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꼰대라 말하는 꼰대 [문화 전반]

언제나 하나의 관념은 쉽고 이해는 어렵다.
글 입력 2022.03.21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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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무조건 착하고 바르게 보이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부모님께 칭찬받고, 선생님께 잘 보이기를 원했다. 그런데 살다 보니 꼭 그럴 이유도, 그럴 필요도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삶을 살아온 경험이 많다고 해서 선배와 어른들의 조언이 내 인생에도 꼭 맞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오히려 때로는 그들의 뜬구름 잡는 소리와 이미 정상에 오른 여유 만만한 이야기에 심술이 났다.


그렇게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를 독립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부당한 말에 복종할 필요도, 자세를 낮출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달아갔다. 타인이 나를 함부로 대해도 될 권리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 누구에게도 ‘나’라는 한 인격체를 잡고 휘두를 권리는 없으니까.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제각각 독립된 개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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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레이디버드> 스틸컷

 

 

아마 ‘꼰대’라는 말에는 그러한 너무도 당연한 전제와 인식이 담겨있을 것이다. 타인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사람, 타인에게 감정적인 강요를 당연하게 요구하는 사람들을 보고 우리는 '꼰대'라는 말을 사용한다. 오늘날에도 시대착오적인 인식, 부당한 관습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여전히 참 많다. 그런 사람에게 상처받을 대로 상처받고 지칠 대로 지친 우리는 오늘날 당당하게 표현한다. 이제는 그만. 'Latte is horse.'


소위 '꼰대'들에게 당신이 바로 '꼰대'라고 말해줌으로써, 나의 기분이 조금은 시원해지고 괜찮아질 수 있다. 멋진 어른이라면 본인의 '꼰대'같은 언행을 돌아보고 고치려 노력할 수도 있다. 요즘은 선배들이 먼저 '그런데 나 지금 꼰대 같았니?'라며 자신을 돌아보기도 한다. '꼰대'라는 말은 이처럼 너무 무겁지 않게, 넌지시 윗사람의 잘못된 사고방식을 지적할 수 있다. 당신과 나는 모두 동등한 한 인격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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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턴> 스틸컷

 

 

그러나 요즘은 그 말이 본래의 순기능보다 조금은 과잉 사용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우리는 윗세대, 선배, 심지어 한 살 차이 나는 사람과도 세대 차이를 느낀다. 살아온 시대와 겪어온 경험이 너무나 다르니 사실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들은 당연히 내 입맛에 맞는 이야기만을 할 수 없다. 우리가 이 험한 세상 속에서 ‘나’를 만들어가는 것처럼, 그들은 우리보다 한발 앞서 그저 그들의 세상 속에서 그들의 ‘나’를 만들어내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새 그들이 조금만 요즘 시대 감성에 맞지 않아도 바로 ‘꼰대’라고 못 박아버린다. 그리고 그 뒤의 이야기 따위는 참지도, 알고 싶지도 않다고 한다. 불편하고 구시대적인 사람은 ‘사람’이기 전에 다만 ‘꼰대’로서 무시와 비아냥의 표적이 된다.

 

물론 유용하지 않은 이야기를 꺼내는 ‘꼰대 선배’는 후배의 맥락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렇게 자기만 신나는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사실 그런 사람의 이야기를 굳이 소중한 내 시간을 내서 들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과연 ‘들어야 할 이야기’만 남는 세상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세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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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바웃 타임> 스틸컷


 

나와 다른 그 사람의 생애를 충분히 들여다보는 경험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솔직한 감정과 생각을 다 내놓고 이야기해 보려면 큰 용기와 넓은 마음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게 서로를 알아가는 존재가 사람이 아니던가. 악당과 영웅이 싸워 어느 한쪽이 이기는 이야기보다,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이 마침내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가 재미있을 때가 있다. ‘꼰대’라는 말은 그 모든 ‘사람 사이의 호기심’, 사람 간의 소통을 시작하게 하는 자그마한 단서의 발견을 무자비하게 짓밟는다. 당연하다. 언제나 하나의 관념은 쉽고 이해는 어려우니까.


누군가를 ‘꼰대’라는 강력한 틀 속에 가두기 위해서는, 적어도 그 사람에 대해 이해하려 애쓰는 성의 정도는 보여야 하지 않을까. 내가 모르는 그 사람의 수많은 시간들, 저렇게 될 수밖에 없던 이유를 헤아리려고 적어도 시도 내지는 노력을 해보자. (마치 세상의 수많은 인문학자처럼..) 그것은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사람을 꼰대로 일축해버리는 가혹한 인간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누군가의 삶을 헤아려보는 과정에서 스트레스와 분노를 연민과 관용으로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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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꼰대인턴> 현장포토

 

 

결국, 꼰대라는 말은 어떻게 보면 통쾌한 일침 같지만 사실 그 안에는 말을 하려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모두 타인을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고 있다, 내지는 노력하지 않겠다는 절망적인 소통의 단절이 담겨있다. 우리 사회의 갈등 구도 중 하나가 ‘라떼는~’ vs ‘아니요 요즘은~’이라면, 두 입장 모두 ‘꼰대’이기는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기회를 주고 지켜보기보다는 자기 생각이 옳다는 주장만 완고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꼰대’라는 말은 참 위험한 것 같다. 그 말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타인과 소통하고 싶다는 의미가 될 수도, 타인을 이해하려는 소통의 노력을 차단한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차라리 자기 자신에게 ‘꼰대’라는 말을 건네보면 어떨까. 그러면 다른 사람의 입장 그 자체를 헤아리려 노력을 해보았는지 스스로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혹시 내가 내 기준만 생각하고 상대의 말과 상황 따위는 이해하려 하지도 않은 역 꼰대(?)는 아니었을까?

 

서로가 편견 없이 더욱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사회가 되려면, 꼰대라는 말을 타인에게 너무나 쉽게 쓰는 문화를 한 번쯤은 돌아봐야 할 것 같다. '꼰대'라는 말을 남발하는 나, 그런 나는 '꼰대'의 마음을 갖고 있지는 않은가? 세상을 살아가는 ‘나’의 기준이 있더라도, 그게 나와 다른 타인과의 진정한 소통의 시작 자체를 가로막는다면 무슨 소용일까.

 

당신이 ‘꼰대’라는 말 하나로 무장해 상대방이 살아온 모든 시간을 부정해버리는 차가운 사람이 되지는 않길 바란다. 수많은 목소리가 존재하기에 세상은 오늘도 더욱 다채롭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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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바웃 타임> 

 

 

오해가 있을까봐 덧붙인다. 필자는 당당한 2000년생, 소위 말하는 MZ 세대에 해당한다.

 

 

[정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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