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소녀는 어른이 되어 유년 시절의 자신을 꼬옥 안아 주었다 [음악]

장희원의 EP 앨범 “ㅎ/”, “이룰 수 있는 꿈”, “12월”을 중심으로
글 입력 2022.01.17 13:08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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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곡, ‘나무에 걸린 물고기’



장희원은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나무에 걸린 물고기’라는 곡으로 대상을 수상하며 씬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는 1집 '사랑하기 때문에'를 남기고 요절한 천재 유재하를 기리기 위해 1989년 처음으로 개최되었다. 중간에 재정 문제로 중단된 적도 있었으나, 유재하와 문화 예술에 관심을 기울이는 기업들과 대한민국 독립 음악을 사랑하는 많은 애호가들의 도움으로 계속되고 있다.


오랜 기간 이어져 온 만큼 음악 시장에 미친 영향 또한 상당하다. 제1회의 수상자는 현재 미스틱 스토리에서 대표 프로듀서직을 맡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조규찬이며, 4회 대상은 유희열이 차지했다. 김연우는 1995년에 김학철이란 이름으로 금상을 탔다.

 

 

▲ 곡, '나무에 걸린 물고기'


 

난 향긋하지 않은

난 푸르지 않은

난 꽉 차지 않은



나무에 걸린 물고기구나

 

 

'나'는 봄이 오면 꽃으로 둘러싸였기에 자신이 향긋할 줄만 알았으며, 여름이 오면 주변이 모두 푸르렀기에 자신이 무성한 잎사귀인 줄만 알았고, 가을에는 잘 익은 열매들 사이에 있어 자신이 실한 열매인 줄 알았다. 그러나, 추운 겨울이 오고, 모든 게 떨어져 가지가 보였을 때, 나의 진짜 모습이 드러난다.


나는 꽃도 잎사귀도 열매도 아니었다. 나는 물고기였다.


장희원은 담담한 목소리로 곡을 진행한다. 노트 하나하나를 차분하게 내려놓다가, 어느 순간 연약하게 떨리는데, 터지려는 울음을 간신히 참아 내는 것 같기도 하다. 이때, 잔잔한 기타와 피아노 선율은 곡의 쓸쓸한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장희원은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이나 '힙합 플레이야 페스티벌'처럼 국내의 대표적인 음악 페스티벌을 개최한 마스터 플랜 뮤직 그룹의 산하 레이블 광합성에 입단하여 활동을 이어간다.

 

 


2. EP 앨범, “이룰 수 있는 꿈”



그리고 1년이 조금 지난 2019년 봄, 장희원은 EP 앨범 "이룰 수 있는 꿈"을 발매한다. "이룰 수 있는 꿈"에는 '바다로 가는 꿈을 꿔'라는 제목을 가진 한 쌍의 곡들이 있다. 둘은 동일한 가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뭇 다르다.

 


▲ 곡, '바다로 가는 꿈을 꿔 (수족관 Ver.)

 

 

슬픈 눈을 마주쳐

하고 싶은 말 있어

날 놓아줘

난 바다로 가는 꿈을 꿔


유리 안에 네가 있어

비친 모습에 내가 있어

나는 너를 보며

또 나를 봐

나도 이룰 수 없는 꿈을 꿔

 

 

수족관 버전의 주인공은 물고기다. 물고기는 그 속에서 비늘을 반짝거리고, 입을 뻐끔거리며, 여유롭게 유영하지만, 틈이 생기면 바다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다.


물고기가 인간의 말을 하는 것은 상상이나 판타지 세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수족관 버전에서는 몽환적인 전자음이 중심이 된다. 특히, 1분 30초에서는 파도치는 소리가 깔리며 드리미하고 트로피컬 한 선율이 흐르는데, 물고기의 꿈에 함께 입몽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거기에 장희원은 그 속에서 물고기의 호흡에 맞춰 규칙적으로 허밍 하며, 돌아가고 싶다고 읊조린다.

 

 

▲ 곡, '바다로 가는 꿈을 꿔 (바다 Ver.)


 

바다 버전의 주인공은 바닷가에 있는 소녀다. 소녀는 사람이지만 수족관 속 물고기와 같은 꿈을 꾼다.


이때, 현실 세상의 이야기인 만큼 어쿠스틱 사운드가 중심이 된다. 역시 곡이 시작하고 1분 30초가 지나면, 허밍이 시작된다. 수족관 버전이 다시는 이뤄질 수 없는 일을 그리워하는 슬픈 잔혹 동화 속 주인공이었다면, 바다 버전은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깨닫고 각성한 디즈니 영화 속 주인공 같다.

 

따라서, 장희원은 단단하고 힘 있는 목소리로 꿈을 노래한다. 이때, 애처로웠던 허밍은 자신감에 찬 하울링으로 바뀐다.


이 두 곡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이지만, 장희원이 '싱어송라이팅' 뿐만 아니라 '프로듀싱'에서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 실제로, 그는 드라마,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 OST '손을 잡아줘요'의 작사, 작곡, 편곡에 모두 참여한 바 있다.

 

 

 

3. EP 앨범, "12월"



그리고 21년 12월, EP 앨범, '12월'이 발매되었다. 동명의 곡 '12월'은 발랄한 분위기의 캐럴이다. 그것에서 장희원은 2021년을 마무리하며 그동안 느낀 바에 대해 노래한다.

 


▲ 곡, '12월'

 

 

난 조금은 울어본 아이에게 선물을 줄래

갖고 싶은 게 없어진 너와 나에게

하얗게 하얗게 겨울이 지나가네


두근대는 마음을 알려줬던 봄

함께 뜨거웠던 푸르른 여름

있는 줄도 몰랐지 소중한 가을 그리고

다시 피어날 준비를 하는 지금 겨울 지나가네

 


'나무에 걸린 물고기' 이후로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장희원은 많은 곡을 쓰고, 부르고, 발매했다. 따라서, 예전보다 어른의 생활이 더욱더 편해졌을 것이다. 더불어서, 목소리도 한층 여유로워졌다. 예전의 조곤조곤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행복해졌다.


이 속에서, 장희원은 물고기 시절 느꼈던 계절들을 다시 정의한다.


향긋하지 않았던 봄은 두근대는 마음을 알려준 계절이 되고,  푸르지 않았던 여름은 함께 뜨거웠던 계절이 되었으며, 꽉 차지 않은 계절이었던 가을은 소중해졌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겨울.


무언가를 가져야만 행복했던 어린 장희원은 어른이 되어 이제는 자신이 소유한 것으로부터 행복을 찾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선물이 필요한 다른 슬픈 아이에게 직접 산타가 되어주기로 한다. 그 아이는 바로 어른이 되는 것이 무서워 커다란 품에 안겨 울고 싶어 하던 작은 장희원이다.


곡의 인트로에서 쌓인 눈을 헤치고 달려 도착한 곳은 바로 거울 앞일 것이다.

 

 


4. 글을 마치며,



리뷰를 작성하며, 많이 울었다. 슬픈 눈물은 아니었다. 그것보다 더 큰 차원의 것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내가 가치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더 향기롭고, 푸르고, 알차지기 위해서는 그런 사람들 곁에 있어야만 한다고 여겼다. 그러기 위해선 나에게 맞지 않는 것들을 해야만 했다. 그 속에서 스스로를 비하하고 다그치며 삶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러나, '장희원'의 곡을 듣고 마음이 바뀌었다. 다시 돌아보니, 나의 삶은 치열했으며,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자체를 증명하듯, 오랫동안 꿈꿔왔던 것들을 하나둘 이루어 가고 있었다. 나는 내가 빛을 낼 수 없는 소행성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이미 빛을 내는 별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해준 장희원 님과 그의 곡들에 감사하다.

 


 

신동하.jpg

 

 

[신동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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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
  •  
  • 딸기
    • 가사가 너무 예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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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
    • 우린 저마다 다른 색으로 빛나는 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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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사도 예쁘고 노래도 좋지만 에디터님이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썼는지 공감이 많이 되는 글이였습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하루 하루 달려오면서 뭐든 원하는 대로 잘 풀리면 좋겠지만 혹여 잘 풀리지 않아 속상할때 나를 탓하기만 하지 말고 이 노래를 듣고, 이 글을 보며 '괜찮다, 이미 충분히 잘 하고 있다' 라고 가끔은 스스로를 다독여주는 여러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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