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졸업, 그리고 불안함 [영화]

영화 [졸업], 청춘에게 바치다
글 입력 2022.02.18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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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청년이 한 청년의 얼굴이 줌 아웃되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청년은 비행기에 타고 LA에 막 도착했다. 어딘가 공허한 눈빛이다. 이윽고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삽입곡이 시작되면서, 청년은 공항의 복도를 따라 쭉 걷는다. 옆모습만을 보이는 청년은 끝없이 걷고 있지만 눈은 허공을 바라본 채다.

 

이 때 나오는 영화의 제목, 바로 [졸업] 이다.

 

 


 

The Graduate (1967)

 


 

 

졸업 포스터.png

 

 

영화 [졸업]은 제 4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미국 의회도서관에 영구 보존된 영화이다. 마이클 니콜스 감독의 작품으로,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연기파로 유명한 배우 더스틴 호프만이 주연인 '벤자민'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해당 작품은 사실 줄거리로만 따진다면 당황스럽다. '벤자민'이 부모님의 사업 동반가의 아내인 '로빈슨 부인'과 육체적 관계를 맺다가, 그녀의 딸인 '일레인'과 사랑에 빠져 결국 결혼식장에서 둘이 사랑의 도피를 떠난다는 내용이다. 지금 이 영화가 나왔다면 아마 '막장' 이라고 혹평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지금까지도 호평을 받는 영화이자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영화이다. 이 영화가 가진 무엇이, 약간은 경악스러운 줄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반 세기가 넘도록 사람들에게 강렬한 기억을 심어주는 것일까? 이 영화의 메시지를 알기에 앞서서, 이 작품은 뛰어난 편집과 미장센으로도 유명하다. 따라서 주인공 '벤자민'과 '벤자민'의 그녀들인 '로빈슨 부인', '일레인'에 대하여 그들을 대표하는 장면의 미장센을 이용해서 이해해보자.

 

 

 

벤자민 : 불안한 청춘


 

졸업 벤자민.jpg

 

 

'벤자민'은 갓 대학을 졸업하고 집이 있는 LA로 돌아온 청년이다. 그는 명문대를 졸업하였지만 하고 싶은 것을 정확히 모른다. 그렇기 때문의 그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그의 얼굴과 눈빛에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는 '벤자민'의 심리가 고스란히 표현된다. 부모님은 불안한 '벤자민'에게 조언을 주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자신의 명예를 위한 이용물로 활용한다. 부모님이 개최한 파티에서 그는 잠수복을 입고 어른들에 의해 강제로 수영장에 빠져버린다. 나오고 싶어 발버둥치는 그를 보고 어른들은 그저 웃을 뿐이다. 그렇게 '벤자민'은 수영장 바닥 깊숙히로 체념하고 잠수해버린다.

 

이 장면은 '벤자민'이 집에 도착한 장면이다. 그의 눈빛은 불안하다. 불투명한 자신의 미래에 겁을 먹은 듯 해보인다. 답답한 셔츠를 턱 끝까지 단추를 채워 입은 상태로 그는 주변을 바라보고 있다. 혼란스러운 그의 뒤에 답답한 어항이 위치해있다. 그 어항 속에서 잠수복을 입은 모형이 하늘을 바라보며 그저 공기를 내뿜고 있다. 마치 '벤자민'의 미래를 암시하기라도 한 듯이 말이다. 어항이라는 격리된 공간 속에 갇혀버린 듯한 구조로 그는 어두운 표정이다. 전체적인 조명이 어둡고 '벤자민'을 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장면은 '벤자민'의 불안한 심리와 그 미래를 표현하고 있다.

 

 

 

로빈슨 부인 : 자신을 위해 자유 의지를 꺾어버린 기성 세대


 

졸업 유혹.png

 

 

'로빈슨 부인'은 자신의 남편의 사업 동반자가 개최한 파티에 참석했다가 젊은 '벤자민'과 마주한다. '벤자민'을 본 순간 '로빈슨 부인'은 나태했던 자신의 반복적인 삶에서 강렬한 스파크를 일으킨다. 그것은 결코 사랑이 아니었다. '로빈슨 부인'에게 '벤자민'은 그저, 자신의 성적 욕망을 자극적으로 풀 수 있는 하나의 매개체였다. '로빈슨 부인'은 '벤자민'에게 자신의 집까지 배웅해달라고 요청하면서 집으로 그를 부른 후, 본격적으로 '벤자민'을 유혹하기 시작한다. '벤자민'은 당황스러워하며 '로빈슨 부인'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Mss. Robinson, are you seduce me?"

 

"로빈슨 부인, 저를 유혹하시는 겁니까?

 

 

'로빈슨 부인'은 말없이 웃고, 그 후로 둘은 육체적 관계를 맺는다. '벤자민'은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쾌락으로 풀고자 했지만 '로빈슨 부인'은 그저 자신의 욕망에 의해서만 '벤자민'과 만날 뿐이었다. 그런 '로빈슨 부인'과의 관계에 '벤자민'은 더욱 혼란스러워 한다.

 

이 장면은 어두운 욕망으로 가득 찬 '로빈슨 부인'이 자신의 섹슈얼한 욕망을 다리로 표현하고 있다. 그 속에서 '벤자민'은 갇혀있다. 자신의 자유 의지가 아닌, 기성 세대인 '로빈슨 부인'의 욕망에 의해서만 벤자민은 수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삼각형이라는 불안정한 구조 안에서 '벤자민'은 곧 '로빈슨 부인'에게 억압당하고 이용당할 것이라는 내용을 암시한다.

 

 

 

일레인 : 진정한 열망, 곧 불안함



졸업 도망망.png

 

 

'일레인'은 '로빈슨 부인'의 딸로, 방학을 맞아 잠시 LA로 돌아온다. 그 과정에서 '벤자민'과 사랑에 빠진 그녀는 어머니와는 다르게 순수하고 자신의 진실된 감정에 움직인다. 그녀 역시, 어리고 어린 청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빈슨 부인'과 '벤자민'의 관계를 알아버린 그녀는 깊은 배신감에 학교로 돌아가버린다. '로빈슨 부인'은 '일레인'에게 '벤자민'이 자신을 겁탈하였다고 말하지만 '벤자민'은 그녀에게 '로빈슨 부인'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상반된 주장과 감정들에 의해 혼란스러워 하며 어른들에 의해 강제로 결혼식을 치르게 된다. 벤자민은 수소문 끝에 결혼식이 열리는 교회로 찾아가 그녀가 상대와 입맞춤을 하는 순간 소리친다.

 

 

"Elaine! Elaine! Elaine!"

 

"Ben!"

 

 

'일레인' 역시 '벤자민'을 보자 절규한다. 그녀 역시 사실은 '벤자민'을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곧 그들은 서로를 향해 뛰어가고 교회를 나와 도피해버린다. 버스를 탄 그들의 표정은 처음에는 통쾌하다는 듯 밝지만 곧 굳어져간다.

 

이 장면이 그 유명한 '사랑의 도피' 장면이다. 이 두 젊은 청춘들은 자신을 억압하는 손길들, 기성 세대들의 억압을 그들이 강제로 만들어놓은 결혼식장이라는 장소의 십자가로 막아버리고 도망친다. 먼지 투성이의 '벤자민'과 새하얀 웨딩 드레스를 입은 '일레인'은 부조화스럽지만 불쾌한 현실로부터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의 도망침이라는 특성으로 오히려 쾌감을 선사한다.

 

그러나 그들은 현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표정은 곧 불안한 현실과 맞닥뜨려져 어그러진다. 자신의 열망을 찾아 떠났지만 그것조차 불안한, 현실에 마주해버린 것이다.

 

 


 

청춘을 향한 위로

 


 

이 영화가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청춘은 늘 흔들리고 불안하다는 것이다. 막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나온 청춘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고 하고 싶어하는지 모르는 것이 대다수이다. 그런 청춘들에게 기성 세대와 사회는 정해진 길을 가라고 한다. 혹은, 그들의 입장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순수한 마음, 불안한 마음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청춘들은 상처를 받는다. 회피하기도 한다.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없다.

 

비록 '벤자민'과 '일레인'의 표정이 굳어지긴 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탄 버스는 앞을 향해 달려간다. 무엇이 될 지도 모르는 미래를 향해, 그 불투명한 미래를 향해 버스는 계속 해서 달려간다. 수동적으로 끌려가기만 했던 '벤자민'과 '일레인'은 처음으로 능동적인 행동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열망인, 서로를 향한 사랑을 찾은 것이다.

 

청춘은 무엇을 위해 대학을 졸업하는 것일까? 불안한 미래를 위해 졸업한 것은 아닐테지만 결과적으로는 불투명한 상황에 내던져져버렸다. 그렇다면 그것은 오히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해내기 위한 게 아닐까. 아무리 불투명한 미래일지언정, 그래서 불안함에 어두운 눈빛을 가질 지언정, 결국은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것이다.

 

영화 [졸업]은 그렇기 때문에 청춘을 향한 위로이다. 지금까지도 불안한 청춘들에게 바치는 서사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안함과 억압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열망을 잊어버려서는 안된다. 떠나가는 버스처럼,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영화 [졸업]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이다.

 

 

[윤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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