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 사라지지 않고 살아지는 이야기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는 할머니의 미나리처럼.
글 입력 2022.02.22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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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나리>를 보고 왔다. 이따금씩 보고 나면 나도 모르게  자판을 두들기고 있는 작품들이 있다. 내 안에 있던 것을 게워내는 것인지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해 내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적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미나리>가 그렇다.


 개봉을 손꼽아 기다렸지만 기대는 하지 않고 갔다. 앞서 본 모두의 반응이 미적지근 했기 때문이다. 불타는 마음으로는 따뜻한 영화도 차갑게 느껴진다는 건 목욕탕에서 많이 배웠던 터라. 춥고 싶지 않은 나는 겁을 먹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어떤 온도로 정의 내릴 수 없는 영화더라. 온도가 아니라 온기더라고. <미나리>는 배우들의 눈빛에서, 광활한 초록색 바람에서, 마음을 울리는 음악에서 온기가 느껴진다. 온기가 느껴진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뜻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살아진다는 것이다. 살아지는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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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라" 낯선 미국, 아칸소로 떠나온 한국 가족. 가족들에게 뭔가 해내는 걸 보여주고 싶은 아빠 '제이콥'(스티븐 연)은 자신만의 농장을 가꾸기 시작하고 엄마 '모니카'(한예리)도 다시 일자리를 찾는다. 아직 어린 아이들을 위해 ‘모니카’의 엄마 ‘순자’(윤여정)가 함께 살기로 하고 가방 가득 고춧가루, 멸치, 한약 그리고 미나리씨를 담은 할머니가 도착한다. 의젓한 큰딸 '앤'(노엘 케이트 조)과 장난꾸러기 막내아들 '데이빗'(앨런 김)은 여느 그랜마같지 않은 할머니가 영- 못마땅한데… 함께 있다면,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하루하루 뿌리 내리며 살아가는 어느 가족의 아주 특별한 여정이 시작된다!

 

- 네이버 영화 소개

 

 

내용을 고사하고라도 미장셴이 눈물나게 아름답다. 촬영지인 오클라호마주의 넓은 하늘 아래 푸르른  들판,  그 위를 천천히 걷는 데이빗과 앤. 그리고 그 그림과 너무 잘 어울리는 배경음악. 딱 바람의 노래 같다. 따뜻한 주황색 바람이 느껴지는 듯한 배경음악이 일품이다. 솔직히 내용이 별로였어도 연출과 음악 때문에 이 영화를 좋아했을 것 같다.

 

그런데 이 영화는 내용까지 좋다. 미국땅에서 살아 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국가족을 그린 이 영화는, 자칫 가족을 지키려는 엄마와 꿈을 위해 이기적으로 구는 무능한 가장 아빠의 대립으로 그려질 수도 있었을텐데 <미나리>는 그렇지 않다. 실화 바탕이라 그런건진 몰라도 모든 인물들의 행동이 입체적으로 이해가 간다.

 

엄마 모니카는 방금까지 ‘당신은 가족보다 농장인거 아니냐’며 울분을 토하다가도 남편의 농작물을 구하기 위해 화염 속으로 한치의 망설임 없이 뛰어든다. 치솟는 불길 앞에서 더욱 무너지는 게 제이콥(아빠)이 아니라 모니카(엄마)인것도 전부 이해가 된다. 한 면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우리의 삶과 너무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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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의 히어로 데이빗

 

개인적으로 데이빗 캐릭터에 가장 애정이 간다. 반바지에 카우보이 신발을 신고 초록빛 들판을 종횡무진하는 아이. 매 맞을 회초리를 직접 가져오라는 말에 강아지풀을 가져가는 아이. 쿠키도 못 만들고 나쁜 말만 쓰고 남자 팬티를 입는 할머니를 싫어하는 아이. 심장병이 있지만 '데이빗 뛰지마!' 소리를 종일 듣는 장난꾸러기 아이. 그러나 결국 죽고 싶지 않다며 훌쩍거리는 아이. 데이빗이 보여주는 게 '결여'가 아니라 '순수'인 게 좋았다. 순수는 결핍의 상태가 아니니까. 순수는 순수로 가득한 것이니까.

 

어느 대목에서는 <벌새>의 은희가 떠오르기도 했다. 데이빗에겐 ‘세상은 이상하고도 아름답다’라고 말해주는 영지 선생님 대신 가지 말라는 산 속에 휘적휘적 들어가고, 뛰면 안되는 아이에게 그냥 같이 뛰자고 말하는 괴짜 할머니, 순자가 있다.

 

“할머니는 진짜 할머니 같지 않아!! 난 할머니 싫어!!” 라고 소리치지만 어느새 할며들고 있는 데이빗.. 귀여워 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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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데이빗역을 맡은 앨런 킴의 표정연기가 일품이다. 서랍에 부딪혀 주저 앉은 후 할머니의 "어느 서랍이 그랬어"라는 말에 짓는 표정이, 내가 어릴 적 지었던 그것과 너무너무 닮아 있더라. 무릎에 피가 나는 내 앞에서 바닥을 이놈하고 때려주는 엄마를 보던 내 표정이 딱 그랬던 것 같더라고. 감독이 어떤 디렉을 했을까 궁금해질 정도였다. 과장하지도 포장하지도 않은 정말 날 것의 표정. (천재배우 앨런 킴 사랑합니다.)

 

가장 잊히지 않는 데이빗의 표정은 순자에게 "너는 누구보다 strong boy야"라는 말을 들었을 때다. 태어날 때부터 심장이 약해 뛰지도 못할 정도인 데이빗. 그런 데이빗은 태어나 처음으로 너는 강하다는 소리를 듣고 활짝 웃지도, 감격의 울음을 터트리지도 않는다. 그저 굳은 얼굴로 입술을 세모로 오므린다.

 

드라마틱하지 않은 이 표현이 마음에 오래오래 남는다. 데이빗 심장의 구멍은 그렇게 줄어들고 있었을 것이다. 드라마틱하게 짠 하고 나은 게 아니라, 난생 처음 듣는 말과 난생 처음 겪는 짜증나는 할머니와의 일들이 그 구멍을 서서히 메꾼 걸 거다.

 

그렇게 태어나 처음으로 숨차게 달려간 곳이 할머니라는 게 마음을 크게 울렸다. 데이빗은 할머니가 자기 대신 하늘나라에 다녀온 것이라고 생각할까? 그래서 달려간 걸까? 데이빗이 그후로 어떻게 자랐을지, 어떤 소년으로 자라났을지 너무 궁금했는데 데이빗의 실제 인물인 정이삭 감독님 인상이 너무 좋아서, 데이빗이 자라 감독님이 된 거면 정말 잘 자랐지 싶다. (실화바탕 영화의 장점이자 과몰입의 단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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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엔딩이 하려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아픈 순자의 실수로 인해 창고가 불이 타고, 가족은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는다. 다시 시작하려 하지만 모든 농사가 망한다. 딱 하나, 순자가 심은 ‘미나리’만 빼고. 그렇게 영화는 끝이난다. 결말이 애매하다는 사람들이 많다. 마지막 장면에서 심장을 때리며 문을 닫는 영화가 많아서 그런지, 나도 당황스럽긴 했다.그러나 곱씹을수록 좋은 결말이란 확신이 든다. 그 이유에 대해, 엔딩을 보고 느낀 점에 대해 공유한다.

 

 

1. 할머니에 대한 원망이 없다.

 

이 부분이 개인적으로 정말 좋았다. 보통 이런 경우에 나오는 '사건의 원흉을 향해 소리치는 장면' (ex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라 했잖아!!!!")이 없다. 불길 속에서 좌절하는 장면, 다함께 집에 누워 자는 장면, 다시 시작하는 장면 그게 끝이다. 즉 할머니를 향한 원망과 갈등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미나리>는 사건의 원흉, 즉 할머니의 감정에 집중한다. 윤여정 배우의 그 허망한 눈동자에 담긴 감정이 너무 잘 읽혀서 관람객인 나마저 그를 원망할 수가 없다. 꼭 데이빗이었던 정이삭 감독이 우리 할머니 미워하지 마세요. 하는 것 같다. (물론 정이삭 감독의 할머니는 창고를 태워먹지 않았지만.) 어쨌든 이런 면까지 <미나리>는 참 따뜻한 영화다.

 

 

2. 가족은 그날밤 거실에서 다같이 잤다.

 

불탄 것은 창고다. 즉 제이콥네의 바퀴달린 집은 타지 않았다. 그런데 사고가 있던 날, 그들은 거실 바닥에서 다 같이 잤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밤 늦게까지 화재를 수습하다가 지쳐 쓰러져 거실에서 잠든 것이겠지. (외출복을 그대로 입고 잠든 것도 그렇고.)

 

그러나 은유적으로 생각해보면, 이는 이 사건을 통해 가족의 '연대'가 완성 되었음을 시사한다. 이혼 직전이었던 가족이 이 화재 사건을 통해 서로가 서로의 구원이 되어 다시 끈끈하게 뭉칠 것이고, 결국 다시 가족이란 이름으로 일어설 것이다. 이겨낼 것이다. 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창고 화재가 일을 다 망쳐버리는 부정적 의미가 아닌 '긍정적인 매개체'로 쓰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에 다시 한번 사건의 원흉인 할머니를 원망할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잠든 가족을 고요하게 내려다 보는 할머니는 그렇게 다시는 등장하지 않는다.

 


3. 마지막 대사, 순자를 향한 제이콥의 첫 진심

 

영화 내내 제이콥과 순자의 교류가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하물며 "장모님을 왜 여기까지 오시게 해. 난 싫어!" 라든가 "장모님 저희 다녀올게요" 같은 말 조차도 없다.

 

미나리를 심는다는 말만 한마디 주고 받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같이 사는 게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접점이 없다. 말은 하지 않지만 순자에 대해 탐탁치 않은 표정을 하기도 하는데, 아마 제이콥의 바운더리에는 순자가 없지 않았을까. 농장을 가꾸는 일, 자신의 아메리카 드림, 먹고 사는 일 그 모든 것에 순자는 껴있지 않았던 것이다. 어쩌면 순자를 가족으로든 순자 자체로든 '인정'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에 순자의 미나리 밭을 보고 제이콥은 "할머니께서 자리를 참 잘 고르셨다"라고 한다. 그건 어떤 후회의 말투도, 질투의 말투도 아니다. 말 그대로 '진심'이다. 제이콥이 순자를 받아들이는 순간이다. 할머니는 이 가족에게 정말 소중한 것을 주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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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족이라면 나를 깎고 너를 뭉쳐서 서로 껴 맞춰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가족은 그게 아니다. 그저 같은 땅에 뿌리를 내려 서로 엉키고 설키는 것이다. 서로 가까이 심어야 할지 멀리 심어야 할지 계산해야 하는 상추가 아니라.

 

그냥 턱 턱 뿌려 놓으면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는 할머니의 미나리처럼. 미나리의 뿌리처럼.

 

 

[김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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