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망상, 몽상, 혹은 공상. 꿈의 이미지들 - 초현실주의 거장들 [전시]

시인의 글에서 시작돼, 전쟁의 영향을 받고, 정신분석학 이론에서 무한히 진화된 한 예술사조.
글 입력 2021.12.20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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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델보(Paul Delvaux, 1897-1994)

붉은 도시(La ville rouge), 1944

캔버스에 유채, 110 x 195 cm

© Foundation Paul Delvaux, Sint-Idesbald - SABAM Belgium / SACK 2021

Collection of Museum Bojmans van Beuningen

 

 

한 사조의 연대기를 원화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많지 않다. 전시라는 문화행위는 특히나 관람자의 신체가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발을 디뎌 움직이며 직접 공간을 체험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그 기억이 더욱 오래 남는다. 각 테마에 맞춰 구성된 6개의 공간.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막연히만 알고 있던 초현실주의의 탄생과 흐름을 자연스레 체득하게 된다.


많은 에디터들이 이미 충분하고 성실한 글을 남겨주었기에, 본 리뷰에선 학파의 주장과 태도에 대한 감상을 덧붙이고자 한다.


 

 

시인으로부터 시작된 예술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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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 1896-1966)

초현실주의 혁명(La Révolution surréaliste)

간행물, 1924, 28,6 x 20,2 x 0,3 cm

© André Breton /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Collection of Museum Bojmans van Beuningen

 

 

초현실주의의 흥미로운 점은 그것이 명확한 ‘선언’을 통해 구체적인 시기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1924년 시인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문(Manifeste Du Surréalisme)'이 바로 그것이었다.

 

보통의 초현실주의는 회화, 사진, 디자인 등 직접적으로 드러난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기에 그 출범이 ‘글’이었다는 건 꽤 의미 있는 일이다. 글에서부터 시작된 파장, 파격, 충격이 당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그것이 이처럼 무한한 이미지로 파생되었다는 것. 초현실주의 학회의 수장이었던 앙드레 브르통을 꼭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전쟁 속 피어난 반항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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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에른스트(Max Ernst, 독일, 1891-1976)

커플(Le couple)

Painting, 1923, 106.5 × 142 cm

© Max Ernst /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Collection of Museum Bojmans van Beuningen

 

 

특히 이 사조는 선대로부터 대물림 받은 흔적까지도 잘 남아있다. 초현실주의의 선조 격인 ‘다다(DADA)’는 1차 세계 대전 말기와 1920년 대 초, 짧지만 빠르게 유행했던 사조다. 다다주의자들이 주장했던 건 혼란, 소음, 반이성주의와 전쟁을 초래한 사회에 대한 항의. ‘안정’에 대한 반항을 그린다는 점에서 훗날의 초현실주의와 비슷한 결을 갖고 있다.


 

 

(무)의식의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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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Réne Magritte, 1898–1967)

그려진 젊음(La jeunesse illustrée), 1937

캔버스에 유채, 184 x 136 cm

© René Magritte /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Collection of Museum Bojmans van Beuningen

 

 

예술사조는 또다시 학문과 결합된다. 본격적인 사조 발달에 있어 초현실주의는 오스트리아의 정신병리학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인간의 행동이 늘 합리적으로만 이루어지진 않으며, 내면 깊숙이 숨어있는 무의식이 그 행동과 정서를 규정한다는 주장이었다.


길들여지지 않은 생각, ‘꿈’에 관심이 깊었던 초현실주의자들은 이에 큰 영감을 받았고 본격적으로 그것을 이미지화한다.


본격적으로 ‘무의식 이론’을 대입했던 초기는 흔히 우리가 말하는 ‘의식의 흐름’과 비슷하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느 샌가 이성을 훌쩍 앞질러 나가는 생각. ‘정신 차려보니-’라는 표현과 비슷하다. 아마 초현실주의가 캐치하고 싶었던 건 흔히 말하는 ‘멍-’이 아니었을까.


예를 들면 이 작품을 들 수 있다. 르네 마그리트의 [그려진 젊음]은 전혀 연관성 없는 것들이 줄지어 늘어져 있다. 당구대, 배럴 통, 튜바, 새장, 자전거. 친숙하지만 당최 저기 놓인 당위를 따질 수 없는 것들. 우리의 무의식, ‘멍-’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게 형상화된다면 바로 저런 모습이 아닐까 싶다.



 

실험과 노력, 우연과 비합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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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Réne Magritte, 1898–1967)

살아 있는 거울(Le miroir vivnat), 1928

© René Magritte /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Collection of Museum Bojmans van Beuningen


 

초현실주의자들은 무의식으로 가는 길을 열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했다고 알려진다. 타고 나길 ‘글’에서부터 태어난 초현실주의는 곧 ‘언어’와의 결합에도 도전한다. 그들이 얼마나 애썼는지 궁금하다면 르네 마그리트의 [살아있는 거울]을 참고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림 속 적혀있는 것은 ‘웃음을 터트리는 사람’ ‘수평’ ‘새소리’ ‘옷장’이다. 단어가 적혀진 일련의 구름들은 작은 길을 통해 연결돼있다. 우리는 각 단어가 무엇인지 알지만 그것을 옆 이미지와 연결될 땐 어떤 모습일지 쉽게 상상하기 힘들다. ‘수평’과 ‘새소리’에선 대체 어떤 연관성을 찾을 수 있는 걸까?


단어는 장면~소리~기억을 차례차례 연상시킨다. 이 이미지가 관계없는 다른 것들과 결합하고 충돌하면서 의식의 세계는 무한히 확장된다. 단순 그림에 글자를 써넣는 것만으로도 예술은 끊임없이 확장된다. 초현실주의자들의 실험과 노력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억눌린 욕망의 (다소) 어긋난 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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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벨머(Hans Bellmer, 1902-1975)

인형(La poupee), 1933

Photo, 1

© Hans Bellmer /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Collection of Museum Bojmans van Beuningen

 

 

[욕망 Desire] 파트의 주인공은 역시 독일의 화가이자 조형작가 한스 벨머였다. 병적인 에로티시즘과 억눌린 성 욕망을 표출했던 그의 주재료는 관절이 움직이는 마네킹이었다. 그는 여성의 몸을 가진 마네킹의 신체를 사정없이 변형 시킨다. 다리와 가슴이 4개씩 달려있거나 3개의 골반이 뒤틀어져 있기도 하다.


‘독일인’ 한스 벨머는 직업 선택을 강요했던 아버지와 독재자 히틀러에게서 자아 욕구를 억압받는다. 비틀어진 광기는 이 인형 프로젝트를 진행시킨다. 질서와 미덕의 장소라 여겨졌던 가정집에 여성의 뒤틀린 신체가 가득한 인형을 전시함으로서 반항심을 표출한다. 체제에 대한 항의로서 그의 작품은 의의를 가진다.


하지만 자신보다 우월한 남성으로부터 억압받은 굴욕감이 여성의 신체를 통해 표현된다는 건 분명 문제가 있는 일이다. 철저히 ‘약자’에게만 그 욕구를 쏟아 부었기 때문이다. 그가 만든 인형의 대부분은 얼굴과 팔이 없다. 인형(여성)은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할 방법도, 직접 움직일 자유의지도 없다. 대상에게서 모든 주체성을 거세시킨 것이다.


남성 초현실주의자들은 사랑과 욕망, 관능으로부터의 자유를 외치면서도 대부분 여성의 몸을 ‘활용’한다. 여성의 가슴과 골반은 하나의 재료일 뿐이었으며 그들 욕구 표현의 도구가 될 뿐이었다. 남성 예술가들의 여성에 대한 대상화는 이미 어느 분야에서나 비일비재한 일이다. 하지만 현 시대의 시각으로 그것이 불쾌한 것은 어쩔 수 없다. 대체 초현실주의자들은 여자 가슴에 왜 그렇게도 집착하는지! 아마 전시를 보는 여성들이라면 한 번 쯤 떠올렸을 생각이리라.



 

일상 비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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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1898-1967) 

금지된 재현(La reproduction interdite), 1937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81 × 65,5 × 2 cm

© René Magritte /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Collection of Museum Bojmans van Beuningen

 

 

마지막 섹션 [기묘한 낯익음 Strangely Familiar]에선 벨기에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이 주로 보여 진다. ‘익숙한 이미지와 사물을 놀라운 방법으로 보아 묘하고 신비롭게 만드는’ 데엔 역시 그의 작품들이 제격일 것이다.


메인 포스터의 대미를 장식했던 [금지된 재현]은 유명한 만큼 따져볼수록 더 재밌어지는 작품이다. 누군가의 뒷모습만 보이는 이 그림이 사실 누군가의 ‘초상화’로서 의뢰받은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면 말이다. 인물이 마주보고 있는 거울엔 여전히 뒷모습만 보이지만 선반에 놓인 책은 제대로 반사되고 있다. 책은 허용된 복제를, 초상화의 주인 제임스는 금지된 복제를 상징하며 거울은 비이성적인 것의 실체가 된다.


정밀하고 깔끔한 그림체는 이 기이함을 더욱 배속시킨다. 살바도르 달리처럼 미지의 환각 세계를 표현하지 않더라도 일상적 순간을 조금 비트는 것만으로도 초현실주의는 기능한다는 걸 알 수 있다.


*

 

시인의 글에서 시작돼, 전쟁의 영향을 받고, 정신분석학 이론에서 무한히 진화된 한 예술사조. 어떠한 주장을 이토록 다양하게 이미지로 구현했다는 것이 초현실주의의 매력이다.

 

그들이 그려낸 건 이치에 벗어난 ‘망상’일까, 헛된 ‘몽상’일까, 막연히 그려낸 ‘공상’일까. 뭐가 됐든 이 작품들이 누군가의 꿈 속 일부분이라는 건 변함없다. 인간의 무의식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에 대해, 그 이미지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게 바로 초현실주의인 것이다.

 

 

[박태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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