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누구나 ‘잘 죽을 수’ 있는 세상을 향해

김영화 外 3인 저 《죽는 게 참 어렵습니다》
글 입력 2022.02.05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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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평생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노력한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진출하여 좋은 가정과 좋은 노후를 누리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발전한다. 좋은 삶으로 흔히 생각되는 인생과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자신의 결을 끊임없이 절충하고 타협한다. 이러한 노력은 우리의 삶이 건강하고 순조롭게 지속될 것을 전제한다. 2년 전 모두가 당연한 일상에 제동을 걸고 질병과 죽음의 광경을 매일 맞닥뜨리게 되기 전까지 나 또한 이러한 움직임에 거침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삶이 당연하지 않음을 안다. 하루하루가 투쟁과 협력 속에서 힘겹게 쟁취되는 과정을 목격한다. 우리는 언제든 병에 걸리고 죽음을 맞이해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을 살고 있다.

 

그러나 정형화된 ‘좋은 삶’에 대한 압박이 강한 우리 사회는 여전히 건강하지 않은 개인에 관한 상상이 미진하다. 이제는 마스크 없는 얼굴이 어색할 정도로 바이러스는 일상이 되었지만 여전히 감염자는 질병을 대하는 사회의 시선에 고통스러워한다. 혐오와 차별 속에 있는 약자들이 바이러스에 더 쉽게 노출되고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전염병이 기존의 불평등을 그대로 표면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질병과 죽음이 아무리 보편적인 모양새로 드러나도 존재를 실감하지 못하고 예방보다는 배제를 택하며 일상에서 간편히 분리하려는 관성이 곳곳에서 유지되고 있다. 코로나 19가 가져오는 공포는 사실 질병과 죽음 그 자체보다 우리 사회가 질병과 죽음에 대해 생각보다도 더 무지하다는 것에서 기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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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게 참 어렵습니다》는 그 어느 때보다도 죽음에 관한 활발한 논의가 필요한 지금, 한 사람의 죽음을 둘러싼 호스피스 의사, 의료인류학자, 기자 등 다양한 당사자의 경험과 생각을 모은 책이다. 1부 ‘삶과 질병’, 2부 ‘질병과 돌봄’, 3부 ‘돌봄과 죽음’의 3부작으로 이루어진 책은 삶과 죽음의 이분법 속에서 누락되는 질병과 돌봄에 관한 사이사이의 서사들을 수면 위로 꺼내어 올리고, 이것이 모두 중첩되고 연쇄되며 이어지는 인생의 스펙트럼을 세세히 펼쳐내며 지금 여기에서 누군가 꼭 해야 하는 이야기를 다각적으로 서술한다. 네 명의 저자, 그리고 열한 명의 참여자들이 함께한 이 책은 에세이, 취재기, 좌담 등의 다양한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어 보편이라는 이름으로 감출 수 없는 개인의 미시사를 조명하고, 이를 전문가의 관점 및 주장과 함께 엮어내어 사회적 범주로 담론을 확장한다.

 

사람을 살리는 것을 최우선으로 목표하여 죽음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 어려운 병원에서 죽는 사람이 집에서 죽는 사람보다 더 많아진 지금, 개인의 시간을 두고 편안히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밝히는 프롤로그로 이 책은 서두를 뗀다. 프롤로그의 저자는 의료계에 종사하여 질병과 죽음을 대하는 데 익숙한 가족과 환자가 혼자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 집, 환자를 돌볼 수 있는 자녀가 있었기에 할머니의 임종을 부족함 없이 준비할 수 있었다고 밝힌다. 제목에서 밝히다시피 저자의 가족은 ‘운이 좋았다.’ 저자의 개인적 경험으로 시작하여 점차 시야를 확대하는 프롤로그는, 인간에게 있어 가장 당연하고 보편적인 사건인 죽음 역시 모두에게 다르게 일어나며 어떤 이에게는 끝까지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죽음 역시 우리가 종이 한 장의 간격으로 맞대고 있는 현실이기에 삶에 대한 그것과 동일하게 고민하고 성찰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왜 죽음은 모두에게 다른가? 책을 관통하는 질문에 답을 찾아 나가며 가장 많이 체감하는 사실은 죽음 역시 삶의 일부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삶처럼 죽음 역시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질문은 삶이 어떻게 불공평해지며 어떻게 불공평한 죽음으로 이어지는지에 대한 것으로 확장된다. 책은 삶과 죽음의 편차가 그사이 인생이라는 간극을 빼곡하게 메우는 질병과 돌봄의 경험과도 유관하다는 것을 밝히며, 숫자와 통계로 온전히 설명될 수 없는 공평과 불공평의 감각을 직접 느끼는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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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할 수 없이 생명은 고통을 동반한다. 아픔이 일상을 구성하는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1부 ‘삶과 질병’은 건강과 질병에 관한 사회의 편견이 차별과 혐오로 뒷받침되고 있음을 밝히며, 누구나 겪는 아픔이기에 보편 너머 개체의 관점에서 논의되어야 소외와 배제 없이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 가능해질 수 있음을 역설한다. 특히 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의 배우인 환자들의 인터뷰를 수록한 부분은 질병 자체보다 질병에 관한 시선으로 고통을 겪어야 했던 당사자들의 구체적인 경험을 생생히 전한다. 조현병을 앓고 있는 환자는 정신질환을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이슈로 소모하는 사회의 무지함을 지적한다. 정확한 원인 규명을 뒤로하고 단순히 관심을 끌기 위해 범죄자의 정신질환을 헤드라인에 내거는 언론처럼 건강과 질병 사이 편을 가르는 사회의 타성에 지금도 비인간적인 처우와 저조한 인식 속에서 수많은 문제를 끌어안고 있는 정신질환자의 고통은 묵인된다.

 

암 환자 당사자는 ‘아프면 아픈 대로의 삶이 있을 것(25p)’이라며 아픈 몸도 자립과 노동을 원한다고 밝히고, 근육경련을 앓고 있는 환자는 ‘통증은 몸이 살기 위해 보내는 신호(28p)’라고 말한다. 질병을 갖게 되는 순간 정상 범주에서 배제하여 평범한 일상을 앗아가는 사회의 통념에 반하여 이들은 질병 역시 일상의 한순간임을 강조한다. 우리는 모두 아팠고, 아프며, 아플 것이다. 그러나 완전히 건강한 상태로 복무할 수 있는 도구화된 인간만을 원하는 사회는 아픈 이에게 한없이 매몰차다. 환자에게는 질병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병원의 치료 말고도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뉘는 이분법의 타파와 아픈 상태로도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회복이 필요하다. 사회가 규정하는 건강의 범주는 여전히 협소하며, 질병의 유무를 넘어 시민으로서 온전히 생활할 수 있다는 넓은 의미의 건강이 추구되어야 한다.

 

결국, 질병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질병이 언제든 나의 일상이 될 수 있다는 첨예한 감각이 필요하다. 우리는 바이러스의 시대를 지나며 공포와 두려움에 잠식된 채 감염자를 구분하고 비난하는 것보다 감염 과정을 파악하고 질병의 특성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건강한 시민 사회를 지속하는 데 더욱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개인의 노력뿐 아니라 교육과 복지, 시설과 법이 함께 움직이고 기능해야 언젠가 반드시 찾아올 질병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돌봄의 사회화’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질병과 돌봄의 영역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그만큼 복잡다단하여 현재 병원이 해결할 수 있는 범위보다 훨씬 넓고 산발적이다. 나의 질병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질병을 돌볼 수 있어야 한다. 책은 2부 ‘질병과 돌봄’으로 장을 넘기며 질병을 다루는 새로운 관점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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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과 돌봄의 경험을 세세히 쪼개어 살펴보는 과정에서 새로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방문 진료 의사 김창오 씨가 말하듯 ‘환자의 집에 방문하면 보이는 것’이다. 질병은 환자의 일부일 뿐, 환자가 마주한 것과 의사가 대해야 할 것은 질병을 포함하여 환자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 그 자체이다. 빠르고 효율적인 의료 체계가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주목하는 이 책은 치료만큼 중요한 환자와 주변인 간 관계를 조명함으로써 돌봄의 의미를 확장한다. 질병이 아닌 질병을 가진 인간을 보는 것은 병이 낫는 것뿐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일상의 영위 등 보다 높은 차원의 건강을 추구하게 한다.

 

환자와 질병의 사회적 관계는 돌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책은 현재 분야별로 분리되어 있어 접근하기 어려운 돌봄 제도를 통합과 연계의 형태로 개선한 ‘커뮤니티 케어’의 개념을 언급한다. 지역 사회가 중심이 되어 공동체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해당 정책은, 그러나 부족한 지원과 시민들의 저조한 관심으로 인해 힘 있게 드러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모든 돌봄을 개인이 해결하는 것은 역부족이며 사회적 관계망에서의 타인과의 연대가 치료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이 부족하다. 송병기 의료인류학자는 한국의 가족 중심 질병 관리 제도를 지적한다. 많은 사람이 ‘내 가족에게도 잘해주지 못한다’는 죄책감으로 타인의 돌봄을 거부한다고 한다. 이렇듯 가족주의 사회에서 돌봄의 주체를 개인으로 한정하는 경향성과 더불어 가족이 아니라면 보호자로서 접근하기 어려운 제도의 허점은 더 나은 질병 관리와 돌봄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가 된다.

 

돌봄을 제도적 관점에서 논의하지 않고 사적 문제로 치부하는 것은 돌봄을 사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한다. 그리고 그러한 돌봄은 상당 부분 착취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공적인 돌봄 시스템의 부재로 생기는 돌봄 공백을 여성과 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가 정당한 대가 없이 도맡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제도가 감시하지 않는 곳에서 불평등의 단면이 그대로 드러난다. 김희강 교수는 이처럼 돌봄에 관한 잘못된 이해와 체계의 부재를 틈타 사회적 불평등이 질병과 돌봄에서의 권력 차이로 이어지는 것을 두고 ‘돌봄의 구조적 부정의(157p)’라고 이른다. 돌봄이 사적 영역으로 밀려날 때 간병 노동자는 하대와 희롱 등 열악한 노동 환경에 처하게 되고, 환자와 간병인 모두 건강하지 못한 생활을 지속하게 된다. 돌봄을 자식의 ‘효’가 아닌 시민의 의무로 재정의해야 할 필요성은 여기서도 대두된다. 모두의 건강을 위해서 돌봄은 정의로워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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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마지막 장인 3부 ‘돌봄과 죽음’은 죽음의 과정을 목격하는 다양한 의료진과 당사자의 목소리를 담는다. 죽음은 다루기 예민한 사건인 만큼 그에 내재한 부정의가 제대로 논의되거나 개선되지 않고 은폐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송병기 의료인류학자의 표현처럼 죽음이야말로 ‘가장 사적인 시간(194p)’으로, 개인에게 있어 중요한 역사이기 때문에 삶의 연장 선상에서 적극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책은 삶의 격차가 곧 죽음의 격차로 이어지는 지점을 날카롭게 짚는데, 이를테면 남성과 여성이 임종에 다다를 때 자신의 여생을 온전히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 남성은 타인의 통제를 받는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여성은 타인을 돌봐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분석은 삶에서 요구되는 성 역할이 죽음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삶의 불평등은 죽음의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많은 사람이 ‘’연명‘하기 위해 빨리빨리 ’단명‘하고 있다(105p)’는 지적은 생명을 숭고하고 절대적인 목적으로 생각하면서도 그 방식이 누군가에게는 오히려 단명을 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는 모순을 꼬집는다. 예컨대, 주사를 통해 영양을 공급하는 의료행위인 TPN은 모든 상황에 필요한 요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 차원에서 시행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반면, 강남에 위치한 대형 병원의 경우 해당 요법을 시행하는 환자가 눈에 띄게 적다는 사실은 경제적 격차가 지식과 정보의 격차로 이어지고 그것이 돌봄과 죽음의 질의 격차를 벌리는 과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진정한 의미의 존엄사가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존엄삶’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책의 다양한 견해들을 하나로 묶는 핵심적인 주장이다. 누군가는 존엄한 삶을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에 존엄하지 못하게 죽는다. 존엄사를 위해서는 ‘존엄삶’이 모두에게 허락되는 존엄한 사회에 관한 논의가 필요하다. 더 나은 죽음을 위한 단계로서 더 나은 삶을 가리키는 책은 그리하여 무섭거나 두렵지 않은 생명의 이야기이며, 하루하루 역동하는 일상의 지침서이다. 선뜻 떠올리기 어려운 죽음의 순간까지도 어엿한 생애로 책임지게 하는 책의 메시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누구나 ‘잘 죽을 수’ 있는 존엄한 사회를 위한 움직임을 시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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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병원보다 집에서 죽는 것이 좋다고 말하지 않는다. 임종을 맞이하기에 적합한 집이란 무엇인지, 집에는 누가 있으며 환자는 어떠한 존재이고 온전히 저의 시간을 영위할 수 있는지, 집이 적합하지 않다면 어떠한 공간에서 누구와 관계 맺어야 하는지를 심층적으로 물으며 그에 대한 대답을 죽음을 가장 많이 목격해 온 당사자들에게 구한다. 지나치게 수치화되고 계량화되어 오히려 미지의 숫자가 되어버리는 죽음을 삶의 언어로 번역하여 진솔하게 풀어내는 이 책은, 죽음의 순간은 혼자 맞이하는 것이 아니며 삶처럼 수많은 관계로 복잡하게 얽혀있으므로 생활처럼 대해야 한다는 생각을 일깨우며 죽음을 스스럼없이 또렷하게 바라보게 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죽음으로 향한다는 건조한 명제가 더 이상 비극적으로 생각되지 않는 이유는, 이제는 죽음을 생각할 때 그 직전까지 살아있을 삶을 더욱 확실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감각에 충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매일 심각해지는 뉴스가 알려주듯이 우리는 살아가면서 질병과 고통이 주는 위기에 수없이 봉착하고, 이것은 죽음의 순간까지도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그럼에도 모두에게 가치 있는 삶은 이 위기와 죽음을 끌어안고서 완성된다. 아프다는 이유로, 언젠간 죽을 것이라는 이유로 빛바랠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나 자신의 결대로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권리가 있듯 ‘잘 죽을 수’ 있는 권리가 있고, 우리는 그러한 세상을 함께 만들어갈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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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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