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과는 늘 낯을 가렸다. 종류도 너무 많고, 가볍게 마시기에는 다른 술에 비해 가격대도 높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와인이 주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서, 와인바에 많이 가보거나 와인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은 있었다.

와인마다 매력이 다르다고 하니 다양한 와인을 많이 마셔봐야만 잘 알게 될 거라는 단순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니 초심자 입장에서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고, 와인과 나의 거리감은 좁혀지지 않았다.

그때 와인에 대한 흥미를 단숨에 끌어올리는 도서가 내 앞에 나타났다. 와인과 돈,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재치 있게 엮은 도서, 《인생 와인》!

《인생 와인》의 저자 크리스 배는 “와인은 주연으로 시작해서 술자리가 끝날 무렵에는 조연이 되고, 함께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연이 된다.”는 말에 영감을 얻어 본격적인 와인 공부를 시작했다. 와인과 함께하는 삶을 사는 그는 와인을 배우며 느낀 점들로 책의 서문을 연다.

음주는 '소비', 심지어는 '불필요한 낭비'라는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그는 와인을 마시며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다고 말한다. 와인에 얽힌 이야기로부터 즐거움과 감동을 느낄 수 있고, 성공과 실패에 대한 학습 기회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목차를 ‘와인 리스트’로, 그리고 1장, 2장을 ‘첫 번째 병’, ‘두 번째 병’으로 표기한 방식 때문인지,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새로운 와인을 한 모금씩 음미하는 듯했다.

인생 철학이 담긴 와인

“한 잔의 술에 담겨진 인생”. 요즘 가장 좋아하는 뮤지컬 속 넘버의 가사이다. 터무니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술자리의 분위기를 띄우고 친구를 위로하기 위한 가사라서 들을 때마다 웃음 짓게 된다. 물론 술 한 잔을 마시며 솔직한 인생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가 많으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 생각한다.

그러나 와인에는, 개개인의 소소한 이야기 외에 정말 ‘인생 철학’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땅을 일구는 것부터 정성껏 포도나무를 키우고, 엄격한 환경에서 발효와 숙성의 시간을 거치기까지. 와인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들은 인생살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탄탄한 실력과 기반을 쌓고, 노력을 기울이며, 인내의 시간을 거치는 것이 소위 ‘성공한 인생’을 사는 방법들이기 때문이다.

와인과 와이너리마다 다양한 이야기와 교훈이 담겨 있기도 하다. 《인생 와인》의 한 장을 살펴보면, 저자는 여러 포도 품종이 복잡 미묘하게 섞여 조화를 이뤄내는 ‘산 지오바니’를 통해 수많은 모순 간의 조화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질적인 존재들의 협업으로 성과를 낸 이탈리아 육상협회의 사례와, 독일의 진정한 통일을 이뤄냈다는 평을 받는 메르켈 총리의 정치 덕목에 대한 의견을 덧붙이기도 한다.

이 책은 딱딱한 와인 설명서가 아니라, 와인을 비롯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들을 통해 성공과 인생을 이야기하는 에세이인 셈이다.

《인생 와인》에서는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은 와인을 소개한다. 28년 동안 집요하게 꿈에 매달린 ‘셀리에 데 담’의 두 창업자, 실패로 여겨지던 얼어붙은 포도송이에서 ‘아이스바인’을 탄생시킨 비화, 지역 전체의 발전과 상생을 위해 노력했던 와이너리 등.

인생의 다양한 굴곡을 마주쳤을 때, 지금 처한 상황과 비슷한 이야기를 담은 와인 한 병을 마시며 돌파구를 고민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