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어렵지 않은 동양화 이야기 - 동양화 도슨트 [도서]

글 입력 2022.02.19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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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는 왜 어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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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고 싶은 마음에 친구와 함께 당차게 미술관에 들어섰던 날이 있다. 미국과 유럽, 해외 유명 작가들의 현대미술 작품이 좋다는 후기가 많은 미술관이었고, 우리의 기대 또한 비슷했다. 하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전시회장에 들어선 순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방문했던 그때, 현대미술 전시는 막을 내리고 미술관에서 소장 중인 동양화가 가득히 펼쳐지고 있었다. 친구와 서로를 마주 보며 말했다. ‘난 동양화는 잘 몰라서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데…’


뜻밖의 주제였지만 풍성한 작품으로 가득했던 전시장을 천천히 둘러보고, 그림 속을 가까이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그리곤 생각했다. 전시를 좋아해 많은 전시를 봐왔는데, 왜 그 속에 동양화의 기억은 없는 걸까? 서양화는 주제도, 작가도 몰라도 흥미롭게 관람하면서 왜 동양화는 어렵게 느껴졌던 걸까? 동양화의 세계로 안내하는 책 <동양화 도슨트>를 읽으면서, 정답은 다름 아닌, 친구와 외친 한 마디에 담겨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저자는 동양화에게 느껴지는 거리감이 나와 친구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님을, 많은 사람들이 같은 마음을 지니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찾는 데서 시작한다.


 

동양화는 관념적인 그림이 많기 때문입니다. 서양화라 해도 관념적인 예술인 추상화나 행위예술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감각적으로 느끼기보다는 생각을 통해 이해해야 하니 어렵게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경향이 최근에 이루어진 서양화와 달리, 동양화에서는 문인화가 그림의 주류로 등장하면서 일찌감치 관념적인 것을 좇기 시작했습니다.

 

- <동양화 도슨트> p. 24

 


이유를 알면서 어쩐지 마음이 편해졌다. 나만 괜히 어려운 게 아니었군 싶었고, 그린 이가 누구인지, 시대적 배경은 어떠한지 공부하면서 감상하면 좋을 작품들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림의 ‘선’을 서예의 글씨 ‘획’으로 대체했다는 책의 문장을 떠올리면서 동양화 속으로 한발 들어섰다.

 

 

 

화조화, 자연을 담다


 

<동양화 도슨트>의 가장 큰 매력은 책의 구성에 있다. 유명한 작가로 장을 나누거나, 역사적 배경 순으로 어렵게 다가서기 보다 그림의 주제별로 나누어져 있어 좋았다. 어릴 적 교과서 혹은 전시장에서 동양화를 만났던 경험을 떠올리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주제부터 편안히 감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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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노란 고양이가 나비를 놀리다>, 18세기 말

 

 

나는 화조화가 궁금했다. 꽃과 식물, 새와 다양한 동물이 등장하는 그림들의 세밀한 묘사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생생함이 좋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산수화는 큰 풍경을, 화조화는 작은 자연의 한순간을 포착한 것으로 쉽게 정의해 주면서 다양한 화조화 작품을 소개한다.


화조화는 본래 왕이나 귀족이 집 안에 조상을 모시는 묘당을 장식하기 위해 그려졌다.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시작된 화조화는 점차 독립적인 장르가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와 같은 목적 없이도 그림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감상하기 위해 그려졌다.

 

중국의 화조화와 달리 조선 후기는 그만의 독특한 화풍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인상 깊었다. 마음속 이야기를 자연에 반영한 중국의 것과 달리, 조선의 화조화를 그린 이들은 자연을 아주 가까이에서 섬세히 관찰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 건드리면 움직일 듯한 생동감을 담았다. 김홍도의 <노란 고양이가 나비를 놀리다>를 보면 다가온 나비에 놀라 고개를 돌리고 몸을 동글게 만 고양이, 그 뒤로 활짝 핀 꽃의 모습이 눈에 띈다.

 

 

 

민화, 백성의 그림이라는 건 오해


 

민화라 하면 民(백성 민) 자에서 백성이 그리거나, 백성이 좋아했던 그림이라 추측하기 쉽다. 하지만 저자는 흔한 오해를 풀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일본의 연구가가 조선을 잘 알지 못하고 이름을 지어 생긴 오해였다.


민화는 생계를 유지하는데 하루하루 바빴던 백성보다는 아마추어 이상의 화가가 그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 그림을 향유하는 사람들 또한 조선 말기 신분 제도가 혼란스러워지면서 양반의 지위를 산 이들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름에서 품었던 막연한 생각을 바로잡아주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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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미상 <책거리>, 19세기 말 또는 20세기 초

 

 

민화가 끌렸던 건 동양화 전시에서 만난 책가도가 무척 좋아 마음에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책가도란 우리말로 책거리라고도 하는데 책이 가득한 그림에서 점차 벼루와 먹, 꽃, 도자기 등과 어우러진 책 그림으로 발전했다.


특히 정조는 글과 유학을 중요하게 생각해 책가도를 많이 그리게 했다고 한다. 그전까지 왕의 자리 뒤편에는 하늘의 뜻을 받아 나라를 다스리는 왕을 상징하는 <해와 달과 다섯 봉우리>가 있었는데, 이 전통을 깨고 책가도를 놓도록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무 배경 없이 책가도를 만났을 땐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귀여움이 좋았다. 오늘날로 치면 What’s in my desk 콘텐츠처럼 소중한 책장과 소지품들을 요리조리 배치하고, 소개해 주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고, 책을 통해 왕이 좋아했던 역사를 들으니 그림 감상이 한층 더 풍부해졌다.


동양화가 어렵다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만 그런 게 아니니 마음을 편히 갖고 조상들의 그림을 바라보길 추천한다. 익숙한 그림, 궁금한 그림을 찾아 <동양화 도슨트>를 들여다보면, 동양화가 어렵지만은 않다는 것을, 의외의 친숙함과 귀여움, 색다른 매력이 느껴지는 그림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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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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