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행복한 눈물 - 로이 리히텐슈타인 展

눈물의 향기
글 입력 2021.12.23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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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팝아트


 

만화적 표현과 벤데이 점(Benday Dot)을 이용한 독특한 화풍이 특징인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그의 작품 중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알려진 작품은 행복한 눈물(Happy tears)이다. 작가 이름은 몰라도 작품은 어디선가 많이 봤고 익숙했다. 그래서 이번에 한국 최초로 열리는 전시회에서 보게 될 작품과 이야기를 감상하게 될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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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팝아트가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딱 잘라 말하기 곤란하다. 그만큼 텔레비전이나 매스미디어, 상품광고, 쇼윈도 등, 다양한 곳에서 볼 수 있으며 그 의미 또한 다중적(多重的)이다. 코카콜라 같이 상업적 요소를 캔버스에 담아 작품을 만들어내거나, 만화 속 주인공을 등장 시켜 작품을 만든다.


팝아트가 정립되기 전 미국에서 추상표현주의가 주류였던 시절에는 상상할 수도 없던 시도이다. 추상표현주의 그림들은 대중들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그림이 대다수였다.

 

아는 사람만 아는 예술을 대중들의 삶에 들어오게 해준 미술 사조가 바로 팝아트이다. 그림을 공부한 사람이 아니어도 그림을 봐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그저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직관적이고 화려한 색채인 팝아트가 미국에 대중적인 유행이 된 것은 당연하다.


산업사회가 활발히 시작되면서 더 빨리, 더 많은 것들을 생산하고 소비해야 했던 미국 뉴욕의 흐름에 맞춰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장은 마치 혜성처럼 갑자기 나타난 신예라고 알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팝아트 거장이 되기까지 실패와 역경이 있었다.

 

 

 

이것 좀 봐 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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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자본주의의 상징인 뉴욕 맨해튼에서 태어나 유복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부족함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미술 공부를 1949년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미술학 석사학위까지 받으며 이어나갔다.

 

10여 년간 미술을 가르치면서 화가로서 성공을 위해 꾸준히 그림을 그렸지만, 성공은 쉽지 않았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당시 유행하던 추상표현주의 작풍을 그려 전시회를 열기도 했지만, 결과는 대참패로 끝났고 화가로서 그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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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아들이 한마디 말을 던진다. "아빠는 이 만화처럼 잘 그릴 수 없지?” 아들이 말한 만화는 바로 미키마우스였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아들의 말에 자극을 받아 <이것 좀 봐 미키 Look Mickey>를 발표했고 그의 화가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그다음 해인 1962년 뉴욕 레오 카스텔리(Leo Castelli)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그의 작품은 소장가들에게 모조리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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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성공은 그의 작품 세계를 탄생시켰다. 그는 만화 속 한 장면을 환등기를 통해 캔버스에 비춘 뒤 강조할 부분만을 선택해 그림을 그렸다.

 

작품의 특징은 선명한 검은 색 테두리와 형태를 메우고 있는 점들인데 그 점은  벤데이 점(Benday Dot)이라고 부른다. 벤데이 점은 1878년경 삽화가 벤저민 데이가 발명하여 붙은 이름으로 이 방법은 이미 산업 현장에서 사용하던 동판화 인쇄기법이다.


먼저 금속판에 그레이버로 직접 선을 새겨 넣어 제판한 뒤 분리된 이미지들의 내부를 작고 규칙적인 기하학적 망점으로 채우는 방식이다. 자신의 작품이 기계적으로 보이기를 희망했던 리히텐슈타인은 수작업을 통해 벤데이 점을 그려나갔고, 자신만의 시그니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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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이 아닌 '환등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만화의 컷을 비추면 윤곽선과 색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리히텐슈타인은 윤곽선을 더 짙게 그리고 명암을 강조해 사용했다. 특히 색채가 강렬한데 대량 복제 사회에서 인쇄물은 표준화된 공정을 거치게 되므로 모든 색의 기본이 되는 삼원색의 적절한 혼합이 잘 표현되기 위해 삼원색의 이용이 특히 강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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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에서 1966년 사이에는 넓은 붓 자국을 만화 양식으로 변형시킨 대규모 연작을 제작하고, 이후에는 세잔, 마티스, 피카소, 몬드리안 등을 현대 유럽 거장들의 작품을 재해석하여 작품을 만들며 자신만의 세계를 더 확대했다.

 

아르데코 디자인, 고대 그리스의 신전 건축과 정물화 등에 관심을 가지며 벤데이 점, 선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추상적인 구상에 접근하기도 하였다. 이외에도 여러 기업과 협업하여 그림을 그리거나 포스터 작업을 하였다.

 

그는 다양한 시도와 변화를 멈추지 않고 계속해나갔던 작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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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97년 뉴욕에서 사망하기까지 그렇게 300점이 넘은 작품을 남기면서 20세기 후반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남게 된다. 리히텐슈타인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미덕이던 시절 "오늘날 예술은 우리 주위에 있다."고 선언했다. 이처럼 그는 가장 미국적인 방식으로 예술을 대중적으로 선보였다.


전시회를 보고 나서도 머리가 복잡하지 않고 오히려 개운한 기분을 느꼈다. 보이는 그대로 느끼는 작품은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복잡한 생각들이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예술이란 비단 어려운 것만이 아니다.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포스터, 광고, 상품들이 다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로이 리히텐슈타인이 만들어냈고 그가 만들어낸 것들은 여전히 예술로 여겨진다.

 

그 당시에는 비판도 받았지만 그러한 과정이 있었기에 더욱더 그가 만들어내고자 했던 예술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나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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