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기묘한 미술관, 서늘한 매력에 빠져보는 시간

책을 통해 습득하는 지식
글 입력 2021.12.30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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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윌리엄 미첼 <히파티아>

 

 

 

책을 통해 습득하는 지식



올해가 끝나기 전, 나는 또 한 권 미술 서적을 읽었다. 이로써 8권 정도 된 것 같다. 이쯤 되니 나는 미술사에 관심이 있던 게 아닐까 싶지만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아직 나는 전시회에서 망부석이 되어 몇 시간을 보낼 자신은 없다. 그런데 웃긴 건, 주기적으로 미술 서적을 접하고 있다. 아무래도 세계사에 흥미가 있다 보니, 책이 전해주는 미술사와 엮인 인물과 사건을 재밌어하는 것 같다. 그렇게 눈길이 자꾸 가다보니 미술 서적을 한 두달에 한 번씩 읽게됐다. 그러자 익숙한 그림이 생겼고 어쩔 수 없이 외우는 작가도 생기며, 미술책이 소개하는 여러 이야기 덕분에 잡지식도 생겼다. 여러 권 접하다 보니 작가에 대한 저자의 견해도 점점 더 흥미로웠다. 명화를 보고도 나는 아무 생각도 없는데, 그들은 어떻게 작품을 통해 이런 인사이트를 뽑을 수 있는 것인지도 궁금했다.  물론 나는 책을 통해 습득한 것들을 ‘지식’이라 말할 수 없는 수준이고 한동안 읽지 않으면 금세 까먹는다. 그럴 때쯤 나는 다시 미술 서적을 집는다.

 

이렇듯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지식은 한계가 있다. 한 권의 책을 달달 외우지 않는 이상, 지식을 흡수하기보단 관련 지식에 친밀해질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미술사와 친밀해지는 중이라 생각하고 있다. 다독가들은 보통 책 한 권만 죽어라 파는 것보다, 여러 권의 책을 연달아 읽는 것을 추천한다. <하루 5분 명화를 읽는 시간>, <아티스트 인사이트 : 차이를 만드는 힘>, <아트 인문학 :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 <직업으로서의 예술가 : 열정과 통찰>, <예술가의 일>,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등 예술과 관련된 책을 주기적으로 읽으면서 나는 그들의 조언을 실천 중인데, 암기의 스트레스 하나 없이 그냥 책을 읽는 것만으로 미술사의 견문을 조금씩 넓어지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물론 아주 조금씩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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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미술관

지은이 진병관 | 출판사 빅피시 | 출판일 2021년 9월 8일 | 296쪽


 

<기묘한 미술관>은 나의 관심사가 적절히 섞여 있다. 미술과 역사 그리고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TV 프로그램인 ‘서프라이즈’나 ‘그것이 알고 싶다’를 빠짐없이 챙겨보던 나에게 <기묘한 미술관>이 말하는 합스부르크가의 유전병과 프랑스 혁명의 불씨가 된 마담 퐁파두르의 이야기, 17세기에 성행한 프릭쇼(freak show), 그리고 세기의 도난작품이었던 <모나리자>의 일화 등은 충분히 흥미를 돋웠고, 챕터마다 매력적인 도입부를 선물했다. <기묘한 미술관>은 이처럼 작품과 연루된 사건을 소개하며, 작품을 그린 작가의 일화를 ‘취향’, ‘지식’, ‘아름다움, 죽음’, ‘비밀’이란 총 5가지의 주제로 나누어 목차로 삼았다. 1관 ‘취향’의 방은 아름다운 작품들이 탄생한 배경과 화가의 취향을, 2관 ‘지식’의 방은 명화에 대한 역사적 배경이나 시대 상황, 알레고리 해석 등 알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을, 3관 ‘아름다움의 방’은 누가 봐도 아름다운 작품들과 새로운 아름다움을 제시하는 작품을, 4관 ‘죽음’의 방은 죽음이 지근거리에 있었던 화가들에 대해 다뤘으며, 마지막 ‘비밀’의 방은 아직도 작품에 대한 미스터리가 전부 해석되지 않아 더욱더 흥미로운 작품으로 가득 차 있다.

 

작가 진병관은 2009년부터 프랑스 파리에서 13년간 거주했고, 현재 프랑스 문화부 공인 문화해설사(Guide-Conférencier)로 일하며 꾸준히 작품을 즐기고 있다. 그는 이번 코로나를 계기로 박물관이 폐관함에 따라, 박물관을 찾아왔던 사람들에게 명화를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방법이 없을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그렇게 그는 명화를 소개하는 책을 떠올렸고 <기묘한 미술관>을 집필하게 됐다고 한다. 덕분에 우리는 #취향 #지식 #아름다움 #죽음 #비밀을 중심으로 나눈 23명의 작가의 여러 작품뿐만 아니라 그들이 살았던 당시의 문화도 <기묘한 미술관>을 통해 감상할 수 있게 됐다.


 

<기묘한 미술관>의 모든 작품에는 숨겨진 미스터리가 있다.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미술사, 작품의 사조와 화풍, 기법 등도 소개했지만 화가가 어떤 생각으로 자신의 우주를 표현했는지에 더 중점을 두고 관람하기를 바란다.

 

<기묘한 미술관> 중 프롤로그 6쪽

 


사실 본인은 저자가 의도한 대로 책을 읽지 못했다. 작품 자체에 감탄하거나 작품을 그린 작가의 인생에 집중했던 것 같다. 아래 감상평을 보면 그렇게 느낄 것이다. 나는 부셰의 작품의 주인공인 퐁파두르 부인의 인생에 순전히 감탄했고, 호들러가 투병하는 발렌틴을 화폭에 담은 감정은 어땠을지에 집중하게 됐다. 이런 나와 달리 작가가 작품에 담은 우주가 무엇인지 깨달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직 나는 우주를 발견할 정도의 지식이 없어, 보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가 소개한 작가의 인생을 읽으며, 그들의 인생이 작품 속에 어떻게 녹아 내렸는지,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화가로서의 직업관을 들여다볼 수 있었고, 적어도 그들의 우주를 보기 위한 첫 단추는 꿰맨 느낌이다.

 

<기묘한 미술관>에는 여러 작품이 있다 보니, 본인에게 '무언가'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 나와 다를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이 소개한 작품 외에도 <기묘한 미술관>은 서늘한 매력을 가진 명화를 많이 소개한다.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의문을 가지고 있는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쾌락의 정원>이나 식인 괴물을 몰래 숨어 그린 프란시스코 고야, 빈센트 고흐의 말로 등, 우리가 관심 두기 쉬운 소재로 이야기의 시작을 끊는다. 사람마다 눈길이 가는 작품이 다를 테고, 작가의 우주와 만나는 지점이 다를 테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미술사와 친밀한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지식을 천천히 습득할 수 있다. 이 계기로 미술사와 얽힌 역사에 흥미를 발견하거나, 본인처럼 나만의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아름다움’과 ‘죽음’의 방



자고로 작품이란, 나는 예뻐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탐미적인 성향은 곧 물욕으로 이어졌고, 예쁘면 갖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러다 보니 ‘예쁘다’라고 여긴 것은 자주 들여다보게 된다. 이런 습관은 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는 동기부여가 되어 친밀한 관계를 형성한다. 관심을 두고 친밀해지는 분야가 유형적인 형태를 가지든, 혹은 무형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담았든, 내가 느끼는 아름다움을 제각기 다른 매력으로 가지고 있다. ‘예쁨’은 어떻게 말하면 ‘취향’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취향이라는 것이 지극히 개인적이라 같은 취향을 찾기란 정말 어렵다. 맞고 틀린다를 말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니 취향은 존중받아야 하며, 강요할 수도 없다. 그러다 보니 독선적으로 빠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본인은 ‘취향’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1관인 ‘취향’의 방보다 ‘아름다움’과 ‘죽음’의 방에 끌렸던 것 같다. 3관과 5관은 다른 의미 없이 순전히 아름다움을 보여주었고, ‘죽음’에 가까웠던 그들이 최선을 다해 만들어낸 작품관을 내게 알려주었다.

 


 

혁명의 불쏘시개가 된 정부의 책 한권

프랑수아 부셰(François Boucher, 1703-1770)가 그린 퐁파두르 후작 부인의 초상화



 

퐁파두르는 3,000권이 넘는 책을 소장한 다독가였고, 그녀의 초상화 데부분 책이 등장할 정도의 애서가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캉탱 드 라투르가 그린 초상화에는 그녀가 어떤 책을 아꼈는지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그림 속 퐁파두르는 막 악보를 넘기면서 자신의 음악에도 조예가 깊다는 것을 드러낸다. 그리고 탁자 위에는 그녀가 읽고 아낀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 볼테르의 <라 앙리아트>, 디드로와 달랑베르의 백과사전이 한 권 놓여 있다. 퐁파두르는 파리의 유명 살롱에서 몽테스키외, 볼테르 같은 사상가들을 알게 된다. 이 사상가들은 당시 불온사상으로 취급받던 계몽사상을 이끌던 이들이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평생 그들과 교류하며 조언을 얻었고 그들의 열렬한 후원자가 된다. 그리고 그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백과사전 제작도 후원한다.

 

<기묘한 미술관> 중 프랑수아 부셰, 151쪽

 

 

나는 프랑스 역사 중 루이 14세부터 16세까지 시대를 좋아한다. 번창한 프랑스의 문화와 귀족들의 사치로 치장된 이 시기는 민중의 생활고로 채운 암흑기나 나는 미디어가 보여주는 베르사유의 웅장한 규모를 사랑한다. 어릴 적 추억인 애니메이션 <베르사유의 장미>의 영향일 수도 있다. 아름다움이 넘치는 베르사유 궁전은 커다란 건축 양식부터 디테일을 하나하나를 살린 형형색색의 소품으로 내 눈을 사로잡았다. 베르사유(Versailles)는 당대의 예술을 충만히 담고 있는 공간으로서 드라마 <베르사유>에서 루이 14세의 꿈에 나타난 아리따운 여인이 등장하는 ‘거울의 방’부터, 왕이 머물렀던 ‘전쟁의 방’, 수수함을 간직한 별궁 ‘마리앙투아네트의 마을’, 그리고 수많은 천장화까지 베르사유 궁전은 바로크 건축물 중 최고의 가치를 확실히 증명한다.

 

베르사유를 통해 당시 왕족과 귀족이 예술 수준을 얼마나 성장시켰는지 알아도, 피지배층 계급에서는 긍정적인 면만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나는 역사책과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 드라마 <베르사유> 등에서 지도자층의 이기적인 모습을 보았다. 고귀함을 갖고 태어나 배고픔을 모르고 살았겠다만, 생각하는 깊이가 그저 지배층일 뿐이지, 백성을 생각하는 지도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왕권의 허례허식을 위해 세금을 올리거나 본인의 사치로 국고를 낭비하는 등, 그 시대의 시민에게 베르사유는 민중을 착취한 왕족과 귀족들의 사치와 무능함의 상징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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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부셰, <마담 퐁파두르의 초상화(1756년)>

 


프랑수아 부셰(François Boucher, 1703-1770)가 그린 마담 퐁파두르(Madame de Pompadour, 1721 - 1764)의 초상화만 보아도 그렇다. 그녀는 퐁파두르 스타일을 유행시킨 장본인으로 귀족 여성들의 사치를 돋구는 역할을 하였을지 몰라도, 사치스러웠던 왕의 정부로만 평가받을 인물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뒤이어 새로 등장한 마담 뒤바리(Madame du Barry, 1743-1793)의 영향 탓인지, 그녀가 남긴 예술적 가치는 프랑스 혁명 이후 그녀와 그녀의 초상화를 그린 부셰 또한 비난받았고 조롱거리가 되었다.

 

그렇지만 초상화에서 보이는 것처럼, 그녀는 예술에 둘러싸인 인생을 살았다. 퐁파두르 부인은 루이 15세의 정부로, 그녀는 공방을 왕립 도자기 제작소로 격상해 세브르 포셀린(Sèvres Porcelain) 도자기를 생산하게 했으며, 현재까지도 그녀의 도자기는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다. 또한, 여러 사상가와 교류함으로써 그들의 활동이 끊기지 않도록 열렬한 응원과 후원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림 속에 보이는 두꺼운 책은 철학자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 1713- 1784)의 백과 전서로, 책은 계몽 서적으로 당시 프랑스가 가지고 있던 종교와 정치적 모순을 비판한다. 이 덕분에 프랑스 혁명을 앞당길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퐁파두르 부인이 혁명의 불씨를 지핀 숨은 후원자인 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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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캉탱 드 라투르, <퐁파두르 후작 부인의 초상화(1755년경)>


 

이렇다 보니 현대까지 이르러, 프랑스 혁명을 적당히 배운 일반인에게 퐁파두르 후작 부인은 뒤 바리 부인이 별반 차이 없이 느껴질 수도 있다. 퐁파두르 부인은 분명 이것과 다른 평가를 받아야 하는 인물이지만, 왕의 ‘정부’였기에 재평가의 속도가 더딜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나는 당시 여성의 신분으로 정치적으로 관여한 점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종교적인 세계관과 왕정 청치가 합쳐진 당시 프랑스는 여성이 나설 수 있는 자리가 협소했으나 퐁파두르 후작 부인은 <과학, 예술, 기술에 관한 체계적인 사전>이란 사전 출판을 후원하며 민중이 종교나 정치에 의문을 품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가장 근본적으로 어리석었던 부분을 일깨워줌으로써, 민중이 겪는 가난의 고통을 해결해 주려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이런 점들을 통해 마담 퐁파두르의 초상화에서 그녀의 아름다움과 독보적인 스타일과 더불어 작품 곳곳에 남아있는 가치 있는 예술적 시도를 통해 총 집합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한 모든 업적은 부셰가 그린 초상화에서 모두 찾아볼 수 있다.

 

 


그의 인생에는 늘 죽음이 따라다녔다

발렌틴 고데다렐을 기록한 페르디난트 호들러(Ferdinand Hodler, 1853~1918)



 

호들러의 작품 <발렌틴 고데다렐의 임종>에는 심각한 병마와 싸웠는지 뼈만 앙상하게 남은 여인이 침대에 누워 있다. 옷을 잘 차려입고 신발을 신은 채 누워 있어 조금 의아하지만 온몸의 힘을 빼고 편안히 잠에 빠져 있는 듯하다. 그러나 벌어진 입, 움푹 깊게 들어간 눈, 곱게 포개진 소과 짙은 녹색이 번지는 피부색은 그녀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과 장례를 위한 마지막 모습이라는 것을 알린다. 화가는 연인 발렌틴이 죽은 다음 날 그녀의 초상화를 그렸다.

 

<기묘한 미술관> 중 페르디난트 호들러, 205쪽

 

 

작가에게는 뮤즈(Muse)가 있다. 그 시절의 뮤즈는 보통 어린 여성들로, 화가들에게 영감과 젊음을 안겨주는 원천이었다. 그런 이유로 영감이 고갈된 뮤즈는 다른 뮤즈로 대체되기도 하며, 뮤즈란 단순히 작품적인 리소스가 아니라 연인의 역할도 수행하는 뮤즈는 그들이 작품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안정감을 주기도 했다. 작품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장본인이자 생명력이 꺼지면 같이 사라지는 존재기도 하다. 모딜리아니와 폴레트 주르댕, 클림트의 에밀리 플뢰게, 앤디 워홀과 에디 세즈윅, 오귀스트 로댕과 카미유 클로델 등, 특히 피카소는 여러 명의 뮤즈가 있었던 거로 유명하다. 그가 여성에 관해 던졌던 도발적인 농담도 유명하다. “여신이거나 도어 매트(doormats)이거나” 하지만 이런 여성 편력 속에서도 진정한 사랑을 찾은 작가도 있다. 페르디난트 호들러(Ferdinand Hodler, 1853~1918)와 발렌틴 고데다렐(Valentine Godé-Darel, 1873-1915)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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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디난트 호들러, <발렌틴 고데다렐의 임종(1915년)>

 


작가 페르디난트 호들러는 스위스 화가로, 죽어가는 연인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다. 유년기부터 이미 죽음이 익숙했던 그는 어릴 적 겪은 보호자와 사랑에 대한 부재와 결핍으로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그랬던 그의 방황이 멈출 수 있었던 것은 마지막 연인 발렌틴 고데다렐 덕분이라고 한다. 55세에 만난 그녀는 그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지만, 그들은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에게 불행은 또다시 찾아왔다.

 

발렌틴이 호들러의 아이를 가졌을 무렵, 암에 걸렸기 때문이다. 이 계기로 그는 죽어가는 연인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그는 아주 담담하게 피사체를 캔버스에 담았다. 어떤 누가 연인의 죽음을 마지막 임종까지 200점이 넘는 그림으로 그릴 수 있을까? 작가는 자신의 주변인이 죽어가는 것에 누구보다 익숙했기 때문에, 나는 그가 이 과정에 아주 초연히 임할 수 있었을 거라 느꼈다.

 

덧붙여 여성 편력이 심했던 호들러가 그녀가 암에 걸렸기 때문에, 충격으로 정착하여 작품 활동을 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누군가를 지킬만한 힘이 없던 어린 시절이 아니라, 누군가를 지킬 힘이 충분한 나이에 더는 내 사람을 무기력하게 보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작품 활동을 더욱 이어갈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발렌틴의 사후, 그는 작업에만 몰두했다고 한다. 특히 자화상에 몰두해 100여 점의 작품을 그렸고, 그는 빈센트 반 고흐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자화상을 남긴 화가로 알려졌다.

 

나는 그가 남긴 발렌틴의 초상화에서 느낀 아름다움의 이유를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앞서 말한 것처럼 끈기에 관련된 이유일 수도 있으나, 작품을 담담히 이어나간 ‘화가의 자세’라 말할 수 있다. 주변인의 죽음에 익숙해진 그의 담담함이 화폭에는 작가로서 발렌틴의 모습을 담을 수 있었고, 생명력 있는 작품에는 생기있는 묘사와 싱그러움이 느껴질 수 있는 파스텔 톤을 배경으로 그렸고, 그와 반대되는 컨디션일 때는 녹색을 이용해 배경을 그렸다. 그녀의 간병인이자 동반자로 희망과 절망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느꼈을 불안감과 두려움을 지닌 채, 호들러는 흔들림 없이 작품을 이어나갔다. 익숙한 붓질을 통해 생명이 꺼져가는 발렌틴을 한치에 흐트러짐 없이 담은 작품을 보며, 나는 그가 화가로서의 가진 직업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기나긴 투병 기간 동안 이어온 작품에 대해 무형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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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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