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삶과 씀의 일치를 바라며 - 라이팅 클럽 [도서]

글 입력 2021.12.24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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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 때부터 활자와 상성이 좋았다. 읽는 사람은 결국 쓰게 되기 마련이라는데, 나 역시 그 수순을 착실히 밟아왔다. 생각이 한 번 물꼬를 트면 여러 문장을 누벼갔고, 정갈히 활자화된 내 상념을 주욱 읽어내려갈 때면 지구를 닮은 행성을 발견한 천문학자마냥 고양되기까지 했다.

 

내 성장은 내 글 세계의 확장과 궤를 같이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일기 형태로 시작한 글들이 점점 에세이로, 시로, 소설로, 시나리오로 형상화되었다. 품어야 할 사람도, 품고 싶은 사람도 많아진 문장들이 낯설기까지 했다. 그렇게 내 글은 점점 독자가 전제되어야만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커갔다.

 

독자, 말하자면 충실한 소비자. 곧 나는 내 글을 읽어 줄, 읽고 품어줄 사람이 필요해졌다. 그건 단순히 독서를 즐기거나, 뛰어난 문장력을 갖춰 글쓰기에 대해 조언을 해줄 수 있다거나, 함께 창작을 독려할 수 있는 학우에 대한 갈구와도 달랐다. 일기가 소설이 된 것처럼, 내 세상에만 갇혀 있던 나도 외연을 넓혀 누군가의 의미가 되어야 했다. 나를 이해받고, 누군가를 이해하고 싶었다. 이는 글쓰기로 세계와 나를 잇고 싶은 거대한 욕망으로까지 커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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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숙 작가의 「라이팅 클럽」은 최근에 읽은 그 어떤 작품보다도 나 자신을 투영해 읽어 나간 소설이었다. 그렇기에 주인공 영인과 그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애틋하면서도 사랑스러웠다. 개인적인 사설이 긴 것도 그 때문이지 싶다. 계동의 작은 글짓기 교실을 배경으로 시작된 김 작가과 딸 영인의 사이에는 그 흔한 가족애따위 흐르지 않지만 ‘쓰지 않고는 베길 수 없는 자들’ 사이의 정신적 연대가 존재한다.

 

소설 초반에서 영인은 ‘사방을 둘러봐도 도무지 나라는 유전자의 기원을 알 수 없었다(p.11)’며 자신의 정체성이 부재한 정체성에 대해 표명하고, 어머니다운 모정을 제대로 베푼 적 없는 김 작가 때문에 늘 혼자인 처지를 진술한다. 그러나 그는 혼자였기에 비로소 쓰게 되었다. 나는 김 작가의 오랜 작가 지망생으로서의, 그리고 계동 글짓기 교실의 주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영인에게 실존적 뿌리를 제공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나 역시 그 기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혼자이기에 쓸 수밖에 없고, 후에는 쓰기 위해 홀로됨을 택하게 되는 상황들에 대해서.

 

김 작가의 자주 술과 눈물에 절더라도 끈질기게 써나가는 정신, 삶의 현장이 글이 될 수 있는 가능성, 씀에 익숙하지 않은 이의 발화를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 등은 영인이 삶의 버팀목으로 과감히 ‘쓰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또한 후에 미국으로 떠나 핵켄색의 라이팅 클럽을 만들 용기의 뿌리가 되기도 했다.

 

나는 적어도 쓰는 행위를 부끄러워 하지 않는 영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또 부러웠다. 나만 해도 내가 글을 쓰고, 또 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필사적으로 숨긴 적이 있었는데 영인은 무엇보다 계동 글짓기 교실에서의 기억 덕분인지 씀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창작자가 가져야 할 첫번째 덕목은 창의력도 체력도 아닌 ‘자신의 창작물을 견디는 능력’이라고 느낀다. 자신이 쏟은 감정과 상념의 찌꺼기를, 그 부취와 끈적한 양감을 버티는 능력. J작가에게 단번에 다가가 자신의 글을 봐줄 수 있겠냐고 묻는 장면, 그에 따른 박한 평가에 잠시 입안을 씹다가도 쓸 수밖에 없는 처지를 받아들이고 어쨌거나 읽기와 쓰기로 귀결하는 영인의 삶은 글쓰기를 욕망하는 자의 생리를 보여준다.

 

영인은 적어도 자신의 존재와 그 찌꺼기로 빚어진 글을 버티는 능력을 갖고 있고, 그 역시 김 작가처럼 죽음이 닥쳐온 순간까지 써내릴 것이라고 예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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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모순적이라 느낀 지점은 영인은 시몬느 베이유의 『노동일기』를 깊이 탐독하면서도 계동 글짓기 모임의 여성들의 글에 ‘세상에, 이런 쓰레기들을 보았나!’하는 감상을 내어 놓는다는 점이었다. 이는 곧 자신의 글에 대한 박한 평가로도 이어진다. 영인의 소설 역시 스스로 몸 담았던 일터를 배경으로 삶의 현장을 담은 글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영인이 계동 주부들이 쓴 글의 가치를 무의식적으로나마 깨달아가는 과정이라고 느꼈다. 우리는 어쨌거나 글쓰기는 삶의 행위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모두가 쉽게 글을 쓰고 공유하는 세상이기에 글쓰기의 아우라만큼은 흐려졌는지 몰라도, 대신 그것이 쓰는 이들에게로 옮겨와 각자의 삶을 희미하게나마 밝혀준다는 점은 「라이팅 클럽」이 내게 가르쳐준 단 하나의 진리이다.

 

「라이팅 클럽」을 읽으며 글쓰기를 통해 세상과 나를 연결하고 싶다는 꿈이 지지받는 기분을 느꼈다. 영인의 무거운 생이 주저앉으려 할 때마다 그를 떠받쳐준 책들 때문이다. 글을 쓸 온전한 공간을 꿈꿀 적에는 『자기만의 방』, 네일샵에서 노동하며 문학적 열망을 태운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워 보일지, 그럼에도 그것에 당당하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지에 대해 생각할 때는 『돈키호테』, 불행한 결혼 생활을 지속하는 K와의 만남 후 실존의 고독에 빠져있을 적에는 『인간은 모두가 죽는다』 등, 영인은 수많은 작가들의 발화와 함께 성장해간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는 이 작품을 삶의 길목마다 떠올리게 될 것 같다. 강영숙 작가의 진솔하고도 유쾌한 문체, 진한 생활의 냄새를 풍기는 다채로운 사건들, 입체적인 인물들 역시 자주 떠올라 나에게 쓸 수밖에 없는 자로서의 용기를 더해줄 것이다. 글쓰기로 나를 정리하고 세상을 인식하고 싶다는 꿈은 돈키호테의 그것처럼 허황되더라도 한 번쯤 지녀볼 만한 가치는 있는 것이다.

 

 

[오송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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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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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른하늘
    • '혼자이기에 쓸 수밖에 없고, 후에는 쓰기 위해 홀로됨을 택하게 되는 상황들에 대해서' 라는 문구가 정말 와닿았어요. 저도 글 쓸 때 그런 상황에 많이 처해있었거든요! 글과 '혼자'라는 상황, 내지 단어는 절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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