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카메라 셔터로 일상의 아름다움을 수놓은 예술가 - 사울 레이터 :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 [전시]

글 입력 2022.01.27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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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회현동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피크닉에서 사울레이터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일상을 벗어나면 앨범 용량은 배가 된다. 새로운 풍경이 가져다주는 기쁨은 사진 찍는 행위가 되고, 사진첩은 두둑해진다. 반면, 활동반경 내에 자리한 일상은 특별함을 찾기도 어려울뿐더러 쉽사리 담아지지 않는다. 코로나 상황이 지속되면서부터는 더더욱 그렇다. 답답함에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기 일쑤다.


그런 마음이 들 때, 전시회는 현존하지 않는 예술가의 시대를 거니는 동시에 여행 온 듯한 설렘을 선물해주는 최적의 장소다. 짧으면 한 시간, 길면 두 세 시간까지 전시장에 머무르는 시간 만큼은 현재의 골칫거리나 잡념을 미뤄놓은 채 그저 동선과 시선, 상념에만 집중할 수 있다. 요즘처럼 추운 날씨가 익숙하게 찾아올 때면 그 공간이 더 그리워진다.


그리움은 검색창에 <1월 전시회>를 입력하게끔 유도한다. 겨울과 어울리면서도 힐링 될만한 볼거리를 찾아 나선다. 그러다 20세기 컬러 사진의 선구자라 불리우는 사진작가 사울 레이터의 ‘사진전’이 눈에 들어왔다. 흠.. 사진전?


사실, 사진 전시회에는 별다른 흥미가 없었다. 덧바르고 또다시 덧바른 유화물감의 텍스쳐도, 스케치부터 붓을 내려놓기까지 반복했을 수많은 예술가의 동작도 떠올릴 수 없어서다. 매체의 특성상 회화 작품과 상반되는 점이 다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그것’이 중심이 된 작품의 매력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의문은 호기심으로 이어졌고, 사울 레이터가 남긴 발자취를 뒤따라간 결정적인 계기이기도 했다.

 

 

 

잊혀지기를 바랐던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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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 레이터(1923-2013)

  

 

20세기, 뉴욕에서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사울 레이터. 그러나 긴 시간이 흐른 21세기 중반, ‘컬러 사진의 선구자’이자 영화 <캐롤>의 다채로운 화면구상에 영향력을 준 인물로 재평가되기에 이르렀다. 어느덧, 카메라 렌즈에 투영된 그의 세상은 전세계에서 사랑받는 독보적인 프레임이다. 그 프레임은 대한민국의 한 공간에도 걸렸다.


작년 12월부터 올해 3월 27일까지, 복합문화공간 피크닉에서 개최되는 개인전, <사울 레이터: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를 통해서다. 초기의 흑백 사진부터 최초로 시도했던 컬러, 더 나아가 이미지 위에 선으로 덧입힌 페인티드 누드의 독특함까지 레이터의 예술적 감성이 차례대로 나열돼있다. 전시장에 깔린 음악은 레이터의 작품과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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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 파리에서>, c. 1959 ©Saul Leiter Found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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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드리안 구도 속의 인부>, c. 1954 ©Saul Leiter Found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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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우산>, c. 1958 ©Saul Leiter Foundation


 

그의 작품은 시대를 포착해 담아냈지만, 시대를 뒤쫓진 않았다. 뉴욕에서의 활동을 시작한 1940년대 초, 예술을 둘러싼 견해들이 앞다투어 쏟아져 나왔음에도 본인의 신념과 태도와는 불일치하다는 걸 일찍이 알아챘다.

 

엄청난 메시지를 담는다던지, 세상을 놀라게 할만한 솜씨를 뽐내려 하지 않았다. 모두가 선망하고 버킷리스트로 작성해놓은 랜드마크를 담아내지도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그저 유유히 흘러가는 도시를 관조했다.


레이터에게 있어 ‘관조’의 개념은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하거나 비추어 보는 그 이상이다. 여느 사람들이 하이패스처럼 지나치는, 찰나의 순간을 고요하게 짚어낸다. 뿐만 아니라, 평범하기 짝이 없어 사라져가는 것들을 렌즈 속의 주인공으로 둔갑해 보임으로써 존재에 대한 찬사를 보낸다. 의미를 입히려 애쓰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이미지는 그렇게, 레이터의 가치관으로부터 자연스레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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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라이프> 잡지에 소개된 사진 시리즈에는 반짝이는 손님의 것이 아닌, 

구두닦이의 해지고 닳은 구두가 실렸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사랑했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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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사람들의 모습을 찍어 명함 크기로 찢어 만든 사진 조각, '스니펫'

 

 

단조로운 일상에 깃든 아름다움을 사랑한 그의 주위에는 가족과 연인, 이웃이 있었다. 오랜 피사체였던 여동생 데보라부터, 수십 년간의 작업을 목격해온 친구들, 뮤즈이자 서로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솜스 밴트리까지. 그를 둘러싼 정겨운 온기는 레이터 작업의 기반이자 세계관 그 자체였다. 주변에 언제나 있어왔던 것의 가치를 되새겨준 당사자들이다.

 

 

“신비로운 일들은 익숙한 장소에서 벌어진다.

늘 지구 반대편으로 떠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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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Shoe>, c. 1952 ©Saul Leiter Foundation

 

 

전시회 구석구석, 작품 하나하나를 바라보다 보면 사울 레이터가 남긴 말이 어느새 와 닿아있음을 느낀다. ‘행복은 그리 멀리 있지 않아’라는 흔하면서도 실행하기 어려운 말이 통용됨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정면과 앞, 옆, 위 등 여러 방향에서 피사체를 가장 보기 좋은 최선의 컷으로 어울리는 각도에 따라 남긴 작가의 재치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특히 전시장 벽면 오른쪽 옆마다 걸린 작품의 제목은 재치를 한 수 위 띄워준다. 유명한 사람들 사진보다 빗방울 맺힌 유리창이 더 흥미롭다던 레이터의 생각이 증명되고 또 증명된다.

 

 

"내 사진은 왼쪽 귀를 간지럽히는 게 목적이에요. 아주 살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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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솜스 밴트리와 사울 레이터

 

 

사울 레이터는 2013년 11월 26일, 암 선고를 받은 며칠 뒤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일상은 아흔 번째에 멈추었지만, 그가 남긴 세상의 여러 나날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한때 잊혀지기를 바랐던 ‘예술가 사울 레이터’도.


마지막 섹션에서 활짝 웃던 생애 모습을 지켜보고, 한쪽에 마련된 사진집 모음을 넘겨보며 친구들이 그랬던 것같이, 그를 마음속으로 애도했다. 한 사람의 일생을 2시간 동안 천천히, 응시하면서 거닐었다. 눈 오는 겨울, 미끄러질까 다리를 든 채 고심하여 발자국을 내딛듯이 말이다.


일상에 회의감이 들었던, 특별한 것만을 갈구하고 있는 당신을 발견한 적이 있는가? 아무것도 아니길 바라며 스스로를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 칭했던 사울 레이터의 세월을 함께 거닐어보면 좋겠다. 후회 없는 여정이 되리라 믿는다.

  

 

*

 

사울 레이터 :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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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2021.12.18(토) ~ 2022.03.27(일)

시간
화-일 10-18시(입장마감 17:00)
월요일 휴관

장소
피크닉 piknic
(서울 중구 퇴계로6가길 30)

티켓가격
관람료 : 15,000원
(네이버예약 예매 / 영화 티켓 별도)
 
주최/주관
피크닉 piknic
 
관람연령
14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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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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