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저 내가 되고 싶었던 - 게르니카의 황소

글 입력 2021.12.27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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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니카의황소_표1_띠지유.jpg

 

 

제9회 대한민국콘텐츠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한이리 작가의 책 <게르니카의 황소>가 4년의 개고를 거쳐 독자들의 손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한이리 작가 특유의 날카롭고 생생한 문장과 탄탄한 스토리가 돋보이는 웰메이드 심리 스릴러로서 독자들의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 준비를 완료했다고 하니,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

 

어머니의 잔혹 행위로 가족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의 기억을 상실한 케이트는 정신병원 부원장 닥터 칼 번햄의 집으로 입양이 된다. 우연히 스페인 가족 휴가에서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본 케이트는 순식간에 그림에 매료되고 그림의 모작을 방 안에 걸어두기에 이른다.

 

<게르니카>에서도 유독 황소 그림에 강한 매력을 느낀 그녀는 밤마다 황소가 자신을 찾아오는 환영을 본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닥터 칼 번햄은 그녀에게 약을 처방하지만, 자신의 광기를 예술로 승화시키고자 했던 케이트는 약을 먹으면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투약을 중단한다.

 

 

피카소_게르니카.jpg

게르니카 (파블로 피카소, 1937)

  

 

케이트는 꿈속에서는 잘만 그려지던 그림이 현실에서는 도통 손에 잡히지 않아 괴로워한다. 그러던 어느 날, 꿈속에서 만난 에린이라는 여자의 날 것 그대로의 그림에 매료된 케이트는 에린을, 아니 에린의 그림을 꿈밖으로 탈출시키기로 결심한다.

 

에린의 그림으로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 케이트. 그녀는 그림에 눈이 멀어 에린을 외딴 별장에 가두고 계속 그림을 그리도록 시킨다. 하지만 자유를 향한 갈망으로 가득 차 있던 에린이 마침내 폭발해버리며 사건은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이제 케이트는 현실과 꿈을 구분할 수조차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모호한 경계, 과연 이 모든 일은 현실일까? 아님 꿈일까?

 

책의 시작부터 굉장한 몰입감으로 읽는 이의 눈과 귀를 모두 사로잡아버린 책 <게르니카의 황소>. 책의 서사는 폭력으로 얼룩진 한 소녀와 폭력의 기록이라 알려진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만나게 되며 시작된다.

 

어머니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자신 또한 범죄를 저지르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림이라는 분출구를 만났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케이트는 광적으로 그림에 집착하게 되고 그림을 그려내지 못하는 스스로를 괴로워한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매개로 선택한 그림인데, 자신을 안전하게 숨길 수 없다는 사실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은 아닐까? 이러다가는 정말, 자신 또한 어머니와 같은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닐지 무척 불안했을 것 같다.

 

이에 더해 자신을 처음으로 매료시킨 대상에 대한 형언할 수 없는 갈망이 그녀를 더욱 옥죄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닿고 싶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닿을 수 없는 그림. 결코 놓을 수 없는 그림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했던 것이다.

 

유년 시절부터 성인이 되어서까지, 케이트는 단 하루도 마음 편히 보낸 적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살아남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케이트는 자신이 유일하게 솔직해질 수 있는 대상,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대상인 그림을 통해 끝까지 생을 살아내고자 투쟁했다. 그녀에게 그림은 아무리 과거가 나를 사로잡고 있다 할지라도, 나를 해칠 수는 없다는 결의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책 <게르니카의 황소>는 주인공 케이트의 생의 기록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궁극적으로 케이트가 바랐던 것은 그저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지 않았을까? 자신을 둘러싼 세간의 시선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로서 살아가길 원했던 케이트. 오직 <게르니카>를 통해 위로를 받았던 어린 소녀의 아픔을 빠르게 알아채고 안아주는 이가 있었다면, 그녀의 마음이 조금은 편해질 수 있었을까?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까?

 

 

[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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