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 안에 숨은 감정 끄집어내기 [미술/전시]

작품을 감상하는 법
글 입력 2022.01.15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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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을 보고 나서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이다. 아무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복수전공으로 미술사를 공부하고 있는데도 별 수 없다. 일상의 평범함을 깨뜨리는 낯섦을 느끼고 싶어 찾아 간 전시에서도 그저 멍하게 보고 올 때도 있다.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나도 ‘이거 참 내 스타일이네’ 정도의 느낌이 전부인 것이다.

 

‘뭐가 잘못된 걸까? 감정회로가 고장난 건가?’ 물론 항상 그런 건 아니다. 간혹 다양한 생각과 느낌이 샘솟듯이 이어질 때도 있다. 그런데 이게 작품에 따라, 당시 컨디션에 따라 편차가 크다는 게 문제다. 어떤 작품을 만나도 풍부하게 느끼는 방법이 없을까, 그래서 작품을 볼 때 내 안에 ‘감춰져 있는’ 느낌을 끄집어내는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다가 쓴 글이다.


 

▷ 작품 깨닫기

 

끌리는 작품, 인상적인 작품을 만나면 핸드폰 메모장을 켜 짧게 몇 줄 적는다. 그 작품이 마음에 드는 이유를 트위터를 쓰듯 메모하는 것이다. 작가와 작품의 이름, 그리고 작품에 대한 간단한 묘사를 덧붙인다. 이 때 중요한 건 생각을 하면 안 된다는 거다. 생각을 오래 하면 ‘정답’을 찾게 되고 그 과정에서 느낌은 왜곡되기 쉽다. 단어도 좋고 문장도 좋다. 떠오르는 것을 ‘날 것’ 그대로 적는 게 중요하다. 이 ‘날 것’이 내 안에 숨은 감정을 캐내는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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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나서 왜 마음에 들었는지를 적고 ‘그래서 뭐?’ 라는 질문을 해 본다. 이 질문은 작품의 외형적 묘사를 넘어 작품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만든다. 의미를 생각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평가가 아니라 나만의 방식으로 작품을 이해했다는 뜻이다.

 

이해 뒤에는 느낌이 따라온다. 작품을 깨닫는 것이다. 작가가 의도한 방향과 다를 수도 있다. 다른 사람(그 사람이 작가라고 하더라도)의 의견과 다르다는 것을 겁내면 안 된다. 백 명의 사람이 작품을 보면 백 가지의 의견과 느낌, 감정이 생겨야 좋은 ‘예술 작품’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보는 사람들 모두 비슷하게 느끼고 같은 감정을 갖는다면, 그래서 같은 지점의 결론에 도달한다면 너무 재미없지 않나? 예술 작품이 답이 정해져 있는 수학문제도 아닌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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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하면서 보기

 

이건 약간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눈 앞에 있는 작품을 변형시켜보는 것이다. ‘만약 얼굴의 색깔이 푸른색이 아니라 노란색이었다면?’ ‘힘 있고 굵은 필선을 가늘고 여러 가닥의 선으로 대체했다면?’ 혹은 ‘조명이 아래쪽에서 들어왔다면 작품이 어떻게 보일까?’ 등 마음 내키는 대로 가정해 본다. 재료를 바꿔 보는 것도 괜찮다. ‘철이 아닌 테라코타라면 어땠을까’ ‘이 유화 그림을 자수로 표현해도 작가가 의도한 것을 모두 담을 수 있을까?’ 같은 질문도 가능하다.

 

작품의 사이즈도 마음대로 늘이거나 줄여보는 것도 흔히 하는 상상이다. ‘지금 느끼는 위압감은 작품의 크기에서 오는 것 같은데 작품 사이즈를 1/10로 줄인다면?’ 반대로 ‘이 전시관 벽 하나를 다 채울 만큼 거대한 크기라면?’하고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이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가정과 상상은 작품 앞에 오래 머물게 만드는데,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뭔가 있어 보이는 부수적인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이게 다가 아니다. 아직 중요한 게 남았다. 상상이 끝나면 작가는 왜 특정 색깔과 재료, 방식을 선택했는지, 작가의 선택이 작품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예술은 ‘감각의 언어’다. 작품은 결국 하나의 체험이 되어 메시지를 전달한다. 즉 색채, 구성, 크기, 질감, 재료 등의 특성으로부터 작품의 의미가 파생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상상하는 감상법은 작품의 세세한 특성들에 집중하게 함으로써 내가 느낀 두루뭉술한 인상의 근거를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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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는 만큼 느낀다

 

‘아는 만큼 보인다’ 익히 들어 클리셰 같은 말이지만 작품을 접하다 보면 실제로 그렇다는 걸 알게 된다. 보이는 게 많을수록 느끼는 것도 많다. 따라서 작품을 보고도 아무런 느낌을 받을 수 없을 때는 작품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 본다. 가장 기본적인 재료부터 시작한다. 가끔씩 보고도 무슨 재료를 사용했는지 파악 안되는 작품들이 있다. 하지만 재료만 알아도 작품의 촉감이 구체적으로 상상되기 때문에 재료를 아는 건 중요하다.

 

다음은 작품이 창작되던 시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본다. 문화예술은 그 자체로 당대 사회의 상호작용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지속하는 게 특징이다. 이 과정에서 예술작품은 다양한 플랫폼(박물관, 미술 출판, 공연 등)의 선택을 받으면서 비로소 현대사회에서 의미와 중요성을 얻게 된다. 때로는 대중매체에서 어떻게 해석되느냐에 따라 가치가 증폭되기도 한다. 따라서 이 작품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길래 선택되어 전시장에 있는지 생각해보면 ‘아니 이게 왜?’ 라고 의문이 생기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하게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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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작품 감상하는 법

 

작품을 보면서 내 안에 숨은 감정을 끄집어내는 몇 가지 방법을 제시했지만 당연히 정답은 아니다. 미술작품을 감상한다는 건 작품을 보고 느끼고 창작자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감상을 통해 무의식적인 감정의 흐름인 ‘감동’이라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진정한 감상은 느끼고 생각하고 감동하는 개인적 차원의 경험보다 훨씬 더 포괄적인 행위이다.

 

감상의 한자어 鑑賞을 보면 鑑은 ‘비추다’는 뜻과 함께 ‘보다, 살피다, 분별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賞은 흔히 모양을 뜻하는 ‘像’으로 잘못 알기 쉬운데 감상에서 賞은 ‘상주다’를 뜻하는 상(賞)’을 쓴다. 말 그대로 賞은 ‘칭찬하다, 아름답다, 즐기다’는 뜻이다. 정리하면, 감상은 예술작품을 분석해서 칭찬하고 그 아름다움을 즐긴다는 뜻이 된다. 그러므로 감상은 감정이나 감성이라기보다 어쩌면 훨씬 이성적이고 분석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감상을 뜻하는 영어단어 appreciation을 보면 의미가 더 분명해진다. 동사 appreciate는 ‘진가를 알아보다, 제대로 인식하다’는 말이다. 역시 감정이나 감성적 접근만이 아니라 분석적이며 논리적이라는 뉘앙스가 더 강하다.

 

결국 감상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보고 읽고 해석하는 단계는 감상하는 사람의 능동적 참여와 적극적 사고를 통한 또 다른 창작과정이라고 보는 게 맞다. 미술가는 작품을 만들지만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건 감상자의 역할이다. 그렇다면 감상은 내 안에 숨어 있는 감정을 찾는 데만 급급할 게 아니라 관찰하고 이해하고 분석해서 통찰을 키우고 결국에는 자신까지 돌아보는 성찰에 이르는 훈련이라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신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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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조누피
    • 저번에는 예술에 다가갈 용기를 얻었는데, 이번에는 예술 감상 지침서(?)를 얻은것 같아요. 에디터님의 글은 늘 소중히 읽게 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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