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다.리' 여덟 번째 이야기 : 그럼에도 생명은 '살고 있는', 또 '살게 하는' 것이라 [문화 전반]

글 입력 2021.12.31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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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α), 베타(β), 감마(γ), 델타(δ)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오미크론(Ο)까지. 일명 ‘부스터 샷’마저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는 신종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 소식에 전 세계가 다시 한번 긴장하고 있다. 이미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백신 접종 여부와 상관없이 평생 그리고 반복해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된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구용 치료제 개발 역시 당초 예상보다 늦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더해지며 각국의 방역 전략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팬데믹 초기부터 ‘3T’(검사·확진-역학·추적-격리·치료, Test-Trace-Treat) 원칙을 바탕으로 하는 이른바 K-방역 모델을 수립, 약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시행해오고 있다. 중간중간 간헐적으로 대규모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하면서 몇 차례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다행히 의료 인력의 헌신과 최첨단 정보통신기술(ICT) 및 인프라의 활용, 그리고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 이 세 가지 요소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덕분에 K-방역 모델은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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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하지만, 바이러스와의 공방이 장기전으로 접어들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환자 수에 의료현장에는 과부하가 발생했고 국내외 시장이 멈춰버린 상황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방역지침까지 더해지며 수많은 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은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었다. 각종 돌봄 지원 서비스를 받지 못한 취약계층들은 어느새 관심 밖으로 밀려나 버렸고 일상 속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일종의 ‘자기 규제’를 실천해오던 시민들 역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K-방역 모델 시행 이후 생명에 대한 국가의 ‘통치성’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은 실로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살아가는’ 존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생명과 그 생존 조건이 국가의 완전한 지배와 관리를 받게 되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명의 ‘국유화’는 단순히 국가가 소유하고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크기나 규모가 확보되었다는 의미의 양적 변화뿐만 아니라 국가의 의도에 따라 권력이 배치되거나 제한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의미의 질적 변화까지 아우른다고 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보다 강력하고 세밀한 통치성을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생명에 대한 통치성은 어떻게 확대되고 있을까? 먼저, 우리는 의학적 지식을 통해 생명의 가치가 ‘객관화’되는 현상을 이야기해 볼 수 있다. 예컨대, 매일 똑같은 시간에 진행되는 중앙대책본부 정례브리핑을 한번 떠올려보자. 의학전문가 집단과 국가 관료로 구성된 방역 당국이 미리 규정한 기준에 따라 우리의 생명은 ‘정상’과 ‘비정상’, ‘건강함’과 ‘건강하지 못함’으로 구분되며 계량화·통계화·수치화를 거쳐 하나의 자료로서 재구성된다. 그 이후에도 또 다른 생명을 나누는 기준으로 ‘범주화’될 뿐, 각각의 생명들이 본래적으로 가지고 있던 고유한 가치와 정체성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된다.

 

 

의사신문.png

(출처 : 의사신문)

 

 

한편, 상용화된 과학기술을 통해 생명에 대한 강력한 감시와 통제가 ‘정당화’되고 결과적으로 생명의 권리가 ‘무력화’되는 경우도 있었다. ‘스마트 방역’ 과정 중에 논란이 되었던 ‘정보인권’ 침해가 그 대표적인 사례. K-방역 초창기부터 공익 추구를 명분으로 방역 당국이 ‘건강하지 못한’(혹은 그럴 것이라고 여겨지는) 이들의 동선과 위치를 샅샅이 파악하는 과정에서 민감한 신상과 사생활이 필요 이상으로 수집되거나 활용(처리, 가공, 공개) 되고 만 것이다. 더군다나, 정보 공개 대상 및 범위, 보관 기한 및 장소, 표시 방법 등에 대한 통일된 기준마저 없는 상황. 자기 자신의 개인 정보는 물론, 그에 대한 결정권마저 국가에 박탈된 생명에게 삶은 이제 ‘살아있는’ 것보다 ‘살아남는’ 것에 가까워진다.

 

그리고 감염병과 관련된 각종 법제도를 통해 마침내 생명이라는 존재는 국가 권력의 메커니즘 속으로 편입되며 ‘수단화’되기도 했다. 그간 K-방역은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약칭 ‘감염병 예방법’)을 기반으로 다양한 권력 장치를 마련하고 작동시킴으로써 통치자(국가)의 강제성을 우선적으로 확보하고 피치자(국민)의 자율성을 독려하는 방식으로 이어져 왔다. 물론, 이는 효율적이고도 체계적인 방역이라는 초기 목표를 달성하는 데 어느 정도 기여했지만 한편으로는 피치자(국민) 개개인에게 ‘선천적으로’ 주어져 있던 ‘건강성’에 대한 책임을 통치자(국가)에 전적으로 일임해버리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그것도, 그에 대한 어떠한 동의나 저항이라는 생명의 ‘주체성’을 보일 새도 없이.

 

이러한 논의들은 결국 우리로 하여금 팬데믹이라는 ‘대위험’ 이후 마음속에 차별과 배제, 혐오라는 감염병에 걸려버린, 그래서 생명에 대한 상호존중과 배려를 잃어버린 오늘날 우리 사회의 안타까운 모습들을 돌아보게 한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이번 사태의 ‘주범’이라고 여겨지는 중국에 대한 반감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달궜고 ‘슈퍼 전파’와 관련된 집단이나 개인들에 대한 2차 가해가 끊이질 않았다. 세계인의 기대감을 한몸에 받았던 백신 접종 과정에서는 국가 간, 소득 간 불평등 문제가 빚어지는 한편 최근 들어서는 ‘백신 패스’(접종증명·음성 확인제)를 두고 과도하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치열한 찬반 논쟁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 감염병에 대한 ‘불안’보다도 서로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더 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그런.

 

어느덧 포스트 코로나라는 새로운 시대를 앞두게 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삶과 죽음의 한가운데 속에서 하나의 생명으로서 자기 자신을 ‘살아내고 싶은’ 수많은 존재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일일 것이다. 인류와의 오랜 투쟁 속에서 때로는 우리가 몰랐던 것들을 알 수 있게 하고 때로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을 바꾸어 버리는 감염병과의 투쟁 속에서 ‘인간성’을 지키는 일일 것이다. 당신의 모든 곁에 있는 생명들과 함께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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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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