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일상의 순간을 영원히 - 영원히 사울 레이터

좋아서 한 일들이었다.
글 입력 2022.02.12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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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寫眞). 물체의 형상을 감광막 위에 나타나도록 찍어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게 만든 영상을 말한다. 사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 동시에 목적 중 하나는 ‘보존’이다. 사진은 아주 찰나의 순간을 담아낸다. 셔터를 누른 다음 카메라가 눈에서 멀어지는 순간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은 불과 몇 초전 렌즈를 통해 본 장면과 달라져 있다. 그래서 사진으로 담아낸 장면은 유일하다.

 

시간이 지나고 그때 그 시절의 풍경이 변하더라도 그 순간을 바라보고 느낀 누군가의 경험과 감각은 여전히 ‘사진’이라는 물성 안에 머물러 있다. 오래된 사진이 빛바랠 수는 있어도, 빛바랜 사진 속 장면은 쉽게 빛바래지 않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날의 시간은 누군가가 보존해 놓은 마음과 함께 사각 프레임 안에 영원히 멈춰 있다.

 

 

영원히 사울레이터_표1.jpg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바깥 시야를 가릴 정도로 부지런히 내린다. 비를 피하려 한 것인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정확한 사연은 알 수 없으나 누군가가 건물 유리 벽 가까이 바짝 붙어 서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는 채로. 부지런히도 내리는 빗줄기 때문에 뚜렷한 형체는 알 수 없으나 사람 뒤편으로 노란 형체 하나, 건물 형체 하나, 저 멀리서는 작은 빨간 형체도 보인다.
 

 

사후에 더 유명해진 포토그래퍼, 사울 레이터의 사진 에세이가 출간되었다. 책에는 레이터가 사진을 찍기 시작하던 1940년대 초기작부터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10여 년간의 미발표작까지, 레이터의 작품세계가 만들어지고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엄선된 사진들이 담겨 있다. 사진과 함께 한 구절의 시처럼 흐르는 그의 문장들이 책에 매력을 더한다.

 

사물이 매력적이거나 흥미를 불러일으키거나 아름다워 보일 때면 사진을 찍는다.

결과는 괜찮을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사진 덕분에 바라보는 기쁨을 알게 되었다 말하는 사울 레이터. 그는 진정 사진을 보는 즐거움을 느낀 듯하다. 이 세상을 단순하게 바라보는 즐거움. 그의 사진은 조금 특별하다. 주로 길거리 위의 풍경을 담았다는 것. 그것도 우리가 길을 걸으며 마주칠법한 아주 일상적인 장면들을 포착하여 담아냈다. 계획에 의한 사진이 아니다. 무언가를 의도적으로 담아내려 했다기 보다 길을 걷다가 또는 시선을 옆으로 옮겼다가 우연히 마주친 아주 찰나의 순간을 담아냈다.

 

 

KakaoTalk_20220212_211141364_01.jpg

 

 

그의 사진에는 어떤 특정한 피사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반쯤 가려진 건물 아래 보이는 풍경을, 누군가 그린 낙서 사이로 보이는 장면을, 비나 눈이나 추운 날씨 때문에 불투명해진 벽에 반사된 안과 바깥의 겹쳐진 장면을 담는다. 아주 어렴풋이 형체를 짐작만 할 수 있을 정도의 장면을 담아낸다.

 

사진을 찍을 때 그림을 떠올리진 않았다.

사진은 찾아내는 것이지만

그림은 만들어내는 것이다.

 

사진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말해준다. 사진을 찍은 그날의 날씨, 장소, 시선. 그리고 사진 너머의 사람이 사진을 찍을 때 당시의 상황과 마음을 상상하게 한다. 그의 사진 속에서는 대개 눈이 내리고 있고 두꺼운 외투를 껴입고선 잔뜩 몸을 움츠리고 있다. 또 건물 안에서 김이 서린 유리벽을 바라보면 자연스레 바깥이 얼마나 춥고 안은 얼마나 따뜻한지 사진 속 주변의 온도가 얼추 연상된다.

 

무엇보다 전체적인 사진 분위기와 색채가 어두운 느낌에서인지 잔잔하고 포근하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펄펄 눈이 내리는 거리 가운데 아주 묵묵히 그리고 조용히 걸어가는 장면은 주변의 소리들을 잔잔히 눌러 가라앉히는 듯한 느낌이다. 사진집을 들여다보며 자연스럽게 음악과 함께 감상하게 됐다. 기회가 된다면, Sam Ock의 'Keep me warm'이라는 포근한 겨울 느낌의 노래와 함께 사진집을 감상하는 것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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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그의 사진 속에서는 시선이 아주 다양하다. 예상치 못한 다양한 각도에서 역동성을 느낄 수 있다. 나도 그와 함께 거리를 걷고 있고, 따뜻한 내부에서 바깥을 내다보다 다시 바깥으로 나가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사진을 모아 본다는 것은 그의 발걸음과 시야를 함께 공유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지게 한다.

 

그래서인지 사울 레이터의 사진은 사진 그 자체를 들여다보기보다 그의 시선을 생각해 보게 된다. 무엇을 하다 지금 이 장면을 포착한 걸까. 그는 무엇을 보고 있을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그러한 일련의 상상력을 가지게 한다. 사진보다도 사진을 찍는 사람의 시선과 마음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번 사진집이 좋았던 것은 그저 사진만을 담아낸 것이 아닌 그의 마음과 가치관을 알 수 있는 구절들이 곳곳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런 구절들처럼.

 

좋아서 한 일들이었다.

왜 그러한 일을 했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겠다.

좋았으니까!

 

우리는 흔히 아름답거나 기억하고 싶은 소중한 순간을 보존하고 싶은 마음으로 사진을 찍는다. 그래서 사진을 보면 무엇을 영원히 담고자 했는지 알 수 있다. 흔들리는 초점과 빗나간 시선은 불완전하게만 느껴지는데 그것이 곧 흘러가는 시간 속 일상의 순간임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된다.

 

그의 렌즈 앞에서 사진으로 담아내고 싶었던 아름다움의 대상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일상의 ‘순간’이었다. 이것이 삶의 아주 짧은 순간을 포착했음에도, 지극히 평범하고 고독한 존재들을 담았음에도, 사울 레이터의 사진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하게' 남겨질 수 있는 이유이다. 누구나 포착할 수 있는 일상의 무수한 순간들이기 때문에.

 

이번 사진 에세이를 읽고서 현재 피크닉에서 진행 중인 <사울 레이터 :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 전시를 보러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전시장에서 보는 사울 레이터의 사진은 어떤 느낌일까 상상해 보며. 얼마 남지 않은 추운 겨울, 사울 레이터의 감성에 흠뻑 젖어들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신송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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