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랑과 희망의 색 - 샤갈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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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전이자 샤갈의 예술적 영감이 되어주던 ‘성서’를 주제로 <샤갈 특별전 Chagall and the Bible>이 2021년 11월 25일부터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다. 다채로운 색감과 몽환적인 화풍을 바탕으로 삶과 사랑을 그렸던 샤갈은 20세기 최고의 화가 중 한 명으로 사랑받고 있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 열렸던 샤갈전과 달리 단독으로 다뤄지지 않았던 ‘성서’라는 주제로 차별화 되었으며 샤갈의 유족이 소장하고 있는 <강기슭에서의 부활>, <푸른 다윗왕> 등 유화, 과슈를 포함해 19점의 명작과 아시아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4m에 이르는 대형 태피스트리 2점, 그리고 독일 쿤스트뮤지엄 파블로 피카소 뮌스터(Kunstmuseum Pablo Picasso Münster) 소장품 등 모두 220여점의 오리지널 작품이 공개됐다.
유대인인 샤갈은 성서를 모티프로 전쟁과 학살로 고통받는 인류를 향한 사랑을 표현했다. 그 시작은 1930년. 성서 작업을 의뢰 받고 예루살렘으로 떠난 샤갈은 깊은 감동을 받아 이후에도 성서를 주제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간다.
그의 작품에는 유대인의 운명, 고난, 삶이 담겨 있다. 그림뿐 아니라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태피스트리, 발레 무대세트, 의상, 석판화 작업까지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 이번 전시의 관람 포인트다.
<노트르담 성당 앞의 엄마와 아기>
전시는 모두 네 가지 섹션으로 나뉘어 있다. 시작은 ‘샤갈의 모티프’다. 1956년 발간된 베르브에 수록되었던 에칭과 석판화를 중심으로 샤갈 작품 속의 상징적인 요소들을 살펴본다. 동물, 악기, 연인, 고향 등의 키워드를 도출할 수 있는데, 각각의 요소들은 화가의 지나온 삶을 되새기게 만든다.
<자비의 문 근처의 예루살렘 성벽>
다음으로 ‘성서의 백다섯 가지 장면’을 만나게 된다. 샤갈의 성서적 메시지가 담겨있는 두 번째 섹션에서는 예루살렘 방문 후 영적인 경험에 매료된 샤갈의 시작이 우리를 반긴다.
마흔 다섯의 나이에 예루살렘을 방문해 이후 25년에 걸쳐 완성한 성서 삽화 에칭 105점 연작을 보고 나면 성서를 통독한 느낌이 든다. 성서를 향한 샤갈의 열정은 관람객에게 그대로 이어져 종교적 감동 그 이상을 선사한다.
<강기슭에서의 부활>
두 번째 섹션이 주요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장면’을 묘사했다면, 세 번째 섹션에서는 샤갈만의 해석이 들어간다.
특히 1930년대 이후 나치의 유대인 학살로 인해 샤갈의 작품은 급격히 어두운 색조를 띠게 되는데, 색감과 더불어 성서 속 인물의 비탄 가득한 표정은 1940~50년대의 시대상을 함께 담고 있는 듯하다. 샤갈의 시대와 성서를 함께 읽을 수 있어 인상이 가장 뚜렷했던 섹션이다.
<땅에서...>
‘또 다른 빛을 향해’ 섹션은 그림과 판화 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보였던 샤갈의 마지막 행보를 담고 있다.
그 중 시인들과의 교류를 넘어서 직접 시인으로 활동하며 쓴 샤갈의 시들이 인상 깊었다. 종교, 어머니, 그리고 자신의 작품에 대한 열정을 모조리 느낄 수 있었다. ‘예술혼을 불태운다’라는 게 이런 것이라는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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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는 석판화 에칭 연작과 태피스트리를 메인으로 구성했기 때문에 샤갈 특유의 강렬한 색채를 기대했다면 살짝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다. 특히 주제가 성서인 만큼 종교적 시각으로 새겨보지 않으면 크게 감동이나 전율을 느끼기 어렵다는 관람후기도 많았다. 하지만 샤갈의 작품은 마냥 성경의 이야기만 나타낸 것이 아니다.
어디에서도 환영 받지 못하는 유대인인 그는 성경 속 인물에 본인을 투영했다. 당시의 유대인은 나라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로마시대에 유대인들은 유럽으로 강제 이주를 당했고, 그 사이 이스라엘은 동로마의 통치 아래 들어간다. 나라 없이 사는 것도 모자라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음에 몰아넣었다는 기독교적 고정관념, 그리고 고리대금업으로 유럽인들의 돈을 빼앗아 간다는 오해 속에서 심한 차별과 핍박을 받는다.
샤갈도 그 중 하나였다. 이미 인정받는 화가의 대열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에서도, 파리에서도 그는 이방인이자 유대인이었다. 샤갈은 이러한 자신의 처지를 작품 속에 투영했다. 아브라함, 모세, 예수는 곧 자신이었고, 성서 속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본인 또한 믿음으로 어려운 현실을 이겨내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모든 생명이 필연적으로 종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면,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사랑과 희망의 색으로 그것을 물들여야 한다고 말하는 샤갈을 보며 살아가는 데 있어 최고의 가치는 사랑임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샤갈은 삶과 성서에 대한 열정을 사랑으로 풀었는데 유대인에 대한 역사적 제노사이드를 단행한 아돌프 히틀러의 어릴 적 꿈이 화가였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 대비된다. 만약 히틀러가 화가의 꿈을 이뤘다면 자기의 사상과 열정을 어떻게 풀어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신유빈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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