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맛있는 건 정말 참을 수 없어 - 용감한 구르메의 미식 라이브러리 [도서]

<용감한 구르메의 미식 라이브러리>(알렉상드르 스테른, 2022)
글 입력 2022.03.28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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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어를 먹으면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부득부득 피를 빼고 내장을 제거한 다음 살코기만 먹어본 사람은 대체 뭐 하는 사람이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몇 날 며칠을 굶어 이성이 증발했거나, 비대한 야수의 심장을 가진 사람이었으리라. 살기 위해, 혹은 단순히 호기심이 동해 처음 보는 버섯이나 생선을 먹어보고, 너무 오래 보관해 곰팡이가 하얗게 핀 음식도 먹어본 끝에 우리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식재료와 조리법을 얻을 수 있었다. 음식의 역사는 그야말로 용기의 역사인 셈이다.

 

<용감한 구르메의 미식 라이브러리>는 미식의 세계에 발을 들인 사람들을 위한 먼저 용기낸 자의 훌륭한 안내서다. 저자는 식재료와 음식의 역사, 그리고 이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며 도전에 필요한 용기를 불어넣고, 망설이는 이의 등을 살짝 떠민다. 저자의 설명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당신도 본 적 없는 음식의 생김새를 상상하며 군침을 흘릴지도 모르고, 그것을 먹기 위해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역병으로 입맛만 다시고 있을 당신을 위해, 이 책에서 소개된 몇 가지 음식과 함께 서울에서 이를 맛볼 수 있는 식당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다만 우리에게 익숙한 맛보다는 현지식에 가까운 생소한 맛을 느낄 수 있는 곳들로 안내할 참이니, 이 점 주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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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야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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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마르세유 지방의 전통 요리 부야베스는 각종 생선을 올리브유와 양파, 토마토, 감자와 함께 끓인 해물 스튜다. 한국에는 종종 프랑스식 해물탕으로 소개되곤 하는데, 조리법이 비슷할 뿐 맛은 전혀 다른지라 불필요한 오해를 사는 음식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부야베스를 먹어보고 싶다면 청담동에 있는 프렌치 레스토랑 <윌로뜨>를 추천한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인물과 지역을 주제로 한 정통 프렌치 코스를 선보이는 곳으로, 코스는 계절마다 바뀌지만 부야베스는 상시 메뉴에 포함되어 있다. 냄비를 땅에 놓고 만든 요리라는 그 어원에서 영감을 얻은 듯 냄비 아래 살짝 태운 나뭇가지를 깔아주는 것이 특징인데, 나무 타는 연기 사이로 은은하게 올라오는 해산물 향을 맡고 있자면 땅바닥에 대충 불을 피운 다음 냄비를 얹어 스튜를 끓이는 어부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맵고 시원한 맛은 아니지만, 해산물의 풍미와 토마토의 산미가 어우러진 국물은 그야말로 별미다.

 


 

2. 나폴리 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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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화덕피자로 불리는 나폴리 피자는 이제 우리에게도 익숙한 음식이지만, 화덕의 종류와 온도, 피자의 재료와 조리법까지 상세하게 정해 놓은 나폴리 피자의 문법을 지키는 집은 그렇게 많지 않다. 물론 만드는 이나 먹는 이의 취향에 맞게 현지화를 거친 피자도 그 나름의 맛이 있지만, 진짜 나폴리 피자의 간결하고도 풍부한 맛을 즐기고 싶다면 까다로운 심사를 통해 나폴리피자협회의 인증을 받은 곳들을 추천한다.

 

서래마을에 위치한 정두원 피자이올로의 <볼라레>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매장으로는 최초로 나폴리피자협회의 인증을 받은 곳이다. 신선한 토마토로 만드는 피자 소스가 무엇보다 인상적인데, 소스의 맛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마르게리따도 좋지만) 마리나라 피자를 먹어볼 것을 권한다. 책에서도 언급된 마리나라 피자는 도우 위에 토마토소스, 마늘, 바질, 올리브유만 얹어서 구운 미니멀한 피자로, 치즈가 들어가지 않아 조금 어색할 수 있지만 갓 구워낸 쫄깃한 빵과 감칠맛 가득한 토마토소스의 조화를 가장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

 

 


3. 파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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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시아식 쌀 요리인 파에야는 이제 한국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요리가 되었지만, 보다 현지의 맛에 가까운 파에야를 먹어보고 싶다면 효창공원역 인근 골목에 있는 작은 스페인 레스토랑 <더 셰프>를 추천한다.

 

아담한 외관과 달리 화려한 경력을 지닌 스페인 출신 셰프가 운영하는 곳으로, 개인적으로는 현지에서 먹었던 것과 가장 흡사한 파에야를 맛볼 수 있었다. 대표 메뉴인 파에야 데 마리스코(해산물 파에야)는 그야말로 바다를 통째로 졸여낸 듯한 맛인데, 해산물 풍미가 살짝 부담스러울 땐 곁들여 나오는 레몬 조각을 쭉 짜서 한 바퀴 뿌려주면 레몬의 산미가 해산물 향을 살짝 눌러주면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맛이 된다.

 

소카랏이라고 불리는 파에야 누룽지를 긁어먹는 즐거움도 놓치지 말자.

 

 

 

4. 홍어


 

특유의 냄새로 악명 높은 홍어는 국내에서 호불호가 가장 많이 갈리는 음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코를 찌르는 암모니아의 향과 쫄깃한 식감의 살점, 그리고 오독오독 씹히는 연골의 맛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이만한 별미가 없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잊을 수 없는 불쾌한 경험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야수의 심장을 지닌 미식가들에게도 첫 홍어는 조금 난해할 수 있으니, 홍어 전문점보다는 필자가 아는 서울 최고의 남도 음식점인 종로의 <토속정>을 먼저 추천하고 싶다. 이곳의 대표 메뉴는 민어와 홍어 요리지만, 감칠맛 가득한 빨간 양념의 병어 조림이나 늙은 호박을 넣고 끓인 부드럽고 시원한 남도식 매운탕을 먹으러 오는 사람들도 많다. 여럿이서 홍어 소짜를 하나 주문한 다음 맛만 보는 정도로 시작해 보면 어떨까. 다른 메뉴도 얼마든지 있으니 말이다.

 

 

 

5. 토르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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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코의 껍질 정도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지만, 토르티야는 멕시코 요리의 시작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중요한 음식이다. 이태원을 중심으로 현지식에 가까운 타코를 파는 집들이 꽤 생기긴 했지만, 타코에 들어가는 재료들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조합이 대부분이라 도전 정신을 불러일으키기엔 조금 부족한 감이 있다. 때문에 여기서는 어디서도 먹어본 적 없을 생소한 맛의 타코를 내놓는 집을 소개하고자 한다.

 

성수동에 있는 <엘 몰리노>는 멕시코 현지의 유명 레스토랑 <푸욜>(산 펠레그리노에서 매년 주최하는 행사인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50선’에서 16위를 차지한 바 있다)에서 수련한 진우범 셰프가 오픈한 타코 식당으로, 멕시코 현지의 트렌드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책에서도 언급한 닉스타말 공정을 거쳐 직접 반죽하고 굽는 토르티야는 고소한 옥수수 풍미로 타코의 맛을 한층 풍성하게 하며, 토르티야도 엄연한 타코의 재료임을 새삼 느끼게 해 준다. 타코에 들어가는 재료의 조합도 새로운데, 참치와 아보카도, 새우와 단호박의 만남은 어색한 듯 기막히게 어우러져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한다.


*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맛이냐며 중얼거릴 수도 있고, 용기를 내어 한입 베어 물었는데 크게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용기가 쌓이고 쌓여 언젠가는 당신의 인생에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할지도 모른다.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는 말에 꽂혀 서울에서 른당을 파는 곳을 찾아다니고, 거기에 만족하지 못해 기어코 인도네시아까지 다녀온 필자가 그랬듯 말이다. <용감한 구르메의 미식 라이브러리>의 한 구절에서 갖게 된 호기심과 용기가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책을 통해 삶의 700가지 가능성을 얻게 될 나와 당신을 위해, 하늘길이 빨리 열리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박호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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