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이전에도 다독가는 아니었지만, 손에 스마트폰이 쥐어지고 난 다음부터는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 매 순간 휘발되는 SNS의 글자들은 하루 종일 새로고침을 해가며 읽을지언정, 서로 연관성을 갖고 나열되는 책 속 문장들은 복잡하다는 생각에 괜히 안 읽었던 것이다.

 

그러다 작년 말, 스스로의 감정이나 생각을 유행하는 짧은 용어나 ‘밈’ 사진으로 대신하는 나를 발견했다. 내가 구사하는 모든 문장에서는 순전히 나에게서 비롯된 표현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정말 내 생각 자체가 나의 것인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문제를 마주한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책을 매일 10분씩이라도 읽기 시작했다. 이름하여 '죽기 직전의 어휘력 심폐 소생 프로젝트'. 처음에는 30분 동안 다섯 장을 겨우 씹고 삼켰다면, 이제는 그래도 열 장 정도는 적당히 넘길 수 있다. 그렇게 지금까지 읽어온 책 중, 특히 재미있게 읽었던 책 세 권을 소개하려 한다.

 

 

 

1. 「지구에서 한아뿐」 정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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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으로부터,」를 읽고 ‘정세랑 월드’에 폭 빠진 뒤 만난 소설이다. 작가 특유의 세심한 표현과 묘사가 단숨에 사람을 끌어당긴다. 자칫하면 진부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외계인과 지구인의 사랑이라는 소재를 어떻게 이토록 예측이 안 가고 통통 튀게 풀어낼 수 있는지! 하루 만에 다 읽었을 정도로 정말 흡인력 있는 이야기였다.

 

무엇보다 내가 이 책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소설을 통해 나의 독서 인생에서 가장 나의 마음에 와닿는 인물과 사랑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주영의 아폴로를 향한 사랑. 한 번이라도 누군가의 열렬한 ‘팬’이었다면, 주영에게 이입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오직 그 인물만 보이고 모든 애정을 쏟아내는 시기를 보낸(혹은 보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공감하며 소설의 흐름을 탈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다른 이의 세계에 무력하게 휩쓸리고 포함당하며 살아가야 한다면, 차라리 아폴로의 그 다시없이 아름다운 세계로 뛰어들어 살겠다. 그 세계만이 의지로 선택한 유일한 세계가 되도록 하겠다…… 주영의 선택은,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아무 고민 없는 아둔한 열병 같은 것이 아니었다. 차라리 명확한 목표 의식의 결과였다.

 

 

 

2. 「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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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몇 권 읽고 나서 에세이가 읽고 싶어 집어 든 책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의 다정한 시선으로 바라본 어린이들의 이야기가 빼곡하다. 쉽게 읽히지만, 결코 가볍게 넘길 수는 없을 것이다. 반드시 매 주제가 끝나면 생각을 잠깐이라도 하게 된다. 자신이 어떤 어린이였는지에 대해, 어린이였을 때 주위에 어떤 어른이 있었는지에 대해, 그리고 어린이들에게 자신이 어떤 어른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되돌아보면 나는 어린이일 적에 정말 산만하고 사고를 자주 쳤는데, 감사하게도 멋진 어른들을 많이 만나 배우면서 자랄 수 있었다. 식당에서 물컵을 엎질러도 일단 무작정 혼내지 않고 눈높이에 맞추어 잘못을 가르쳐 주던 어른을. 어린이라는 이유로 다짜고짜 반말을 하지 않고 부드러운 존댓말을 해 주던 어른을. 내가 지나가듯이 했던 작은 물음에 대해 나중에라도 대답해 주던 어른을. 사소하지만 이게 내가 어린이 시절 생각했던 ‘멋진 어른들’이다. 지금의 내가 어른으로서 지켜야겠다고 노력하고 있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은 소개 글에 적힌 ‘어린이에 대해 생각할수록 우리의 세계는 넓어진다’는 문장의 의미를 깨달아가는 과정이다. ‘노 키즈 존’ 팻말을 붙인 유명 식당과 카페가 널려있는 요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너무 편협하지 않은가.

 

 

어린이는 공공장소에서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어디서 배워야 할까? 당연하게도 공공장소에서 배워야 한다. 다른 손님들의 행동을 보고, 잘못된 행동을 제지당하면서 배워야 한다. 좋은 곳에서 좋은 대접을 받으면서 그에 걸맞은 행동을 배워야 한다. 어린이가 어른보다 빨리 배운다는 것은 우리 모두 아는 사실이다.

 

 

 

3. 「다르면 다를수록」 최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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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떠올리기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만 아니라면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생태 에세이다. 애초에 용어가 뭐니 원리가 뭐니 구구절절 설명하는 장르의 책도 아닐뿐더러, ‘과학’하면 순간적으로 다가오는 딱딱하고 차가운 이미지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부드럽고 따뜻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자연은 순수를 혐오한다’는 문장 아래, ‘다양성’을 중심으로 많은 이야기를 풀어낸다. 왜 우리 사회는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고 한 곳에만 머물러 있으려고 하는 걸까? 이제까지 그래왔듯 쉽게 통제할 수 있어 편리하기 때문에? 다양성을 수용하고 변화하는 것은 번거롭고 이질감이 들기 때문에?

 

어떤 인간에게는 다양성이 중요하지 않은 가치일 수 있겠지만, 그것은 자연에 철저히 반하는 것임을 작가는 분명히 드러낸다. 동물과 식물, 그리고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이야기를 신선한 통찰력과 재치 있는 문체로 풀어내 읽는 내내 흥미롭게 다가왔던 책이다.


 

“곧기는 뱀의 창자다”라는 우리 옛 속담이 있다. 나라 사정이 여러모로 어려운 즈음에 한 번쯤 되씹어 볼 만한 말이다. 겉으로 보기엔 꾸불텅한 뱀이지만 곧은 듯 보이는 몸속에 실제로는 꼬불꼬불 뒤엉킨 창자를 숨기고 사는 우리보다 훨씬 더 곧은 창자를 가지고 있다.

 

  

죽어가는 어휘력을 살려보고자 독서습관을 들이고는 있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내 어휘력이 눈부시게 부활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직도 내가 내뱉는 모든 문장의 절반 이상은 이모티콘이나 밈, 혹은 지시대명사(“그거… 그거 있잖아. 내가 말 안 해도 뭔지 알겠지?”)가 차지하고 있다. 그 세 가지가 없을 때에는 애초에 문장 자체가 비문인 경우도 많다.

 

오랜 기간을 남의 표현으로 내 모든 말을 채워가며 살아왔는데, 겨우 책을 읽은 지 몇 달 만에 청산유수 달변가가 되기를 바라는 건 과도한 욕심이지 않은가. 일단은 조급함을 최대한 지우고 꾸준히 다양한 책들을 읽어보려 한다. 확실한 건, 내가 소개한 책 세 권과 더불어 내가 이제까지 읽어 온 책들은 나의 귀중한 자양분이 되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꾸준히 읽다 보면, 언젠가는 나의 생각이 온전히 내 것인 날이, 어휘력에 다시 숨이 붙는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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