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잘 다듬어진 화살, 올곧은 여행자로 살아가기 - 소마

『소마』, 채사장, 웨일북, 2021
글 입력 2022.01.01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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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미래를 알 수 없지만, 현재와 과거의 점을 연관 지어 볼 수 있다. 현재와 미래가 어떻게든 연결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믿음을 가져야만 한다.”


위는 스티브 잡스가 남긴 말이다. 지금의 선택으로 행해진 ‘점’들은 사라지지 않고, 분명 찍혀있어서 어떠한 ‘선’을 이룰 것이라는 뜻으로, 현재 쓸모없는 일은 없음을 밝힌다. 채사장의 소설, 『소마』를 읽으면서 이 명언이 떠올랐다.

 

소설의 주인공, 소마는 생애주기별로 다른 이름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는 소마였다가, 사무엘이었다가, 아틸리였다가, 다시 소마가 되며, 그의 무수한 점들은 결국 자신의 존재를 형성해나가는 ‘선’을 이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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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주인공의 서사를 읽게 되면, 순간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빠져든다. 시공간의 변화를 이미지로 상상하게 하는 작가의 문체는 작품의 입체감을 더한다.

 

한편 ‘소마’라는 이름은 “대립하는 모든 것이 아이의 삶 안에서 모순 없이 뒤섞이고, 물과 같고 바람과 같고 허공과도 같다는 의미”를 지닌다. (p.15) 그도 그럴 것이 소마는 참 휘몰아치는 인생을 견딘다.

 

 

 

긴 여정의 시작


 

그의 긴 여정의 시작은 아버지가 던진 화살부터이다. “화살을 끝까지 주시”하라는 아버지의 말에 소마는 늑대처럼 화살이 당겨진 방향을 향해 빠르게 달리기 시작한다. (p.18)


“화살이 저수지를 넘어갈 때 소마는 아침 햇살에 수면이 보석처럼 빛나는 것을 보았다. 그때, 그 순간에, 찰나의 시간 동안 소마의 마음에는 그리움의 감정이 맹렬히 솟아올랐다. 솟아오른 감정은 소마를 가득 채우고 넘쳐흐를 것만 같아 소년은 벅차올랐다. (중략) 그것은 마치 타향 생활에 지친 여행자가 고향으로 향하는 아련함과 같았고, 죽음을 앞둔 늙은이가 마지막 순간에 자기 삶의 의무를 깨닫게 되는 후회와도 같았다.” (p.19)


해가 뉘엿뉘엿 지고 그리운 집밥 냄새가 떠오를 때, 어린 소마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는 손에 잡힐 수 없을 정도로 보이지 않는 화살에 애써 눈물을 참다가, 아버지의 말을 떠올린다.


“잘 다듬어진 화살은 궤적 위에서 방향을 틀지 않는다. 올곧은 여행자는 자신의 여정 중에 길을 바꾸지 않는다. 소마는 잘 다듬어진 화살이고 올곧은 여행자다. 언젠가 삶의 여정 어딘가에서 길을 잃을 때도 있을 게다. 하지만 소마는 다시 본래 자신의 길을 찾게 될 거다. 걱정의 시간도 후회의 시간도 너무 길어질 필요는 없다. 아버지의 말을 명심하거라.”(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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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마 자체가 잘 다듬어진 화살이었기에, 잠시 길을 잃더라도 다시 잘 찾아갈 수 있다는 아버지의 당부는 각자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 모두에게 응원이 되는 말이다. 이교도라는 이유로 탄압받던 소마의 마을은 소마가 화살을 찾으러 간 사이 외부 침입자들에 의해 파괴되었고, 소마는 한순간에 가정을 잃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에 자리 잡은 아비키야도 만나면서 본격적인 성장이 시작된다.


소마는 양모가 되어준 한나의 저택에서 그의 아들로 지내고, 청년기에는 왕립기사단의 단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이 시기 소마의 의지대로 제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면서 소중했던 우정도 멀어지게 되고, 희망을 품었다가 좌절하는 경험도 맛본다. 이렇게 실패도 아름다울 수 있는 청년기에는 자신의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나간다. 그는 전장에서 적군이 아닌 사람들을 죽여야 하는 진실을 마주하며 변모하게 되는데, 책의 저자는 이러한 소마의 각성을 아래 문장에서 설명한다.


“움켜쥐었던 과거를 내려놓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미련과 후회를 이겨내고 과거의 자신을 버릴 때, 우리는 비로소 아이에서 청년으로, 다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부록, p.21)


유약했던 자신의 과거와 싸운 주인공은 20년 후 ‘아틸리’라는 이름으로, 전장의 영웅이자 폭군이 된다. 그는 자신이 살던 땅을 정복하며, 어린 시절 상처만 가득했던 한나의 저택에 들른다. 그리고 한나의 오누이였던, 이제는 늙어버린 바가렐라를 바라보며 이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연민과 동질감을 느낀다.


전에는 ‘꼭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다가, 닮은 행동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경우처럼, 마음먹은 대로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게 ‘삶’이라고, 작가는 우여곡절 소마의 인생 스토리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목적지에 도달한 뒤, 삶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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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소마는 피의 복수로, 천하를 손에 얻었고 자신을 평생 괴롭히던 불안을 떠나보낼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 이후의 삶까지 올바르다고 보기는 힘들다. 여러 명의 여인과 유흥을 즐겼다는 점, 손녀의 나이만큼 어린 이오페를 임신하게 만든 점 등의 내용은 현 독자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당시의 시대상을 감안하고 읽더라도, 올곧았던 소마의 캐릭터가 붕괴된 느낌이라 상당히 아쉽다.


하지만 배울 점은 목적지에 도달한 뒤, 삶을 대하는 태도이다. 그는 친부가 당겨준 올바른 화살을 획득했지만, 자유보다는 방종에 가까운 행실을 보였다. 화살을 다시 올바른 방향으로 연장하지 않고, 손에만 굳게 잡아 권력을 유지하려고 하면 결국 휘어질 수밖에 없음을 느끼게 해준다.


결국, 허공으로 사라지는 소마의 인생의 끝자락은 쓸쓸했다. 그는 감사와 사랑보다 대립 속에서 혐오와 미움만 가득했기 때문이다. 소마는 눈을 감기까지, 끊임없이 자신에게 내재한 화살의 방향을 물었고, 아비키야의 존재처럼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자 했고 답을 얻었다. 필자 역시 책장을 덮으며, 어릴 적 소마에서 늙은 소마가 되어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단시간에 앉은 자리에서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보게 하는 작가의 필력에 놀라울 따름이다.


*

 

소마의 삶과 관련해 임화의 시, <자고 새면 – 벗이여 나는 이즈음 자꾸만 하나의 운명이란 것을 생각코 있다>가 떠오른다. 이 시에는 “푸른 잎을 즐기기엔 나의 나이가 너무 어리고 / 마른 가지를 사랑키엔 더구나 마음이 앳되어”라는 시구가 등장한다. 소마 역시 푸른 잎 같은 청춘을 즐기기엔 너무 미숙했고, 그의 마른 가지 같은 결점을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었다.

 

잎이 시들기 전까지 충분히 즐기며 사랑하고, 마른 가지마저 아껴주어야 함을 다시 느끼게 된다. 또 분명 화살의 끝은 있을 것이고, 그 길을 따라가는 모든 행위가 과거의 ‘점’이 되어 미래의 선으로 화살을 만날 테니, 걱정의 시간을 줄이는 편이 현명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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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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