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의 이 시국 교환학생 일기3

글 입력 2022.03.11 08:1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회전][크기변환]KakaoTalk_20220311_001646257_03.jpg

돌아갈 때가 되니 거짓말처럼 화창해졌던 마드리드.

사진은 스페인 광장에서 반대쪽으로 건너가는 횡단보도에서 찍었다.

 

 

벌써 2주가 된 2월 마지막 주 목요일에 투표라는 좋은 변명으로 마드리드 여행을 갔고, 겉핥기 수준의 여행이었지만 내 목적인 프라도 미술관 관람에 성공한 나름 알찬 여행이었다. 여행 내내 비가 오락가락 내리고 날씨가 따라주지 않아서인지 첫 마드리드 여행인데도 큰 감흥은 없었다. 여행 마지막 날, 언제 우중충했냐는 듯 먹구름이 다 걷히고 새파란 하늘이 드러나자 조금 억울하기까지 했다. 다음에 다시 마드리드에 오라는 뜻이겠거니 하고 아쉬운 여행을 끝내고 돌아왔다.


그런데 여행 마지막 날 아침부터 몸이 조금 이상한 게 느껴졌다. 항상 감기 기운이 오기 전에 나타나는 증상이 있는데 딱 그 느낌이었다. 환절기라 일교차도 컸고 나는 괜찮았다고 생각했는데 몸은 피곤했던 것 같다. 몸살이겠거니 생각하고 별생각 없이 잤는데 지금이 코로나 시대라는 걸 잠깐 까먹고 있었다.


다음날은 전날보다 괜찮길래 마드리드에 온 이유인 투표를 위해 아침 일찍부터 대사관에 갔다. 도심에서 떨어진 위치에 있는 대사관은 거의 지하철 종점에서 내려 또 버스로 갈아타야 갈 수 있는 애매한 곳에 있었다.

 

마드리드 교통카드는 충전 옵션이 많은데, 마드리드에 처음 도착한 날 시간이 늦어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급하게 충전 시킨다고 지하철 모든 노선에서 사용 가능한 10회권을 끊었다. 이게 화근이었다. 관광객들은 대부분 A존만 쓸 수 있는 옵션을 선택하면 대부분의 관광지를 다 둘러볼 수 있는데 뭣도 몰랐던 우리는 Combine이라는 단어만 보고 지하철, 버스 둘 다 사용 가능한 옵션인 줄 알고 돈을 더 주고 충전을 시켰다.

 

하지만 이 옵션은 지하철만 이용 가능한 옵션이었고 버스와 메트로 둘 다 이용할 수 있는 옵션은 따로 있었다. 아무튼 버스를 탈 때마다 매번 현금으로 1.5유로씩 내야 했는데, 대사관에 갈 때는 갖고 온 현금도 떨어져서 그냥 산책할 겸 걸어갔다. 구글 맵이 가르쳐준 예상 시간보다 좀 더 걷기는 했지만 모두 좋은 경험, 추억이 될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회전][크기변환]KakaoTalk_20220311_001646257_06.jpg


 

첫 대통령 선거를 스페인에서 하다니. 재외 국민 투표 마지막 날이라 사람이 많이 몰릴 거라는 예상과 달리 한산해서 빠르게 투표를 하고 나왔다. 도심에서 떨어진 대사관까지 와줘서 감사하다는 의미일까 나가는 문 앞에 주전부리들이 잔뜩 놓여있었다. 어찌어찌 투표까지 잘 마치고 한인마트까지 들린 후 바로 앞에 있는 스페인 광장까지 둘러봤다.


내가 요즘 유럽에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 순간은 다름 아닌 우크라이나-러시아의 전쟁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시작된 다음날, 버스를 같이 타고 수업도 같이 듣는 친구들의 분위기가 어딘가 이상했다. 먼저 물어보기 뭐 한 것 같아서 가만히 대화를 듣고만 있었는데, 알고 보니 친구들 중 몇 명이 구 소련 국가 출신이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뉴스를 읽고 분위기가 심각해진 것이었다.

 

학교 가는 버스에서의 대화 주제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었다. 수업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같이 수업을 듣는 애들도 계속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회전][크기변환]KakaoTalk_20220311_001646257_04.jpg

스페인 광장에서 열렸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반대 시위


 

내가 마드리드에 갔던 그 주에 스페인에서 전국적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반대 시위가 열렸다. 내가 스페인 광장에 갔던 때가 시위 시간이었고, 어쩌다 보니 시위에 참여한 인파들을 보게 됐다. 전쟁에 대한 소식들을 접하면서 우리나라도 항상 전쟁의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21세기에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가볍게 여겨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5시간 여정의 버스를 탔는데, 5시간을 어떻게 버티지 걱정했던 것과 다르게 타자마자 잠들어서 금방 도착한 것 같았다. 중간중간 잠에서 깨서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넓은 평야 사진을 찍고 다시 잠들기를 반복했다. 분명히 여기까지는 몸이 괜찮았다. 그런데 중간에 휴게소에 들릴 때부터 몸이 급속도로 안 좋아졌다. 열이 약간 났고 감기 기운도 더 심해졌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빠르게 씻고 자가 검진 키트로 검사하니 음성이 나왔다. 그냥 감기 기운이구나 싶어 안심하고 잤다.


다음날 아침, 목이 찢어질 것 같았다. 침을 삼키는 게 고통스러워서 침을 삼키지 않고 뱉었다. 이건 단순한 감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자가 검진 키트로 검사를 해보니 여전히 음성이었다. 목을 칼로 쑤시는 듯이 아픈데, 음성이라고? 믿을 수가 없어서 시간차를 두고 저녁에 다시 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그전에 미리 몸이 안 좋으면 나오지 말라고 했던 학교의 지침대로 교수들에게 몸이 안 좋아서 검사를 해보니 음성인데, 오늘 다시 해보려고 한다. 만일의 상황을 고려해 일단 오늘은 학교에 가지 않겠다는 메일을 보냈다.


스페인도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으면 7일간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고는 하는데, 형식적으로써 말할 뿐 실제로 자가격리 수칙을 지키는 사람들은 많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난 룸메이트들이 있어서 피해를 주지 않으려면 자가격리를 해야 했고, 양성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지만 아직은 음성이니 그 틈을 타 마트에 가서 격리를 하는 일주일 동안 해먹을 음식 재료들을 사 왔다. 혹시 몰라 약국에 들러 시럽으로 된 기침약도 샀다. 만 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 찍힌 걸 보고 살짝 정신이 혼미했다.


저녁이 돼서 다시 검사를 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키트에 두 줄이 나왔다. 이제 우리나라도 하루 확진자가 30만명대라 그런지 아 결국 올 게 왔구나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3일간 너무 고통스러웠다. 기침을 하느라 깊게 자지도 못하고 중간에 깨서 물을 마셨고, 기침은 한 번 시작하면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한국에서 가져온 종합 감기약과 여기서 산 시럽을 번갈아가며 먹은 게 3일쯤 되니 그제야 좀 살 것 같았다. 하지만 격리가 끝나고 음성이 나온 지 일주일이 다 돼가는 지금도 여전히 잔기침이 나오고 있다.

 

 

[회전][크기변환]KakaoTalk_20220311_001711539.jpg


 

그리고 격리가 끝난 날, 전에 예매한 축구 경기를 보러 갔다. 평균적인 티켓값이 170유로 정도여서 그 정도의 거금을 들여서 갈 정도인가 고민하던 찰나에 35유로부터 시작하는 경기가 있어 이때다 싶어 급하게 예매를 했다. 3층이라 별 기대 없이 갔는데 생각보다 잘 보이고 컸던 경기장 규모에 놀랐다. 딱히 축구에 관심 있는 편이 아니라 경기 자체보다 골대 근처에 공이 갈 때마다 열광하고 야유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더 흥미로웠다.


이번 일기는 코로나에 대한 이야기가 반인 것 같은데, 나름 조심한다고 생각했는데도 걸렸다는 것과 자가격리를 하는 일주일 동안 너무 심하게 앓아서 오미크론으로 변이 되면서 증상이 감기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건 사람마다 다르니 그냥 안 걸리는 게 최선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저번 일기를 쓴 지 거의 한 달 만에 쓰는 일기라 그런지 써도 써도 끝이 없을 것 같아 이번은 여기서 마무리하고자 한다.

 

 

[신민정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