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동시대의 고민과 호흡하는 연극 - XXL 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공연]

글 입력 2022.03.27 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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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XXL 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은 2015년 안산문화재단 ASAC B성년 페스티벌 초연 이후 서울과 안산, 대전 등 현재까지 꾸준히 공연되고 있는 작품이다. 제목만 듣고는 어떤 내용의 연극인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고, 굉장히 마이너한 연극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공연을 보기 전 시놉시스를 참고하여 대략적인 내용을 알아보고자 하였다.

 

[준호는 입시경쟁의 불안과 초조함을 여성용 레오타드를 착용하고 사진을 찍는 독특한 취향으로 심적 안정을 찾는다. 하지만 자신이 속해 있는 과외모임 엄마들의 과도한 통제와 친구들의 선입견 때문에 자신의 취향을 비밀로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에 레오타드를 입은 준호의 사진이 얼굴이 모자이크 된 채로 올라오고 준호는 그것을 올린 사람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희주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 시놉시스]

 

작품의 메인 키워드는 ‘다양성’인 듯했다. 그렇지만 한 가지 키워드에 집중되었다기보다는 청소년, 노동, 인권, 경쟁 등의 주제도 다루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공연 시간이 80분밖에 안 되다 보니 여러 문제를 겉핥기식으로만 들여다보는 연극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가득했다.


하지만 연극이 끝난 후 공연장을 나서는 나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가볍고 산뜻했다. 연극의 가치와 매력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던 알찬 80분이었기 때문이다. 극에 잘 녹여냈다고 생각하는 몇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감상을 남겨보고자 한다.


 

 

다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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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서는 준호의 취미를 이상한 것으로 바라본다. 공연을 볼 때는 ‘사람들이 도대체 왜 이렇게 타인에게 간섭하고 참견할까?’라는 생각에 답답하기도 했고, 적어도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준호의 취미가 왜 극도로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어쩌면 준호의 취미에는 왜곡된 여성상이 반영되었을 수 있고, 그런 면에서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준호의 행위를 복장 도착이라는 지점까지 몰아가지 않고 독특한 개인 취향 정도로 다루며, 준호가 레오타드를 입을 때 기분이 좋아지고 아름다운 선에 집착하는 정도로만 그려진다.


작품 속 인물들이 가진 준호에 대한 부정적 시선도 여러 담론을 통한 비판적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다름을 배척하는 것’일 뿐이다. 어떠한 가치 판단의 결과라기보다는 그저 단순히, 사회적 기준에 맞지 않는 자를 배제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 중점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다양한 개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 그리고 그 사회에 만연한 편견과 과도한 규정이다.


준호의 주변인들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준호를 멀리하는 이유 역시 명확했다. 그들은 준호와 가깝게 지낸 것으로 인해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을 함께 받게 될까 봐 두려워한다. 속을 들여다보면 그들은 준호를 걱정하거나 아끼기도 하지만, 준호와 자신은 친구가 아니라고 모두에게 딱 잘라 말한다.


이러한 군중 심리는 학교에서 왕따인 희주의 상황에도 적용이 된다. 실제로 희주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아는 사람은 별로 없고, “걔 이상한 애래.”라는 소문이 있을 뿐이다. 설령 누군가가 희주에게 다가가고 싶더라도 결국 희주를 외면하게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희주와 어울리면 자신도 덩달아 ‘이상한 애’ 취급을 받을 것 같을 테니까.


사회는 개개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회가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그 안의 개인들이 다양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그 이유가 그들 스스로의 가치 판단이나 신념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집단적 동조에 참여하는 과정과 관련이 깊다는 것은 눈여겨봐야 할 지점이다.




청소년들의 작은 사회,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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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는 어째서 집단에 동조하려는 심리를 가지게 되는 걸까? 작품의 배경이 학교이기 때문에, 학교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기획 의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학교가 스스로 판단하고 존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간이 아니라, 부모의 언어에 세팅되어 온 아이들이 그 가치관을 더욱 공고히 하고 낙오에 대한 공포를 느낄 수 있도록 그렸습니다. 단일한 성공의 기준과 루트들, 그 표준에 안착하기 위한 어른들의 수작, 무방비로 휘둘릴 수밖에 없는 청소년들은 우리 사회의 약자고 마이너입니다.]


즉, 이 작품에서는 학교에서 학생들이 개별성을 갖춘 인격체를 갖추도록 충분히 노력하고 있는지에 관한 의문을 제기한다. 획일화된 목표–대학 진학-를 위해 비슷한 교육과 생활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학생들이 스스로의 가치관을 건설적으로 발전시키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연결



2015년 처음 이 공연을 무대에 올렸을 때와 비교하여, 극단 돌파구에서는 ‘연결’이라는 키워드에 보다 집중했다. 2018년의 ‘미투’와 2020년의 ‘코로나’ 등, 한국 사회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고, 2022년의 공연을 위해 진행된 스터디에서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라는 삶의 명제를 떠올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용 면에서 극단 구성원들은 ‘젠더, 여성, 노동, 소수자’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작품을 다시 바라보며 시대 변화와의 연결고리를 담아내고자 하였다. 시각적으로는 배우 모두가 공연 내내 무대에 등장해 있도록 변화하였다. 이는 다양한 계급의 아이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음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접근성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극장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배리어프리 자막을 제작하고, 공연 시작 전 무대 구성과 음향에 대해 미리 설명하는 시간을 갖는다.


극단 돌파구는 연극 작업을 할 때 동시대와 호흡하는 방법을 놓치지 않으려 했고, 그러한 고민은 연극 ‘XXL 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에 여실히 담겼다. ‘연극은 시대의 정신을 담는다.’라는 문장을 다시금 떠올리고 공감하도록 해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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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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