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결국엔 사랑이 전부, 아이유의 사랑시

<시간의 바깥>과 <에잇>이 말하는 단절과 사랑
글 입력 2022.02.21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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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하다는 말이 습관이 된 시대에 살고 있다. 과잉경쟁과 혐오를 온 몸으로 마주쳐야 하는 세대에겐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이에 더불어 코로나 19의 등장은 모든 이들을 더 무기력하게 만든 분위기와 시스템까지 만들어내었다. 문득 일련의 현상들에서 비롯되는 무기력의 근원은 대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앞선 현상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속성은 ‘단절’이라고 할 수 있다. 경쟁과 혐오와 바이러스의 시대 속에서 우리는 관념적으로 단절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여 있다. 그 과정에서 죽음과 같은 여러 이별을 통해 발생하는 물리적인 단절은 덤이다. 이런 구렁텅이에 빠진 스스로를 달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쉬운 도피처 중 하나는 음악이다. 그리고 여기 단절과 무기력함에 대해 노래한 한 가수가 있다. 아이유의 <시간의 바깥>과 <에잇>이라는 곡에서 나는 긴밀히 이어지는 주제적 맥락을 느꼈다. 그의 오랜 지지자로서 노래를 나노단위로 분석하며 단절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시간의 관념을 뛰어넘는 행위, 사랑


 

<시간의 바깥>은 시간의 제약 속에서 만나지 못한 두 사람이 결국 시간의 바깥에서 재회한다는 콘셉트를 가진 사랑시이다. 가사를 가상의 이야기라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시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행위는 어떤 존재에게도 불가능한 일이다. 모든 존재는 시간이라는 선형적 흐름 안에 머무르고, 그렇기에 사랑은 필연적으로 이별을 마주하는 찬란하고도 아픈 행위가 된다. 이야기의 화자도 당연히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고, 단절되어 만날 수 없는 그를 그리워하는 듯하다. 그런 시간의 속성을 책망하듯, ‘우리가 시간의 테두리 바깥에서 만나면 숨이 차게 춤을 추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리고 그 다짐 바로 뒤에 춤을 추는 듯 선율이 흘러나오고 뮤직비디오에서 주인공들은 숨 가삐 춤을 춘다. 여기서 의문은 실제로 화자가 시간의 흐름을 뛰어넘었기 때문에 그와 만나 춤을 췄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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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화자가 사랑에 관한 간단하고도 확실한 진리를 깨달았기에 춤을 출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대상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자신이 이미 시간을 거스르고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한 존재의 단절, 즉 소멸은 그의 물리적 시간과 공간의 소멸 또한 의미한다. 하지만 그를 기억하는 존재가 있다면 그 대상의 개념적인 시간은 여전히 기억하는 주체의 시공간에 지속되고 있는 것이며, 이는 곧 물리적인 시간의 지속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사랑은 기억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기억한다는 사실만으로 가슴이 아려오는 고통을 참아내서라도 존재의 지속을 간직하려는 뜨거운 노력이다. 결국 사랑은 그 자체로 이미 시간의 관념을 뛰어넘는 행위라는 것이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단절 앞에 낙담하지만은 않을 수 있다. 결국은 항상 함께한다는 것이므로.

 

 

 

물리적 부재에서 오는 무기력함


 

<시간의 바깥>이 주는 깨달음은 큰 위안을 줄 수 있지만, 삶은 항상 문학은 아니기에 결국 물리적 접촉의 부재를 절감하는 때가 오기 마련이다. 그 간극에서 아이러니하게 다시 느껴지는 시간의 제약 앞에 무기력함을 느끼며 대상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게 된다. <에잇>은 단절 앞에 주어진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단 한 방울의 낭만적 힘도 없다는 무기력함을 노래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마치 동전의 양면 같은 사랑이 주는 양가감정의 연장에서 아이유는 시간과 존재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을 이어나가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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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는 항상 내 뜻대로 따라주지 않고 통제할 수 없는 사랑 앞에서 다시는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과 회의감을 나타낸다. 잔인한 사랑의 속성을 깨닫고도 도망칠 수 없었던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해질 대로 해져버린 기억’, 즉 과거를 ‘여행’하는 것이다.

 

막연한 두려움 앞에 우리는 이따금 과거를 회상하여 안정감을 찾곤 한다. 불안정한 현재와 미래와는 달리 과거는 확실히 존재했던 무엇이기 때문이다. 이를 보면 마치 과거는 무기고 같기도 하다. 앞으로 다가올 두려움과 무력함을 무찌를 무기를 보관하는 것이다. 과거의 ‘나’가 현재에 실존하는 ‘나’를 지키는 든든한 장소라고 할 수 있을까. 화자는 그 무기고를 오렌지 태양 아래 섬이라고 표현한다.

 

섬은 점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선과 같은 연속적인 상태가 아니라 단편적이고 정적인 상태이다. 점과 같은 그 과거의 섬에서 순간의 기억이 반복될 뿐이다. 그 기억은 잘 보관한다면 항상 젊고 희망찬 공간으로 남길 수 있다. 다만 그것이 과거라는 사실은 돌아갈 수 없는 것 또한 의미하기에 고통스러울 수 있다. 그럼에도, 그곳은 어떤 상황이 찾아올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유일하게 절대적인 희망의 공간으로 남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인생은 선과 같은 일련의 연속이고, 그 행복했던 수많은 점(섬)들은 지금까지의 화자라는 선을 구축해온 실체이기도 하며, 앞으로의 선을 만들어 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점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화자는 아프지만 그 섬을 잊지 않고 영원히 간직할 것을 다짐한다.

 

이를 보면 단절이 모든 시간과의 격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단절되기 이전에 함께 만들고 기억해온 소중한 점들에 먼지가 끼지 않게 계속해서 닦아주는 행위는 언제든 할 수 있고, 계속해서 해야만 하는 중요한 행위가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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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단절을 극복해야 하는 대상으로서만 말했지만, 사실 단절의 시대는 지나치게 연결되어 있는 우리를 분리하여 관계의 적절한 거리를 알려주었다. 또한 자신의 취향과 취미, 혼자인 것이 주는 안온함 등 긍정적인 측면을 알려준 계기가 된 것도 분명 맞다. 다만 여기서 단절을 두 차원으로 나눠서 생각해볼 수 있겠다. 그것은 통제 가능한 단절과 통제 불가능한 단절이다. 두 노래가 예기한 단절은 후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더 주목할 만한 것은 전자이다. 

 

초연결의 시대에서 단절 시대로의 갑작스러운 전환은 우리에게 큰 혼란 하나를 주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혼자임’과 ‘고립됨’이 같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분명히, 혼자임과 단절되어 고립됨은 다른 상태이다. 우리는 이를 헷갈려하고 통제 가능한 단절까지도 불가능의 영역으로 집어넣으려는 것 같다. 

 

혼자임이 곧 고립됨이 되어서는 안 된다. 타인과의 단절은 곧 자신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고 삶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타의에 의한 어쩔 수 없는 단절이 빈번한 지금이지만, 그 정도가 너무 지나치지는 않은지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 또한 혹여나 자의에 의해 지나치게 통제 불가능한 단절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돌이켜보며 점점 고립되어 가는 자신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가능한 누구도 타인과 자신으로부터 단절되지 않기를 바라고, 그럴 수 있는 용기를 얻기를 바란다.

단절의 시대이지만, 여전히 연결될 수 있는 대상과 방법이 수없이 다양해지고 있는 지금이기도 하다. 따로 또 같이, 그 적절한 거리를 찾아낼 수 있다. 꼭 그럴 수 있다.

 

불가능한 걸 알면서도 끝내 대상을 기억하고 만나려 노력하는 그처럼 말이다.

 

 

[정해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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