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격주의 문학 이야기 - 오늘의 가족 [도서/문학]

글 입력 2022.01.01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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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소설은 송지현 작가의 「오늘의 가족」이고, 그 전에 그녀의 두 번째 단편소설집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이 출간되었음을 소개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송지현 작가는 특유의 유머와 재치로 서사를 자유자재로 끌고 다닌다. 친구들이랑 농담하듯이 나눌 법한 이야기들, 주중의 스트레스를 날리고자 주말에 카페에서 만나며 공유할 법한 이야기들. 송지현 작가는 확실히 그런 이야기들을 독자들에게 잘 전달해주는 작가이다. 나는 특히 그녀의 열렬한 팬인데, 문예지의 단편 소설 목록 속에서 그녀의 이야기를 발견하거든 주저 없이 그녀의 작품을 먼저 읽게 된다. 나에게 있어서는 일상을 다시 돌아볼 수 있게 해주고 그 속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발견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작가이다.


이번 단편소설집은 그녀의 첫 단편집인 『이를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에 이어 두 번째로 서점에 선보여졌다. 2년 5개월이라는 짧은 시간만에 새로운 단편집으로 독자를 찾아온 것을 보면 그간 쉼없이 글을 써온 작가의 지난 행보가 짐작된다. 한편 짧은 시간 동안 각각의 소설작품 하나하나는 구성이 더욱 단단해졌고 내용도 그리 단순하게만은 느껴지지 않아 복합적인 재미를 독자들에게 선사하는 것 같다. 독자와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지속가능한 소설읽기를 완성해나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서점의 독자들을 찾아온 기념으로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에 수록된 작품 하나를 간단하게 리뷰해보려 한다. 그래서 오늘 소개할 단편소설은 「오늘의 가족」이다. 「오늘의 가족」은 계간지 《문학과 사회》 2020년 여름호에 발표된 작품이다. 외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면서 모이게 된 외갓집 가족들을 만나며 보낸 3일에 대한 이야기이다. 외할아버지의 이야기, 어머니와 6남매의 이야기, 그리고 그 밑에 손주들의 이야기는 가족이라는 체계 아래서 나름의 연관성을 가지며 얼기설기 엮여 있다. 동성동본, 이혼과 재혼, 종교와 전통 등의 이야기들은 외면할 수 없는 무게감 있는 것들이지만, 송지현의 재치 속에서 이들 이야기의 무게감은 사라진다. 한 명 한 명의 인물들, 그들의 살가운 목소리로 소설은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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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는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다 외할아버지가 위급하다는 연락을 받고, 새벽 늦게까지 술을 마시느라 다음날 아침에야 장례식장으로 향한다. 미주가 도착했을 때 외할머니와 어머니 6남매가 상복을 입고 있었고, 그 뒤에는 돌아가신 큰외삼촌의 아들들도 오랜만에 모습을 보인다. 3대가 전부 모인 장례식장에서 3일간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장례식이 진행되면서 미주는 한동안 잊었던 기억들을 다시 마주하기도 하며, 몰랐던 이야기를 친척들에게 전해 듣기도 한다. 오고가는 이야기 속에서 나타나는 이야기는 말하자면 대충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큰외삼촌이 일찍 돌아가시고 큰외숙모가 일 년만에 재가를 해버렸다는 이야기, 미주의 부모님이 동성동본이라서 특례 기간을 기다리느라 이미 태어난 미주를 큰아버지 호적에 올렸었던 이야기, 큰외숙모가 재혼하면서 사이비 종교를 신봉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래서 큰외삼촌 아들은 발인에 참석할 수 없다는 이야기, 몇 년 전 큰이모와 셋째 이모가 다투었었다는 이야기. 이러한 미묘한 관계들은 다소간 뒤로 제쳐두고 온가족은 장례를 치르며 함께 시간을 보낸다. 밤에 화투를 치고 놀기도 하고, 손녀들은 몰래 담배를 피기도 한다.


 

큰 외숙모는 큰 외삼촌이 죽고 1년 뒤 큰 외삼촌의 친구와 재혼했다. 재혼을 하기 전 그녀는 명절에 미주의 시골집, 그러니까 시댁에 내려와 재혼 소식을 전했다. 그 말을 꺼낼 때 그녀는 프라이팬 앞에 쭈그리고 앚아 동태전을 뒤집고 있었다.

―솔직히, 애들 아빠가 뭐 하나 해준 거 없잖아요. 저 이제 행복할래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고, 미주는 그녀가 소쿠리에 올려놓은 동태전을 집어먹었다. 갓 만든 전들은 기름지고 맛있었다. 한참을 집어 먹고서야 미주는 가족 누구도 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문학과 사회》 2020년 여름호 108면)

 

 

외할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이 미주의 성이 문씨라는 걸 알게 되는 것이 부끄럽다고 했다. 그래도 미주라는 이름은 본인이 지었으므로 말해도 된다고 했다. 꽤나 이래라저래라 하네,라고 어린 미주는 생각했다. 미주의 엄마는 미주라는 이름을 싫어했다. 여자 이름에 아름다울 미를 쓰면 팔자가 사나워진다는 거였다. 그 기저에는 예쁜 여자는 인생이 피곤해진다라는 믿음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미주는 거울을 볼 때마다 본인이 피곤해지는 쪽으로 자랐다. 인생이 피곤해질 정도의 미모란 무엇일까. 그런 인생이 있다면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고 미주는 생각했다. (《문학과 사회》 2020년 여름호 111면)

 


송지현 작가의 소설은 독자에게 있어서 지속가능한 소설읽기의 한 가지 가능성을 보여준다. 소설을 읽는 일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려면 독자가 소설로부터 이질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방식으로 소설이 쓰여야 한다. 소설에 담긴 문장들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구어적으로 나누는 대화들과 상당히 다르고, 심지어 우리가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텍스트들과도 그 문법이 사뭇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소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송지현의 문장은 독자를 소설에 빠져들게 만든다. 송지현의 소설에서는 인물의 독백이나 대화 모두 복잡한 문장부호나 대화 표현 없이, 일반적인 문장이 적히듯 술술 이어져있다. 이러한 문장들은 이질감이 없는 문장이고 그래서 독자들에게 좀더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게 된다. 소설이라는 특유의 형식의 장벽을 낮춤으로써 독자가 쉽고 일상적으로 읽을 수 있는 문학작품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그리고 문장의 형식과 상관없이, 일단 송지현 작가의 이야기는 재미있다. 그녀의 소설 일부분을 인용해 보았는데, 소설의 전체적인 맥락을 알지 못해도 그녀의 문장들이 정말 재미있게 읽힌다. 장례의 공간에서 그녀는 과거를 회상하고, 과거를 회상하면서 장례식장의 엄중한 분위기는 사라진다. 유치하기도 하고 자조적이기도 한 ‘미주’의 생각들이 독자에게 전달되면서 독자는 함께 웃음 짓게 된다. 이러한 문장들은 작품 전체에 걸쳐 계속 등장한다.

 

조금 더 정리해서 말하자면 「오늘의 가족」에서는 전체적으로 한 장면 내에서 분위기가 굉장히 균형 잡힌 듯한 느낌이 든다. 그녀의 장면들은 무거운 이야기를 담고 있어도 곧 가벼운 농담을 통해 분위기를 환기한다. 결국 아주 무겁기만 하거나 아주 가볍기만 한 지점은 존재하지 않고,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그 균형을 유지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송지현의 유머와 재치는 단순한 즐거움만을 위한 유머와 재치라기보다는, 무거움과 가벼움의 경계에 머물고자 하는 유머에 가까운 것 같다. 독자들은 소설의 장면은 아주 가볍지도 않고 아주 무겁지도 않다. 각 장면의 분위기는 그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다.


*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일상 역시 그 경계에 존재하는 것 같다. 우리의 일상은 사회 구조의 쳇바퀴 속에 존재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 소설은 삶의 반영이라서 이러한 면들을 담게 되고, 이러한 소설의 장면들을 통해 우리 일상의 다양한 면들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송지현의 단편소설집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은 그 적절한 균형 속에서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독자에게 전달해준다. 이장욱 작가는 소설집의 추천사에서 “주제의식에 짓눌리지도 않고 서사에 강박되지도 않”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소설가들이 모여서 형성하는 문단도 사실은 하나의 시스템이라서 매시기 특정 주제의식으로 몰려가는 경향이 있다. 송지현 작가의 작품 속에서도 특정 주제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주제에 매몰되지 않고 균형을 맞춰준다는 점이다. 그 균형 속에서 독자는, 송지현 작가의 작품을 언제까지라도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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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현 작가

 

 

[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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