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왜 살아가는가에 대한 고찰 [만화]

삶과 죽음, 승리와 패배, 존재와 가치. 정지훈 - [더 복서]
글 입력 2022.02.17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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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부터 완결의 조짐이 보였던 한 웹툰이 있다. 활동이 끝나기 전에 이 웹툰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다. 그리고 2022년 1월 26일 드디어 그 웹툰의 에필로그가 올라왔다. 외전을 제외하고 104화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스토리. 복싱 웹툰이자 인간의 존재 가치. 삶과 죽음을 다룬 이야기. 이걸 웹툰이라는 장르로 한정시켜 소개하는 것이 아쉽다. 어떤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

웹툰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더 복서 표지?!.jpg

 

 

 

 

더 복서는 말이지


 

웹툰의 소개글은 이렇다. [재능 있는 복서를 찾던 전설적인 트레이너 K는 기묘한 소년을 발견한다. 그의 충격적인 재능은 과연 축복일까, 저주일까?!]

 

보통 이런 류의 이야기는 둘 중 하나의 스토리로 이어진다. 주인공이 너무나도 강해 고구마 없는 사이다 전개로 가거나, 갈등을 겪고 역경을 딛고 차근차근 강해지는 소년 만화의 전개로 가거나. 처음 웹툰을 접했을 때 내 생각도 그랬다. 그리고 그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뀌어야 했다.

 

전설의 복서들을 발굴해낸 트레이너 K는 한국에서 '유'라는 인물을 발굴해 내어 자신의 체육관으로 데려온다. 이미 완성된 재능을 지닌 유였기에 K는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체력 훈련만을 지시했고, 그렇게 2년이 지난 후 유는 복싱계에 데뷔한다.

 

유가 데뷔 전을 치르고, 1위를 거머쥐고, 챔피언 벨트를 차지하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의문이 들었고, 그것이 두세번 반복될 때쯤 깨달았다. '아, 이건 유의 성장 이야기도, 고구마 없는 사이다 전개도 아니다. '유'라는 절대적 재능을 지닌 자와 링 위에서 맞서게 되는, 상대방의 이야기구나'. 하나의 세계관에서, 똑같은 시간의 연속성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분명 옴니버스 형식이었다. 유의 상대 하나하나가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모순적이게도 그 주인공들 모두는, 전체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없었다.

 

'모두가 주인공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누구나 당신 인생의 주인공일 수 있다.'

 

이 이야기에선 전체적인 줄거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6.10 제곱미터의 링 안에서, 그들이 쌓아온 삶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그들의 주먹이고, 스텝이고, 의지이고, 체력이며, 땀이다. 누군가는 기술에 대한 광적인 집착을, 누군가는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의 노력을, 누군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전략을, 누군가는 그저 엄청난 행운의 총체를, 누군가는 그저 선천적 강함을 링 위에서 발산한다. 하나하나의 이야기에 측정 불가능한 가치가 존재한다. 물론 그 인물 하나하나의 서사는 유의 힘 앞에서-

 

유와의 경기에서 승리한 자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패배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래에서 말하고자 한다.

 

 

 

존재의 의미. 삶. 그리고 사랑.


 

 

인생은 애초에 승리가 불가능한 불합리한 게임이다. 영원한 강자도 영원한 승자도 없이 그 잠깐의 명예와 행복을 위해 평생을 발버둥 치다 죽는 것. 그게 사람의 삶이다.

 

세상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 나는 슬픔을 느낀다. 미움과 슬픔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평생을 발버둥 치며 살아가야 함에. 그렇게 평생을 수많은 고통 속에서 살아가다 죽음 앞에서 사라지는 것. 그것이 사람의 삶이란 것에 나는 슬픔과 고통을 느낀다.

 

힘이 다해 가라앉기 전까지 평생을 발버둥 치는 삶. 어쩌면 그것이 대부분의 삶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진심으로 끌어안아줄 누군가가 있다면, 삶의 의미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제가 확실한 답을 알려줄게요. 애매한 답변 말고 정확하고 확실한 정답을요. 사람은요,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난 거예요."

 

정지훈 - [더 복서 中]

 

 

삶에 대해서, 죽음에 대해서, 존재와 존재가치, 승리와 패배에 대한 여러 가지 주제가 언급된다. 우리는 왜 살아가는가. 우리는 왜 죽어가는가. 우리의 존재 가치는 무엇인가. 끝이 정해진 삶을 살아가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퍽이나 슬픈 이 세상을. 작가는 웹툰 전반에 걸쳐 독자들에게 질문한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뭐라고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하고 답답한 감정을 지닌 채 웹툰을 정주행했다. 그에 대한 명징한 답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구고 한 번은 들어 보았을 질문. "당신은 왜 살아가는가?"

 

어렸을 때의 생각은 선명하게 기억한다. '태어났으니까 살아간다.' 초등학생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참으로 대책 없이 살았었구나. (웃음) 아니, 오히려 그때가 나았으려나. 지금의 나는 '모르겠다'라고 답할 것이다. 나를 위해 살아가는지, 나를 바라보는 이들을 위해 살아가는지, 명예를 위해 살아가는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살아가는지. 알 도리가 없다. 막연하게 인생의 그 끝에 거의 도달해서야 그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긴 했지만 말이다.

 

복싱 웹툰이다 보니, 작중에서 등장인물들이 삶을 살아가는 이유, 그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이유는 링에 오르고자 하는 이유로 귀결된다. 복싱에게 버림받은 재능이지만 그저 복싱이 좋아서 한 경기라도 더 하고 싶은 이,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 실수투성이의 불완전함을 극복하고 완전한 경지에 다다르기를 원하는 이, 승패와 상관없이 변하기 위해 링에 오르는 이, 아무리 큰 고통이 눈앞에 있어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복싱으로 증명하겠다는 이, 지옥과도 같은 현실에 복수를 갈망하는 이까지. 그리고 웹툰에서는 이 모든 이유를 존중하고 서사를 부여한다. 종국에는 '사랑'이라는 큰 주제로 그들의 서사를 따뜻하게 머금는다.

 

광기에 빠져 주변을 바라보지 못하던 이는 사랑을 깨닫는다. 오직 노력이라는 무기로 희망을 증명하고자 끝없이 자신을 갉아먹던 이는 이 모든 것들이 선물임을 깨닫는다. 복수를 갈망한 이들은 조금은 어긋난 과거의 사랑을 청산하고 올바른 사랑을 하기로 다짐한다.

 

어떻게 보면 링은 세상이다. 그리고 치열한 누군가를 짓밟아야 하는 삶이다. 폭력이고, 갈등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링 위에 오른다. 누군가는 명예를 위해, 누군가는 돈을 위해, 누군가는 자기 자신을 위해. 그리고 각자만의 여러 가지 수많은 이유들로. 그 과정에서 주위를 둘러보지 못하고, 사랑받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사랑해야 함에도 행동하지 못했다. 그들은 링에서 유에게 패배하고 링에서 내려와서야 뒤를 돌아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구원을 얻는다. 아버지로부터, 어머니로부터, 형제로부터, 친구로부터. 그들은 유에게 패배했지만 인생에서 패배하지 않았다. 또 링은 언제고 다시 올라갈 수 있다.

 

 

 

K, J, 복싱. 그리고 유


 

 

인간은 모두 약해빠진 것들이라 자신의 존재 가치에 목말라 있지. 그렇기에 주먹만큼 간단명료한 게 없는 것이다. 하나의 동물로서 자신이 상대보다 우월하다는 가장 알기 쉬운 증명. - K

 

복싱이란 거 참 멋있지 않나요? 서로가 온종일 상대방만을 생각하면서 살고, 준비해왔던 모든 것을 부딪치는 것. 링 위에서 두 명의 삶이 만나 서로의 생명을 이야기하는 것. 이거 사랑이랑 닮아있지 않나요. - J

 

정지훈 - [더 복서 中]

 

 

웹툰을 보면서 한 번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왜 하필 복싱일까?'  물론 그 의문은 이야기의 큰 틀을 맡고 있는 K의 서사와 J의 말로 인해서 풀린다.

 

어린 시절 K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죽어가는 모습을 본다. 할아버지의 눈에 담겨 있는 슬픔, 두려움, 허망함을 바라본다. 곧 할아버지의 숨은 멈추고, K는 할아버지였던 사람이 더 이상 할아버지가 아니게 됨을 느낀다. 그렇게 처음으로 생명의 민낯을 엿 본 K는 시간이 흘러 군인이 된다. 그리고 전장에서 한 가지를 깨닫는다. 생명의 가치는 인간이 믿고 싶어 하는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 그렇기에 강자는 강자의 우월감을 즐기고, 약자는 비참하게 몸부림치다 죽어버리면 그만이라는 기괴한 결론에 도달한다. 자유로워지고 싶고, 정점에 도달한 우월함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J는 K와는 정반대의 가치관을 지닌이다. 우월감을 증명하기 위한 방법으로써 K가 복싱을 택했다면, J는 두 명의 삶이 만나 서로의 생명을 이야기하는 복싱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저것이 그가 살아온 삶. 그리고 이것이 내가 살아온 삶. 서로가 자신의 삶이 무엇이었는지를 이야기하는, 참으로 아름다운 복싱. 그래서인지 그는 모든 복서들의 존경을 받는다. 63전 36승 26패라는, 결코 화려하다고 말할 수 없는 전적임에도 불구하고. 그와 경기를 치른 이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다"라고.

 

빛을 잃은 소년이 있다. 태어날 때부터 혼자였고, 옆에 누구도 있어본 적 없는 그런 소년이 있다. 어릴 적 단 한 번 그 빛을 지닌 J를 만나고부터 그 빛은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어 하는 소년이 있다. 복서의 꿈을 지닌 다른 소년의 눈에서 그 빛을 목격한 그는 답을 찾기 위해 자신을 복서로 키우려는 K를 따라간다. 압도적인 재능과 더불어 K의 지도에 따라 복서로서 신화를 써가지만, 그 빛을 좀처럼 볼 수가 없다. 그렇게 그저 감정이 말살된 괴물이 되어가던 그에게 어릴 적 보았던, 찬란한 빛을 눈에 머금은 J가 도전한다. 경기가 끝나기 직전까지 단 한 번의 펀치도 뻗지 않은 그 찬란한 이는 기어코 그 소년의 앞에 다가와 가장 느리면서 가장 약하고, 그러나 가장 따듯한 주먹을 툭, 대며 말한다. "괜찮아." 그리고 소년은 깨닫는다. 아, 나는 혼자가 아니었구나.

 

소년이여!

세상의 풍파 앞에 넘어져 있는가!

내가 좋은 사실을 하나 알려주지. 

마음속에 새겨들어라!

이 별들은 모두 너를 위해 빛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언젠가

강해져서 만나자.

소년!

 

- 더 복서 1화 中

 

그는 구원받는다. 가장 빠른 주먹도, 가장 강한 주먹도 아닌 가장 포근한 주먹에. 사랑이 담긴 주먹에. 빛을 잃었던 유의 눈에서 빛이 태동한다.

 

우리는 왜 살아가는 것일까? 우리의 존재 가치는 무엇인가? 우리는 군림하고자 하는가? 지배하고자 하는가? 살아남고자 하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더 복서는 나에게 한 가지 교훈을 주었다. 슬픔과 고통이 가득한 세상. 어떻게 태어 날 지 고를 수 없는 세상. 폭력과 갈등, 돈과 쾌락이 만연한 세상. 그리고 지금은 질병에 세상을 뒤덮은 세상. 그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나에게 이정표 역할을 해주었다. 외롭고 고독한 감정이 들지언정, 패배감과 무력감에 휩싸일지언정,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계속 주지해야 한다는 것.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은 모두 나를 위해 빛나고 있으며 주위를 둘러본다면 진심으로 나를 끌어안아주고, 서로가 서로를 사랑해 줄 수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 우리는 사랑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런 노래 가사가 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그렇다.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 동시에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다.

그렇다. 나는 사랑받기 위해 존재한다. 동시에 사랑하기 위해 존재한다.

여러분도 그렇다.

 

 

 

 아트 인사이트 에디터 테그.jpg

 

 

[최원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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