’만이 있다. Judy가 고아원을 싫어했던 이유는 그곳에 ‘다양한 가능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사실 그것은 인생에서 또 하나의 가장 중요한 교육이 아닐까. Judy는 이렇게 말한다.

 

 
“Everybody likes a few surprises; it’s a perfectly natural human craving. But I never had one (...) You know, Daddy, I think that the most necessary quality for any person to have is imagination. (...) It ought to be cultivated in children. (...) They ought to do everything from love.” -p. 70
 

 

고아원에서 ‘선택의 기회’조차 없었던 이유는, 고아원에서 아이들을 획일적으로 키우기 때문도 있지만, 진정으로 ‘자신의 것’이 없다는 점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것’이 하나도 없는 삶 속에서 Judy는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학은 다르다. 대학에서 Judy가 얻은 물질적인 충족, 자신만의 공간, 자신만의 독립적인 생활은 한 인간이 자유롭게 주체적인 선택을 하고, 자신의 정체성과 독창성을 찾는데 필수적인 조건일 수 있다. 자신의 자리, 자신의 생활과 자신의 것들이 보장되어야 비로소 마음껏 선택과 경험을 하고, 이를 통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Judy가 예쁜 옷들을 샀던 것은 단순히 그녀의 욕망을 충족한 것이 아니라, ‘선택’과 ‘내 것’의 경험을 했던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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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교육의 목적


 

그렇다면 이제 소설에서 이야기하는 진정한 교육의 목적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Judy가 이렇게 말하는 부분에서 많은 독자가 감동 내지는 어떤 뿌듯함을 느꼈을 것이다.

 

 
“I begin to feel like a girl instead of a foundling.” -p. 42
 

 

Judy는 대학에 와서야 비로소 자신의 것, 자신의 공간, 자신의 삶을 꾸려간다. 그제서야 자신이 고유한 존재가 되어감을 느낀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찾아 나서고, 삶의 기쁨을 누리고, 더 나아가 사회에서 자아실현을 하고 성취를 얻을 수 있도록 역량을 키워주는 것이 바로 소설이 이야기하는 교육 아닐까. 사람에게는 생존만이 다가 아니라는 것, 생존 너머의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고아원과 참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 같다.

 

 

 

5. Judy의 성장


 

Judy는 이렇게 대학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크게 성장한다. 우선 첫 번째로, 그녀는 자신의 행복, 자신감, 안정감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녀는 풍족한 유년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깨닫기도 힘든 하루하루의 행복에 대해 깨닫는다. 그녀는 이런 발랄한 말을 한다.

 


“I’m going to enjoy every second, and I’m going to know I’m enjoying it while I’m enjoying it.” -p. 98
 

 

둘째로, 그녀는 스스로 선택하는 삶에 대해 알게 된다. Judy는 키다리 아저씨가 주는 추가적인 용돈을 거부할 만큼 독립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녀의 편지를 읽다 보면 그녀가 갈수록 키다리 아저씨에게 후원자 대 지원자의 관계가 아니라, 독립적인 사람 대 독립적인 사람의 관계를 원하는 느낌이 든다. 그녀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I believe absolutely in my own free will and my own power to accomplish” -p. 113
 

 

세 번째로, 그녀는 자신과 자신의 과거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녀는 이제 콤플렉스를 느끼거나 감정을 실어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다. 객관적으로 차분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다.

 

 
“Give the Home my love, please—my TRULY love. (...) I regard it as a very unusual adventure. It gives me a sort of vantage point from which to stand aside and look at life.” -p.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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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Daddy-Long-Legs의 결말


 

그렇다면 소설 ‘키다리 아저씨’의 결말은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Judy는 결국 Jervie와 결혼하기로 한다. 앞으로 Judy가 Jervie의 아내가 되어서도 독립적인 존재로서 사회에서 더 넓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이런 결말은 한편으로 Judy에게 어린 시절 결핍되었었던 것들을 채워주는 것 같기도 하다. 항상 가족이 있는 척하며 외로움을 지니고 살았던 Judy에게는 드디어 자신의 가족이라 할만한 사람이 생겼다. 한 지붕 아래 단순히 같이 사는 것이 아니라 유대감, 친밀함,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진짜 가족’이 생겼다는 것은 Judy 개인에게 그 어떤 결말보다 행복한 결말일 수도 있다. 어쩌면 한 사람에게 교육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며 사랑을 누리는 것부터 시작되는 것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또한, 이제 Judy는 고아원도, 기숙사도, 남의 집도 아닌 진짜 자기 집을 갖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그녀는 비로소 ‘자신의 집’이 주는 아늑함과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만약 Judy가 키다리 아저씨와 ‘사랑’의 관계로 엮이지 않았다면, 그녀는 평생 유일한 가족 같은 사람에게 책임감, 빚진 기분을 갖고 살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요즘 시대의 여성상과는 조금 동떨어져 있어도, Judy의 성장과 교육 일기에 있어서 이 결말은 해피엔딩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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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우리가 당연하게 누렸다고 생각한 사랑, 자신만의 공간, 선택의 기회, 교육이 얼마나 소중한 것들인지 다시금 생각해 보게 만든다. 작가는 세상의 모든 Judy가 따뜻한 교육을 받고 행복한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 소설을 쓰지는 않았을까. Judy가 그 모든 시련을 겪고서도 결국 삶을 사랑하는 여성이 되는 모습은 오늘날의 필자에게도 굉장한 따뜻함과 감동을 안겨주었다. 어린 시절 추억을 꺼내보며 새삼 삶의 순수함을 되새겨보는 시간도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참고 도서 : Alcott, Luisa May., Webster, Jean. Daddy-Long-Legs and Dear Enemy. Penguin Classics, 2004.

 

 

[정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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