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 '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

글 입력 2022.02.07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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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마다, 지역마다 문화라는 이름 뒤에 감춰진 오래된 풍습이 남아 있는 경우가 있다. 글로벌 세상에서 풍습이 웬 말인가 싶겠지만, 모두가 21세기 사람은 아니다 보니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아직도 전통을 가장 최우선으로 지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보통 나이가 많은 편이며 라떼 한 잔을 마시며 오랜 과거를 운운하길 좋아한다.

 

책 <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의 주인공 훌리아는 지금, 이 빌어먹을 풍습 때문에 사는 것이 너무 힘들다. 멕시코 이민자 가정의 막내딸로 미국에 살고 있지만, 집안을 가득 채운 멕시코의 향기 때문에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조차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는 고분고분한 언니 올가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훌리아 때문에 부모님은 못 살겠다고 말하지만, 훌리아는 본인이 죽을 지경이다. 도대체 언니는 집구석에 가족들과 함께 있는 것이 뭐가 그리 좋은지 모르겠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러운 사고로 언니 올가가 죽는 일이 발생한다. 올가의 죽음은 가족 모두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그 상처를 미처 추스르지도 못했는데, 언니의 부재로 자신의 존재가 더욱더 골칫거리로 부각되는 상황이 훌리아는 괴롭기만 하다.

 

항상 자신을 통제하고 감시하려는 엄마와의 다툼으로 지쳐갈 무렵, 훌리아는 올라의 방에서 비밀스러운 물건들을 발견한다. 얌전하고 조용했던 언니의 물건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야한 속옷과 호텔 키, 더불어 비밀번호로 잠겨 있는 노트북을 보고 깜짝 놀란 훌리아는 호기심이 발동한다.

 

그날 이후, 홀리아는 올가의 흔적을 뒤쫓기 시작한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이 비밀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은 친구 로레나뿐이다. 언니의 친구 앤지를 찾아가고 언니가 다니던 커뮤니티 칼리지도 찾아갔지만, 뾰족한 단서를 얻는 것이 쉽지 않다. 가뜩이나 심란해죽겠는데, 엄마는 집 밖에 나가는 것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한다. 궁지에 몰린 기분이 들 때마다 훌리아는 자신이 좋아하는 책과 글, 그리고 대학을 떠올린다. 훌리아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가고 싶다. 시카고에서 멀리 떨어진 뉴욕에 있는 대학에 가서 작가가 되는 것이 오랜 꿈이다. 가족들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지만.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긴 할까? 아무도 없을 것만 같다. 지독히도 혼자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폭발해버릴 것만 같다. 너무 답답하고... 때로는 죽고 싶은 마음도 든다. 하지만 참 신기하게도, 이 세상에 나는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면 누군가 나타난다. 잉맨 선생님이 그랬고 코너가 그랬고 쿡 선생님이 그랬다. 물론 그때마다 엄마가 방해를 하곤 했지만, 나라는 사람 자체를 인정해 주는 누군가와 함께 하는 시간은 결코 빼앗을 수 없다. 내 삶은 나의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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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는 어찌 보면 흔한 성장 소설이다. 미드나 영드를 통해 한 번쯤은 봤을 법한, 굉장히 주체적인 소녀가 부모님과의 갈등을 이겨내고 당당히 자신의 삶을 쟁취하는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흔한 이야기일수록 등장인물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같은 이야기라도 어떤 인물이 중심에 서 있느냐에 따라 그 흐름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책 <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의 주인공, 훌리아는 미국에 사는 2세대 멕시코 이민자이다. 미국이라는 자유로운 사회에서 살아가지만 보수적인 멕시칸 가정의 딸로 살아가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미국식 사고방식을 갖추고 있지만, 멕시칸 가정에서 살아가야 하는 훌리아는 두 가지의 상충되는 문화 속에서 괴로워한다. 두 문화의 교집합에 서있다는 것, 그것도 아직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히 정립할 수 없는 학생으로서 두 문화의 혼돈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혼란스러운 일일 것이다.

 

문제는 이 혼란을 공유할 수 있는 주변의 어른이 없다는 점이다. 훌리아에게 인생의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어른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을 책을 읽는 내내 떨칠 수 없었다.

 

이미 다른 세상을 보고 있는 훌리아에게 부모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라고 강요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단지 훌리아와 부모님이 이 사실을 깨닫기까지 걸린 시간이 달랐을 뿐이다. 책 <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는 다른 속도의 시간이 한 지점에서 만나기까지의 서사이다. 훌리아뿐만 아니라 부모님 역시 성장해가는 이야기인 것이다. 가족이면서 너무 다른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그 고난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 역시 그들이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개인적으로 책 <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를 그저 흔한 성장 소설이라 말하고 싶지 않다. 일반적인 성장 소설이 포스트모더니즘이라면, 굉장히 입체적인 인물들의 굉장히 입체적인 서사를 담고 있는 책 <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는 모더니즘이었다.

 

 

[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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