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마이클, 모두가 너를 사랑한대 - 연극 엘리펀트송 [공연]

글 입력 2021.12.22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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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소니가 사랑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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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많이 사랑해요


본 글은 연극 <엘리펀트송>에 대한

자세한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이클에 대한 이야기



오페라 가수인 어머니 아래서 갑작스럽게 태어난, 축복받지 않은 아이가 있다. 계획에 없던 임신으로 아이를 낳았고, 자신의 커리어에만 몰두했던 어머니의 관심 밖에서 자라게 된다. 8살이 된 아이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빠를 만나러 아프리카로 여행을 간다. 여행 마지막 날, 아빠는 아이를 사파리에 데리고 간다.


사자, 기린, 코끼리.. 동화책에서만 보던 야생 동물들이 눈 앞에 펼쳐지는 순간, 아이는 감탄을 금치 못한다. 그러자 아빠는 코끼리 무리 앞에 사파리 차를 멈추게 한 뒤, 총을 장전한다.


쾅! 무리를 향해 총알이 날아가자 코끼리들은 여기저기 각자 흩어진다. 남은 조그만 코끼리 한 마리.

쾅! 아빠의 총에 정확히 맞은 코끼리는 사파리 차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한다.

쾅! 엄청난 비명을 지르며 코끼리는 쓰러진다.


8살이 보기엔 너무나 처참한 상황이지만, 아빠는 쓰러진 코끼리에게 아이를 데려간다. 겁에 질린 아이는 옆을 서성이다 코끼리가 눈물을 흘리며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본다. 그렇게 아버지와의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아이는 엄마에게 첫 선물을 받는다. 코끼리 인형 “안소니”. 엄마는 안소니를 잘 지켜달라며 선물해주고 노래 <하얀 코끼리>를 오직 아이를 위해서 불러준다.


 

하얀 코끼리, 열다섯 마리 콧노래를 부르네

덤벙덤벙 춤추다가 하하하하 다 같이 웃네

 

아기 코끼리, 한 마리 콧노래를 부르네

덤벙덤벙 춤추다가 흑흑흑흑 혼자서 우네

 


이 또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엄마가 아이에게 준 선물이었다. 그리고 아이는 다시 무관심 속에 버려졌고, 엄마는 완벽한 무대를 향한 갈망으로 아이를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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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라고 했으면 진짜 최고였을 텐데,

‘미안하다’라고 했어도 난 눈물이 났을 거예요.

도와달라고만 했어도 이해를 했을 텐데,

엄마가 뭐라고 한 줄 알아요?

음정 세 개를 틀렸어.

 

 

그리고 15살,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아이는 쓰러져있는 엄마를 발견하고 911에 신고한다. 뭐라고 말을 하려는 것 같은 엄마에게 달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조용히 들어본다. “음정 3개를 틀렸어” 전날 망쳐버린 공연을 본 한 비평가가 그녀의 오페라 인생은 끝났다고 글을 남겼고, 이를 본 엄마가 자살 시도를 했던 것이다. 아이는 엄마에게 더 쉬어야 한다고 말하고 911 전화를 끊어버린다.


엄마의 죽음 이후, 그 전력으로 정신병원에 가게 된 아이는 어느덧 8년 동안 병원에서 지내게 되고 23살이 된다. 그는 평소 똑같은 악몽을 자주 꾼다. 무대에서 아리아를 열창하던 엄마가 갑자기 콜록대다가 그녀의 갑상샘 수술 자국 사이로 아기를 낳는다. 사람들은 생명의 탄생에 박수와 환호성을 보내고, 엄마는 아이를 품에 안고 말을 하려고 하지만 도통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그렇게 대중의 환호는 야유로 바뀌고 꿈이 끝난다.

 

아이와 목소리를 바꾼 꿈속의 엄마. 그리고 아이보다 음정 3개가 중요했던 현실의 엄마. 그녀의 사랑을 원했던 아이 마이클은 크리스마스이브, 아몬드 초콜릿 4개를 먹고 죽음을 택한다.

 

 


크리스마스이브



그는 그의 주치의 닥터 로렌스를 사랑했다.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로렌스는 의사와 환자 간의 관계까지로만 그를 대했다. 그리고 로렌스는 어느 날, 평소처럼 마이클과 상담을 하다가 갑작스레 가족이 쓰러졌다는 전화를 받고 울면서 내일 병원에 출근할 수 없을 것 같단 메모를 남긴 채 황급히 떠난다.

 

상담 도중 그렇게 마이클은 또다시 혼자가 된다. 마이클은 메모를 숨기고 다음 날, 크리스마스이브가 밝았다. 병원장인 닥터 그린버그는 사라진 로렌스를 걱정하며 행방을 찾기 위해 마지막 상담환자였던 마이클을 만나게 된다. 마이클은 아직 닥터 그린버그가 자신의 진료기록과 특이사항을 담은 환자 기록서를 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계획을 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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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지금, 나와 내가 원하는 것 사이에 서 있어요.

 


“내가 원하는 것”은 죽음이다. 아마도 오래전부터 그를 바라왔을 마이클은 목표를 위해 아주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고 생각한다. 크리스마스 시즌이었던 그 주, 로렌스와 상담을 하면서 로렌스가 아몬드 초콜릿 선물상자를 책상 서랍 속에 넣어 놓은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 로렌스는 황급히 메모 한 장만을 남기고 떠나가 버렸고, 그를 찾으러 온 아직 진료기록을 보지 않은 병원장과의 만남으로 죽을 수 있는 도구와 그 도구를 줄 수 있는 존재까지 완벽한 기회였다.


처음엔, 횡설수설 이상한 이야기만 한다. 마이클은 처음엔 간호사에 대해 욕설을 하기도 하고, 코끼리의 특성에 대한 이야기도 하면서 계속해서 대화의 주제가 이어지지 않게 말을 꺼낸다. 상대의 심리를 흔들어 놓으려고 애를 쓰는 23살의 마이클이다. 반면, 닥터 그린버그는 로렌스의 행방을 찾기 위해 로렌스의 마지막 상담환자였던 마이클을 추궁하기에 바쁘다.


서로 대화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계속 시간이 흐르고, 마이클은 어느새 본론으로 들어가 기회를 노린다. 먼저 자신을 죽게 만들 도구인 아몬드 초콜릿 상자를 꺼내야 한다. 그리고 그 초콜릿을 닥터 그린버그가 자신에게 자연스럽게 전달해줄 이야기가 필요하다.


우선, 마이클은 닥터 로렌스와 간호사 피터슨이 모의를 하고 자신을 오랫동안 성추행해왔다고 말한다.  그 증거들이 로렌스가 잠궈둔 책상 서랍에 있다고 그곳을 열어보라고 한다. 아몬드 초콜릿 상자와 증거가 함께 들어 있는 그 책상 서랍 말이다. 이전에도 병원 성추행 사건으로 고소를 당했던 병원장 닥터 그린버그는 조바심이 나 서랍을 열어보았고, 어린 마이클의 나체 사진을 발견하게 된다.

 

 

이게 단순히 뭘 확인하고 말고의 문제 같아요? 내 얘기가 나 좀 도와달라는 절박한 외침으로 들리진 않냐고요! 이젠 이 웃긴 연극을 그만 끝내고 싶다는 절박한 외침!

 

 

사진을 발견하기 전까지의 닥터 그린버그는 대화의 갈피를 못 잡게 만드는 환자 마이클을 믿지 못했다. 하지만, 사진을 보고 심각해진 닥터 그린버그는 점점 마이클의 이야기가 진실인지 거짓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 분위기를 타 마이클은 말장난을 그만하고 계약을 하자고 진지하게 말을 꺼낸다. 닥터 로렌스의 행방을 가지고 말장난하는 이 웃긴 연극을 그만 끝내고 싶다고 마이클은 절규한다. 한편, 로렌스의 쪽지를 반으로 잘라 넘겨받은 닥터 그린버그는 마이클의 주장이 어느 정도 사실인 것 같다고 판단하고 그의 계약을 들어주기로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 문제에 간호사 피터슨이 개입해선 안 되고, 로렌스의 남은 쪽지 절반을 주면 자신에게 아몬드 초콜릿을 보상으로 달라.

 


마이클은 유명한 오페라 가수였던 엄마, 사파리 코끼리의 죽음, 엄마의 목에서 태어난 꿈 이야기, 엄마의 죽음으로 정신병원에 오게 된 그 모든 이야기를 꺼낸다. 닥터 로렌스는 자신을 사랑하면서도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로 선을 그었을 뿐 너무나 좋은 사람이고, 간호사 피터슨도 마찬가지라고. 그 성추행 증거 사진은 그저 어릴 때 의미 없이 찍었던 사진 중에 하나라고 고백한다. 자신의 견과류 알러지 사실만 빼고 말이다. 닥터 그린버그는 나머지 쪽지를 받게 되고 로렌스가 단순히 가족들을 보기 위해 갔음을 알고 안도의 한숨을 쉰 채, 마이클에게 아몬드 초콜릿 선물상자를 건넨다.


 

울어요? 우는 거에요? 나 때문에 울어주는 거에요?

 

 

초콜릿을 받은 마이클은 상자 위에 나란히 초콜릿 4개를 올려놓는다. 천천히 하나씩 먹기 시작한다. 숨기는 게 있으면 점점 말이 많아지는 성격인 마이클은 점점 다른 이야기도 하고 말이 빨라진다. 약간은 망설이면서 초콜릿 3개를 먹고, 닥터 로렌스와 통화를 하게 된다.

 

자기는 잘 있다고, 닥터 그린버그가 선물로 초콜릿을 줬다고 그 서랍 속 초콜릿 맞다고 말한다. 그리고 노래 한 번만 불러 달라고, 하얀 코끼리 노래를 불러 달라고 청한다. 마이클이 스스로 죽기 위해 초콜릿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로렌스는 울면서 마지막 엘리펀트 송을 불러준다.

 

그의 흐느낌을 들은 마이클은 사랑한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는다. 끊자마자 이번에는 망설임 없이 달려가 마지막 초콜릿을 집어삼킨다.

 

 

 

내가 원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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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두 분께서 아이를 갖게 된다면요, 그 아이를 1분 1초도 놓치지 말고 사랑해 주세요. 온 힘을 다해서 아낌없이 사랑해 주세요.

 


“내가 원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사랑을 받는 것일 수도 있었다. 내가 음정 3개보다 못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주는 사랑 말이다.


닥터 로렌스와 간호사 피터슨은 마이클에게 좋은 사람이었다. 마이클에게 사랑을 주기도 했고 옆에서 든든히 8년을 함께 지내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닥터 로렌스가 자신에게 사랑을 주고 있음을 마지막 통화에서 느끼고 이제 진짜로 죽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이 쓰러졌다는 전화를 받고 운 로렌스가 자신을 걱정해 울고 있음을 알고 그 사랑을 받았다고, 인생의 목표를 이뤘다고 생각했을 마이클은 망설이지 않고 마지막 초콜릿을 먹고 죽음을 택한다.


 

지속적으로 사랑을 줄 수 없다면, 아이에게 절대로 절대로 희망을 주어선 안 돼요.

 


하지만, 한편으로 마이클은 자신이 살아있을 때까지, 1분 1초까지 그들이 자신을 사랑해줄 순 없을 것이라 생각한 것 같다. 아빠와의 코끼리 사건 이후, 안소니 인형을 따스한 엘리펀트송과 함께 선물했던 엄마에게 사랑을 느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거라 희망을 품은 어린 8살의 아이는 그전과 같이 무관심해진 엄마의 모습에 더욱 사랑을 갈망하게 되었다.


사랑을 받고 싶은데, 그러지 못했고 오죽하면 엄마가 쓰러진 모습을 발견하자마자 내가 사랑을 원해서 엄마가 쓰러진 거라고 자신을 탓했을까. 그렇게 마이클 자신은 누군가에게 오랫동안 사랑받는 희망을 버리게 되고, 자신은 지속적인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지금이 닥터 로렌스와 간호사 피터슨이 자신을 가장 많이 사랑해주고 있는 순간임을 확신한 순간, 마지막 초콜릿을 먹고 숨을 스스로 거둔 게 아닐까 싶다.

 

 


마이클에게 건네고 싶은 말


 

연극을 보면서 이전 시즌에 봤던 연극이었기에 이미 내용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보니, 마이클의 처절한 외침이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23년이라는 짧은 인생에서 얼마나 사랑 대신 고통을 느꼈으면 저렇게 머리를 써가면서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싶어 할까? 다소 불안정해 보이는 마이클의 상태가 눈에 들어왔다. 대화 주제가 변하는 만큼이나 그의 기분도 시시각각 변하는데, 어린아이같이 툭툭 장난치듯 말을 뱉기도 하고, 기분이 다운되어 간호사 피터슨의 눈을 마주치지 않고 말을 잘하려고 하지 않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한다. 그렇게 날뛰는 감정과 대화가 이어져도, 절대 그가 미치광이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저 15살 전까진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뜻하지 않은 죽음만을 목격했고 15살 이후엔 정신병원에 갇혀 적당한 관심과 보호 아래 따분하게 지낸 마이클이었다. 누군가가 언성이 높아지는 상황에 숨을 못 쉴 정도로 극도의 불안을 느끼고 상대방의 기분과 눈치를 엄청나게 살피는 어린아이에 멈춰있기만 하다. 자신을 진료기록과 과거 행적으로 판단하지 않는 닥터 그린버그에게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해주면서 죽음을 위해 이리저리 말을 꺼내는 마이클이 닥터 그린버그에게 진정으로 원했던 건 과거 병력으로 색안경까지 않고 진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랑의 일종 아니었을까.


반면, 닥터 그린버그는 환자 마이클을 로렌스의 행적을 찾기 위한 도구로 이용했고 일이 해결되었으니 보라색으로 주의 마킹까지 된 기록서를 거들떠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마이클이 초콜릿을 하나둘씩 망설이면서 먹을 때, 닥터 그린버그는 자신의 병원에 또다시 성추행 사건이 일어난 게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고 다시 가족들에게 돌아가 크리스마스이브를 오붓하게 즐길 상상을 하며 옷과 가방을 챙긴다. 그때라도, 그가 진료기록서를 봤으면 마이클의 죽음을 면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코끼리는 포유류 중에 임신 기간이 가장 길대요. 22개월! 엄마 뱃속에서 22개월 와 부럽다.

 

 

코끼리는 22개월 동안 엄마 코끼리의 배에서 지내다가 나온다는 것을 부러워했던 마이클은 엘리펀트 송의 가사처럼 콧노래를 부르다가, 사파리의 아기 코끼리처럼 죽음을 맞이한다. 사파리에서 자신이 죽인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을 아기 코끼리에게 죄책감을 느끼던 그는 코끼리를 지켜주겠다며 엄마가 준 안소니 코끼리 인형을 목숨처럼 소중히 다룬다.

 

하지만 결국 간호사 피터슨에게 “안소니가 사랑한대” 안소니 인형을 건네며 죽음을 택한다. 어쩌면 아기 코끼리가 죽임을 당한 것처럼, 마이클도 세상으로부터 죽임을 당한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누구보다 남들에게 사랑을 주기를 좋아했고 조금이라도 사랑받기를 원했던 어린 15살 아이이기 때문이다. 극적으로 알레르기 주사를 맞고 살아난 마이클의 미래를 상상해 보아도, 결국 결말은 죽음에 다다를 것 같아서 <엘리펀트 송>의 이야기가 더 안타깝게 다가온다.


이제는 다시 마이클이 안소니를 손에서 놓게 하고 싶지 않다. 닥터 그린버그에게 선물이라고 건넨 말 “아이에게 1분 1초도 놓치지 말고 사랑을 주세요” 한마디가 아직도 귀에 울린다. 우리는 그럴 책임이 있는 존재고, 마이클은 그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충분히 가치 있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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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모두가 너를 사랑한대

 

 

[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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