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에게 더 나은 ‘생활’을 허락하는 일 – 드라마 '식물생활' [드라마/예능]

그럼에도 삶에는 ‘작은 기쁨’이 필요하다
글 입력 2022.03.18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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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확행’,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의 이 단어는 한때 엄청난 붐을 일으키며 등장했다. 작은 행복의 중요성을 말하는 수많은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올 때, 한편으론 공감이 가기도 했지만, 왠지 모르게 못마땅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작은 행복의 중요성을 강조할수록, 많은 사람들에게 ‘큰 행복’을 허락하지 않는 구조를 가리고 그저 ‘작은 행복’에만 만족할 것을 권유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매일을 거대한 구조에 부딪히며 살아가는 것은 참 어렵고, 거대한 이상에 닿으려 계속해서 자신을 깎아내는 것은 참 지치는 일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혹은 ‘더 나은 자신’을 위해 나아가다 보면, 정작 현실의 ‘더 나은 생활’을 챙기기는 어려울 때가 많다.

 

기본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반복하는 일상을 우리는 보통 ‘생활’이라고 부르지만, 매일 마주하는 것이기에 오히려 ‘더 나은 생활’을 고민하고 실천할 여유는 늘 부족하게만 느껴진다. 그러나 ‘더 나은 생활’이란 어쩌면, 일상의 ‘작은 기쁨’을 발견하고, 그 기쁨을 누리는 것을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꾸미기]포스터.jpg

 

 

 

‘나’에게 더 나은 ‘생활’을 허락하는 일


 

백승화 감독의 웹드라마 <식물생활>은 식물을 통해 위로와 기쁨을 얻으며 ‘더 나은 생활’을 꾸려가는 웹툰 작가 지망생 ‘하나’와 주변 사람들의 일상을 담는다.

 

드라마는 자취 생활 10년만에 처음으로 햇빛이 가득 드는 옥탑방으로 이사 온 하나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하나는 직장 상사의 괴롭힘을 견디다 웹툰 작가가 되겠다며 3년 전 직장을 그만뒀지만, 지금까지 데뷔하지 못한 채 작품 수정만 이어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는 식물은 커녕 스스로를 챙기는 것만도 벅차 보인다. 그러나 반지하 방에 살며 유일하게 허락된 햇빛 한 줌을 다육이에게 양보했던 하나는, 더 많은 햇볕을 자신과 자신의 식물들에게 허락하기로 한다.

 

 

 “오랫동안 버티면서 지내 왔어.

겨우 반지하에서 옥탑으로 온 것뿐이지만,

이제부터라도 조금이나마 나은 삶을 꾸려가고 싶어.

 

<식물생활> 1화 ‘집들이와 분갈이’ 中

 

 

무거운 현실 속에서도 하나에게 식물을 돌보는 것은 말 그대로 ‘생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식물들에게 매일 물을 주고, 햇빛을 잘 받을 수 있도록 돌보면서 하나는 식물에게 작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다. 식물은 하나의 ‘생활’ 일부가 되어, 하나가 ‘더 나은 생활’을 꾸려갈 수 있게 해 주었다.

 

매일 반복되는 생활은 종종 사소하고 귀찮은 일처럼 느껴지고, ‘거대한’ 일들은 우리를 흔들며 생활을 놓치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 우리는 스스로가 아직 ‘더 나은 생활’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느끼며 생활을 챙기는 것을 잠시 미뤄두기도 한다. 하지만 매일 마주하는 생활을 잘 꾸려가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잘 돌보는 일이다.


 

"시들어버린 식물들을 보고 나서야

며칠 간의 미팅 준비로 엉망이 된 집이 눈에 들어왔어.

이것 저것 치우고 나니 차라리 후련해진 기분이야.

그런 생각이 들었어. 어쩌면 식물을 돌보는 일은

내가 나의 일상을 잘 돌보고 있는지 알려주는 지침일 지도 모른다고.

내일은 맛있는 것을 먹자. 그리고 나만의 새로운 이야기를 생각해보는 거야."

 

<식물생활> 4화 ‘일상의 길잡이’ 中

 

 

당장 ‘더 나은 미래’나 ‘더 나은 삶’을 만드는 것은 어려워도, ‘더 나은 생활’을 만드는 것은 일상 속 작은 기쁨을 자신에게 허락하는 것으로 이룰 수 있다. 현실의 무게에 작은 기쁨조차 찾기 어려울 것 같아도 우리는 어김없이 또 생활을 마주하기에, 자신에게 ‘더 나은 생활’을 허락하는 것은 생각보다 그리 많은 여유가 필요한 일은 아닐 수 있다. 마음 속 아주 작은 방 한 칸을 내어 주는 것, 따뜻한 햇살 한 줄기에 기대 잠시 쉬어가는 것도 작은 기쁨을 누리는 방법일 수 있다.

 

자신에게 ‘더 나은 생활’을 허락하고, 스스로를 돌보며 우리는 ‘더 나은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리고 그렇게 지나온 ‘더 나은 하루’들이 모여 ‘더 나은 미래’와 ‘더 나은 삶’을 만들어 낼 것이라 믿는다. 그렇기에 일상에 작은 기쁨을 더하는 것은, ‘더 나은 삶’에 대한 건강한 소망을 품는 다른 방식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삶에는 '작은 기쁨'이 필요하다


 

드라마에서 그리는 '식물이 주는 기쁨’에는 예상치 못한 발견이 포함된다. 이러한 일상 속 발견을 통해 우리는 ‘더 나은 삶’의 가능성을 믿을 수 있게 된다.

 

<식물생활> 6화, ‘식물의 세계’는 하나가 옥상에서 기르는 알로카시아와 다육이들, 소철 나무의 관점에서 전개된다. 넓은 잎을 가진 '알로카시아'가 '다육이들'의 햇빛을 가리자 다육이들은 불만을 토로하고, ‘소철나무 할아버지’는 알로카시아와 다육이들의 갈등을 중재한다.


 

"아니, 다육식물들에게 일조권이 생명이잖아요. 그쵸?"

"식물이 해가 뜨는 방향으로 자라는 게 당연한데,

이파리 방향을 바꾸라니 이게 말이 됩니까?"

"어 그래 그래, 다들 일리가 있구나.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다육식물이 비를 많이 맞으면 어떻게 되지?"

"그건.. 비를 너무 많이 맞으면 썩게 되죠"

"그래, 알로카시아 잎이 해를 가리기는 하지만 동시에 비를 막아주기도 하지.

그리고 계절에 따라 해가 뜨는 방향도 조금씩 달라지지 않더냐?

조만간 너희 다육이들 자리에도 해가 들거란다."

 

<식물생활> 6화 ‘식물의 세계’ 中

 

 

햇빛을 가리는 잎이 비를 막아줄 수도 있다는 것, 계절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해가 드는 자리도 바뀔 거라는 것,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일상 속 ‘작은 기쁨’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만이 이 사실이 품고 있는 위로와 온기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의식하지 못했던 것을 일상 속에서 예상치 못하게 발견했을 때, 우리는 이 ‘작은 기쁨’으로 때론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고, ‘더 나은 삶’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나도 이런 데서 진짜 느긋하게 살고 싶다"

"느긋하긴, 벌레 많지, 덥지, 말도 마. 작년에 비 많이 왔잖아.

그때 농사 쫄딱 망했거든? 감자 몽땅 썩고, 가지랑 토마토 다 쓰러지고."

"진짜? 그래서 어떻게 했어?"

"다 포기하고 서울로 올라갈까 했는데,

옆집 언니가 가지랑 토마토라도 세워 주라는 거야, 그럼 다시 일어선다고."

"그래서?"

"그냥 반신반의하면서 해봤는데, 걔들이 진짜 다 살아나더라.

식물들이 보기엔 되게 연약해 보여도 다들 기를 쓰며 사는구나 싶더라고.

그래서 나도 차근차근 하고 있어."

 

<식물생활> 7화 ‘식물생활’ 中

 

 

위 대화는 <식물생활> 7화에서 하나와 함께 직장을 나와 귀촌한 '진아'가 하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나오는 것이다. 진아 뿐만 아니라 드라마에서 나왔던 다양한 '식물러'들은 각자 다른 상황과 입장에 처해 있지만, 모두 식물에 애정을 쏟고 그것을 돌보면서 일상의 작은 기쁨을 발견한다. 그들의 삶에는 무겁고 지치고 허무한 일들도 있지만, 반짝이는 작은 기쁨들이 있어 그들의 일상은 지속된다.

 

 

수 천가지의 사소한 일들에서 우리는 작은 기쁨들을 찾아내고,

밝게 꿰어서 삶을 엮어갈 수 있다.

일상적으로 구원을 받고, 짐을 벗고 기분전환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큰 기쁨이 아니라 작은 기쁨이 필요하다.

 

헤르만 헤세,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中

 


작은 기쁨에 골몰하다가 넓은 시야를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앞의 삶은 계속되고, 우리는 주어진 '생활'을 이어가야 한다. 그렇기에 일상의 작은 기쁨을 발견하고, 그 기쁨에 기대 쉬어 가는 것은 꼭 필요하다. 작은 기쁨이 만들어낸 '더 나은 생활'은 '더 나은 삶'으로 우리를 데려가 줄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을 수많은 '하나'들도 무거운 현실 속에서 스스로 허락한 일상 속 ‘작은 기쁨’으로 ‘더 나은 삶’을 엮어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나에게 그랬듯, 이 드라마에 배어 있는 유머와 위로가 잠시의 휴식과 웃음이 필요한 그들에게 ‘작은 기쁨’이 될 수 있기를.


 

 

김효중 태그 .jpg

 

 

[김효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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