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가 전시를 보는 이유 [미술/전시]

전시가 남기는 가치
글 입력 2022.01.09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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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끼는 동생이 내게 물었다. 전시는 왜 보는 거냐고. 자기는 전시를 봐도 무엇을 느껴야 할 지 감이 오지 않아 막막하고 그러다 보니 심리적인 진입장벽이 높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전시회를 같이 가 달라는 귀여운 부탁이었지만 나 스스로에게도 던지고 싶은 질문이었다.

 

전시장 다니는 것을 취미로 삼게 된 것은 스무 살부터다. 대학에 입학하고 오리엔테이션 날 옆에 앉았던 친구는 전시를 좋아하냐고 물었고, 나는 그 친구와 친해지고 싶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 때부터 예술을 좋아하는 ‘척’이 시작되었다. 수업이 없는 날 같이 박물관과 미술관을 다니는 우리 모습이 멋져 보였고, 이 ‘멋진 척’을 계속 하고 싶어서 다양한 전시를 보러 다녔다. 그랬더니 재미가 따라왔다. 그렇게 좋아하는 ‘척하기’가 진짜 ‘좋아하는 것’이 돼버렸다.

 

그렇게 전시나 예술작품, 문화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조금씩 쌓여갔다. 박물관의 유물이 아닌 이상 문화와 예술 사이의 끈끈한 관계성을 이해하지 못하던 내가 이제는 예술이 예술가 개인의 성취를 넘어 시대의 정황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신빙성 있는 매개체임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시대를 읽기 위해 전시를 본다고 하기에는 너무 거창한 감이 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전시를 보는가? 뭔가를 본다는 행위는 즐거움과 슬픔 같은 감정을 주기도, 지루할 땐 시간을 죽이기도 한다. 또 유익한 정보나 가치를 전달해 나를 더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결국 누군가의 시선과 주의를 기울이는 시간은 어떤 형태로든 가치를 지니게 된다. 그렇다면 전시 장소까지 이동하는 귀찮음과 쏟아지는 볼거리 사이의 갈등을 무릅쓰고 얻게 되는 정보가 전시를 보는 이유일까? 그도 아니면 작품의 심오한 미적 가치나 재미 때문일까?

 

‘전시를 보고 나면 반드시 무언가를 느끼고 남겨야 하는가?’라는 질문도 해봤다. 전시를 통해 특정한 경험과 기억을 만들었으니 그걸로 만족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경험과 기억은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 결국엔 ‘무언가’를 남긴다.

 

알랭 드 보통의 [사랑의 기초]라는 소설이 떠오른다. 보통은 이 작품에서 오래된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낭만적 사랑의 결과로 결혼에 이르게 된 두 사람이 이후 어떤 관계에 이르게 되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소설 초반에서 주인공 벤은 한 여자에게 빠져 그녀가 공부하러 열람실에 들어오는 순간에 맞춰 자세를 고쳐 앉고, 전공 과목도 아닌 통화정책 수업을 듣기도 한다. 카페에 가는 시간도 우연인 척 맞춘다. 그리고 작가는 벤이 그녀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다는 사실이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고 묘사한다. ‘이러한 감정’은 분명 사랑일 것이다.

 

이야기가 더 진행되면 벤은 불안정한 사랑에 겁먹고 직업적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그 와중에 외도를 저지르기도 하고 바로 다음 날 아이를 생각하며 죄책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벤과 아내 엘로이즈의 관계가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그 사랑이 ‘이상적인 사랑’의 모습은 아닐지 몰라도 관계를 지키고자 두 사람이 고군분투 하는 모습은 결국 사랑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사랑을 정확히 정의할 순 없다. 하지만 소설 속 인물의 주관적인 사랑의 감정과 경험을 읽다 보면 사랑할 때의 일들과 그 때의 감정, 그리고 그 사랑이 자신에게 남긴 것들을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게 된다.

 

전시도 비슷하다. 백 사람의 사랑이 각각의 다른 색과 자기만의 결을 지니고 있듯이 전시도 정해진 하나의 답이 없다. 그러면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서 ‘나는 왜 전시를 보는가?’ 가장 쉽게는 아름답고 멋진 작품을 감상하는 거다. 아름다운 건 보는 것만으로도 ‘카타르시스’라는 추상을 실체로 경험하게 한다. 다음은 예술가의 인생을 알고 간접적으로나마 그들의 삶을 느껴보고 싶어서다. 한 분야에 인생을 건 사람들이 만들어낸 산출물(작품)에는 그 인생의 간절함, 소망, 정신 같은 게 담겨 있다. 그들의 삶을 통해 내 삶의 폭과 깊이가 풍성해지기를 기대하는 거다.

 

또 작품과 작품 속에 담긴 스토리를 본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예술작품에는 시대 상황과 문화적 배경, 당시 사람들의 시대정신이 담겨 있기 때문에 이들을 잘 엮으면 하나의 서사가 완성된다. 시대정신과 문제점에 대해 작가가 깊이 고민한 것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한 작품들이 시간과 장소를 건너 내 앞에서 펼쳐지는 거다. 그리고 나는 자연스럽게 내가 살고 있는 시대와 장소에 그들의 정신을 갖다 놓고 비슷한 고민을 해보는 것은 ‘지적인 놀이’로서도 제법 유용하다.

 

이유는 또 있는데 낯섦이 주는 건강한 긴장감을 즐기는 데도 전시는 괜찮은 도구다. 일상을 살다 보면 물건, 장소, 사람, 시간에 익숙해진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도 있지만 금방 지루해지고 싫증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익숙해지는 것에 따라붙는 나태함에 내 삶이 지배당한다. 이 때 필요한 게 ‘낯섦’이다. 전시는 고요하게 흘러가는 일상에서 ‘낯섦’을 가장 구체적으로 체험하게 하고 그 낯섦은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그 긍정적 에너지의 원천인 낯섦을 주기적으로 충전하는 게 나한테는 전시를 보는 것이다.

 

내가 전시장을 찾는 이유를 두서없이 나열했지만 전시의 의미는 무엇인지, 전시가 남기는 가치는 어떤 것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본 전시와 다른 사람이 본 전시의 경험을 공유하는 순간 내게, 그리고 그 사람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계속 나누다 보면, 언젠가는 전시를 왜 보는지, 전시를 봄으로써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지, 전시를 보는 행위는 다른 것을 보는 것과 어떻게 다른지 어렴풋이 윤곽을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신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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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조누피
    • 에디터님도 전시 관람을 처음에는 물음표로 시작하셨다는걸 알게되어 용기가 생겼어요!
    •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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