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포기 배추만큼 절었으므로 [음식]

맵싸한 한 해였으므로 김장을 했다
글 입력 2021.12.27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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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년과 금년을 비교하며 애석해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겠다. 한 치 앞을 예단할 수 없는 사람이기에 자신의 내일을 보장할 수조차 없는데 말이다. 운명은 개척해 나가는 것이라며 인생의 소유권을 주장하면서도 가끔 호사는 온전한 내 덕이라며 교만을 부릴 때 하늘을 보고 멈칫한다.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연말결산이 두려운 가운데 더는 밤을 지새울 수 없게 된 것은 오히려 다행이었다. 카페인 없이는 집중력을 잡고 있기 요원해졌고 유치원생이었을 적보다 단맛에 이끌리는 비루한 체력만이 남았건만 총기 어린 눈빛이 쏟아지는 잠에 흐려질 때면 근심이 떠오르지 않으므로. 어쨌건 밤이 짧아졌으므로. 알 수 없는 인생의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으므로.

 

결과에 구애받지 않고 맹렬히 달려가던 이의 발자국은 잦은 모래바람이 쓸어갔다. 학교 운동장에서 신발 앞코로 흙바닥의 홈을 파다가 잡념을 털어버린다는 신호로 다리를 세차게 뻗듯이 모래바람은 필자가 일으켰다.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계속 시도하는 것과 포기하는 것 중에서 올해 필자는 이따금 도전했고 종종 단념했다.

 

김장철이 되어서야 일 년을 회고한다. 모름지기 김장이라 함은 다가올 내일을 위해 김치를 담그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열두 달을 무탈히 보냈기에 지금 이 자리에서 재료를 다듬을 수 있는 게 아닌가. 칼날에 실리는 무게에 도마 위로 가지런히 놓인 채소들에 꽤 오래 짓누르고 있던 감정들을 썰어 보았다. 울 일 없어도 눈물 지우게 만드는 양파로 잠시 면피했다.

 

거의 다 왔다 싶어 힘을 놓는 순간 목적지는 사라진다. 꽤 담담한 연말을 보내겠거니 하면서 더 놓을 힘이 남아 있겠나 싶기도 하면서 필자의 목적지는 어디였는지 숙연해진다. 배추가 다 절여질 때까지 남은 시간은 다섯 시간 남짓이었다. 분주히 장내를 정리했고 뻐근한 허리를 거실 바닥에 대고 줄기차게 피었다. 이내 잠들어버리면 지난날이 허사가 된다는 걸 유념하면서.

 

절인 배추가 한가득 쌓여 있다. 차례대로 소금기를 씻어내었다. 배추의 숨은 죽었으나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염분에 속은 것이다. 줄어든 부피에 반해 중량감은 더해졌다. 소금을 물에 풀어 담가 놨으므로 염도가 적당한 수분이 쾌속 증발하지 않고서야 응당한 것이었다. 그저 쳐진 잎 사이로 당연한 낙루를 당연하지 않게 떠밀고서 착잡해 했다. 온통 내가 시작한 일이다.

 

십이월이 썩 반갑지 않다. 목표를 이루었다면 좀 더 큰 과녁을 마련했어야 한다며 심심찮게 자신의 그릇이 너무 작지 않냐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면 아니 않았다면 혹은 목표가 무엇인지도 잊고 있었다면 골몰히 진상 조사를 철저히 할 셈이니까 말이다. 성탄절 분위기에 곳곳이 화려한 장식으로 물들지만 결코 현실은 오색찬란하지 않았으므로.

 

불쑥 찾아오는 쾌활을 경계했어야 했다. 수육을 채 입에 대기도 전에 앞치마에 흘리는 우를 범할 수도 있었다. 최대한 조심스러웠다. 그 어떠한 미동도 없이 안착했다. 마냥 자신이 대견스러워 약간의 수선스런 반응이 수반되었다. 이윽고 숟가락 위에 갓 지은 밥과 겉절이를 올려 웃음까지 보이는 여유를 부렸다. 후일에 찾아온 감기를 예상하지 못할 만큼이나 충만했다.

 

갱죽이 시급했다. 김치와 콩나물 등을 넣고 끓인 죽이 먹고 싶었다. 얼마 전 직접 담근 김치가 이렇게 소비되어서야 합당치 않다 여겼으나 눈앞의 쌀밥을 마다할 지경이었다. 투정을 부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 감기약을 먹고 몽롱해졌을 무렵 어머니가 끓여 주신 갱죽을 먹고 고춧가루에 아픈 목이 더욱 쓰리며 타경을 경험했다.

 

아늑했던 나날이었다. 뚜렷한 성과 없이도 일과를 간수하며 버텨온 날들에 만족스런 성적이 더해지면 흡족하지 않을 수 없다며 희망의 잔열을 머금고 있었다. 주중의 머리말인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긴장과 이완을 반복했고 굳은 근육을 목욕재계로 풀며 주말을 맞이했건만 웃풍을 단속하지 못해서였을까. 남은 두 과목의 시험이 무슨 소용인지 넋두리를 하며 난로를 찾아대었다.

 

어머니는 그때와 같았다. 어머니는 밥상을 차려주셨고 나는 고이 받았다. 어머니는 또 감기에 걸렸냐며 대신 아파해줄 수 없으니 본인만 서럽다며 일갈하셨고 나는 격년으로 안식일을 보내는 거라며 능글맞게 맞받아쳤다. 김장을 한 이유는 비단 갱죽만을 먹기 위해서는 아닌데, 자진해서 김장에 나선 건 언제부터였을까. 맵싸한 연말을 티 내기 싫은 이유도 한몫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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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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