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시골 쥐의 한가람미술관 체험기 - 초현실주의 거장들

초현실주의 거장들을 보고,
글 입력 2021.12.20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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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골 쥐의 한가람미술관 "입성기"


 

◆ 지방 소도시의 사람에게 전시회란

 

나는 전라북도에서 나고 자랐다. 고등학생 때, 많은 친구가 그 시골이 뭐가 좋냐며, 전북 탈출만을 꿈꿀 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집 가는 버스의 배차 간격이 1시간 30분마다 있어도, 도내에 백화점이 단 한 곳밖에 없어도 나는 그것의 여유로움과 소박함을 사랑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도 도내 대학에 진학하여, 여전히 전라북도에 살고 있다.

 

의외로 이곳은 매년 다양한 공연이 열린다. 외지 사람들은 전주하면 비빔밥만을 떠올리겠으나, 전주인들은 문화 예술의 도시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사실, 이는 전주가 예로부터 문화와 예술 분야에서 뛰어났던 까닭도 있겠으나, 그만큼 전주와 전라북도가 문화 예술이란 키워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주 세계 소리 축제나 전주 국제 영화제는 그것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겨우 그거뿐이냐는 생각이 들 때면, 도시 규모를 떠올려 보자. 전라북도에서 가장 큰 세 도시인 전주, 익산, 군산의 인구는 각각 65만, 27만, 26만이다. 참고로 송파구의 인구수가 65만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과 지원은 공연에 집중된다. 따라서, 정말 많이 부족한 것은 전시이다. 그나마 기댈 곳은 도립 미술관밖에 없는데, 해외 유명 박물관과 결연하여 그곳의 예술품을 가져온다든지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 이유는 당연하게도 향유 층이 적기 때문이리라.

 

따라서, 어린 나가 미술 전시란 돈 많고 시간 많은 사람이 즐기는 고급 취미라고 느끼는 것은 지당했다. 전시를 보기 위해서는 서울까지 가야만 했고, 그렇다면 왕복 버스비만 4만 원에 시간은 약 5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처음 문화 초대 링크가 떴을 때, 많이 고민했다. 만약 관람한다면 리뷰를 써야 할 텐데 미술에 무지하기에 좋은 글은 쓰지 못할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뷰가 꼭 획일적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신청했고 그래서 쓴다.

 

 

 

2. 시골 쥐의 한가람미술관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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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바도르 달리, [머리에 구름이 가득한 커플]

 

우리는 종종 약속한 것들을 잊는다. 오랜만에 얼굴을 본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날, 나는 내 에어팟 충전을 잊었고, 그 애는 무선 이어폰을 가져온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꼭 큐피커 앱을 사용하고 싶었기에, 매표소 앞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그 애는 주머니를 뒤적이다가 줄 이어폰 하나를 꺼냈다.

 

우리는 그 얇은 선으로 연결되었고, 해설은 시작되었다. 나는 평균 키보다 작으므로 우리는 서로에게 고개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몇몇 작품을 지나, 달리의 [머리에 구름이 가득한 커플] 앞에 섰다.

 

연인의 형태를 한 프레임, 그 중심에는 흰 식탁보로 덮인 테이블이 있다. 하늘은 푸르지만 그렇다고 마냥 높고 맑진 않다. 오히려, 그 아래에는 넓고 끝없는 사막이 펼쳐져 있다.

 

달리는 밀레의 만종을 인상 깊게 보았고, 그것 속 남녀를 모티프로 하여 프레임을 제작하였다고 한다. 그것의 주인공은 당연하게도 달리와 그의 연인 갈라다. 갈라의 형상은 달리 쪽으로 고개가 기울어 있었다.

 

우리는 그제야 우리의 자세가 달리와 갈라의 것과 똑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애와 나는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그 애는 은근하게 미소지었다.

 

 

◆ 한스 벨머, [인형 놀이]

 

한스 벨머의 작업물은 19세 미만은 관람을 삼가 달라는 푯말과 함께 따로 전시되어 있었다. 배운 변태로 유명한 한스 벨머답게도 기묘한 장면들을 포착한 것들이 많았다.

 

작품을 첨부하려고 했으나, 전시를 기획한 이들의 의도를 존중하여, 첨부하지 않겠다.

 

작품들은 각기 다른 자세를 한 구체관절 인형들이 숲속이나 창고처럼 으슥한 곳에 묶여있다. 그것들은 범죄의 현장을 재구성한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아주 섹슈얼하게 느껴졌다.

 

그 기묘하고 그로테스크한 감정은 나에게 부정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함께 듣던 이어폰을 빼서 그 애에게 건네준 후 그곳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그 애는 10분 정도 후에 무언가를 느낀듯한 표정으로 나왔다. 나는 그 애에게 사랑을 해체한 것이 못마땅하다고, 너무 폭력적인 접근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애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래서 좋은 거라고 말했다.

 

나는 폭력성에 집중했지만, 그 애는 해체에 집중한 것이다.

 

같은 속도로,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들으면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한 것이다. 특별한 경험이었다.

 

 

 

3. 글을 마치며,


 

◆ 전시, 그리고 걷기

 

전시를 관람하기 전에도, 전시를 관람하는 중에도, 전시를 관람한 이후에도 걷기는 계속됐다. 그리고 모든 걷기는 그 전시에 대한 모종의 감정들을 수반했다.

 

우선, 나는 걸어서 미술관으로 들어갔다. 이때, 나의 머릿속은 전시에 관한 기대로 가득했다. 달리가 작업한 필름인 <안달루시안의 개> 속 한 장면을 떠올리기도 했으며, 마그리트의 작품을 모티프로 만든 우리 집 벽시계를 떠올리기도 했다.

 

전시 중에는 걷기를 통해 다양한 것들과 소통한다. 그 대상은 단순하게 전시관 속 객체들이 될 수도 있으며, 전시를 관람하고자 동행한 사람도 될 수 있다. 어떠한 관점에서는 전시를 진행하기 위해 전시관 곳곳에 있는 관계자들도 이에 포함될 수 있으며, 더욱 넓은 관점으로 보면, 전시관 내에 있는 모든 사람도 속하겠다.

 

그리고 나는 그 애와 발을 맞추며, 혹은 스스로의 속도에 집중하면서 걸었고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와, 이건 정말 멋있다.” “얘는 왜 이것 앞에서 발을 떼지 못하지?” “저분은 전시가 끝날 때까지 저곳에 서 있어야겠지? 다리가 매우 아프겠다.” “나도 저분처럼 가까이서 봐야지.”가 그 예시이다.

 

마지막으로, 전시를 모두 관람한 후 전시관에서 걸어 나오면서, 나는 어떤 작품이 가장 좋았으며, 기념품으로 무엇을 사야 할지 고민했다.

 

그런 의미에서 걷기란 전시회만이 가진 고유한 특성이다. 인터넷이나 책과 같은 매체를 통해 예술 작품을 접하는 것은 순간적이며, 정적이기 때문에 예술 작품에 관해서 진지하게 고찰하기 힘들다. 그에 비해 전시는 끊임없이 걸으며, 그것과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소통한다는 점이 좋았다.

 

왜 그렇게 사람들이 전시를 사랑하는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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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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