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씁쓸한 레몬향을 남기고 떠난 자를 통해 보는 미래 - 언내추럴 [드라마/예능]

글 입력 2022.01.07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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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내추럴(アンナチュラル)

 

편성 10부작(2018.01.12. ~ 2018.03.16.)

연출 츠카하라 아유코

각본 노기 아키코

출연진 이시하라 사토미, 이우라 아라타,

쿠보타 마사타카, 이치카와 미카코, 마츠시게 유타카 등

 

줄거리

주인공과 동료들이 부자연스러운 사인으로

죽음에 이른 시체들의 억울한 원인을 규명해가는

미스터리 의학 드라마


 

스포일러 요소가 포함되어 있음.


 

 

법의학(Forensic Medicine)

 

인간의 죽음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그들의 인과관계를 밝혀냄으로써 법 운영과 인권 옹호에 이바지하는 학문. 변사자에 대한 검안, 부검 등을 통해 살인이나 상해에 대한 강력한 증거를 제공해 범인 색출, 죄의 유무 판정, 형량의 정도 등을 결정하는 데에 응용됨.

 

 

언내추럴은 우리에게는 조금 생소한 ‘법의학’을 주제로 한 일본 TBS 테레비의 추리물로, 부자연사 규명 연구소(Unnatural Death Investigation)가 풀어나가는 문제를 다루는 드라마이다. 따라서 UDI의 법의학자 미스미 미코토(이시하라 사토미)와 나카도 케이(이우라 아라타), 임상병리사 쇼지 유코(이치카와 미카코), 기록 보조 쿠베 로쿠로(쿠보타 마사타카) 그리고 소장 카미쿠라 야스오(마츠시게 유타카)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UDI는 이름 그대로 의문스럽게 사망한 인물들의 억울한 죽음 뒤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친다. 즉 보통 사람을 살리는 데 초점을 맞추는 의학자들과는 달리 이미 숨을 거둔 사람들을 대신하여 그들이 전하고 싶었던 말을 전하고, 남은 사람들이 그를 편안히 보내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친구들의 강력한 추천으로 보기 시작한 언내추럴은 위와 같은 이유로 나에게 큰 인상을 남겼고 동시에 법의학이라는 학문 또한 나의 관심 분야에 살포시 추가되어, 책도 찾아보고 이런저런 영상도 보며 죽음이 마냥 무서운 것만은 아님을 알아가는 중이다.

 

 

 

그저 목숨을 빼앗았다는 돌이킬 수 없는 사실 뿐


 

 

“저희 법의학자가 하는 일은 시신을 조사하고 검사해서 정확한 사인을 파악한 후 사실을 감정서에 적는 것입니다. 물론 그곳에 범인의 감정과 마음은 적혀 있지 않습니다. 시신 앞에 있는 건, 그저 목숨을 빼앗았다는 돌이킬 수 없는 사실 뿐입니다. 범인의 마음 같은 건 알 수도 없고, 당신을 이해할 필요도 없죠. 불우한 어린 시절 따위에는 관심도 없고 동기가 뭐든 상관없어요. 다만 동정하게 됩니다. 이 불쌍한 피고인에게 말이죠. (…) 아무도 그를 구하지 않았어요. 당신도 자기 자신을 구하지 못했고요. 당신의 고독을 진심으로 동정합니다."

 

언내추럴 10화 중, 미스미 미코토

 

 

미코토에게 있어서 범죄자의 주변 환경과 그의 개인적인 동기는 그가 저지른 일을 파악하는 데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유가 어떻든 법의학자인 미코토의 눈앞에는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시신이 있을 뿐이고, 범인은 그의 하나뿐인 목숨을 빼앗은 사람이니까.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할 수 없기에 범인을 동정하되, ‘그래서 그게 뭐?’인 것이다. 우리는 굳이 왜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저지른 인물들에게 ‘희대의, 사상 최악의 악당’과 같은 수식어를 붙이는가? 또 우리는 왜 그들의 학력에, 범죄를 저지르기 전의 평소 생활에 집착하는가?


범죄자는 그저 범죄자일 뿐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지, 평소에 그가 주변인들과 어떤 관계를 맺었고 그 사이에서 어떤 평판을 지니고 있었는지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가 좋은 환경에서 자랐든 좋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든 그리고 어떤 행위를 한 이유가 있든 없든 그가 범죄자라는 사실은 여전하다.


뿐만 아니라 작가는 사회 속 여성의 입지, 가출 청소년, 노동자와 기업의 불평등한 관계, 학교 폭력 등 현 사회에서 주목받고 있는 사회 문제를 매회 다룬다. 한 편당 한 사건이 등장하고 편당 길이도 그리 길지 않아 해결하는 과정에 있어 조금은 아쉬운 부분도 있었으나, 전반적으로 제각각 다른 사건들을 깔끔히 해결하면서도 전체적인 흐름을 이어가는 떡밥을 하나둘 던지는 구성이 좋았다.

 

 


가슴에 남아 사라지지 않는 씁쓸한 레몬 향기


 

 

 

언내추럴의 OST는 이미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요네즈 켄시(米津玄師)의 Lemon이다. 사실 나는 한창 이 곡이 유행했을 때는 제목과 가수만 들어봤을 뿐 잘 알지는 못했는데, 드라마를 보며 기가 막힌 타이밍에 흘러나오는 이 곡이 뭔가 싶어서 찾아봤더니 이미 나를 뺀 모두가 알고 있는 Lemon이라는 걸 알고 살짝 머쓱했었다.


그렇다면 왜 하필 레몬일까? 물론 언내추럴이 죽음, 미스터리, 수사, 추리와 같은 것을 주제로 한 드라마치고는 아주 무거운 분위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생각만으로도 상큼한 향이 온몸을 감싸는 듯한 레몬과 어울리는 분위기는 아니다.


정답은 ‘상큼한 향’에 있었다. 바로 레몬의 이 상큼한 향이 시체가 부패하는 냄새를 가려주는 역할을 해, 시체를 주로 다루는 곳에는 레몬향이 그득하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곡에서 느꼈던 쓸쓸함에 묘한 서늘함까지 더해진 듯했다.


특히 곡의 가사는 극 중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나카도 케이의 상황에 딱 들어맞아, 이들의 서사를 다루는 9화에서 곡의 애절함이 극에 달한다. 어느날, 늘 그렇듯 부검대 앞에 서서 시체가 담긴 가방의 지퍼를 내린 나카도는 그곳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과 마주하고 만다.


바로 그와 결혼을 약속한 연인 코지야 유키코이다. 나카도는 신원 미상의 시신으로 들어와 부검대에 놓인 그를 보고 멈칫했으나, 그를 이렇게 만든 이유를 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아무런 티를 내지 않고 부검을 진행한다.


실은 이 상황에서 나카도는 부검을 진행하지 않았어야 한다고 한다. 서로 연관된 사람일 경우 개인의 감정이 들어가거나 부검 결과가 조작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꿋꿋이 진행한 탓에 결국 나카도는 연인을 살해하고 증거 인멸을 시도했다는 누명을 써, 최종화에서 이 사건을 해결하기 전까지 유키코의 부모님과 검사인 카라스다 마모루의 오해를 산다.


 

あの日の悲しみさえ あの日の苦しみさえ

그 날의 슬픔마저 그 날의 괴로움마저

その全てを愛してたあなたとともに

그 모든 것을 사랑했었던 당신과 함께

胸に残り離れない苦いレモンの匂い 

가슴에 남아서 사라지지 않고 있는 씁쓸한 레몬의 향기

(…)

何をしていたの 何を見ていたの 

무엇을 하고 있었니 무엇을 보고 있었니

私の知らない横顔で

내가 모르는 옆모습으로

 

 

Lemon은 매화 다른 사건이 벌어짐에도 불구하고 모든 상황에 들어맞는 엔딩곡이긴 하지만 묵묵히 부검을 마친 후 애인과 둘만 남자, 그대로 주저앉아 펑펑 우는 나카도의 모습 뒤로 흐르던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부검을 진행하면 자신이 오명을 쓸 거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제 손으로 진상을 밝히고야 말겠다는 그의 심정, 그리고 10년 가까이 연인의 사건을 풀고자 노력한 그의 서사와 무척 잘 어울리는 곡이다.

 

 


죽음을 통해 보는 미래


 

 

“법의학은 미래를 위한 일이야”

 

언내추럴 1화 중, 미스미 미코토

 

 

평소에는 잊고 살지만 사실 삶과 죽음은 이어져 있다. 삶이 있으면 필연적으로 죽음이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꺼린다. 왠지 나에게는 멀리 있는 일처럼 느껴지고,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바쁜데 괜히 골치 아픈 생각 하나 늘리는 것도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도 아닌 나의 것, 나의 삶이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모든 일에는 그를 진행하는 과정과 대미를 장식하는 마무리가 있듯, 우리의 삶도 그렇게 여겨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죽음을 생각한다고 해서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도착점이 어딘지 알면 내가 가야 할 코스를 짜기 수월해진다. 국내 법의학자인 유성호 교수님의 말씀대로 삶이 유한하다는 걸 인식했을 때 우리는 짧은 기간 동안 더 열심히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언내추럴은 우리가 죽음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 이미 생을 마친 사람을 통해 미래를 준비한다는 미코토의 말이 조금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아마 이 말은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다른 이의 생을 더 윤택하게 만들어주겠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참고 자료

유성호(2019),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21세기북스

채널예스, 신연선, 법의학자 유성호 “대비하지 못한 죽음이 너무 많아”, 2019.02.13.

 

 

[유소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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