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성과 감성, 대학 교육이 나아가야 할 길 [문화 전반]

글 입력 2022.01.06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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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엄밀한 사유, 신중한 판단, 일관된 추론을 가르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과제를 가지고 있지 않다.”

 

프리드리히 니체

 

  

니체의 이 말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가 말한 사유와 판단 그리고 추론의 의미는 무엇일까? 필자는 그 답을 이성과 감성이라는 인간의 2가지 주요한 특질에서 찾았다. 니체가 말한 사유와 판단 그리고 추론은 모두 이성(理性)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그리고 우리가 이토록 엄밀하게 사유하며 신중하게 판단하고 일관된 추론을 펼칠 수 있는 것 역시 인간임에 누릴 수 있는 축복, 이성 덕분이다. 그렇기에 니체의 저 발언은 명확하기 그지없다. 학교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학생들에게 이성적 사고를 가르치는 일에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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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학교에서 교육을 통해 인간의 이성적 요소를 성장시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니체가 이 말을 더욱 강조했던 이유는 그가 살았던 시대적 그리고 사회적 배경에 있다. 그가 살던 유럽은 종교의 광풍이 오랫동안 그 세계를 지배했다. 비록 18세기를 거치며 근대적 사고가 자리 잡아 가고 있었지만, 유럽 사회의 기저를 이루고 있던 기독교적 가치관의 아성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이야기했듯이 니체의 목표는 이러한 기독교적 가치관을 파괴하는 일이었다. 그런 니체에게 있어서 중세 유럽부터 이루어져 왔던 기독교적 교육방식 그리고 신학적 교육방식은 수정돼야 마땅했다.

이처럼 종교적 교육을 해체하고 이성을 강조하는 교육으로 나아가는 일, 그것이 니체가 바라는 참된 교육이었을 것이다. 니체뿐만 아니라 이성과 합리성에 대한 우리 세계의 강조는 18세기부터 그리고 20세기까지 계속됐다. 이 시기를 거치며 근대 교육의 학제와 교육과정은 규율화, 체계화되며 학생들의 이성을 교육하는 데 전념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교육 방식은 어떠한가? 니체의 말처럼 우리나라의 교육체제도 세계적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필자의 경우만 하더라도 초등교육과 중등교육, 대학교육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성적 사고의 함양에 초점을 맞춰 교육받았다.


하지만 필자는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의문을 던지고자 한다. 과연 니체의 학교관이 우리가 사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가? 이성적 사고만을 강조하는 교육이 불변의 진리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가 반드시 생각해 봐야 할 사안이다. 우리는 보통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이유로 이성적 사고를 할 수 있다는 점을 꼽는다. 그리고 우리는 지난 인류의 역사 속에서 특히 최근 300년간 충분히 이 점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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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최근 우리는 스스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바로 인공지능과 로봇 때문이다. 이들은 우리와 똑같은 이성적 사고를 한다. 이들은 엄밀한 사유 신중한 판단 일관된 추론을 통해 가장 합리적인 해결책을 도출해낸다. 그렇다면 인간과 이들 존재의 차이는 어디서부터 찾아야 하는가? 그 해답은 인간의 감성(感性)에 있다.


감성이라는 개념은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하다, 최근 들어서야 그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 이후 취업 등 노동 시장에 던져지는 우리에게 있어 기초 지식을 바탕으로 한 이성적 사고는 필요하다. 하지만 사람을 만나고 관계 맺는 일이 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이런 관계를 맺음을 배우는 것은 이성을 가장 우선시하는 교육에서 선행되기 어렵다.

 

물론, 어떤 이들은 그러한 인간 소양에 대한 기초적인 교육은 이미 초등과 중등교육에서 마쳐야 하지 않아야 하겠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현행 입시 위주의 교육방식에서 감성 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대학 교육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대학교육의 주체는 청년들이다. 청년들, 그리고 20대는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이제 막 내디딘 인격체이다. 이들은 아직 시련에 아프고 연약한 존재다.

 

이들에게 있어서 이성만큼 돌보고 가꿔야 할 것이 감성이다.  특히, 한 인간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20대 시기의 경험과 감정들은 앞으로의 인생에 있어서 큰 자양분이 된다. 이런 감성의 자양분을 통해 더 큰 상상력을 얻고 새로운 창조로 나아갈 수 있다. 더구나 자아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시작해보는 것 역시 20대 시기이다. 그만큼 이성과 감성의 조화를 통한 자신의 성장이 크게 이루어질 수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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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대학교육에서만큼은 반드시 감성 교육이 이성 교육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사실 현행 대학교육은 취업을 위한 스펙 양성소에 가까워지는 형국이다. 이로 인해 대학 교육은 학생들의 깊은 사유를 할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깊은 사유와 고민은 이성과 감성이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지점이다. 따라서 대학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이성과 감성이 함께 만날 수 있는 교육일 것이다. 감성적 교육이 이성적 교육방식과 잘 조화를 이루었을 때 하나의 인간이 교육됐다고 말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접근은 이미 우리 대학교육에서도 시도되고 있다. 감성 교육에 대한 세계적인 흐름에 발맞춰 우리 대학들도 큰 노력을 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도 문학이나 영화 등을 콘텐츠로 한 교양 수업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사유를 통해 자신의 감성적 근원과 만날 수 있는 인문학은 감성 교육의 주된 분야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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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계 안팎에서는 전인(全人)교육이란 말을 자주 사용한다. 전인 교육의 목표처럼 인간이 지닌 모든 자질을 전면적으로 그리고 조화롭게 육성하려면 인간의 이성과 감성을 모두 포용할 수 있는 교육이 절실하다. 대학 교육만이 조화된 이성과 감성 교육을 가능케 할 수 있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 제목처럼 ‘이성과 감성’은 언제나 함께 바라봐야 한다. 감성 교육과 이성 교육이 하나 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것, 그것이 현재 대학 교육이 나아가야 할 분명한 지향점이다.

 

이에 필자는 니체의 말에 몇 자를 보태고 싶다. “학교는 엄밀한 사유, 신중한 판단, 일관된 추론을 가르치는 일 그리고, 인간의 감성을 키우는 일보다 더 중요한 과제를 가지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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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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