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마음으로 떠나는 이탈리아 여행, 도서 '90일 밤의 미술관: 이탈리아'

글 입력 2022.01.11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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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후회하며 사는 동물인 것 같다. 후회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 매순간에 임하려고 노력하지만, 그 매순간이 결코 완벽할 수는 없기 때문에 조금씩의 후회를 남기게 되곤 한다. 다만 그 후회가 훌훌 털어낼 수 있을 정도로 얕게 남느냐, 아니면 이후의 시간동안 마음 속에서 털기 힘들 정도로 깊게 남느냐의 차이인 것 같다. 그런 면을 감안해 내 삶을 반추해 본다면, 대부분의 경우 후회를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들을 하면서 살려고 노력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가슴 속에 후회로 남는 선택이 있다. 바로 유럽에 교환학생을 갔던 때의 시간에 대한 후회다.


교환학생을 떠난 것 자체에 대해 후회하느냐 하면 그것은 결단코 아니다. 유럽에서 살면서 지낸 시간은 이후의 내 삶을 완전히 바꾼 계기가 되었으니 교환학생을 간 것 자체에 대해서는 일말의 후회가 없다. 다만 거기서 보낸 시간들 중 일부에 대해서는 후회로 남는 부분들이 있다. 왜 좀 더 열심히, 더 많이, 더 다양한 곳으로 여행을 떠나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아쉬움 말이다. 물론 그 당시에는 20대 초반 나름의 고민을 해서 열정적인 선택을 했던 것 같기는 하다. 그 때 내가 세웠던 여행의 원칙은, 한국에서 여행옥이 어려운 곳들 위주로 다니자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유명해지기 전의 크로아티아나 몬테네그로를 비롯해 특이한 여행지들을 다니는 데에는 성공했다. 동양인이 워낙 가지 않는 곳들을 다녀서 매번 시선집중의 대상이 되기는 했지만, 그렇게 떠났던 여행지들의 풍경과 거기서 느낀 감정들은 지금까지도 마음 속 깊은 곳에 남아 있다.


하지만 정작 유럽 체류기간동안 영국과 아일랜드를 제외하고는 서유럽, 남유럽의 유명한 곳들을 간 바가 없다. 북유럽을 기점으로 돌아다녔으니 북유럽이야 익숙해서 그렇다 치더라도, 왜 나는 그 때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같은 여행지들을 가지 않았을까. 무슨 객기로 그 여행의 메카들을 내치고 오지탐험처럼 여행을 하고 다녔던 것인지 모르겠다 싶을 정도다. 특히 코로나로 인해 유럽여행이 더더욱 먼 얘기가 되어버리고 나니, 그 아쉬움은 더 커져버렸다.


그렇게 유럽여행에 대한 목마름이 커져가던 나에게, 도서 "90일 밤의 미술관: 이탈리아"는 너무나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미술이라는 아름다움 소재와 이탈리아라는 매력적인 여행지가 합쳐져 마치 이탈리아 현지를 여행하는 듯이 이탈리아의 예술세계를 간접체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겼다.


 



< 책 소개 >


이 책의 저자 4명은 이러한 미술가들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먼 이탈리아로 떠났습니다. 누구나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깊이 있는 해설을 하기 위해 같은 작품을 수천 번 이상 보고 공부했죠. 다양한 관람객을 상대로 이야기를 나누며 폭넓은 감상의 경험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이러한 저자들의 시간과 노력을 오롯이 담아냈습니다. 곧 원화를 보러 떠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어보며 이탈리아 미술 여행을 90일 동안 책으로 먼저 즐겨보세요.

 




왜 하필 책 이름이 "90일 밤의 미술관 이탈리아"일까 했는데, 알고 보니 이 책은 '90일 밤의 미술관' 시리즈물의 세 번째 책이라고 한다. 맨 처음으로는 유럽 각지의 미술 작품들을 다룬 "90일 밤의 미술관"이 있었고, 다음으로는 파리에 국한하여 "90일 밤의 미술관: 루브르 박물관"이 나온 후 그 다음으로 이번 책, "90일밤의 미술관: 이탈리아"가 나온 것이다. 도시 전체가 유적지나 다름없는 로마부터 시작해서 피렌체, 밀라노, 베네치아, 나폴리, 볼로냐 등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들을 소개하며 그 도시에 있는 미술관, 그 미술관에서도 눈여겨 볼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한 명의 저자가 일괄적으로 써내려간 것이 아니라 네 명의 저자가 함께 쓴 것이기 때문에 어떤 작품을 소개할 지에 대해서도 저자 간에 깊은 숙고와 대화를 통해 결정했으리라는 생각을 해봄직하다.


네 명의 저자는 모두 이탈리아에서 오랫동안 국가공인 가이드로 활동해 온 사람들이다. 저자 김덕선은 역사 강사로 일하다가 살아있는 역사를 경험하고 느끼고 싶어서 이탈리아로 넘어갔고, 이를 계기로 10년 동안 이탈리아 국가공인 가이드이자 바티칸 미술관 가이드로서 활동했다. 저자 김성희, 유재선, 이영은은 유로자전거나라를 통해 맺어진 인연들인 듯하다. 저자 유재선이 유로자전거나라의 초창기 멤버이자 이탈리아 남부환상투어의 기획자인데, 저자 김성희와 이영은은 유재선 이후에 유로자전거나라에 입사한 사람들이다. 이탈리아에서 같은 국가공인 가이드로서 활동하고 있는 그들이기에, 누구보다 이탈리아의 역사적 배경과 예술작품의 비하인드 스토리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네 사람이 뭉쳐서 만들어낸 "90일 밤의 미술관: 이탈리아"는 완성까지 그야말로 대장정이었을 것이다.


이 책의 부제는 '내 방에서 즐기는 이탈리아 미술 여행'이다. 그리고 이 부제는 정말 적절한 카피라이팅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책의 도입부에 단순한 머릿말과 목차 후 본문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네 명의 저자를 짤막하게 인터뷰한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쓴 네 명의 저자가 어떤 사람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작품을 왜 좋아하는지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미리 알 수 있어서 이 인터뷰 챕터는 뒤에 펼쳐질 본격적인 작품 해설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주었다. 그러나 비단 그 차원에서가 아니라, 이 인터뷰 구간은 마치 실제로 독자인 내가 미술관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을 연상시키는 장치이기도 하다. 도슨트 해설을 들을 때면 항상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도슨트가 간단하게나마 자기 소개를 하고 본격적인 해설을 시작하니 말이다. 내 방에서 마음으로 떠나는 이탈리아 여행으로, 아주 손색없는 도입부라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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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국가공인 가이드들이 작품을 잡고 해설을 해주어서 그럴까, 이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느꼈던 첫 번째 감상은 뻔하지 않아서 너무 좋다는 점이었다. 이탈리아는 그야말로 예술가들의 나라였고, 회화뿐만 아니라 조각 등 다양한 작품들이 다수 남아있기 때문에 사실 누구나 익히 아는 유명한 작품들로만 구성하더라도 충분히 한 권의 분량을 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들은 누구나 익히 아는 그 명작들도 다루기는 하지만, 그 외에 예술에 깊은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 아니라면 잘 모를 법도 한 작가 및 작품들도 두루 다루고 있었다. 특히 그 작품을 맥락 없이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작가의 배경이나 비하인드 스토리, 그리고 해당 작품에 대해 추가적으로 고려해볼 만한 감상 포인트까지 짚어주어서 확실히 더 작품이 깊게 와닿는 느낌이었다.


또한 네 명의 저자들이 함께 이탈리아의 작품들을 다루다보니, 한 도시를 다루는 챕터 내에서 동일한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나오기도 했다. 작가가 중복되어 나오더라도 저자마다 작가에 대해 서로 다른 시각에서 조명하기 때문에 작가에 대해서도 굉장히 입체적으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좋았다. 작가로서는 아주 천재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한 사람이, 인간적으로는 매우 괴팍한 경우도 있기에 이런 예술가를 각 저자가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나 역시도 다각도로 인물의 배경에 대해 이해해볼 수 있었다.


또한 이탈리아 하면 생각하기 쉬운 중세, 르네상스 전후 그리고 범위를 좀 더 넓히자면 근대까지의 작품들만 다루리라고 예측하겠지만 "90일 밤의 미술관: 이탈리아"는 그렇지 않았다. 쉽게 예상하기 힘든, 현대적인 작품들까지도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인상적이게 와닿았다. 유럽, 그 중에서도 이탈리아의 미술 작품을 생각하면 사실 우리 머리 속에서 현대적인 작품들이 우선순위를 차지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저자들이 이탈리아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왔던 가이드들이어서 그런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현대적인 작품들과 이탈리아를 연결시켜, 이탈리아의 예술에 대한 인식을 확장시켜 주었다. 이탈리아에 있으리라고 생각지도 못한 작가들의 작품들도 현지에 소장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나면 누구나 이탈리아가 더욱 궁금해질 것이다. 이 책을 즐겁게 읽은 나부터, 이탈리아에 대한 관심이 더욱 생기고 무엇보다 여행을 가보고 싶다는 열망이 마음 속에 생기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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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지 별로 다루는 작가와 작품들이 모두 인상적이었지만,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몇 가지 작품을 추려보고자 한다. 먼저 첫 챕터인 로마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고흐의 피에타였다. 고흐가 목사가 되고자 했으나 시험에 낙방해서 되지 못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가 피에타를 남겼다는 것은 몰랐다. 그리고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와 함께 고흐의 피에타도 바티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는 것은 더더욱 알지 못했던 소식이었다. 죽어가는 그리스도의 모습에 고흐 자신의 모습을 투사하여 담아낸 것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


아름다운 작품들이 수없이 많은 피렌체에서 한 작품을 고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는 꼭 실물로 보고 싶은 작품이다. 카라바조의 화풍을 이어받아 테네브리즘이 반영된 작품들은 실제로 보면 더욱 압도적인 느낌이 들곤 한다. 여자가 화가로서 활동하기 정말 어려웠던 17세기에, 냉혹한 현실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뛰어난 재능을 선보인 그가 강인하고 능동적인 유디트를 그려낸 이 작품은 작품의 내용 상으로도, 예술가 본인의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그 무엇에도 비할 수 없이 귀하다. 사회적 억압을 베어버리고 승리를 거머쥐는 미래를 상상했던 그의 위대함을 실제로 목도한다면 그 순간 분명히 전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밀라노에서 만나볼 수 있는 작품들 중에서 유독 기억에 남은 것은 바로 움베르토 보초니의 '탄성'이었다. 이 작품은 1912년 작품이기 때문에 굉장히 현대적이다. 특히 그가 미래파 화가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작품은 보편적으로 생각하기 쉬운 구성의 작품이 결코 아니다. 게다가 이 작품이 가장 뇌리에 깊게 남은 이유는, 움베르토 보초니가 바로 팝아트의 선구자 중 한 명인 로이 리히텐슈타인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기 때문이다. 현재 갤러리아포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로이 리히텐슈타인 전을 가보면, 움베르토 보초니의 '탄성'에 영감을 받아 리히텐슈타인이 만든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정적인 화폭 속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역동감은 쉽게 잊혀지는 것이 아니다. 그 영감의 근원인 움베르토 보초니의 작품이 밀라노에 있다면, 그건 결코 놓쳐선 안될 인생 작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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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인해 해외여행이 요원한 이 시기에, 도서 "90일 밤의 미술관: 이탈리아"는 마음으로 떠나보는 이탈리아 여행을 경험하게 해주었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이탈리아에 사는 누군가의 유튜브 브이로그를 볼 수 있기도 하고, 블로그 포스팅을 볼 수 있기도 하지만 텍스트와 사진을 통해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그려보는 이탈리아는 다른 간접경험 방법들보다도 훨씬 더 깊게, 그리고 오랫동안 내 마음 속에 남을 것 같다. 생각하는 것조차 노력하고 애써 연습하지 않으면 녹슬고 마는 이 시대에, "90일 밤의 미술관: 이탈리아"는 마음으로 여행을 떠나며 내 정서를 풍부하게 만드는 동시에 멈춰있던 내 머릿속을 부드럽게 기름칠해 주는 것 같았다.


언젠가 다시 마음 편하게 여행을 떠나도 되는 시기가 온다면, 그 때엔 망설이지 않고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보고 싶다. 어릴 적엔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 그 곳을 굳이 찾지 않았지만, 이제는 시간과 기회 그리고 가능성이 주어진다면 언제든 그 순간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한다. 그러니 건강한 상태로 이탈리아를 찾을 수 있을 때, "90일 밤의 미술관: 이탈리아"를 통해 내가 간접적으로 느꼈던 그 벅찬 감동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느껴보고 싶다.


"90일 밤의 미술관: 이탈리아"을 통해 마음 속을 따뜻하게 채우는 감동을 느껴서 그런지, "90일 밤의 미술관" 다른 시리즈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여행을 갈 수 없는 이 시기에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유럽과 그곳의 아름다운 예술작품들을 느껴보고 싶다면, 추운 겨울동안 동양북스의 미술관 시리즈들을 탐독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예술작품의 감상, 인문학적 사유 그리고 유럽여행을 한꺼번에 즐겨보고 싶은 모든 이에게 최선의 선택이 될 것이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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