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언어의 미래가 침묵이라면 [문화 전반]

글 입력 2022.02.07 10:5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말이라는 건 늘 죽는데, 뱉어지는 순간 땅으로 심연으로 떨어져서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오직 말은 우리 입에서 뱉어지고 귀에 (일련의 과학적이고 어려운 과정을 거친 후에) 들려오는 그 순간에만 살아 있다. 우리 모두 말연쇄살인마인 것인데, 그럼 실어증, 혹은 함묵증에 걸려버리면, 그 사람이야말로 더 이상 무엇도 죽이지 않는 고상한 사람이 되는 걸까. 그래서 읽었던 것이 말을 가둬버리고 마는 「지배와 해방」이었고, 말을 잃어버린 「희랍어 시간」이었다.

 

 

131.jpg

 

 

그러다 알게 된 소식은 언어마저 죽어버리고 있단 얘기였다. 전공 시간으로 흘러가 보아야 하는데, 국어학 수업을 듣던 중에 교수님은 지금 당장에도 언어는 사라지고 있고, 누군가에게 언어는 삶이기도 한데, 그 언어들의 전유가 사라지면서 자연스레 언어가 없어지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언어가 죽음으로써 말 살해는 사라지는가, 원래의 언어는 무엇으로 대체되고 무엇과 함께 사라지는가. 굴절과 파생, 어휘소와 같은 얘기를 듣다가 지극히 철학적이면서도 지극히 실제적인 주제가 나오자 갖가지 생각들이 튀어나왔고 그 생각들에 잠겨갔다.

 

예전에 이상문학상 수상작 작품집을 읽었었는데, 그중에서 소수언어의 소멸에 관한 작품이 너무나도 입맛에 맞아서 뇌리에 박혀있었다. 어떤 글이었는지 어렴풋이만 기억이 났었는데, 요즘 말과 언어에 대해 중얼중얼 대던 나에게 지인이 추천해주어 읽게 된 김애란 작가의 「침묵의 미래」를 읽고서야 잊고 있던 글의 제목을 찾았다. 글에서는 언어 소멸 흐름 속에서 정부가 건립한 소수언어 박물관에서, 거기엔 마지막 언어 구사자들이 동물원 속 동물원처럼 우리에 갇혀서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사랑합니다- 따위의 전혀 특수적이지 않은 이야기를 특수 언어로 되풀이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다루고 있다.

 

우리는 이 글을 읽고 마냥 흥미롭네, 이런 세계관도 있구나 하지 않고 꽤나 씁쓸함을 느낀다. 이유는 동물원보단 박물관의 전시품처럼 박제된 채로 가둬진 인간들의 모습이 괴이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언어의 죽음이 그 자체 이상의 의미를 갖기 때문일 것이다. 말하는 양상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댔다. 그럼 언어를 보면 우린 무엇을 알 수 있을까.

 

호주 북부의 씨족들은 언어를 여권처럼 생각한다고 들었다. 이 말은, 언어로 그들의 정체성을 만들어내고 언어로 엮어진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언어는 곧 그들 정체성 그 자체이기도 하다. 논리적 비약일 수도 있겠으나, 이러한 논리 속에서 언어의 죽음은 오랜 세월 겹겹이 쌓여 온 민족 정체성과 아무개의 삶의 소멸이다.

 

언어가 다르다는 건 뇌의 인지 체계도 다르다는 것이고, 곧 해석과 상상의 방향도 같은 의미여도 다를 수 있다는 의미다. 「침묵의 미래」에서 소수언어를 보존하겠답시고 마지막 언어 구사자들을 박물관에 가둬 둔 게 터무니없게 느껴진 이유다. 박물관은 본디 기억하고 보전하겠다는 유의미한 목적을 가진 기관이지만, 그거보단 얕게, 누군가에겐 관광이자 오락거리로 전락하고 마는 공간이기도 하다.


전공 수업에서 들었던 얘기를 마저 하자면, 언어적 다양성은 생물학적 다양성보다도 상대적으로 더 빨리 사라진다고 들었다. 비관적으로 계산하면, 전체 생물학적 종의 20%와 전체 언어의 90%가 100년 안에 소멸한다고 했다. 언어보호협회를 세운다고 해서 보전되는 것도 아닐뿐더러, 말그대로 침묵의 미래를 맞이하고 있기에 언어는 악- 소리 없이 죽어가고만 있다.


언어가 죽는 이유는 현 세대의 이슈와 맞닿아 있다. 언어는 누군가에게 사용을 받아야 남아있을 수 있는 수동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언어 구사 집단이 특정 언어를 사용하기를 포기했을 때 언어는 소멸한다. 말을 전승받아야 할 세대가 어떤 경제적, 사회적 이유로 다른 언어를 택하게 되면 언어는 공중에 떠서 휘발되고 만다. 추상적인 존재일수록 사라짐을 막기 어렵다.

   

괜히 가나다라마바사를 외치게 된다. 기역과 니은의 모습이 대칭적인 것도 희한하고, 스- 하고 발음할 때 혀와 잇몸 그 틈새로 소리가 나는 그 순간도 다시금 생경하다. 침묵에게 미래가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그니까 뭐든 써서 남기고 몇 번이고 되뇌고 싶다.

 

 

[김가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