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여운이 긴 영화 -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글 입력 2022.03.06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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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동안 결혼 생활을 해온 중년 부부. 시를 모아 책을 만드는 유쾌하고 솔직한 그레이스,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조용하고 신중한 에드워드. 감정 표현이 서툰 하나뿐인 아들 제이미. 결혼 기념일을 앞두고 갑자기 집을 떠나겠다고 선언한 에드워드. 이에 절망하는 그레이스와, 부모 사이에 혼란스러워하면서도 각자 맞춰주는 제이미, 완고하면서도 그레이스를 걱정하는 에드워드. 이들의 이야기이다.

 

오래 살아온, 나이든 부부도 똑같이 사랑 앞에서는 서툴고 이별 앞에서는 고통스럽나보다. 당사자의 연령대만 달라져도 느낌이 굉장히 달랐다. 세월의 풍파를 맞고, 그 많은 경험을 쌓아 깊어졌다고 해도 사람과의 관계, 특히 애정이 들어간 사랑에 대해서는 이렇게나 서툴고 모두가 똑같구나.

 

편하게 말 한번 꺼내지 못하고 갑자기 결단 내고 회피하는 에드워드도, 이별의 고통 앞에서 무력하게 이리저리 흔들리고 지쳐가는 그레이스도,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하면서 상처 받고 눈물 흘리고 하지만 어떻게든지 평온하게 대하려고 노력하는 제이미 까지도. 그 모든 모습이 공감이 되고, 그 모두가 나였다.

 

그레이스. 솔직하다. 이기적일 수도 있다. 감정에도 생각에도 솔직해서 '말을 꺼내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굳이 고르자면 그레이스가 가장 이해가 많이 됐다.

 

본인의 세상이 뚜렷한 것도, 모든 감정을 다 받아들이고 느끼고 표현하는 것도, 그 속에서 어떻게든지 자신의 생활을 찾아가려고 노력하는 것도, 그 중간마다 처절하게 매달리는 것과 상대를 엄청나게 미워하는 모습까지 전부 내 모습이 겹쳐보였다.

 

감정에 못이겨 너무 버거웠다. 마침내 그 힘을 다른 사람을 돕는 곳에 쓰고, 자신의 창작물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모습을 보고 진심으로 박수를 쳤다. 혹시라도 돌아올까봐 계단 앞에 앉아있는 모습이 너무나 슬펐다. 원하든 원치 않든 상황을 받아들이게 되는 모든 과정을 여실히 잘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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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말을 하지 못하고, 상대를 위해서 눈치를 보다가 결국 결단을 내는 모습이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 미웠다. 사랑이 뭔지 대체 모르겠다고, 진짜 사랑을 찾았다고 하는 마음이 과연 진심일까 의문도 들었다. 맞설 용기가 없었으리라, 그리고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지쳤으리라.

 

그렇다면 맞지 않은 옷을 오랫동안 입어온 것도 사랑이라고 볼 수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의지와 노력, 끈기는 마음이 있는 한 유지가 될 수 있을 테니까. 관계를 끝낸 후에도 -다시 화해할 수는 없지만-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이 느껴졌다. 행동은 분명 상처를 주었어도, 마음만큼은 잘 끝내고 싶었고, 진심으로 행복을 빌어주고 있었으리라.

 

제이미. 솔직히 보면서 제일 대단하다고 느꼈다. 자신의 감정 표현에 서툴다고는 하도, 낯설다고는 해도, 어떻게 저렇게 - 이혼한 부모님 사이에서 잘 버틸 수가 있는 거지? 양 손을 잡았던 그 어린날의 기억 하나만으로 버티는 모습이 마치 금쪽이었다.

 

오은영 박사님 덕분에 많은 금쪽이들이 위안을 받고 있다. 이해가 안되는 아이들의 행동도 전부 부모를 사랑해서 하는 일들이라. 자식 사랑과 부모 사랑을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각자의 방식으로 진심을 다해서 사랑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아버지 얘기를 들어주고 존중하며, 어머니 얘기도 들어주고 공감하고 존중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각자에게 맞는 방식으로 대하고 있었다. 속이려 들지도 않고, 자신도 속이지 않으면서, 솔직하게. 금쪽이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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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은 무엇일까? 각자의 인생처럼 각자의 사랑도 있겠지. 어느 것 하나 정의할 수는 없다. 나에게 있어 사랑은 무엇이고, 어떤 것을 사랑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 가족도 사랑하고, 친구도 사랑하고, 연인도 사랑한다. 시발점이나 요소들이 다를 뿐이다.

 

만약 나였으면 결혼 생활을 어떻기 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부모님이 갈라서기 시작한다면 나는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일단 울고 시작하겠지....나는 저렇게 사회활동을 못할 것 같다. 틈만 나면 구석에서 울고 찌그러져 있겠지.

 

그레이스나 에드워드, 제이미 그 어느 역할에 있든지 말이다. 울먹이는 감정선을 기본 베이스로 깐 상태로 영화가 전개된다. 그래서 더 몰입이 되고 피곤하고 슬프고 힘들고 보람찼다.

 

풍경이 좋았다. 좋은 시들과 함께.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분명 영국인데도, 나는 가본 적이 없는 곳인게 분명한데도, 친숙했다. 희망의 틈. 영화가 아니라 실제 인물들이 사는 것만 같다. 내가 믿는 사랑이란 무엇일까? 생각이 많이 드는, 여운이 긴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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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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