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무대 뒤 이들이 있기에 연극은 시작된다 - 언더스터디 [공연]

진짜 주인공이 뭔데?
글 입력 2022.01.25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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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언더스터디>는 20세기 최고의 문학가로 손꼽히는 프란츠 카프카의 가상의 미공개 작품에서 주인공을 맡고 있는 할리우드 톱스타 브루스의 언더스터디가 된 제이크와 그런 제이크의 언더스터디를 맡게 된 해리, 작품의 무대감독 록산느가 공연을 준비해 가는 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쇼 비즈니스계의 냉혹한 현실을 리얼하면서도 유쾌하게 담아낸 블랙코미디이다.

 

 

 

언더스터디의 언더스터디


 

극이 시작됨을 알리듯 조명은 어두워진다. 관객들은 무대 위 배우들의 등장을 기다리며 침묵을 유지한다. 그때 빵-하고 뜬금없는 총 소리가 관객들의 적막을 깬다. 총소리와 함께 무대 뒤편이 아닌 객석에서 무대 위로 뛰어들듯 등장하는 한 남자, ‘해리’. 그는 소품으로 쓰이는 총을 이리저리 겨누며 어떠한 장면을 연기하듯 대사를 외친다. 한껏 열혈 행위를 보이고는 객석을 향해 ‘이게 말이 되냐’는 식의 불만을 토로한다. 그는 누군가의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하다. 실력 없는 배우들의 배역 차지, 실력과 반비례하는 그들의 명성과 출연료, 그리고 본인이 더 잘할 수 있다는 아쉬움을 덧붙이는 것도 빼놓지 않으며 관객들을 향해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이쯤 되면 눈치챘듯 해리는 무명 배우다. 그는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이 공연되는 극의 언더스터디로 캐스팅되어 브로드웨이 한 극장에 와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언더스터디의 언더스터디다. ‘언더스터디’란 배우가 갑자기 대체되어야 할 경우에 대비하여 같은 배역을 연습하여 대기하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해리는, 이 공연의 주인공이자 아주 유명한 배우 ‘브루스’의 언더스터디인 ‘제이크’의 언더스터디인 셈이다. 제이크에 대해 설명하자면, 그는 브루스보다는 비교적 유명세가 덜 하지만 해리보다는 확연히 저명한 배우이자, 방금 전 해리가 아주 높은 관객 수를 찍었지만 연기는 개판이라며 열렬히 비판하던 영화의 주인공이다.

 

제이크의 첫 등장은 다소 부산스럽다. 극장에 들어서자마자 정체 모를 한 남자(해리)가 총을 들고 서 있는 모습에 떠들썩하게 대처하는 그의 모습은 캐릭터를 더욱 입체적으로 돋보이게 한다. 자신의 연기를 따라 하며 총을 들고 서 있던 남자는 분명 자신의 팬일 것이라며, 해리에게 원한다면 사인을 몇 장도 더 해줄 수 있으니 소품을 가져가는 둥 그런 짓은 하지 말라고 경고하며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제이크는 굉장히 유쾌한 인물이다. 그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위트 있는 말과 행동으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진지한 상황 속에서도 유머를 연상케 한다. 여기서 포인트는 정작 본인은 매우 진지하다는 것이다. 그런 제이크의 성격은 어떠한 얄미운 행동에도 그를 좀 더 사랑스러운 인물로 보이게끔 만든다.

 

해리와 제이크는 첫 만남부터 부딪히기 시작한다. 우선 제이크는 얼굴도 이름도 실력도 알려지지 않은 무명배우 해리가 자신의 언더스터디로 캐스팅된 것부터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자신의 언더스터디에 어떻게 해리가 캐스팅되었는지 계속해서 추궁하며 해리와 무대 감독인 ‘록산느’를 곤란하게 만든다.

 

‘록산느’는 이 극의 무대 감독이자, 해리의 전 약혼자이다. 자신과의 결혼을 앞두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가 다시 만나게 된 해리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록산느 또한 제이크의 입장과 동일하게 해리의 캐스팅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제이크와 록산느의 계속되는 인맥 의혹에 해리는 억울하다는 듯 외친다.

 

“나는 오디션을 보고 캐스팅된 거라고요.”

 

해리의 대사가 마음에 날아와 꽂혔다. 비록 인맥을 통해 오디션의 기회는 얻었을지라도 결과는 오로지 해리의 실력으로 판가름 났을 것이다. 리허설 내내 돋보이는 연기를 향한 해리의 열정이 그 사실을 증명해 준다. 그는 언더스터디의 언더스터디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훌륭한 작품에 자신이 참여할 수 있고 연기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해한다. 그리고 그가 맡은 바에 책임을 다한다.

 

작품을 향한 열정과 잘 해내겠다는 연기 욕심이 해리와 제이크를 갈등 상황에 놓이게 한다. 언더스터디끼리 리허설을 도는 동안, 해리는 자신만의 논리를 부여해 분석한 연기를 선보이는데, 그와 합이 맞지 않자 제이크는 그냥 대본에 나와있는 대로, 혹은 하라는 대로만 하라고 지시한다. 해리는 어떻게 이 연기를 이렇게 하냐며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지만, 너의 의견 따위가 이 공연에 반영되지는 않으니 그냥 시키는 대로 하라며 록산느는 해리에게 그의 존재가 언더스터디임을 강하게 각인시킨다. 속상하지만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해리.

 

해리와 제이크가 합을 맞추는 장면에서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다. 같은 상황을 바라봐도 개인의 해석 방향이 다 다르듯이, 연기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어떠한 캐릭터와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기에, 각자 준비해온 연기를 서로에게 맞춰가는 과정이 분명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했던 부분을 발견하기도 하고, 작품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을 깨닫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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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 서기까지


 

록산느는 해리와 제이크가 제발 무사히 리허설을 마치기만을 바란다. 둘의 의견 불일치와 더불어, 카프카의 작품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장황하게 토론함에 따라 리허설은 한 번에 매끄럽게 이어가지 못한다. 그러던 중 제이크의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대사에 해리는 울먹이기 시작하고, 당황해 연기를 중단한 제이크는 오디션에서 그런 말을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는 해리를 달래기 시작한다. 울먹거리는 해리와 그에게 용기를 북돋우며 안절부절못하는 제이크의 모습은 익살스러워 관객의 웃음을 이끌어낸다. 나도 관객들에게 섞여 그들의 재치에 아낌없이 웃었고, 웃고 있는 미소 뒤편에는 씁쓸함이 마음 한구석에 생겨나기도 했다.

 

배우의 꿈을 꾸는 입장에서 나는 브루스도, 제이크도 아닌 해리에 가까웠다.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 언더스터디의 언더스터디. 실제로 오디션장이나 현장에서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들은 적은 없었지만 나는 비언어적 수단으로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배운 것이 상당했던 경험들이 더 많았고, 경험만으로도 진심으로 감사하던 시절이었다. 감사하지만 내가 가진 욕망에 비해 설자리는 너무나 비좁았고, 조그맣게 그려진 작은 동그라미 안에 들지 못해 원 밖에서 멀뚱히 서있던 스스로가 희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그 누구보다 해리의 마음에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

 

사실 제이크의 입장도 그리 만족스럽지만은 못하다. 그는 이 공연 대신 오디션을 보았던 영화의 캐스팅이 되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고, 캐스팅 전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그의 모습이 절실한 마음을 대변해 준다. 이후에 그의 마음과는 달리 본인 대신 브루노가 그 역할에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황망해하며 브루노를 비판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 제이크의 모습을 바라보는 해리는 어딘가 씁쓸해 보인다. 그는 공감하는 마음으로 제이크를 위로한다.

 

그리고 그 둘을 지켜보는 록산느. 그녀는 겉으로는 무척 강해 보이며, 실로 무대 감독으로서 일을 처리하는 모습 또한 굉장히 독립적이다. 그런 그녀도 꾹 눌러온 욕망이 있었으니, 바로 배우의 꿈이다. 배우로서 무대 위에서 연기하기를 갈망했으며 특히나 ‘연기 천재’소리를 들어왔던 그녀는 무대 감독으로 직업을 바꾸며 무대 위의 주인공 대신 무대 뒤 스텝의 역할을 자처한 인물이다.

 

그녀는 제이크에게 연기를 향한 한때의 열정과 애정을 솔직하게 얘기하며 그가 맡은 역할은 왜 여자는 시켜주지 않느냐는 불만을 토해낸다. 그러면서 이 캐릭터는 이렇게 연기해야 한다며 자신의 해석이 녹아든 연기를 보여준다. 록산느는 “나는 연극과 카프카가 너무 싫어!”라며 외쳤지만, 사실은 그녀가 얼마나 연기를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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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인물은 서로의 욕망과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리허설의 막바지를 달리고 있다. 그때 걸려온 전화 한 통, 브루스가 영화에 캐스팅되어 이 연극은 이번 주를 끝으로 공연을 종료하겠다는 소식이다. 브루스를 대신해서 공연하기 위해 언더스터디가 있는 것 아니냐며 허무해하는 제이크와 해리, 그리고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냐며 아쉬움을 감추며 위로를 전하는 록산느. 그들은 더 이상 리허설도, 연습도, 분석도 할 필요가 없어졌지만 해리는 극의 마지막 장면인 춤추는 장면을 연습하자고 한다. 해리의 요구에도 반응하지 않는 제이크와 록산느를 뒤로한 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라며 신나게 춤을 추는 해리. 곧이어 제이크와 록산느도 춤을 추며 카프카의 극의 마지막 장면을 장식한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언더스터디가 무대의 주인공이다.

 

*

 

우리는 한 번쯤 누군가의 언더스터디로 살아갈 때가 있다. 내 인생에서는 내가 주인공이라 하지만, 무대 위 주인공이 되기 위해선 모두가 인정해 주는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해리는 비록 무대 위 주인공은 아닐지언정, 무대 뒤에서 그 누구보다도 연기를 사랑하는 주인공이다. 진정으로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애를 쓰고, 그것을 연기하는 행위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 나는 언젠가 해리가 모두가 알아주는 무대 위 주인공이 되어 마음껏 연기를 펼칠 것이라 확신한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열정에 끌리기 마련이니까.

 

 

[최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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