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들의 사유와 토론은 계속된다 - 라스트 세션 [공연]

글 입력 2022.01.30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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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라스트세션_메인포스터_인물(사진제공_파크컴퍼니).jpg

 

 

연극 <라스트 세션>은 미국의 극작가 마크 세인트 저메인이 아맨드 M. 니콜라이의 저서 <루이스 vs 프로이트(THE QUESTION OF GOD)>에서 영감을 얻어 쓴 작품으로, 영국이 독일과의 전면전을 선포하며 제2차 세계대전에 돌입한 1939년 9월 3일을 배경으로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C.S. 루이스'가 직접 만나 논쟁을 벌인다는 상상에 기반한 2인 극이다.


작가는 실제로는 만난 적 없는 두 사람을 무대 위로 불러내 신과 종교에 대한 도발적인 토론을 야기한다. 20세기의 무신론의 시금석으로 불리는 '프로이트'와 대표적인 기독교 변증가 '루이스'는 신에 대한 물음에서 나아가 삶의 의미와 죽음, 인간의 욕망과 고통에 대해 한치의 양보 없이 치열하고도 재치 있는 논변을 쏟아낸다.


 

영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1939년 9월 3일 오전, 런던. 프로이트의 서재. 옥스퍼드대학의 젊은 교수 겸 작가 루이스가 저명한 정신분석 박사 프로이트의 초대를 받고 그를 찾아온다. 루이스는 자신의 책에서 그를 비판한 탓에 불려왔다고 생각하지만 프로이트는 뜻밖에 신의 존재에 대한 그의 변증을 궁금해한다. 시시각각 전쟁과 죽음의 그림자가 그들을 덮쳐오는 와중에도 두 사람은 종교와 인간, 고통과 삶의 의미를 넘어 유머와 사랑에까지 지칠 줄 모르는 논쟁을 이어가는데…

 

- 시놉시스

 

 

고요하고 적막한 서재. 멀리서 들려오는 강아지 ‘요피’의 짖는 소리만 들려올 뿐이다. 요피의 울음소리가 고요함을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침묵이 감돌지만 어딘가 따스함이 느껴지는 한 서재에 앉아있는 사람은 박사 ‘프로이트’, 그는 누군가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잘 다려진 재킷과 각 잡힌 걸음걸이로 등장하는 교수이자 작가 ‘루이스’. 등장부터 느껴지는 그의 딱딱한 자세와 똑 부러지는 말투는 ‘저 사람 어딘가 굉장히 분석적이고 논리적일 거야!’라는 생각을 들게끔 한다. 그에 반해 프로이트는 어딘가 유연하다. 그 또한 잘 다려진 재킷을 차려입은 채 근엄함을 잃지 않은 모습이지만 그 속에 유머가 깃들어있다. 쉴 새 없이 오가는 그들의 의견과 반문, 토론 속에서 프로이트의 위트는 긴장감을 뚫고 관객들에게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면 마치 함께 토론에 임하듯 그들의 대화 호흡을 벅차게 따라가던 관객들은 그제서야 잠시 숨을 돌린다. 프로이트에게는 그런 강인한 힘이 있었다.

 

 

22라스트세션_가로프로필(클린본)_오영수(사진제공_파크컴퍼니).jpg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존재의 가장 큰 입증입니다."


 

그들은 신의 유무에 대해 토론한다. 무신론자인 프로이트는 유신론자 루이스에게 끊임없이 신의 존재에 대해 증명할 것을 요구하고, 그에 대한 답을 늘어놓는 루이스의 말에 반증한다. 사실 신의 존재 유무에 대한 언쟁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는 순간, 이 세상의 모든 결과는 그의 탓으로 돌려진다. 어쩔 땐 ‘공’으로 돌려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그의 존재가 분명하다면, 인간의 사사로운 고통과, 전쟁과 같이 일어나선 안 될 세계적인 혼돈은 어떻게 설명할 것 인지에 대한 물음이 던져진다.

 

프로이트는 구강암을 통해 겪고 있는 불편과 고통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개인적인 아픔과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이 모든 사건들로 인해 나는 고통을 겪었고, 신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이 모든 것은 신의 뜻인지, 왜 본인에게 고통이 주어지는 건지에 대한 의견을 던진다. 그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루이스는 그런 프로이트의 말에 명쾌하게 답을 던진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죠."

 

지지 않으며 날카롭게 반박하는 루이스. 이에 프로이트는 “나는 유니콘의 존재를 부정하는데?”라는 말로 아주 센스 있게 받아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프로이트의 유머는 그들의 아슬아슬한 불꽃 튀는 설전 중, 핵심이 되기도 한다. 단순히 웃음을 자아내는 대사일지라도 타당성을 잃지 않는 그의 빈틈없는 논리는 관객들의 공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나 또한 그랬다. 무신론자도 유신론자도 아닌 나는 그들의 주장을 한 발짝 떨어진 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일관했다. 그러다 극의 후반에서는 어느새 프로이트 쪽으로 기울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사실 루이스의 입장이 더욱 불리할지도 모르겠다.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어렵다기보다는 무언가를 부정하는 것이 오히려 쉬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논할 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반문을 일으켜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왜 고통을 겪는 건데?’, ‘지금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다 신의 뜻이라는 건가?’ 하물며 ‘전쟁이 일어나는데 신은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 거야.’와 같은 원망을 쏟아낼 수도 있다.

 

프로이트와 루이스, 둘의 대화도 계속해서 꼬리에 꼬리를 문다. 반박에 반박을 더하다 등장하는 키워드에 맞춰 자연스럽게 다음 주제로 이어진다. 그들은 양심, 사랑, 고통, 행복,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섹스'에 대해 언급하며 자연스럽게 인간의 욕망에 관한 주제를 언급하기도 한다. 90분 동안 어떠한 큰 장치도 없이, 오로지  두 사람이 토론만으로 극을 이끌어간다. 그들의 숨 막히는 설전 속에서도 재치 있게 오가는 ‘티키타카’는 90분이라는 시간을 결코 지루함으로 죽이지 않는다.

 

나는 각 인물이 가진 특성이 그들을 더욱 뚜렷한 캐릭터로 만들어줌과 동시에, 대조되는 양상을 이룬다는 느낌을 받았다. 루이스는 어딘가 진취적이다. 눈빛은 날카로우며 그 속에 총명함이 깃들어있다. 프로이트의 어떠한 반박에도 한치의 흔들림 없이 뚜렷한 주관으로 맞받아친다. 사실 프로이트는 죽음을 생각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해 생을 마감하려는 것에 의의를 둔다. 초연한 프로이트의 모습에서는 오랜 세월이 묻어난다. 그런 프로이트에게 매서운 일침을 날리며 그를 설득하고, 주장을 늘어놓는 열띤 루이스의 모습은 두 캐릭터의 대비를 드러내기도 한다.

 

 

 

생동감 있는 캐릭터의 탄생


  

나는 프로이트-오영수 배우, 루이스-전박찬 배우 캐스팅 공연을 관람했다. 오영수 배우는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큰 활약을 거두어 널리 실력을 인정받은 배우이다.

 

 

22라스트세션_캐포(클린본)_오영수(사진제공_파크컴퍼니).jpg


 

그가 연기한 프로이트는 굉장히 다채로웠다. 오영수 배우만이 가진 특색이 녹아있는 캐릭터였다. 그이기에 할 수 있는 연기이기도 했다. 그가 탄생시킨 프로이트라는 인물은 무대 위에서 매력적인 인물로 비추어졌다. 남은 인생을 대하는 여유와 초연함, 본인의 주장을 뚜렷하게 설파하는 언변, 그리고 그의 여유에서 비롯되는 그만의 유머.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무대 위에서 살아 숨 쉬는 인물 프로이트는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그의 연기에는 '쉼(pause)'이 많았다. 내가 그의 연기에 더욱 매료된 이유이다. 그는 모든 대사를 허투루 날리지 않았고 급하지도 않았다. 한 마디 한 마디가 꽉 차 있었기에, 그가 가진 '쉼'은 그가 한 말을 한 번 더 곱씹으며 다음 말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포즈'가 더욱 풍성한 농담을 만들어내는 분위기를 생성한다.

 

사실 많은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서, 배우가 가진 '텐션'과 '호흡'에 따라 캐릭터가 다채롭게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오영수 배우의 프로이트는 묵직함으로 관객들을 숨죽이게 했다가도 툭 던지는 농담에 한없이 웃게 만든다. 그가 가진 호흡은 그랬다. 그가 침묵할 때 보는 이들 또한 침묵하게 만들고, 그의 연기에만 오롯이 집중하게 만든다. 그의 느릿한 걸음과 정확한 행동 하나하나, 깊은 사유가 담긴 시선을 따라가게 만든다.

 

 

22라스트세션_캐포(클린본)_전박찬(사진제공_파크컴퍼니).jpg

 

 

루이스를 연기한 전박찬 배우는 이미 연극계에서 수많은 공연을 통해 실력이 입증된 배우다. 다수의 연극 경력을 자랑하는 그는 매우 탄탄하게 다져진 기본기를 자랑했다. 나는 공연 내내 그의 발성과 발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단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모든 말이 귀에 꽂히도록 훌륭한 발성과 발음으로 대사를 다채롭게 만들어냈다. 그랬기에 그가 연기한 루이스가 더욱 똑똑하고 논리적인 인물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가 연기한 루이스는 에너지가 풍부했다. 거침없이 주장을 얘기할 때 빛나는 그의 눈빛은 총명해 보였으며, 자살을 말하는 프로이트를 설득하는 모습과 갑자기 울린 사이렌 경보음에 허둥지둥하는 모습은 딱딱한 캐릭터에 조금 더 인간미를 더한다.

 

사실 두 배우의 조화가 어우러졌기에 각자의 캐릭터는 더욱 매력적으로 존재했다. 서로의 다채로운 모습을 이끌어내도록 각 캐릭터가 가진 자극점이 있었고, 자극에 의해 튀어나온 반응에는 더 풍부한 리액션으로 화답하며 무대 위를 생동감으로 가득 채웠다.

 

 

[최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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