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고전(classic)의 총집합, 레드벨벳의 ‘Feel My Rhythm’ [음악]

우릴 오만과 편견에 가두지 마
글 입력 2022.03.25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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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2 (古典)

「2」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문학이나 예술 작품.

 

출처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고전 작품은 지루하다. 그 편견은 필수교육과정을 밟던 시기에 만들어졌다. ‘오늘은 고전 작품을 배울 거예요’라는 말로 시작하는 수업은 대부분 재미가 없었다. 이름부터 생소한 작품들은 해석도 난해했다. 작품의 시대 배경을 배우며 미술이나 음악 시간에 역사 공부까지 하는 게 어쩐지 억울하기도 했다.


괜한 반항심에 눈과 귀를 막았다. 하지만 정규교육의 집요함을 이기기는 쉽지 않았다. 난 반복 교육을 통해 꼼짝없이 적당한 교양 수준을 지니게 되었다. 하얀 파마머리의 초상화를 보면 작곡가 이름을 맞추고, 그림 풍을 보면 대충 화가를 짐작해낸다. 심지어 고전 문학에는 그럴싸한 취향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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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은 고전을 끊임없이 재해석한다. 고전 작품 자체의 아름다움을 새로이 소개하려는 목적도 있겠지만, 간혹 그 유명세를 활용하려는 의도도 드러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익숙함’을 쫓는다. 그래서 고전 작품의 오마주에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시선을 빼앗긴다. 고전을 재해석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중의 관심을 배로 얻을 수 있는 이유이다.

 

레드벨벳은 3월 21일 발매한 새 앨범에서 이러한 고전 작품의 이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타이틀곡 ‘Feel My Rhythm’의 가사와 뮤직비디오에는 이미 대중에게 익숙한 고전 작품들이 여럿 등장한다.

 

 

 

음악 : 바흐 원곡의 'G선상의 아리아'



음악이 시작되고 현악기 선율이 흐른다. 바흐 원곡의 ‘G선상의 아리아’이다.

 

‘G선상의 아리아(Air on the G String)’의 원곡은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3번 BWV 1068 중 2악장 ‘Air’이다. 18세기 초반 바흐가 작곡한 이 곡을 19세기 후반에 바이올리니스트 아우구스트 빌헬미가 편곡했다. 그는 라장조의 원곡을 다장조로 바꾸고, 바이올린 G선으로만 연주하는 곡으로 만들었다.

 



 

 

레드벨벳의 ‘Feel My Rhythm’은 이러한 ‘G선상의 아리아’를 샘플링했다. 도입부부터 흐르는 은은한 현악기 선율이 익숙하다. 어디선가 들어본 음악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열린 마음으로 곡을 경험한다. 정확한 제목은 몰라도 익숙한 멜로디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바흐는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이지만, 이 곡은 낭만주의풍이 강하다. 매끄럽게 흐르는 바이올린 선율이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레드벨벳은 발레처럼 부드럽게 선을 강조하는 안무를 통해 이러한 음악의 이미지를 시각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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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 현악기 위로 여러 현대적인 악기가 쌓인다. 샘플링한 음악의 한 부분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도 지루하지 않도록 변주한다. 곡은 경쾌하게 전개된다. 후렴이 되면 다시 'G선상의 아리아'의 멜로디가 강조되어 들린다. 다분히 현대적인 멜로디와 익숙한 고전 음악이 어우러지는 묘한 선율이 매력적이다.

 

 

 

미술 : 보스의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


 

‘명화’라고 불리는 그림들은 각종 매체에 자주 노출된다. 관객은 미술관에서 직접 경험을 하기도 전에 작품을 접하고 파악한다.

 

‘Feel My Rhythm’의 뮤직비디오는 그야말로 고전 미술의 향연이다.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그네>부터 존 에버렛 밀레이의 <오필리아>, 모네의 <양산 쓴 여인>까지 꽃과 여인이 주인공인 여러 작품의 오마주가 등장한다. 뮤직비디오의 장면들은 원작에서 인물만 바꾼 듯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한다. 어렵지 않게 원작을 떠올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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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비디오를 보다 보면 뾰족하게 위로 솟은 특이한 구조물이 눈에 띈다.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에 등장하는 오브제이다. 이 그림에 뮤직비디오를 비롯한 음악 전체의 주제가 담겨있다.

 

보스의 화풍은 기괴하리만큼 독특하다. 우연히 그의 작품을 마주치면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눈을 떼지 못하는 이유이다. 그는 인간의 본성을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쾌락과 분노, 나태, 오만 등 파멸로 이어지는 감정과 행동을 제어하지 못하는 인간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의 염세주의적인 시각은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작품은 총 세 개의 패널로 구성되어있다. 왼쪽은 태초의 에덴동산으로, 순수한 낙원을 상징한다. 중앙은 지상의 쾌락을 나타낸다. 마지막 오른쪽은 쾌락에 심취해 빠져나오지 못하는 인간들의 지옥을 그린다. 세 패널은 매우 극명하게 대비된다. 동시에 모든 인간은 이 세 과정을 따른다는 풍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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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비디오에서 네 명의 멤버는 ‘딸기’로 상징되는 지상의 쾌락에 서서히 빠져든다. 예리는 에덴동산의 순수한 존재로 표현되는데, 그마저 같은 길을 택한다. 그들은 결국 그림의 중앙에 있던 쾌락의 공간에서 그림 우측의 지옥에 도달한다. 이 뮤직비디오에서 슬기는 나머지 네 멤버와 달리 지옥을 대표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슬기가 앉아있는 어두운 공간 속 높은 의자는 그림의 우측 아래에 있던 사람을 먹는 괴물을 떠오르게 한다.

 

마침내 그들은 지옥에 머무르게 된다. 타원형의 공간에 까만 옷을 입고 앉은 그들의 무표정한 얼굴이 눈에 띈다. 마지막으로 부엉이로 상징되는 슬기가 ‘지옥’ 패널에 등장하는 조형물 안에 들어가며 뮤직비디오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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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죄악을 말하는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은 괴이한 장면을 풍부한 색감으로 표현했다. 레드벨벳의 뮤직비디오는 원작보다 밝고 또렷한 색채를 사용했다. 화사한 색감과 오브제들이 원작이 전하는 ‘쾌락’이라는 주제를 돋보이게 한다. 이러한 요소 덕에 관객은 음악을 고전 미술과 강하게 연계하여 감상할 수 있다.

 

 

 

문학 :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오만과 편견>은 1813년 출간된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다. 18세기 유럽 상류층 집안의 남성이 평범한 가정의 여성인 엘리자베스에게 반해 구애한다. 엘리자베스는 그와 가치관이 맞지 않아 결혼할 수 없다며 거절한다. 당시 유럽에서 결혼은 생계와 직결되는 집안 간의 만남이었다. 여성 개인이 ‘가치관’ 같은 걸 이유로 회피하기 어려운 시기였다. 그렇기에 오스틴의 캐릭터 설정은 독특하고 유난스럽게 여겨졌다.

 

독자들은 엘리자베스의 태도를 어색해할지언정 그를 쉽게 비난하지는 못했다. 엘리자베스는 논리적이었고, 그에게 구애하는 다아시는 거만했기 때문이다. 다아시는 엘리자베스의 사회적 계급과 성별을 들어 그의 말을 무시하고, 결국은 자신과 결혼하게 될 거라며 자신만만한 태도로 일관한다.

 

이 고전 문학이 ‘명작’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인물의 입체성 때문이다. 오스틴은 보는 시각에 따라 한 인간을 향한 평가가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모든 인간은 오만하고, 그렇기에 편견을 가지게 된다는 주제 의식을 제목부터 강하게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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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가루를 날려

폭죽을 더 크게 터트려

우릴 오만과 편견에 가두지 마

자유로워 지금

 

‘Feel My Rhythm’은 이 익숙한 고전 문학을 가사에 활용했다. ‘우리를 오만과 편견에 가두지 말라’는 가사는 음악을 감상하는 이를 똑바로 바라보며 하는 말처럼 느껴진다. 오스틴이 작품으로 전했듯, 모든 사람은 오만과 편견을 가진다. 레드벨벳은 이 가사를 통해 보이는 면으로만 타인의 삶을 평가하고 재단하는 건 오만한 일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앞선 미술 작품의 주제와 엮어서 생각해보았을 때, ‘쾌락’을 탐하는 이의 삶을 단적으로 비판하는 게 옳은지에 관한 철학적 질문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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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작품은 여전히 지루하다. 변주가 많은 4분짜리 곡은 반복해서 들을 수도 있지만, 5분 30초짜리 관현악곡은 한 번 듣기도 힘들다. 마찬가지로 고전 미술은 해석이 어렵고, 고전 문학은 진득하게 읽어내릴 의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조금은 안다’라는 사실만으로도 고전 작품은 지루한 동시에 위안이 된다. 현대 예술에 고전 작품을 활용하면 작품의 수용자는 이미 알고 있는 것 위로 해석을 쌓을 수 있다는 안정감을 얻는다. 고전과 현대 작품 모두에 경계를 내리게 되는 것이다.

 

레드벨벳의 신곡 ‘Feel My Rhythm’은 고전의 총집합으로서 풍부한 문화적 경험을 선사한다. 그야말로 ‘아는 만큼 보이는’ 다채로운 현대 작품인 것이다. 이제 음악을 직접 경험해보자. 이 곡의 가사처럼 뭐든 상상해보아도 좋다. 분명 숨겨진 고전 작품들을 발견하는 새로운 재미가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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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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