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기고를 어떻게 마무리할지 고민이 많았다. 무슨 이야기를 풀어 놓아야 아쉬움을 남기지 않을까. 그러던 중 넷플릭스를 보다 지브리 영화가 생각났다. 어린 시절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 나서까지 지브리는 언제나 곁에 있었다.
수많은 지브리 영화 중 지금껏 가장 많이 본 영화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 어렸을 적 부모님과 함께 봤던 극장에 가서 이 영화를 본 기억이 아직 선명하다. 하울과 함께했던 그 시절의 기억을 회상하며, 오늘은 그냥 내가 이 영화를 왜 좋아하는지 털어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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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무엇보다 꽉 닫힌 해피엔드를 가진 영화다. 흔히들 지브리 최고작으로 꼽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도 너무나 감동적이지만, 하쿠가 결국 유바바에 의해 불행한 최후를 맞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을 감안하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정말로 행복한 결말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소피와 하울이 날아가는 하울의 성 난간에 기대어 입맞춤을 나누는 마지막 엔딩은 아직도 그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독보적인 인지도를 자랑하는 장면과 OST가 있다. 지브리의 가장 영화적인 한순간을 꼽으라면 바로 공중 산책과 함께 흘러나오는 '인생의 회전목마'가 아닐까. 하울과 소피의 첫 만남을 이토록 황홀하게 그려내다니! 그 외에도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그 비행기와 군함을 비롯한 환상적인 스팀 펑크 세계관과 모자가게, 하울의 방에서 드러나는 동화적 분위기를 물씬 살린다. 프랑스와 독일을 배경으로 했다는 자연 풍경 역시 아름답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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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무엇보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인상적인 건 등장인물 자체의 매력 때문이다. 귀엽고 신비로운 힌, 캘시퍼와 허수아비는 물론 황야의 마녀와 설리만까지 모두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고 훌륭하게 퇴장한다. 주인공 소피는 소녀, 중년, 노년의 시절이 입체감 있게 표현됐다. 젊었을 때보다 오히려 활발하고 당찬 노년의 소피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말했듯 ‘여성을 예쁘다 귀엽다고 하는 것은 나이가 아니라 그녀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역할과 분위기'다. 소피와 같이, 나이에 구애받지 않으며 외면이 아닌 내면을 생각하는 그런 진정한 사랑은 전쟁도 세상도 바꿀 수 있을 거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하울의 이야기하지 않으며 어떤 걸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울은 기품 있고 우아하다. 동시에 유머러스하고 재기발랄하며 무엇보다 아름답다. 그 시퍼런 눈동자가 아름답게 빛날 때, 새(괴물)로 변해 섬뜩하게 느껴질 때도 하울에게선 경외감이 느껴진다. 그 강하면서도 유약하고 삐뚤어진 모습은 보호 본능을 자극한다. 이처럼 하울은 반전 매력, 갭 모에 그 자체인 캐릭터다. 평소엔 금발 미남이자 요섹남의 모습을 전쟁 중엔 새(괴물)로 변하며 대비되는 강하고 거친 인상을, 외모에 한껏 신경 쓰다 실망해 혼자 토라지는 행동은 어떻게 보면 철들지 않은 소년 같은 매력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영악한 귀여움이라고 해야 할까. 뭔가 더 지키고 보호해주고 싶은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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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울은 그 누구보다 자유를 사랑하는 순수한 영혼이다. 그래서인지 문제 상황이 닥치면 그것을 회피하기에 급급하다. 그러나 그런 점 때문에 오히려 영화 결말부의 명대사, ‘난 계속 도망쳐왔지만 이제 지켜야 할 것이 생겼어. 바로 너야.’가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자유를 너무나도 사랑해 문제를 회피하지만 결국 지키고 싶은 사람이 생겨 용기를 내기로 한 그 모습에서 하울의 매력은 극대화된다. 그리고 마침내 하울이 '소피의 머리카락이 별빛으로 물들었어.'라고 말할 때 관객은 하울의 진심을 알게 되며 큰 감동이 일렁인다.
이와 연결해서, 필자가 가장 사랑하는 장면은 바로 소피가 하울의 어린 시절을 알게 되고 ‘미래에서 기다릴게.’라고 말하는 씬이다. 미래에서 기다린다는 그 말 안의 아름다움도 분명하지만 ‘한참 찾았잖아.’라고 말하며 등장하는 하울의 첫 등장과 연결되는 것이 너무나 운명적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 첫 등장 장면에서 아주 희미하게 빛나는 반지는 타임 패러독스의 여지를 남기며 더욱 덕후들의 과몰입을 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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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단점도 존재한다. 흔히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중 가장 스토리가 난해하다고 평한다. 특히 끝은 확실한 해피엔딩이지만, ‘왜’ 그리고 ‘어떻게’ 그 엔딩으로 가게 되었는지에 대한 영화의 설명은 불친절한 점이 있다. 더불어, 확실한 빌런 캐릭터가 없어 스토리에 몰입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들린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열렬한 팬으로서 몇 가지 변호를 해보자면, 이야기도 디자인처럼 무엇을 더할지보다 무엇을 빼는 게 중요한 게 아닌가 싶다. 이미 원작이 존재하는 작품의 특성상 원작의 캐릭터를 새롭게 각색하면서도 그 안의 메시지 자체는 충실히 담아내야 할 테다. 세세한 설정 하나하나를 묘사하는 것보다 중요한 사건들로 보여주고 나머지는 관객들의 상상력에 맡기는 편이 더 좋을 수 있겠다. 무엇보다 원작자는 이 영화에 너무나 만족해했으니까 말이다.
메인 빌런에 대한 지적 역시 반박할 수 있다. 우리네 삶에도 그런 뚜렷한 메인 빌런이 존재하지 않지 않을까? 인생은 그런 메인 빌런을 무찌르기보다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에 더 가까울 거다. 황야의 마녀도 원작에선 끝까지 대립하다 죽는 악당이지만 영화에선 선한 쪽으로 변화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황야의 마녀 역시 하울의 성이라는 모두의 안식처에서 함께 살아가며 ‘공감과 사랑으로 상처받은 이들을 화합하고 치유하자’는 영화의 메시지에 걸맞은 인물로 진화했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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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가 <모노노케 히메>와 <센과 치히로> 이후 조금 마음의 짐을 덜어놓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렸다고 알려진 것처럼, 그 빌런 같아 보이는 인물들마저 포용하는 따뜻한 이야기가 때론 더 큰 울림을 선사하는 것 같다. 그런 하야오 필름은 정말로 경이롭다. 이렇듯 덕후들의 몰입 요소와 메시지까지 생각하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내 안에서 계속해서 재생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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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또 하나의 영화 <펀치 드렁크 러브>에선 “내가 지금 얼마나 센지 넌 모를 거다. 난 지금 사랑에 빠졌다.”라는 대사가 등장한다. 이 말처럼 진정한 사랑은 정말로 힘이 세다. 소피와 하울이 서로의 존재 덕분에 강해졌던 것처럼, 나도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보면 무엇이라도 해낼 것처럼, 힘이 불끈 솟는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사랑의 힘으로 무엇이든 해보자고.
“내가 지금 얼마나 센지 넌 모를 거다. 난 방금 하울을 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